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24)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24화(124/202)
< 123화 – 황금 공 >
“괜히 이겼나.”
“응. 괜히 이긴 것 같아.”
“젠장. 그냥 콱 져버릴걸.”
파리 원정에서 돌아온 뒤.
웨스트 햄 훈련장은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는 선수들로 가득하다.
선수들은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그래도 자기들 덕분에 감독님을 향한 좋은 기사들이 많이 쓰였는데.
그래서 기분이 좋아지신 감독님이 체력 훈련을 조금 줄여주실 줄 알았는데.
개뿔이.
오늘도 헛구역질이 나올 때까지 구르고 또 굴렀다.
-“슈미트 감독님은 최고” 요한의 한 마디에 슈미트 감독과 재계약 준비하는 웨스트 햄?
-“찢었다” 무용지물된 드뷔시의 수첩··· 믿음의 리더심이 이겼다
-‘게으른 천재’ 요한을 다루는 슈미트 감독의 노하우 재조명··· 황당하지만, 이보다 효과적일 수 없다?
-“믿고 따른다” 슈미트 감독의 리더십, 웨스트 햄을 하나로 만들었다.
파리와의 경기 이후, 많은 기사들이 쏟아졌다.
웨스트 햄의 불안 요소는 감독이라며, 뛰어난 전술가인 드뷔시 감독이 경기를 주무를 것이라고 떠들어대던 언론은 언제 그랬냐는 듯 태세를 전환했다.
뭐, 언론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만.
이제 와서 찬양질을 하는 꼴들을 보니 욕이 나오기도 했다.
그래도 뿌듯한 건 뿌듯한 거였다.
보스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모습은, 그 보스를 따르는 선수들 입장에서 뿌듯할 수밖에 없는 일.
좀 서운한 게 하나 있다면, 선수들은 뿌듯해하고 있는데 정작 감독님은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지만.
“저희가 명장으로 만들어 드렸는데, 뭐 없습니까? 하루 정돈 체력 훈련을 빼주신다거나···”
“감독님 욕 안 먹이려고 저희 무진장 애썼다구요.”
“쓸데 없는 소리들 하지 말고, 그런 거 신경 쓸 시간에 공 한 번 더 차라.”
“감독님도 기분 좋으시잖아요. 솔직히.”
“난 아무 관심 없다. 그놈들이 뭐라 떠들든, 상관할 게 뭐냐? 사람들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우리가 우리를 믿는거다. 그거면 된 거다.”
“오오. 그 말씀은 좀 멋있었는데요.”
하긴, 외부에서 뭐라 떠들든 바뀌는 건 없다.
중요한 건 매 경기 승리를 해나가는 것뿐.
외부의 시선이, 우리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게 아니다.
평가는 따라올 뿐이다.
“역시 연륜이란.”
“나도 감독님처럼 늙고 싶어.”
선수들은 초연한 모습의 슈미트 감독을 멋있다는 듯 바라보았고, 슈미트 감독은 콧방귀를 뀌었다.
이런 게 연륜인가 싶었다.
*
“미하··· 엘··· 슈··· 미트···.”
문이 굳게 닫힌 감독실.
슈미트 감독이 돋보기 안경을 끼고 노트북에 무언가를 검색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이다.
“으음.”
검색 결과를 천천히 하나씩 읽어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는 슈미트 감독.
드뷔시인지 뭔지, 선수 출신도 아닌 샌님이 이끄는 파리를 박살 냈더니 평가들이 아주 달라졌다.
고얀 놈들.
뭐, 이제라도 다들 알았으면 된 거지.
“···.”
혹시라도 누가 들어오지 않았나, 주변을 둘러본 슈미트 감독은 노트북을 덮었다.
제이미 코치, 이놈이 가끔씩 장난을 친다고 몰래 들어오기도 해서.
피식 웃음을 터뜨리는 슈미트 감독.
‘마냥 기쁘지만은 않아.’
슈미트 감독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생각했다.
자신을 찬양하는 기사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긴 했지만.
마냥 우쭐한 기분이 드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건 부담감이다.
솔직히, 자신의 역량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감독들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는 슈미트 감독이었다.
애초에 자신이 누구나 인정하는 명장이었다면, 웨스트 햄이 아니라 맨유나 맨시티에서 자신을 불렀겠지.
아니면, 적어도 웨스트 햄을 이끌고 중하위권을 맴돌진 않았을 테고.
지금 팀이 이렇게 순항하고 있는 건, 순전히 선수들 덕이라고 생각하는 슈미트 감독이었다.
이건 어떠한 겸손도 아니었다.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독일인으로서 얘기하건데, 모든 건 선수들 덕이었다.
특히, 요한이.
그 꼬맹이 한 명 덕분에 팀이 여기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부담인 거다.
팀의 덩치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커졌고, 앞으로 굉장히 중요한 순간들이 찾아올 것이다.
선택의 순간들 말이다.
그 중요한 순간들을, 자신은 감독으로서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한다.
선수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으니, 자신의 잘못으로 선수들이 낙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감독이라는 게, 이래서 어려워.’
수십 년간 감독 생활을 해왔지만, 감독이란 자리는 여전히 부담스럽다.
감독 한 명에 의해 수십 명의 선수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
감독의 가벼운 결정 하나 때문에, 어떤 선수는 선수 생활이, 인생이 바뀌기도 한다.
그런 막중한 힘을 가진 자리에 앉아 있는다는 건, 그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어깨에 짊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힘든 일을 수십 년간 해올 수 있었던 건, 역시나 즐겁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지도 아래 성장해가는 선수들을 보는 일.
자신의 제자들이, 다른 선생의 제자들을 박살내는 모습을 보는 일.
모두가 하나가 되어 승리의 기쁨을 맛보는 일.
그 즐거움들이, 다른 수백 개의 어려움을 뒤로 제쳐둘 수 있을 만큼 크다.
앞으로도 자신이 해야 할 건 하나 뿐이다.
선수들이, 제 자리에서 100퍼센트 이상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그뿐이다.
축구는 결국 선수들이 하는 것이다.
자신은 그 선수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고.
때문에 선수빨이라는 말을 들어도 전혀 타격이 없었다.
사실이거든.
슈미트 감독은 그저, 사람들이 자신의 공을 알아주기보단, 선수들에게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내주길 바랄 뿐이었다.
자신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는 제자들을 보는 것, 그걸로 족했다.
ㆍㆍㆍ
파리와의 경기 이후, 웨스트 햄의 다음 일정은 리그 5라운드, 브라이튼과의 원정 경기였다.
지난 시즌, 브라이튼과의 상대 전적은 2승 0패로 우위.
그러나, 그 두 경기 모두 쉬운 승리는 아니었던 기억이 있다.
특히나, 이번 경기는 주중 챔피언스 리그를 치르고 임하는 원정 경기.
파리 전 이후 4일만에 펼쳐지는 경기였다.
심지어 프랑스까지 왔다 갔다 하는데 걸린 시간을 빼면, 사실상 이틀 밖에 쉬지 못하고 경기를 뛰게 된 상황.
상대인 브라이튼에 비하면, 여러모로 불리한 처지에서 경기를 하게 된 웨스트 햄이었다.
그러나, 불평을 할 수는 없었다.
지난 시즌까진 자신들도 이득을 봐오던 입장이었으니까.
빅클럽이 되기 위해선 이겨내야 하는 과정이었다.
아무튼, 브라이튼 전에 나선 선발 명단은 파리 전과 꽤 달랐다.
파리 전에서 14km 가량을 뛴 조너선 네이슨이 결장했고, 카펠로 역시 서브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수비에선 여전히 유로의 여파가 남아 있는 벨라미가 휴식을 취했다.
다행인 건 요한이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이었다.
요한도 체력이 쌩쌩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스스로가 경기에 나서고 싶어 했기에 슈미트 감독이 출전을 허락했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전반 45분만 뛰고 교체하기로 말이다.
요한이 경기에 나서고 싶어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파리 전 2골로는 훈련 면제권이 부족했으니까.
더 쉬고 싶으면 경기에 나서야 했다.
그래서 요한은 브라이튼 전에 선발로 나섰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팀을 구원했다.
<고오오올-! 들어갑니다! 요한의 그림 같은 헤더! 고든의 코너킥을 그대로 밀어 넣습니다!>
<또 들어가요, 또! 시즌 6호 골! 이번엔 27미터짜리 프리킥을 골대 상단에 꽂아 넣는 요한 반!>
브라이튼은 요한을 막을 수 없었다.
차라리, 요한이 풀타임을 뛰었다면 그나마 막기에 더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45분이라는 제한 시간을 받아든 요한은 오히려 막아내기가 더 힘들었다.
요한은 전반 12분에 한 골, 33분에 또 한 골을 집어 넣으며 두 개의 공격 포인트를 챙기곤 기분 좋게 벤치에 앉았다.
웨스트 햄은 그 두 골에 힘 입어, 브라이튼을 3대1로 제압하고 개막 후 5연승을 달리게 되었다.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에서 거둔 값진 승리.
빅클럽이 되어가는 과정을 착실히 밟아가는 웨스트 햄이었다.
*
-[PL 6R Pre-view] 토트넘 vs 웨스트 햄
브라이튼 전 다음 일정은 토트넘 핫스퍼와의 경기였다.
런던의 라이벌인 양 팀의 더비 매치.
이 경기를 앞두고, 토트넘 팬들은 사무국에 굉장한 불만을 성토하고 있었다.
경기 일정 한 번 뭣 같이 짠다면서 말이다.
└경기 일정 짜는 놈 누구냐? 면상 한번 조우하고 싶네
└왜 하필 지금이냐? 이거 노린 거 맞지?
└지난 시즌 전 경기 직관러인데, 이 경기는 패스해야겠다
└하··· 이번 주말은 수면제 먹고 이틀 동안 자다 일어나야겠네
└정말 개같다 이거에요
└개같은 건 아스날이고. 이건 진짜 주옥같네
하필 6라운드에 만나게 된 웨스트 햄.
사실, 이 더비 경기가 썩 반갑지 않게 된 건 지난 시즌부터였지만.
이번 경기를 앞두고 스퍼스가 유독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건, 이유가 있었다.
단순히 어려운 경기가 될까봐 그런 건 아니었다.
토트넘의 현재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5라운드까지 3승을 거두며 쾌조의 스타트를 보이고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이게 좋은 일은 아니지만 토트넘은 챔스에 나가지 않고, 웨스트 햄은 챔스를 뛰는 상황이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도 우위라 경기는 충분히 해볼만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좌절하고 있는 건, 그 경기에 앞서 열리는 한 시상식 때문이었다.
프랑스 잡지사에서 주관하는, 나름 전통과 유서가 있는 시상식.
발롱도르 시상식 말이었다.
그 시상식에서, 웨스트 햄 소속 선수의 수상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또한, 이번 6라운드는 웨스트 햄의 홈에서 치러진다.
이 말은 뭐냐.
진짜 자존심 상하는 장면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
지난 2027/28 시즌의 전체를 두고, 어떤 선수가 최고의 선수였는가에 대한 투표가 지난 9월 끝이 났다.
전 세계의 기자단 투표로 진행되는 발롱도르 투표.
투표권이 있는 기자들은 매년 이맘때가 되면, 고심에 고심을 한 끝에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다.
다만, 올해는 누구에게 한 표를 던질지 고민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압도적인 시즌을 보낸 선수가 한 명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투표가 얼마나 쉬웠냐면, 축구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투표를 받았어도 기자단의 투표 결과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단순히 기록만 놓고 봐도, 누가 제일 압도적이었는진 한눈에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그에서 59골 17도움을 기록하며 득점왕과 각종 개인 수상을 석권.
FA컵 우승을 차지하며 소속 팀에 수십 년만의 트로피를 선물.
결승전 해트트릭을 포함해, 대회 전 경기 득점이라는 진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던 유로까지.
2027/28시즌은 누가 봐도 이 선수의 해였고, 덕분에 기자단은 마음이 편했다.
이번 시즌만큼, 수상자에 있어 논란이 없을 시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때보다도 머리가 아프지 않은 투표였다.
그러나, 그렇게 순탄했던 투표 과정과 달리.
시상식을 준비하던 관계자들은, 예상치 못한 소식 때문에 난색을 표하고 있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던 일.
그건 바로, 수상자가 시상식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의사를 전해왔다는 것이었다.
수상 후보도 아니고, 수상 당사자가 말이었다.
“설마··· 그 이유인가?”
“그렇지 않을까요.”
발롱도르의 주최사인 프랑스 풋볼의 편집장, 마르코스 장 폴은 그 소식을 접하곤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상식 초청을 거절하며, 선수 측에서 밝힌 불참 사유는 주말 리그 경기를 준비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기가 힘들었다.
게으른 괴짜로 널리 알려진 그 수상자라면, 진실은 그게 아니라 다른 이유이지 않을까.
시상식에 참가하기 위해, 프랑스까지 날아오는 게 ‘귀찮아서’라는 이유 말이다.
“어떻게 하죠?”
“흐음···”
여하튼, 난감한 상황이었다.
주인공 없이 시상식을 해야 하는 판이라니.
“이럼 발롱도르의 권위가···”
만약 수상자 본인이 불참한 가운데 시상식을 그대로 진행하게 되면, 발롱도르의 권위가 떨어질 것임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당연하지 않나.
수상자 조차 상을 받으러 오지 않는 시상식이라니.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장 폴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가야지, 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상을 주러, 이쪽에서 가는 수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