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25)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25화(125/202)
< 124화 – 황금 공 >
“진짜 안 갈 거야?”
“거길 왜 또 가. 경기하는 것도 아닌데.”
“아니, 요한아. 발롱도르라니까. 발롱도르!”
“나도 알아. 귀에 딱지가 앉도록 형이 설명해 줬잖아.”
“근데? 그 영광스러운 중요한 상을 그냥 택배로 받고 끝내겠다고?”
“그 상보다 나한테 중요한 건 내 시간이야.”
“말만 번지르르 하지.”
로한은 울화통이 터지는 기분이었다.
코앞으로 다가온 발롱도르 시상식.
누가 올해 수상자가 될지는, 시상식 당일에 공개되기 때문에 아직 알 순 없었지만.
요한이 수상하게 될 거라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라 기대를 많이 했던 로한이었다.
축구계 레전드들이 모두 모인 시상식 자리에서, 멋지게 차려입은 요한이 발롱도르를 수상하는 장면을 보는 것.
죽을 때까지 돌려보게 될, 대대손손 가문의 영광으로 남을 장면이었다.
근데 그걸 못 본다니.
단순히, 프랑스까지 가는 게 귀찮아서라는 이유로 말이다.
누구보다 동생에 대해 잘 아는 로한 조차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안간다고 못 받는 것도 아니라며.”
“하, 그건 그런데···”
물론, 시상식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수상자가 바뀌진 않을 것이었다.
이미 투표는 끝났고, 투표 결과에 따라 수상자는 정해져 있다.
요한이가 시상식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후보에게 발롱도르가 넘어가는 일은 없을 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왕이면 그 중요한 순간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은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에휴, 그래··· 뭐, 네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
“네가 싫다면 싫은 거지, 뭐. 그래, 이 형님이 무슨 힘이 있다고 너한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겠냐.”
“왜 갑자기 불쌍한 척이야.”
“에휴. 아니야.”
“···그렇게 보고 싶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로한.
그런 로한의 어깨를 요한은 툭툭 쳐주었다.
“그래도 안 갈 거야.”
“···진짜 넌···”
로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발롱도르를 받는 동생의 모습을 보는 건, 물 건너 간 듯 했다.
*
“어떻게 됐어?”
“겨우 협조 받았습니다.”
“휴우! 다행이다. 미치는 줄 알았네.”
프랑스 풋볼의 편집장 마르코스 장 폴은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코앞으로 다가온 시상식.
시상식 장소나 식순, 진행자 등 필요한 형식은 이미 모두 정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수상자의 불참 선언 이후 이 모든 걸 전면 수정에 들어가야 했다.
주인공 없이 시상식을 그대로 진행하게 될 경우, 발롱도르의 위상에 흠집이 날 터였으니.
다행히, 일은 빠르게 처리되고 있었다.
가장 먼저 협조를 구한 건 프리미어 리그 사무국이었다.
프랑스 풋볼 측은 긴급 회의를 거쳐 나온 아이디어를 사무국에 문의했고, 협조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겨우 한 숨은 돌린 셈.
“근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흐음.”
부하 직원의 말에 한숨을 내쉬는 장 폴.
급박한 상황이라 물불 안 가리고 매달려서 어떻게든 일을 처리하긴 했다만, 한숨을 돌리며 생각해보니 현타가 오지 않을 수 없다.
상을 주는 쪽에서 더 안달이 나서 이러고 있다니.
그것도, 자신들이 무슨 3류 찌라시 잡지도 아닌데 말이다.
발롱도르라고, 발롱도르.
모든 축구 선수들이 최고의 영예라고 생각하는 상인데, 이놈은 여기까지 오는 게 귀찮다고 하니.
괘씸하기까지 하다.
“어쩔 수 없잖아. 수상자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긴. 백번 재투표해도 결과는 똑같겠죠.”
괘씸하다한들 방법은 없었다.
저쪽에서 안 오겠다 하면, 이쪽에서 친히 가져다 드리는 수밖에.
다행히 사무국과 이야기가 잘 됐으니, 이젠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는 일만 남았다.
“젠장. 인트로 영상부터 다시 찍어야 하잖아. 골치 아프네.”
“빠르게 움직여야할 것 같습니다.”
시간이 없다, 시간이.
장 폴을 포함한 시상식 관계자들은 다시 바삐 움직였다.
ㆍㆍㆍ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궁 내부.
국회의사당 북쪽에 위치한 한 시계탑 앞엔 무언가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메인 카메라는 이쪽, 그리고 저쪽. 오케이. 아담! 앞에 서봐! 앵글 좀 보자!”
여러 대의 카메라들도 보이고, 사람들을 통제하는 관계자들도 보이고.
뭔가 리허설을 하는 듯한 게, 영화 촬영이라도 있는 건가 싶은 모습.
그러나 그런 건 아니고.
발롱도르 특별 시상을 위한 준비가 한창인 현장이었다.
영국과 런던의 랜드마크인 엘리자베스 타워.
프리미어 리그 사무국의 협조로 프랑스 풋볼이 정한 시상 무대는 바로 이곳이었다.
소위, ‘빅 벤’으로 알려진 시계탑.
파리의 에펠탑만큼이나 상징적인 이곳에서 시상이 이뤄질 예정.
“그림은 나오네.”
며칠 사이 초췌해진 장 폴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급하게 준비하긴 했다만, 영국 측의 협조를 받은 덕에 나름 그럴듯한 그림은 건질 수 있게 되었다.
뭐, 여전히 걱정되는 부분이 많은 건 사실이어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선수 측에서도, 여기서 시상이 이뤄진다면 나와주겠다고 했으니.
그걸 고마워해야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일단 수상자가 없는 상태에서 시상식을 거행하는 것보다는 일이 훨씬 나아졌다.
“좋아하겠네요. 영국 사람들.”
“사실 그게 제일 아니꼬워. 우리가 누구 좋으라고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건지.”
“뭐, 어쩔 수 없잖아요. 즐기게 두자구요.”
“하긴. 거의 30년 만이니까. 잉글랜드 선수가 수상하는 게.”
일이 이렇게 됐으니, 영국 팬들의 반응은 아마 뜨거울 듯 했다.
그들의 상징인 빅 벤에서 시상이 이뤄지게 됐으니.
특히 웨스트 햄 팬들은 난리가 나겠지.
지난 수상자들과 달리, 이건 뭐 특별의 특별 대우니까.
솔직히 말하면, 준비를 하면서도 이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다른 수상자들은 모두 프랑스에 와서 받아 갔는데, 이렇게까지 해주는 게 맞나 싶어서.
차라리 안 오겠다면 안 오는 대로 시상식을 진행하는 게 권위를 지키는 일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발롱도르 수상자는 인기가 여러모로 너무 높았다.
유에파 회장도 유럽 축구의 인기를 책임질 차세대 스타라고 꼽았을 정도니, 뭐.
시상 순간을 밍숭맹숭하게 넘길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된 거, 완벽하게 해보자고.”
“옙. 리허설 한 번 다시 가보겠습니다.”
이왕이면, 최대한 멋진 그림을 만들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
ㆍㆍㆍ
“폼나게 하고 와. 알겠지?”
“폼나는 게 뭔데.”
“발롱도르 수상자답게! 좀 무게도 딱 잡고! 암튼! 잘하고 와!”
“···알겠어.”
로한은 신이 난 상태였다.
요한이가 발롱도르를 받는 영광의 순간을 못 보고 그냥 지나갈 줄 알았는데.
프랑스 풋볼 측에서 직접 영국으로 날아왔단다.
요한이도 그 정성을 봐서, 요 앞까진 다녀오겠다고 했고.
“진짜 역사적인 날이에요. 아빠. 그쵸?”
“그럼. 우리 가문의 역사적인 날이지.”
반석호 역시 들뜬 마음을 감출 수 없어 보였다.
잠시 후, 시상식이 시작된다.
요한이는 녀석을 직접 데리러 온 시상식 관계자들을 따라 집을 나섰고, 가족들은 집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좀 떨리네.”
“저도 긴장돼요.”
“이런 순간이 오다니···”
이미 요한이 덕분에 별일은 다 겪어 본지라.
더 놀랄 일도 없을 듯 했지만, 오늘은 또 얘기가 다르다.
축구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꿔봤을 꿈.
요한이 할아버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구에서 공 제일 잘 차는 놈’에게 주어지는 상.
발롱도르를 요한이가 받게 되었다.
발롱도르 위너가 반씨 가문에서 나오게 됐다는 말이다.
반석호는 감회가 새로운 듯,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야, 석호야. 발롱도르가 뭐야?”
“응?”
“여기. 장래희망에 네가 적은 거 말야. 이게 뭐냐구.”
“아. 축구 세계 1짱을 가리키는 말이야.”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가 보는 반석호.
반석호의 꿈은, 축구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은퇴 경기를 마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발롱도르라는 상이 있다는 걸 알기 전까진 ‘세계에서 축구를 제일 잘하는 사람’이었고, 알게 된 다음부터는 발롱도르였다.
그 상이 그렇게 가지고 싶었다.
반씨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축구 선수의 운명을 타고 난 이상.
그 발롱도르라는 건 한 번 타보고 싶었다.
세상 사람 모두에게 인정받고,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고 싶었다.
축구로써 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꿈은 말 그대로 꿈으로 남게 되었었다.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를 거쳐 프로가 되었을 때까지도.
한국 안에서 선수 생활을 할 때까진 발롱도르 그까짓 거, 별 거 아닐 줄 알았다.
그때까진 자길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
전국 팔도를 뒤져봐도 말이다.
그러나, 머리가 더 굵어지고 나서.
태극 마크도 가슴에 달아 보고, 한국이라는 우물을 벗어나 세계라는 무대의 맛을 본 뒤.
반석호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그리고, 유럽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뒤, 한 해, 두 해가 지날수록.
꿈은 말 그대로 꿈이 되었다.
축구 선수로서 발롱도르를 탄다는 건, 정말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어야 했다.
정말 그렇게 느꼈었다.
발롱도르를 수상한 선수들과 한 번씩 뛰어본 경험이 있던 반석호였으니까.
그들은 다른 차원에 사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도무지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뭐랄까.
발롱도르를 받는 선수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진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안타깝지만, 그들을 마주한 뒤 반석호는 자신의 운명에 발롱도르는 있지 않음을 스스로 인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걸 인정한 뒤에도 발롱도르에 대한 열망은 변하지 않았었다.
선수 은퇴를 하고, 더이상 꿈꾸는 것조차 불가능해진 지금까지도 말이다.
그런데, 요한이가.
자신의 아들이 정장을 차려입고 방금 막 집을 나섰다.
발롱도르를 받으러 말이다.
“하아···”
감회가 남다른 듯, 마른 세수를 하는 반석호.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이 대신 이뤄줬고, 그 순간이 지금이다.
반석호는 지금의 감정을, 뭐라 설명할 길이 없었다.
다만, 그 감정이 기쁨에 한없이 가깝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로한아.”
“네.”
“있는 힘껏 축하해주자.”
“당연하죠.”
반석호와 로한은, 어린 아이처럼 설레는 표정으로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
2028년 9월 25일, 어둠이 깔린 저녁.
런던 웨스트민스터 궁.
엘리자베스 타워가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밝게 빛나고 있는 가운데.
-자, 이제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오늘 시상식의 마지막 시상만을 남겨두고 있는데요.
프랑스에서 진행 중인 생중계를 모니터링하던 관계자들이 분주해진다.
“올 스탠바이!”
총괄자인 마르코스 장 폴이 인이어에 집중하며 오른손을 들었다.
-2027/28시즌. 발롱도르 수상자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발표는, 특별히 화면으로 공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멘트가 끝나는 순간.
딱-!
장 폴이 손가락을 튕겼고, 모든 카메라에 일제히 불이 들어왔다.
고오오-
엘리자베스 타워의 하단부부터 천천히 훑어 올라가는 카메라.
그러다 맨 꼭대기, 빅 벤의 모습이 앵글에 잡히자.
대애애앵-!
대애애앵-!
대애애앵-!
빅 벤이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9시 00분을 가리키는 시곗바늘.
종소리도 역시나 9번이 울렸다.
딱-!
타종이 끝나는 순간, 장 폴이 다시 신호를 주자 카메라가 줌인을 시작했다.
쭈우욱 빨려 들어가는 앵글.
그 줌인이 끝나자, 전 세계에 송출되고 있는 화면에 걸린 건 9번의 등번호가 마킹된 유니폼이었다.
엘리자베스 타워 꼭대기에 당당히 걸려 있는 유니폼.
VAN
9
요한의 유니폼이었다.
-발롱도르 수상자는, 요한 반. 축하합니다.
카메라는 다시 꼭대기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그러자, 화면에 나타난 건 요한이었다.
말끔한 정장 차림에, 엄마의 도움을 받아 정갈한 포마드 머리를 한 요한은 손에 빛나는 황금 공을 든 채, 자신을 비추는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폼나게···’
아주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말이었다.
이럴 땐, 형 말을 잘 듣는 착한 동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