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27)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27화(127/202)
< 126화 – 갈증 날 땐, 말뫼 >
리그 6라운드 경기는, 토트넘 선수들 입장에선 서럽기 짝이 없는 경기였다.
매 원정 경기가 다 힘들다만, 이날은 완전히 지옥이었다.
일단 6만 6천여 명의 관중들 중, 6만 명 이상이 홈 팬인 경기장에서 경기를 하게 된 것 자체가 지옥이었고.
경기 시작 전, 발롱도르를 자랑하는 상대 팀 선수 때문에 기가 죽은 채 시작한 것도 최악이었다.
다만, 그래도 그런 것들 때문에 전투력이 더 올라왔던 토트넘 선수들이었다.
남의 집 파티에 끌려온 불청객 신세가 되긴 했지만, 그 파티를 완전히 망쳐 버릴 수 있는 기회는 있지 않은가.
좋은 경기를 펼쳐, 게임을 이기는 것으로 말이다.
그러나, 경기는 토트넘 선수들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못했다.
경기가 시작된 후로도, 토트넘 선수들은 발롱도르의 악령에 시달려야 했다.
“발롱도르 근처도 못 가본 놈들이 어디서 까불고 있어.”
“자꾸 앵기지 마라. 발롱도르 냄새 맡아보고 싶은 건 알겠는데, 붙지 말라고. 싸인은 나중에 해줄 테니까.”
양 팀의 더비 매치는 항상 치열하다.
90분 내내 선수들의 몸은 물론, 입 역시 쉬지 않는 건 매 경기 그래 왔다.
그런데 오늘은, 토트넘 선수들이 말싸움으로 이길 수 있는 껀덕지가 하나도 없었다.
웨스트 햄 선수들은 계속해서 발롱도르로 토트넘 선수들을 약 올렸고, 발롱도르 얘기만 나오면 토트넘 선수들은 할 말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부들부들 거리는 것뿐.
웨스트 햄엔 30인 안에 든 선수가 셋이나 있는데, 토트넘엔 아무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이게 더비라니, 쪽팔리다. 챔스는커녕 유로파도 못 나가는 팀이랑.”
“챔스 뛰다가, 너네랑 하니까 게임이 뭐 이리 쉽냐.”
뿐만 아니라, 웨스트 햄 선수들은 챔스를 가지고도 토트넘 선수들을 약 올렸다.
토트넘 선수들은 여러모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경기를 펼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제 좀 후회가 되냐? 옛날에 그렇게 시비 걸던 게?”
그러나, 딱히 억울해할 수도 없었다.
다 인과응보였기 때문이었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항상 먼저 말로 공격을 했던 건 토트넘 선수들이었다.
심지어 똑같은 이야기들이었다.
챔피언스 리그와 발롱도르.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양 팀의 상황이 지금과는 반대였기 때문이다.
토트넘 선수들은 항상 챔피언스 리그도 못 나가는 팀이랑 더비라는 게 쪽팔리다며 입을 나불 거렸었고, 루카 모드리치를 언급하며 발롱도르로 거들먹 거렸었다.
토트넘 출신의 발롱도르 위너 모드리치 말이다.
“자랑할 게 없어서, 다른 팀 선수로 자랑을 하냐? 토트넘 출신? 셀링 클럽인 게 자랑스러워?”
이젠 그것도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토트넘 ‘출신’ 발롱도르 위너?
이쪽은 웨스트 햄 소속으로 발롱도르를 받은 녀석이 있는데.
결국, 토트넘 선수들은 경기 시작부터 경기 내내 심신 미약 상태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태로, 경기를 제대로 풀어갈 수 있을 리가 없었고.
<왼쪽이 뚫립니다! 베일리, 뒤로 컷백! 카펠로, 슈우웃-! 고오오오올-!>
<요한이 오른쪽에서 공을 이어 받습니다. 치고 들어갑니다, 치고 들어갑니다! 완전히 벗겨졌습니다! 슈우우웃-! 고오오오오오올-!>
<카펠로, 전방으로 찔러줍니다. 요한에게 이어지는 패스! 으어엇! 들어갔습니다! 눈 깜짝할 새에 터지는 터닝 슈팅-! 쐐기골입니다! 발롱도르 위너의 품격을 보여주는 골입니다!>
카펠로는 발롱도르 순위가 잘못됐다고 주장 했지만, 경기 내용을 보면 발롱도르라는 게 괜히 권위가 있는 상이 아니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발롱도르 30인 안에 든 선수들이 한 차원 높은 기량을 보여주며 게임을 캐리 했으니까.
27위에 빛나는 카펠로는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딱 27위 다운 활약을 보여주었다.
19위의 벨라미는 탄탄한 수비를 보여주며 토트넘의 공격을 꽁꽁 틀어 막았고.
그리고 1위, 요한은 공만 잡았다 하면 그라운드의 공기를 바꾸는 위엄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해트트릭으로 경기를 끝냈다.
왜 이 선수가 발롱도르를 받은 것인지, 축구를 모르는 사람이 봤어도 납득 했을 활약.
<올 시즌 웨스트 햄과 토트넘의 첫 런던 더비 매치는, 웨스트 햄의 4대0 완승으로 끝이 나게 됐습니다. 이로써 웨스트 햄은 리그 6연승을 달리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잘한 선택인 듯 했다.
토트넘 팬들이, 이날 경기의 직관 예매를 포기한 것이 말이었다.
ㆍㆍㆍ
리그 6라운드 이후, 프리미어 리그는 잠깐의 휴식기에 들어갔다.
10월 첫째 주와 둘째 주는 A매치 데이 기간이었기 때문.
이젠 웨스트 햄도 A매치 데이 기간을 마냥 휴식 기간으로 생각할 수 없는 팀이었다.
주전 베스트 일레븐 중, 절반 이상이 각자의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하지만, 이번 A매치 기간은 꿀맛 같은 휴식주가 될 전망이었다.
지난 시즌 대표팀 일정이 워낙 빡빡했기에, 유로까지 뛰었던 선수들은 이번 소집에 부름을 받지 않았다.
즉, 대부분의 선수들은 팀에 남아 훈련만 소화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대체 쓸데없는 A매치 이런 건 왜 있는 거예요.”
“응? 뭐가 또 불만이야, 요한 경.”
“그렇잖아요. 할 거면 그냥 몰아서 하지. 리그 중간 중간에 하는 이유가 뭐냐구요.”
“나도 몰라, 임마. 유에파 회장님한테 가서 따져 봐.”
“한 시즌을 10개월 동안 한다는 고정 관념도 버려야 돼요. 쓸데없는 일정들만 정리해도, 반년이면 끝낼 수 있겠구만.”
“그래도 이런 주간이 있어야 우리도 쉬지. 아, 너한텐 휴식이 아니겠구나.”
뭐, 요한에겐 휴식 주가 휴식 주가 아니었긴 했다.
반대로 지옥 주였다.
경기가 없으니 벌어둔 훈련 면제권은 금방 동이 났고, 매일 훈련장에 출근 도장을 찍어야 했으니.
둘째 주에 접어 들어서는, 제발 경기에 나가게 해달라고 어지럼증을 호소할 정도였다.
“감독님도 참 대단해. 저 녀석 입에서 경기를 뛰게 해달라는 소리가 나오게 만드셨으니.”
“아무튼, 죄 없는 말뫼 애들만 큰일 났네.”
이러니 괜한 동정심이 드는 건 말뫼였다.
휴식 기가 끝난 뒤, 웨스트 햄의 첫 일정은 챔스 조별예선 3차전, 말뫼 원정.
적 팀인데도, 걱정이 됐다.
경기에 나가게 해달라고 애원 중인 요한이를 상대해야 한다니.
안 그래도 조 최약체로 평가받는 말뫼인데, 걔들은 진짜 큰일 났다.
큰일 났어.
*
“감독님. 요한이가 저러니까, 괜히 장난치고 싶지 않아요?”
“무슨 장난?”
“말뫼 전만 기다리고 있는데, 만약 경기에 안 내보내겠다고 해봐요. 그럼, 쟤 표정이 어떨지 볼만하지 않겠어요?”
“이 녀석은, 나이가 몇 개인데 아직도 장난칠 궁리만 하고 있어.”
“아이, 왜요. 재밌을 것 같은데. 맨날 우리가 애원했었잖아요. 녀석이 애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라구요.”
제이미 코치의 실없는 말에, 슈미트 감독이 핀잔을 준다.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어른이 무슨 꼬맹이한테 장난을 쳐.
그럼 못 쓰지.
“···.”
근데, 좀 궁금하긴 하네.
녀석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말이다.
솔직히 요 며칠간, 재밌긴 했다.
언제까지 휴식기냐며 투덜대는 요한이의 모습을 보는 게 말이었다.
나 참.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다 싶었다.
경기에 나가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요한이라니.
녀석을 처음 봤을 때부터, 녀석을 경기에 뛰게 만드려고 별짓을 다했었는데 말이다.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아무튼, 요한이는 말뫼 전만을 벼르고 있는 상태였다.
말뫼를 무슨 오아시스처럼 생각하고 있는 요한이었다.
휴식기 동안 느꼈던 갈증을, 말뫼 전에서 해갈할 생각이었으니.
그런데 그런 녀석에게, 만약 말뫼 전에 출전시키지 않을 거라고 한다면 무슨 반응을 보일까.
“솔직히 재밌을 것 같죠? 예?”
“시끄러, 임마.”
재밌을 것 같은 게 아니야.
······그냥 궁금한 거지.
*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무슨 말씀이긴? 들은 그대로다.”
“···농담이시죠? 저, 아무 문제 없는데요. 체력도 넘쳐요.”
“괜찮다. 쉬어도 돼. 말뫼는 한 수 아래의 팀이다. 케인이 나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팀이지. 넌 쉬어도 좋아.”
“···.”
요한이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고, 슈미트 감독은 괜히 고개를 돌렸다.
필사적인 웃음 참기.
슈미트 감독은 헛기침을 몇 번 한 뒤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번 시즌은 저번 시즌과 다르다. 경기가 많아. 네가 활약해야 할 때는 곧 온다. 마음 급하게 먹을 필요 없어.”
“저도 이번 시즌은 달라요. 모든 경기에 출전할 수 있어요. 이번 시즌에 끝낼 거라고 마음을 먹었으니까요.”
“으음.”
“뛰게 해주세요, 감독님. 네?”
다시 고개를 돌리는 슈미트 감독.
이 나이 먹고 이럼 안되는데, 짜릿한 쾌감이 올라온다.
뛰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요한이라니.
사람 하나 만들었구나.
사람 하나 만들었어.
“자신 있나?”
“자신이요···? 다, 당연하죠. 감독님.”
“으음. 그럼, 특별히 허락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출전을 허락하겠다는 슈미트 감독의 말에, 연신 고개를 꾸벅이고 돌아가는 요한.
그렇게 요한이 감독실에서 나가고 나서야,
“푸흐흐···”
슈미트 감독은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ㆍㆍㆍ
“야박하네. 참 야박해.”
2028년 10월 16일.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 3차전이 있는 날.
선발 명단을 확인한 말뫼 FF의 감독, 스텔란 시구르드손은 혀를 찼다.
오늘 경기, 상대인 웨스트 햄이 어느 정도 힘을 빼고 나올 거라 예상했던 시구르드손 감독이었다.
아니, 예상이라기보단 바람이지.
어차피 바르셀로나와 파리도 잡아낸 웨스트 햄 아닌가.
그럼 자기들이랑 할 땐 힘 좀 빼도 되지.
가뜩이나 프리미어 리그는 일정도 빡빡한데.
그러나, 웨스트 햄은 힘을 빼지 않고 나왔다.
아니, 빼긴 뺀 것 같은데.
전혀 뺀 것처럼 느껴지지 않기도 했다.
무슨 말이냐면, 요한이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카펠로랑 베일리, 얘네 둘은 벤치잖아요.”
“그게 중요하나, 이 사람아. 발롱도르 탄 놈이 나왔는데.”
“좋게 좋게 생각해야죠. 그래도 셋 막는 것보단, 하나 막는 게 낫잖아요.”
“그려. 맞다. 하나면 뭐 어떻게 되지 않겠나.”
말뫼는 지난 2경기, 파리와 바르셀로나 전에서 모두 패했다.
다만, 완전히 무기력하게 패배한 건 아니었다.
특히 홈에서 치른 바르셀로나와의 경기는 꽤나 치열했다.
경기 내내 바르셀로나의 공격을 잘 틀어 막다가, 막판에 내준 골로 0대1, 아쉽게 졌으니.
그 경기에서, 바르셀로나 팬들은 꽤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말뫼의 수비력이 예상외로 괜찮았기 때문.
물론 어느 팀이든 작정하고 텐백을 구사하면 뚫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만.
말뫼는 그중에서도 괜찮은 수비 구사력을 보여줬었다.
심지어, 바르셀로나는 웨스트 햄 전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베스트 전력으로 경기에 임하기까지 했는데, 그 바르셀로나를 1점으로 막아냈으니.
확실히 말뫼의 수비력은 괜찮은 편이었다.
사실 말뫼가 전통적으로 수비력이 좋은 팀인 건 아니었다.
말뫼의 장점은 되려 공격 쪽.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말뫼가 챔피언스 리그에선 최약체에 속하는 팀이긴 하다만, 스웨덴 리그에선 말뫼가 파리 생제르맹이요, 바이에른 뮌헨이다.
리그 내 최강 팀이라는 거다.
덕분에 말뫼는 나름의 고충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리그에서 자신들이 하는 축구를, 챔스에서는 할 수 없다는 것.
리그에선 기술적인 빌드업을 기반으로 한 공격적인 축구를 하는 말뫼지만, 챔스에 나오면 할 수 있는 게 텐백 밖에 없다.
바르셀로나나 파리를 상대로 빌드업 축구를 할 수가 없으니까.
때문에 챔스에서 항상 고전해왔던 말뫼였다.
애초에 전력 자체도 그럴 수밖에 없긴 했지만.
아무튼, 시구르드손 감독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감독이었다.
그 해결법은, 수비 축구의 이식.
말뫼를 수비가 강한 팀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챔스에서 리그처럼 경기할 수 없다면, 리그에서 챔스처럼 경기하는 팀으로 만들면 된다는 게 시구르드손 감독의 생각.
그런 시구르드손 감독의 부임 이후, 말뫼의 스타일은 수비에 무게를 두는 축구로 바뀌었고.
초반엔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나름의 성적을 내면서 지금은 신뢰를 얻은 상태였다.
때문에, 오늘 경기도 나름 자신은 있었다.
물론 요한 반이라는 발롱도르 위너를 상대해야 한다는 건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나.
중원의 핵심인 카펠로도 없고, 꽤 까다로운 윙어인 조슈아 베일리도 없다.
이 정도면, 바르셀로나 전처럼 꽤 잘 막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자신감은 있었다.
그러나, 막상 경기가 시작된 뒤.
해볼 만 할거라 생각했던 시구르드손 감독은,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쟤, 우리한테 무슨 악감정 있나? 우리 뭐 잘못한 거 있어?”
오늘 경기만을 기다렸던 요한이, 경기 초반부터 미쳐 날뛰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우리에서 풀려난 굶주린 맹수 같은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