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29)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29화(129/202)
< 128화 – 카드보다 가까운 주먹 >
축구 선수도 여러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 것처럼, 축구 감독도 각자가 가진 특징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분류되곤 한다.
예를 들어, 뛰어난 이론과 철학을 가진 전술가형 감독이라든지.
선수들을 인격적으로 잘 이끄는 덕장형 감독이라든지.
또는 강력한 지휘력으로 선수단을 장악하는 카리스마형 감독이라든지.
지난 시즌, 리그 6위에 그치며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실패한 맨유가 원한 감독은, 위의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감독이었다.
그러니까,
어설픈 감독이 아니라 팀을 뿌리부터 지붕까지 모두 뜯어 고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다는 것.
그만큼 맨유의 상황은 답답한 상황이었다.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허구헌 날 ‘나 때는 말이야’만 할 줄 아는 무색무취 전술의 감독, 연봉만 많이 처먹는 배부른 고연봉자들, 겉멋만 든 스타병 걸린 유망주들, 맨유란 구단을 축구 클럽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생각하는 프론트까지.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적임자로 꼽힌 게, 바로 예룬 하우어였다.
FC 흐로닝언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하우어는, 2023/24 시즌 중 감독이 경질되자 감독 대행으로 첫 감독 지휘봉을 잡았다.
그리고, 놀라운 지도력으로 강등권에 쳐져 있던 팀을 6위까지 끌어 올리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 다음 시즌엔 리그 3위, KNVB 베이커(FA컵) 우승을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키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에레디비시의 명문 PSV 에인트호벤에 부임한 예룬 하우어.
그 당시, 에인트호벤은 맨유와 완전히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던 팀이었다.
분명 리그 최고 명문 중 하나인데, 뭔가 점점 한물간 느낌이 나는 팀.
계속해서 트렌드를 주도해가는 리그 라이벌 아약스에 비해, 구닥다리 느낌이 나는 팀.
그게 하우어 부임 당시 에인트호벤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하우어는 부임과 동시에 그 모든 걸 바꿔냈다.
첫 시즌에 아약스를 누르고 우승, 두 번째 시즌엔 챔피언스 리그 4강.
흐로닝언과, 스러져가던 명문 에인트호번을 재건해낸 하우어.
그런 재건 전문가 하우어가 이번엔 맨유를 재건하러 오게 된 것인데.
“원하는 건 허심탄회하게, 다 말씀하십시오. 저희는 최대한 다 들어드릴 생각이 있습니다.”
맨유의 단장 톰 하워드는 예룬 하우어와의 첫 미팅에서 그렇게 말했었다.
원하는 건 다 들어줄 테니, 말만 하라고.
그 말에 하우어의 대답은 이것이었다.
“요한 반을 영입해주십시오.”
“···예?”
“그럼 트레블을, 아니 쿼드러플을 해보이겠습니다.”
“어··· 그건 좀 어렵겠는데요.”
톰 하워드는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에레디비시의 혁명가라 불리는 예룬 하우어라면 좀 다른 이야기를 할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근데, 첫 마디가 요한을 영입해 달라는 거라니.
처음엔 장난치는 줄 알았다.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냐고 물었더니, 돈을 많이 벌어라라는 대답을 들은 느낌.
그러나 하우어는 진지하게 말했다.
“지금의 맨유를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바꿀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그것뿐입니다.”
아니, 그거야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못 하니까 이러고 있는 것 아닌가.
요한만 영입할 수 있다면, 솔직히 말해 감독이 누구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막대한 연봉을 주면서 하우어를 앉힐 필요도 없지.
애초에, 하우어 이전에 포섭하려고 했던 게 웨스트 햄의 슈미트 감독이었다.
솔직히, 슈미트 감독이 맨유라는 메가 클럽에 어울리는 만큼의 커리어를 가진 건 아니다만.
그라도 데려오면, 요한의 영입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그러나 거절을 당했고, 이어서 접근한 게 하우어였다.
톰 하워드가 난색을 표하자, 하우어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불가능하면, 다른 리그로 보내주십시오. 레알이든, 뮌헨이든 어디든. 요한을 영입해 가라고 하십시오. 그럼 더블은 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하우어의 두 번째 요구 역시 터무니 없는 이야기였다.
다른 리그로 보내달라니.
무슨 권한으로 그럴 수 있겠나.
톰 하워드가 어처구니 없어 하자, 하우어는 뒤에건 농담이라며 웃었다.
“아무튼, 이야기가 좀 달라지는군요. 맨유라면, 어떤 선수든 영입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죠.”
톰 하워드가 요한의 영입은 어렵다는 뜻을 내비치니, 하우어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었다.
하우어가 애초에 맨유와 미팅을 가진 이유는, 맨유라면 요한을 영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으니까.
어느 누가 안 그렇겠냐만, 하우어는 요한에게 매료된 감독 중 한 명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이, 하우어에겐 슈미트 감독일 정도였다.
요한이라는 장기말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슈미트 감독이니까.
요한을 영입할 수 없다면 맨유와 더 이상 얘기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하우어는 요한의 팬이었다.
“근데, 그건 알고 계십니까?”
“뭐 말입니까?”
“요한이 다음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수도 있다는 걸요.”
그러나 톰 하워드도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만약 웨스트 햄이 리그를 우승할 경우, 그 즉시 요한이 은퇴할 거라는 이야기를 하자.
하우어는 충격을 받은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웨스트 햄이 우승을 하면 요한의 플레이를 더 볼 수 없다고?
“얘기가 또 달라지는군.”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맨유와 하우어의 이야기는 술술 풀렸다.
그리고, 하우어는 맨유에 부임했다.
이유야 간단했다.
요한의 은퇴를 막는다.
즉, 웨스트 햄의 리그 우승을 저지하기 위해 맨유에 부임했다는 거다.
요한을 오래 보고 싶으니까 말이다.
애초에 맨유에 온 이유부터가 그러했으니, 하우어 감독이 이번 웨스트 햄 전을 단단히 준비해온 건 당연한 일이었다.
웨스트 햄의 리그 우승을 저지시키려면, 당연히 웨스트 햄의 승점을 빼앗아야 했다.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
누구보다 요한의 팬이기 때문에, 하우어는 웨스트 햄을 이겨야 했다.
ㆍㆍㆍ
2028년 10월 29일.
올드 트래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의 시즌 8라운드 경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 올드 트래포드는 매진입니다.>
<개막전부터 해서, 5번의 홈 경기 모두 매진을 기록하고 있는 올드 트래포드네요. 그만큼 맨유 팬들이 이번 시즌을 기대하고 있는 거겠죠.>
<일단, 지금까지는 그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 모습인데요. 역시 하우어 감독의 역할이 커 보이죠?>
<그렇습니다. 일단, 지난 시즌과 선수단 구성부터가 확 달라진 맨유입니다. 새로 영입된 판더펠더와 헤이팅어가 주전을 꿰찼고요. 그 외 유스에서 콜업된 선수들도 꾸준히 기회를 받고 있죠.>
<상당히 젊어졌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오늘 선발 라인업 역시 그렇습니다.>
새 시즌의 맨유는 확실히 많은 것들이 바뀐 모습이다.
하우어가 부임한 뒤 가장 먼저 한 것은, 팀 내 고액 연봉자들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들 대신 스쿼드를 채운 건 어린 유스 선수들.
아직 자신들이 맨유의 1군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조차 얼떨떨한 유스 선수들을 하우어 감독은 중용하고 있었다.
그것의 의미는 무엇이냐.
맨유가 많이 뛰는 팀으로 탈바꿈 했다는 뜻이었다.
<요한과 악수를 나누는 맨유 선수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데요.>
<나이는 오히려 요한이 더 어리지만, 동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겠죠.>
<발롱도르 위너와 함께 뛰어본다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 될 겁니다.>
<물론, 이기면 더 좋은 자신감이 되겠죠.>
경기 전, 악수를 나누는 양 팀의 선수들.
요한과 악수를 나눈 맨유 선수들은, 서로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발롱도르의 기라도 받았다는 표정들.
특히, 19살의 유스 출신 에밀 에드우드는 계속해서 요한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1군에 콜업되기 전, 개인 SNS에 제일 좋아하는 선수로 요한을 꼽았다가 팬들의 뭇매를 맞고 글을 삭제했던 적도 있는 에드우드다.
맨유 선수가 다른 팀 선수를 좋아하는 게 말이 되냐면서.
그 글은 삭제하긴 했지만, 에드우드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삐이이익-!”
휘슬이 울리자, 모두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
<초반부터 주도권 싸움이 치열합니다. 경기의 템포가 상당히 빨라요.>
<몸싸움도 피하지 않고 맞부딪히는 양 팀. 하우어 감독이나, 슈미트 감독이 추구하는 스타일은 비슷합니다. 많이 뛰고, 상대를 강하게 압박하는 거죠.>
웨스트 햄 선수들은 전반 초반, 달라진 맨유에 적응을 못하는 느낌이었다.
맨유가 이런 팀이 아닌데.
지난 시즌까지의 맨유는, 선수들의 이름값은 높아도 막상 필드에서 만나면 뭔가 편한 느낌이었다.
전체적으로 느긋한 느낌들이었달까.
이미 연봉들도 많이 받겠다, 거친 플레이를 꺼리는 느낌도 있었고.
터프한 맛이 없었던 거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웬만한 팀을 만나도 무조건 한 발 더 뛰는 게 웨스트 햄의 스타일.
그런데, 그 템포를 맨유도 따라오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이쪽이 따라가는 모양새다.
맨유는 필드 플레이어 10명 모두가 활발하게 움직이는데, 이쪽은 9명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뿐만이 아니다.
<어후, 지금은 크게 넘어졌는데요. 경고···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에드우드 선수, 확실히 세네요. 허허.>
맨유 선수들은 거친 몸싸움도 주저하지 않고 있었다.
확실히 어린 선수들이다보니 겁이 없다.
그 선봉대장은 에밀 에드우드다.
19살이라곤 믿기지 않는 완성된 피지컬을 보유한 에드우드는 싸움닭 유형의 미드필더.
한 동안 맨유에 사라졌던 ‘투지’가 넘친다며, 팬들에게 인기가 높은 에드우드다.
물론, 맨유 팬들이 ‘투지’라 부르는 그걸 타 팀 팬들은 ‘더티’라 부른다만, 아무튼.
<카펠로가 또 넘어집니다. 오늘 유독 넘어지는 회수가 많은 카펠로.>
<맨유 선수들이, 카펠로가 공만 잡았다 하면 거칠게 몰아붙이네요.>
<확실히, 카펠로 선수는 피지컬적으로 공을 지키는데에는 약점이 있습니다.>
에드우드의 레이더에, 오늘의 먹잇감으로 포착된 건 다니엘레 카펠로였다.
카펠로는 확실히 거친 압박에 고전하는 면이 있는 선수다.
피지컬 쪽에 강점이 있는 게 아니니까.
물론 적당한 수준의 압박은, 특유의 테크니컬한 탈압박으로 벗겨낼 재간이 있는 카펠로지만, 지금처럼 반칙성으로 들어오는 압박엔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에드우드는, 카펠로를 확실히 눌러 놓을 생각이었다.
오늘, 공을 잡는 것조차 두렵게 느껴질 때까지 말이다.
<웨스트 햄 선수들이 항의를 하고 있는데요. 주심은 단호히 고개를 젓습니다. 카드를 줄 정돈 아니라는 건데요.>
<오늘 주심인 닉 테일러 주심은 관대한 판정으로 유명한 심판입니다. 정말 심한 파울이 아닌 이상, 카드가 잘 나오진 않을 거예요.>
카펠로가 연거푸 쓰러지자, 웨스트 햄 선수들이 카드를 주라는 모션을 취하며 항의했다.
분명 지금 날뛰고 있는 에드우드의 모습은, 카드를 줘서 자제시킬 필요가 있어 보였다.
다만, 오늘 경기의 주심인 닉 테일러.
PL 팬들 사이에선 굉장히 유명한 주심이다.
웬만해선 카드를 꺼내지 않는, 관대한 주심으로 말이다.
그 정도가 좀 심해, 카드를 챙기는 걸 까먹은 게 아니냐는 소리도 듣는 테일러 주심인데.
아무튼 마땅히 카드가 나올만한 상황에 카드가 나오지 않으니.
웨스트 햄 선수들은 열이 받았고, 버클리가 에드우드에게 손가락질하며 얘기했다.
“마! 꼬맹아, 적당히 까불으래이! 앙?”
“뭘?”
“니 축구하러 왔지, 싸움하러 왔나?”
“너야말로 축구가 아니라 다른 걸 하러 왔나본데. 언제부터 축구가 계집애 스포츠였다고.”
“뭐? 이런 싸가지 없는 노무 쉑끼가···”
“버클리, 그만해. 말려들지 마.”
버클리를 말리는 고든.
“근데 점마가···”
“됐어. 억울해할 필요 없어. 어차피 주심의 성향을 우리가 바꿀 순 없는 일이야.”
“그라모, 맞고만 있습니꺼?”
“아니? 우리도 이용해야지. 날뛰어라, 황소.”
“맡겨 주이소.”
고든의 말은 맞는 말이다.
그게 부당하다고 해도, 주심의 성향을 고칠 순 없는 일.
그렇담 억울해하고 있을 게 아니라, 똑같이 받아치면 된다.
버클리는 자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퍼어어억-!
<에드우드와 버클리가 크게 충돌합니다!>
버클리가 마음먹고 에드우드에게 들이받았다.
그런데,
<에드우드에게 파울이 주어집니다.>
주심은 에드우드의 반칙을 선언했다.
그러니까, 버클리가 더 크게 넘어졌다는 뜻이었다.
“어으···”
어깨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는 버클리.
그런 버클리의 모습에, 웨스트 햄 선수들의 얼굴에 당황이 피어 올랐다.
버클리가?
에드우드 저 녀석, 얼마나 괴물인 거지?
에드우드가, 생각보다도 더 미친놈이었다.
<계속해서 존재감을 보여주는 에드우드. 파워 싸움에서 웨스트 햄이 밀리는 모양새입니다.>
<맨유가 많이 달라지긴 했습니다. 에너지 레벨에서 웨스트 햄을 억누르는 모습인데요. 이렇게 되면, 주도권은 맨유에게 자연스레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버클리마저 에드우드를 잠재우지 못하자, 에드우드는 완전히 제 세상인 듯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그 상황에서 더욱 고통 받는 건 카펠로.
카펠로가 공만 잡았다 하면, 아니 공을 잡기도 전에 에드우드가 와서 몸을 부대끼니.
“후우···”
카펠로도 멘탈을 잡기가 어려웠다.
뭐랄까.
지금 카펠로의 심리적인 상태는, 마치 고속도로 한복판에 맨몸으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언제 차가 와서 들이받을지 모르는 두려움에 휩싸인 기분 말이다.
파아앙-!
하지만, 어쨌든 웨스트 햄의 볼 전개는 카펠로를 거치지 않기가 힘들었다.
후방에서 돌던 공이 카펠로에게 향하는데.
“···”
자신에게 향해오는 공을 보며, 카펠로는 등골이 서늘한 느낌을 받았다.
차라리 이 공을 피하고 싶은 느낌.
맨유, 그리고 에드우드의 노림수가 딱 통한 것처럼 보이는 그 순간.
퍼어어어억-!
“크억!”
에드우드가 비명을 내지르며 철퍼덕 엎어졌다.
“삐이익-!”
곧바로 주심의 휘슬이 울렸고, 영문을 모르는 카펠로가 고개를 돌리자,
“경기를 몇 번을 끊는 거야···”
그곳엔 요한이 짜증 나는 표정으로 서서, 쓰러진 에드우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