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3)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3화(13/202)
< 012화 – 증명해 볼 텐가 >
론도는 몸 풀기였을 뿐이고.
본격적인 훈련의 시작은 패턴 훈련부터였다.
패턴, 흔히 말하는 부분 전술.
부분 전술은 기본적으로 2명이 만들어내는 단순한 것부터, 3명, 4명 이상이 호흡을 맞추는 복잡한 패턴까지 존재한다.
또한 수비 때의 패턴, 공격 때의 패턴은 물론 같은 상황 안에서도 서너 개의 패턴이 존재한다.
경기를 뛰는 선수들은, 당연히 이러한 패턴들을 모두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기본.
그러나,
기본이지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 많은 패턴들을 기억하는 것만도 어려운 일일뿐더러, 실전에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올 수 있도록 체화하는 건 베테랑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니까.
특히나 갓 팀 훈련에 합류한, 경험이 부족한 요한에게는 더더욱 그럴 것이었다.
‘설명이라도 좀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같은 조로 편성된 선수들과 함께 차례를 기다리며 머리를 긁적이는 요한.
훈련장에 도착했을 때부터 느낀건데, 1군 훈련은 상당히 불친절한 느낌이었다.
아카데미에선 그래도 최소한의 설명은 해주고 훈련을 시켰었다.
이렇게 움직여야 한다, 저렇게 차야 한다.
적어도 이 훈련의 목적 정도는 설명해주고 훈련을 진행 했었지.
하지만,
여기선 누구도 일절 설명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코치들은 그저 휘슬을 입에 물고 있을 뿐이었고, 선수들은 이미 익숙한 듯 말 없이도 척척 패턴을 그려내고 있었다.
코치들이 입에서 휘슬을 뗄 때는, 그저 실수를 범한 선수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때뿐.
아무도 요한에게 네 역할이 무엇인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설명해주지 않고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오케이, 다음!”
차례가 되어 몇몇 선수들과 함께 부분 전술을 수행해보는 요한.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으니, 일단은 본능대로 움직일 생각이다.
오른쪽 코너 플래그에서의 공격 상황.
원 투 패스로 측면을 파고든 윙어가 박스 근처에 서 있는 요한에게 패스를 내줬고, 요한이 패스를 받아 자연스럽게 돌아서며 왼발 슈팅으로 골망 구석을 갈랐다.
‘이럼 되겠지, 뭐.’
나름 멋지게 골망을 갈랐기에, 요한은 칭찬을 받겠구나 생각하며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렇게 움직이면 안돼! 틀렸어! 다음엔 똑바로! 다음!”
“···?”
코치의 반응은 예상관 정반대였다.
코치는 그저 윽박을 지르며 요한을 뒤로 다시 보낼 뿐이었다.
요한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었다.
일단 왜 이렇게 움직이면 안된다는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골을 넣었지 않은가.
실전에서도 이렇게 차면 무조건 골이었다. 그건 자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체 뭐가 틀렸단 말인가.
하지만 백번 양보해서, 이게 잘못된 움직이라면 왜 잘못되었는지 이유를 말해줘야할 것 아닌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냥 다음엔 똑바로 하라니.
요한은 순간 발끈할 수밖에 없었고,
다음 번 차례엔 더욱 멋지게 골망을 갈랐다.
그러나,
“틀렸다! 다음엔 제대로!”
코치의 반응은 계속해서 똑같을 뿐이었다.
몇 번이고.
“···”
요한은 억울한 마음에 슈미트 감독을 바라 보았다.
그러나, 눈을 마주치지 않는 슈미트 감독.
분명 맥웰 감독님의 말로는, 저 감독님이 자길 보고 싶어 했다고 했는데.
막상 불러 놓곤 눈길도 주지 않고 있다.
‘환영을 바란 건 아니지만.’
왠지 기분이 상하는 요한이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대우였다.
아빠도 그렇고, 형도 그렇고.
자신의 1군 콜업에 기뻐해주었던 이들은 하나같이 가서도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해줬었다.
분명 모두 깜짝 놀랄 것이고, 코치들과 감독도 금방 네게 반할 것이라고 했었는데.
반하긴커녕 코치는 윽박을 지르고, 감독은 관심도 주지 않고 있으니.
이럴거면 왜 여기로 부른건지.
누가 오고 싶어서 왔나. 자기들이 부른 거면서.
진짜 억울하네.
“···”
그런 생각을 하며 뾰루퉁해 있던 요한이, 순간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왜 억울해하고 있지?’
사실,
생각해보면 요한에겐 반가운 일이어야 했다.
누구도 지시를 내리지 않고,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일.
심지어 혼이 나는 상황까지도 반가운 상황이어야 했다.
1군에 있을 실력이 아니라면 다시 18세 팀으로 내려갈테고, 그럼 빡빡하게 훈련을 하지 않아도 되니.
요한 입장에선 좋은 일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왜일까.
지금까지, 요한이 받아왔던 지적은 그저 열심히 안한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잔소리는 그저 귀찮을 뿐, 화가 나지는 않았고.
한데,
지금은 ‘틀렸다’는 지적을 받고 있었다.
왜 안하냐와 왜 못하냐의 차이랄까.
‘짜증나네.’
요한은 순간 짜증이 났다.
화가 나는 스스로에게 짜증이 난 것이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잘못된 게 없는데, 잘못되었다고 하는 저들에게 잘못된 건 없다고 증명하고픈 감정.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건 무척이나 귀찮은 일이란 걸 요한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귀찮은 걸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짜증이 난 것이다.
“이번에도 아니야! 다시! 다음!”
“쳇!”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기에, 요한은 그 감정을 뭐라고 부르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
“고집이요?”
“그래. 고집. 천재의 다른 말은, 고집불통이라네.”
오전 훈련이 끝난 뒤.
점심 식사를 하러 떠난 선수들로 휑한 훈련장.
슈미트 감독과 제이미 수석 코치가 스탠드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둘은, 오전 훈련 동안 지켜 본 요한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왜 천재라는 놈들은 다 고집이 세겠나?”
“음. 글쎄요?”
“적어도 자기 분야에서는, 틀려본 적이 없으니까 그렇지. 살면서 지금까지 자기 생각, 말, 행동이 다 맞았던 거야. 그러니 고집이 셀 수밖에 더 있나?”
“그렇겠네요.”
“이 놈들은 절대 남의 말을 믿지 않아. 자기만 믿지. 자기는 틀린 적이 없거든. 그러니 천재는 고집 불통일 수밖에 없는걸세. 아, 물론.”
“?”
“천재는 보통 고집불통이지만, 고집불통인 놈들이 다 천재라는 말은 아니고.”
“하하···”
1시간 여 동안 이뤄졌던 부분 전술 훈련.
슈미트 감독은 일부러, 오늘이 첫 훈련인 요한에게 아무런 설명도 일러주지 않았다.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어떤 생각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일절.
그건 이것이 1군 훈련이라서가 아니었다.
1군 프로 무대에서 뛰는 선수라고 해서,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뛸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럴거면 감독은 존재할 이유가 없겠지.
슈미트 감독은 굉장히 세세한 부분 전술로 유명한 감독이었고, 선수들에게 자율성 대신 전술에 맞는 플레이를 철저히 요구하는 감독이었다.
때문에 매일 반복하는 훈련이라도 항상 선수들에게 똑같은 설명을 되풀이하는 스타일이었다.
넌 이렇게 움직여야하고, 넌 저렇게 움직여야만 한다고.
하지만, 오늘이 첫 훈련인 요한에게 그러지 않았던 건.
녀석이 무조건 틀렸다고 말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요한은 정답을 알려주면 한 번만에 그대로 따라할 능력이 있는 녀석이었다.
론도 하는 모습을 10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1군 선수들 사이에서 단 한 번도 술래에 걸리지 않던 녀석.
확실히 재능을 타고난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라면, 처음 접해보는 전술일지라도 단번에 해낼 게 분명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녀석에게 ‘틀렸다’고 말해야 했고, 때문에 미리 정답을 일러주지 않은 것이었다.
“솔직히 많이 참으셨죠?”
“뭐를?”
“옳지, 잘한다! 이런 말 해주고 싶으셨잖아요. 입술이 씰룩 거리시는 걸 제가 봤다구요.”
“실실대면서 말하지마. 넌 무슨 말을 해도 얄밉게 느껴지는 얼굴을 가지고 있어.”
제이미 코치의 말에 콧방귀를 뀐 슈미트 감독이었지만, 말은 맞는 말이었다.
많이 참았던 슈미트 감독이었다.
칭찬 말이었다.
하나를 알려주면 그걸 바로 해내는 선수들은, 사실 많다.
그런 선수들이야 2,3부 리그에도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
하지만,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방법을 찾아내는 선수는 많지 않다.
요한이 그랬다.
어떤 것도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요한은 매 상황마다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며 공을 골대 안으로 쳐박았다.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나이스를 외칠 뻔 했던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던 슈미트 감독이었다.
오늘은 절대 녀석을 칭찬해선 안된다는 걸 알고 있는 슈미트 감독이었음에도 말이었다.
“확실히, 오늘 보니까 감독님 방법이 통할 것 같은데요? 훈련 열심히 하던데.”
“뭣이? 그럼, 내가 틀릴 줄 알았냐?”
“에이, 그런 뜻이 아니라요. 좀 긴가민가 했었거든요. 의지가 없는 녀석에게 틀렸다, 틀렸다고만 하면. 사실 전 없던 의욕도 꺾일거라 생각 했었거든요.”
“그게 네가 아직 애송이라는 증거다.”
요한이 보여준 재능은 틀림이 없었음에도, 틀렸다고 말해야 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보통 놈들은 네가 틀렸다고 말해주면, ‘아, 내가 틀렸구나.’ 하고 고칠 생각을 하지. 하지만 천재들은 안 고쳐. 대신, 증명할 생각을 해. 자기가 맞다는 걸. 아득바득.”
천재 다루는 법을 아는 슈미트 감독이었다.
이런 분야에 있어선 거의 명의(名醫).
게으른 천재들은 아무리 열심히 좀 해라 윽박을 질러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슈미트 감독은 알고 있었다.
대신, 자존심을 긁어주면 그만이었다.
네가 틀렸다고.
그럼 굳이 윽박을 지르지 않아도, 그들은 스스로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애를 쓴다.
천재들은 고집을 절대 꺾지 않는 존재들이었으니까.
실제로,
오전 훈련동안 요한이 보여준 훈련 태도는 누구도 게으르다 할 수 없을 모습이었다.
그게 아니야! 틀렸어! 라고 소리칠 때마다 녀석은 더욱 더 진지하게 훈련에 임했다.
화가 났을 것이었다.
틀리지 않았는데, 틀렸다고 하니까.
아마 한 번만 더 틀렸다고 했으면, 대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딱 그 선을 알고, 훈련을 종료시킨 것 역시도 슈미트 감독의 컨트롤 능력이었다.
“감독님이 고집이 센 이유가 있었군요.”
“으흠. 이제 안 게냐?”
“아, 아까 꼭 고집이 세다고 천재인 건 아니라고도 하셨었죠? 하긴. 감독님이 천재셨으면 우리 팀이 지금쯤 5위는 하고 있었···”
“뭐야? 이놈이. 그게 내 잘못이냐? 난 잘못 없다! 내가 맨시티 감독이었으면 지금 무패였을거다!”
“그럼 감독님이 맨시티를 갔겠··· 악!”
“항상 매를 벌지. 항상 매를 벌어. 수석 코치란 놈이, 승점 벌 궁리만 해도 모자를 판에!”
에휴, 하고 한숨을 내쉬는 슈미트 감독.
제이미 코치는 꼬집힌 구레나룻을 비볐다.
“어쨌든,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이 된 겁니까? 지금처럼만 하면, 쭉 열심히 할까요?”
“그럴 리가 있나.”
제이미 코치의 물음에 고개를 젓는 슈미트 감독.
일단 녀석이 증명하고자 하는 감정을 느낀 건 분명하지만, 이건 첫 번째 스텝일 뿐이었다.
갈 길은 멀었고, 이제 두 번째 스텝으로 나아가야 했다.
“두 번째 스텝은 뭡니까?”
“녀석이 증명하고자 하니,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지.”
“기회요?”
“그래. 기회. 본인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기회.”
그 두 번째 스텝은,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