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32)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32화(132/202)
< 131화 – 유럽에서 가장 큰 도서관 >
“마틴!”
“···”
“마틴!”
“···”
“씨발, 페트로비치!”
“어, 어?”
“귓구멍 열어! 정신 차리라고!”
경기가 시작된 지 몇 분 지나지도 않았을 때.
벨라미의 목은 벌써 쉬어버릴 듯 했다.
수비 라인 전체의 컨트롤을 골키퍼인 휴리첼과 함께 담당하고 있는 벨라미다.
덕분에 평소에도 동료들에게 소리를 질러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데시벨을 훨씬 더 높여야 했다.
캄프 누는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시끄러웠다.
~Tot el camp!
온 경기장이
~És un clam!
사람들로 가득차 있네
~Som la gent blaugrana!
우리는 블라우그라나의 서포터!
상상해보라.
오늘, 경기장을 찾은 9만 6천여 명 중 9만 명이 홈 관중이다.
그 9만 명의 홈 관중들이, 모두 소리 높여 바르셀로나의 응원가를 부르짖고 있었다.
이건 뭐, 엘 클라시코라고 해도 믿을만한, 아니 그것보다 더 뜨거운 열기.
당연히 바로 옆에 있는 동료의 목소리도, 집중하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았다.
집중력이 두 배로 필요한 경기.
그런데, 오늘따라 유독 페트로비치가 불안하다.
사실, 이미 어제부터 유난히 긴장을 하던 페트로비치다.
자기 입으로, 자기가 새가슴이라나 뭐라나.
아무튼, 페트로비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벨라미의 말조차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었다.
수비수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매우 중요한 문제.
그게 잘 안되니, 페트로비치 쪽에서 계속 불안한 장면들이 노출되고 있었다.
하필, 그게 바르셀로나의 에이스인 이아고 퀸테스 쪽이기도 했고.
타타탓-!
전반 초반,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이아고 퀸테스.
퀸테스는 마치 클래식 윙어처럼, 거의 사이드 라인에 붙어 움직이고 있었다.
페트로비치의 시야 바깥에 자리를 잡는 거다.
이러면 안 그래도 아슬아슬한 페트로비치의 집중력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
공의 위치도 확인해야 하고, 자신의 뒷편에서 움직이는 퀸테스의 움직임도 파악해야 하는데, 그걸 동시에 해야 한다.
그러다 잠깐이라도 퀸테스의 위치를 놓치면,
파아아앙-!
<오른쪽으로! 좋은 침투 패스입니다! 퀸테스가 빠르게 돌아 들어갑니다!>
지금처럼 뒷공간을 향한 로빙 패스가 들어간다.
페트로비치의 주의가 잠깐 느슨해진 짧은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드는 퀸테스.
“돌아 들어가는 거 잡으라니까!”
벨라미가 욕설을 내뱉으며 수비 커버를 위해 뛰었다.
상대 미드필더의 시선을 보고, 이미 퀸테스가 돌아 들어가고 있다는 걸 눈치챈 벨라미였다.
그래서 콜을 해줬고.
근데, 또 못 들은 모양이다.
파아앙-
타타탓-!
박스 오른쪽에서 패스를 잡아낸 뒤, 커버를 들어온 벨라미와 대치하는 퀸테스.
벨라미는 몸을 긴장시키며 무게 중심을 낮췄다.
대치를 하고 있는 위치가 상당히 좋지 않다.
페널티 박스 라인을 사이에 둔 채 마주 보고 있는 상황.
이 위치에서라면, 공격수는 과감히 드리블 돌파를 시도할 수 있다.
공격수 입장에선 밑져야 본전인 시도다.
통하면 대박인거고, 아니어도 코너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설사 빼앗기더라도, 상대의 위험 지역이니 곧바로 압박을 가하면 그만.
반면, 수비 입장에선 완벽한 수비가 아니면 안되는 최악의 위치다.
돌파를 당하는 건 물론이고, 행여나 발끝이라도 잘못 뻗을 경우, 페널티 킥이다.
하물며 그러한데, 상대가 퀸테스다.
온 더 볼 극강의 드리블러.
아무리 벨라미라 해도, 일단은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 수비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타타탓-!
한 가지 다행이라면, 대치 구도가 이어지는 동안 페트로비치가 빠르게 뒤따라 왔다는 것이었다.
퀸테스를 코너로 밀어 붙이려는 듯 달려드는 페트로비치.
그런데,
스르륵-!
퀸테스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드리블을 시작했다.
그 방향은 정면, 그러니까 벨라미 쪽이 아닌, 옆에서 들어오던 페트로비치 방향.
그 순간적인 방향 전환에, 페트로비치의 존재가 도리어 방해가 되었다.
뒤늦게 달려온 페트로비치는 역동작에 걸렸는데, 벨라미는 그런 페트로비치 때문에 퀸테스에게 바로 붙을 수가 없었다.
졸지에 페트로비치의 커버가 퀸테스를 위한 스크린 플레이가 된 셈.
벨라미와 페트로비치는 퀸테스가 눈앞에서 빠져 나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타타탓-!
순식간에 둘을 제쳐낸 퀸테스에게 열리는 슈팅 각도.
뻐어어어엉-!
박스 모서리 부근에서, 퀸테스는 지체없이 왼발을 당겼다.
이 지점, 딱 파 포스트를 보고 감아 때리기 좋은 이 지점이 바르샤 팬들 사이에선 ‘퀸테스 존’이라 불리는 곳이다.
그러니까,
슈팅을 내준 순간 이미 치명적이라는 뜻이었다.
슈우우우우웅-
철썩-!
퀸테스의 슈팅이 크게 감겨 웨스트 햄의 골망을 출렁이는 순간.
“우와아아아아아아앗-!”
9만여 명의 관중들이 내는, 귀가 찢어질 듯한 함성이 캄프 누를 가득 채웠다.
*
<말씀드렸듯이, 한 골이 빠르게 더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 분위기인데요.>
<바르셀로나는 계속해서 몰아붙일 겁니다. 웨스트 햄엔 요한이 있기 때문에, 한 골로는 분위기를 완전히 잡았다고 하기 어렵거든요.>
전반 10분에 터진 선취골.
이후, 바르셀로나는 더욱 공세의 강도를 높였다.
완전히 달아오르는 캄프 누의 분위기.
축구는 흐름의 스포츠다.
흐름이 왔을 때, 그 흐름을 잡으면 이기고, 잡지 못하면 진다.
그것이 축구.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반드시 잡아야 할 그 흐름이, 바로 지금임을 직감한 듯.
더욱 과감하게 나섰다.
여기서 고삐를 늦출 이유가 없었다.
‘큰일 났구만.’
그 흐름 속에서 한숨을 내쉬는 벨라미.
진짜 큰일이다.
한 점을 내준 것 자체는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어차피 요한이가 있으니까.
근데 문제는, 이게 한 골로 끝날 것 같지가 않다는 거다.
실점을 내준 뒤, 동료들이 정신을 번쩍 차렸다면 좋았겠지만.
어째 점점 더 패닉에 빠지는 듯한 모습들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이런 분위기의 경기장에서 경기를 해보는 건 다들 처음이니까.
‘귀라도 열어주면 좋으련만.’
고민이 깊어진다.
사실, 벨라미가 웨스트 햄의 수비 핵심인 건 맞다만.
수비 리더로서의 경험은 벨라미도 부족한 편이다.
첼시에선 마티아스 구스타보가 리더였고, 잉글랜드 대표팀에선 따로 리더가 필요치 않았다.
대표팀 주축 선수들은 연령별 대표팀서부터 호흡을 맞춰 왔던 선수들이었으니까.
그래서 동료의 탓을 하고 싶진 않았다.
어차피 부족한 건 자신도 매한가지.
자신이 아니라 구스타보였다면, 어떻게든 동료들을 잘 잡아줬을지 모른다.
그러니 남탓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 이 흐름을 넘겨낼만한 구심점을 찾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괜히 소리만 빽빽 지르는 것도 좋은 답은 아닌 듯 했다.
그게 오히려 정신을 산만하게 만들어, 집중력을 빼앗는 것 같기도 하고.
후우.
어차피 요한이가 있으니까, 눈앞의 이 위기만 넘겨내면 되는데.
‘아.’
그래, 요한이가 있잖아?
벨라미가 손가락을 튕겼다.
“자! 다들! 멀리 봐! 멀리!”
벨라미의 외침에, 벨라미를 쳐다보는 동료들.
벨라미가 전방을 가리키자, 모두의 고개가 다시 돌아간다.
멀리 보라고?
“···!”
아.
그곳에 요한이가 있다.
순간, 말을 하지 않아도 벨라미의 뜻이 모두에게 전해졌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다른 건 신경쓰지 말자.
모두, 각자 자신의 앞에 있는 녀석만 놓치지 않고 막으면 된다.
그 다음은, 요한이가 알아서 해줄 거다.
필드에 입장하기 전, 요한의 손을 잡으며 긴장을 조금이나마 풀었던 웨스트 햄 선수들.
그래놓고 막상 경기가 시작되니 까맣게 잊고 있었다.
바보 같이.
<페드리, 가비에게. 가비, 직접 슈웃-! 아, 그러나 벨라미의 몸을 날리는 수비!>
<왼쪽에서, 크로스! 하지만 옌킨슨의 몸을 맞고 나갑니다.>
<퀸테스에게 떠가는 패스! 이번엔 페트로비치가 한 발 먼저 처리합니다!>
눈앞의 수비에만 집중하자.
그 일념이 웨스트 햄 수비 모두의 머릿속에 각인되자, 조금씩 수비 집중력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당사자는 당연히 알 리가 없겠지만, 어쨌든 요한 덕분에 웨스트 햄은 추가 실점의 위기를 넘기고 있었다.
*
‘예전 생각나네.’
시종일관 함성으로 시끄러운 관중석을 보며, 요한은 뜬금없는 추억 회상에 잠겨 있었다.
예전 생각이 난다.
그때가, 안필드라는 곳이었지.
리버풀로 원정 경기를 갔을 때 말이다.
그곳의 분위기도 참 지금과 비슷했었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사람들,
왜 저렇게 화가 나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손가락질과 욕설을 하는 사람들.
‘가운뎃손가락은 만국 공용어구나.’
참 친절들도 하다.
스페인어로 욕하면 못 알아들을까, 친절히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여준다.
‘대체 이 공놀이가 뭐길래.’
요한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은퇴할 때까지, 아니 죽을 때까지도 이해하지 못할런지도 모른다.
대체 축구가 뭐라고, 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열을 내는 것일까.
가장 가까운 가족인 형이나 아빠도 이해가 안되는데, 저 사람들이 이해가 될 리 없다.
다만, 좀 재밌었던 기억은 있었다.
안필드에서 말이다.
그 수많은, 시끄럽게 떠들던 사람들을 조용하게 만들었던 것.
마치 권력자가 된 기분이었달까.
그렇잖은가.
대통령이 와도 이 많은 사람들을 1초만에 입 다물도록 만들 순 없을 거다.
그런데, 축구 선수는 가능하다.
“흠.”
근데, 오늘은 그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고작 한 골로, 이 많은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것이 말이다.
그렇담, 평범한 골이 아니라 모두가 놀랄만한 골을 넣어야 할 것 같다.
모두의 말문이 막힐만한 골을 말이다.
*
<천천히 공을 돌리는 바르셀로나. 약간의 템포 조절이 들어가는 것 같은데요.>
<앞선 20분 동안 매섭게 몰아쳤으니, 잠깐 쉬어갈 필요도 있어 보이긴 합니다. 숨을 골라야, 더 세게 때릴 수 있겠죠.>
<어쨌든 웨스트 햄이 맹공을 잘 넘기긴 했습니다. 물론 한 골을 내주긴 했지만요.>
전반 20분이 지날 무렵.
잠깐의 소강 상태가 찾아왔다.
해설자의 말대로, 바르셀로나에게도 잠깐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한 때.
90분 내내 상대를 몰아칠 수 있는 팀은 없다.
그건 바르셀로나도 마찬가지.
그래서 축구를 흐름의 스포츠라고 하는 건지도 모른다.
바르셀로나가 숨을 고르기 시작하자, 웨스트 햄은 일단 한 번의 흐름이 지나갔음을 느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들의 차례라고 생각하며 템포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누구 마음대로 숨을 골라.
숨을 골라도, 가드는 올리고 골라야지.
<활발하게 압박해주는 버클리, 그리고 네이슨. 이 둘만큼의 에너지 레벨을 보여주는 미드필더들은, 라 리가에서 보기 힘들죠.>
<웨스트 햄이 압박의 강도를 상당히 높입니다!>
탈압박의 귀재들만 모아 놓은 바르셀로나의 중원이긴 했다.
그러나, 그들이라고 모든 패스를 성공시키고,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마치 들이 받기라도 하려는 듯 달려드는 웨스트 햄 선수들의 기세에, 이번엔 바르셀로나의 실수가 나왔다.
<패스를 끊어냈습니다, 버클리! 곧바로 카펠로에게! 카펠로, 왼쪽을 선택합니다! 왼쪽이 크게 비어 있습니다!>
중원에서 볼을 끊어낸 웨스트 햄이 빠르게 공격을 전개했다.
왼쪽의 조슈아 베일리에게 연결되는 공.
베일리가 그 공을 잡고 빠르게 달렸다.
타타탓-!
측면에서 올라오는 크로스가 위험하다는 건 바르셀로나도 알고 있었다.
요한과 박스 안에서 공중볼 경합을 한다는 건, 승산이 5할보다는 분명 아래일 테니까.
때문에 베일리를 쫓던 수비는 최대한 각도를 줄여주는 수비를 했고,
뻐어어엉-!
베일리가 어떻게든 크로스를 올리긴 했으나, 방향은 좀 부정확해 보였다.
가장 위협적인 크로스는 수비와 골키퍼 사이.
그 빈틈을 향해 속도감 있게 붙여주는 크로스다.
허나, 베일리의 크로스는 약간 뒤쪽으로 향했다.
골대를 향해 뛰던 공격수가 역동작에 걸릴 수밖에 없는 위치로 말이었다.
타탓-!
요한 역시 그랬다.
골대를 향해 달리다, 크로스의 방향을 확인하곤 급브레이크를 거는 요한.
잠깐의 고민이 스쳤다.
이 크로스, 헤더를 하려면 할 수는 있다.
다만 힘이 충분히 실릴 것 같지는 않았다.
농구의 페이드 어웨이 슛처럼, 뒤로 뛰면서 힘을 실을 수는 없으니.
그렇담 방법은 하나뿐.
차라리 잘 되었다.
멋지게 골을 넣어야 하는 참인데, 밑그림이 그려졌다.
이제 화룡점정을 찍어야 할 차례.
부우웅-!
요한이 몸을 뒤틀며 땅을 박차고 올랐다.
동시에 요한의 상체가 뒤로 눕는다.
그리고, 요한의 오른발이 하늘을 향해 뻗었다.
슈우우우우웅-
크로스가 그리는 포물선과, 요한의 오른발이 그리는 반원이 한 점에서 만나는 순간.
뻐어어어어어엉-!
믿기 힘들 만큼 정확한 타이밍에 만난 발등과 공은 강하게 임팩트 되었고,
슈우우우우웅-
철썩-!
골키퍼가 반응할 틈도 없이 골문 구석에 꽂혔다.
“···.”
그리고, 요한은 피식 웃으면서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래. 이건 그나마, 아주 조금은 재밌다니까.
차는 순간 이미 예상했다.
지금처럼,
“······.”
경기장이 조용해질 것이란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