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34)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34화(134/202)
< 133화 – 꿈보다 해몽 >
“이야, 이런 느낌은 처음이네.”
“뭐가?”
“안필드가 작아 보이는 느낌 말이야.”
“하긴. 나도 그래.”
안필드에 도착한 선수들은 경기장을 둘러보며 웃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안필드가 작아 보이다니.
뭐, 애초에 안필드가 거대한 규모로 찍어 누르는 경기장은 아니다만.
이렇게 팬들이 꽉꽉 차 있는데도 별 느낌이 들지 않는 건 정말 신기한 일이다.
“확실히 예방 주사를 잘 맞고 왔어.”
“좀 아프긴 했지만, 덕분에 강해졌지.”
“이젠 안필드도 면역이야.”
캄프 누 원정과 안필드 원정.
유럽에서 가장 어려운 원정으로 꼽히는 이 두 개의 원정을 연달아 한다는 건 미친 짓이 틀림없다.
그러나, 연달아 하는 것이기에 좋은 점도 있었다.
캄프 누에서 예방 주사를 제대로 맞고 왔으니, 오늘은 이런 분위기에서도 훨씬 제 플레이를 보여줄 자신이 있었다.
“페트로비치. 오늘은 괜찮지?”
“응.”
캄프 누에선 고생을 했던 페트로비치도, 오늘은 괜찮아 보인다.
제일 많이 앓은 만큼, 면역력도 더 강해졌다.
이젠 그걸 보여줄 차례였다.
*
<올 시즌 무패 팀들 간의 대결입니다. 웨스트 햄은 9연승을 달리며 리그 1위에 올라 있구요. 리버풀은 7승 2무, 최근 다섯 경기에서 전승 중입니다.>
<오늘, 한 팀의 연승 기록은 반드시 깨지게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후 흐름에도 영향을 크게 주게 되겠죠.>
<여러모로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겠습니다. 역시, 안필드의 분위기는 뜨겁구요.>
그래도 안필드는 안필드다.
최대 수용 인원 자체만 본다면, 안필드는 캄프 누의 절반이 조금 넘는 수준.
하지만, 그럼에도 캄프 누 못지않게 원정 팀의 지옥이라는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건, 그만큼 한 명 한 명의 서포터들이 더욱 열성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콥’이라 불리는 리버풀 팬들 만큼 강성한 팬들이 또 있을까.
안필드 원정이 지옥인 건, 선수들 뿐만이 아니라 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곳에 리버풀이 아닌,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고 입장한다는 건 큰 각오가 필요한 일.
안필드에서 경기가 있는 날이면, 괜히 형광색 옷을 입은 경찰들이 경기장과 주변은 물론 시내 곳곳에 배치되는 게 아니다.
그만큼 콥들은 혈기가 왕성하다 못해 흘러 넘치는 팬들이었다.
다만 그들에게도 좀 껄끄러운 상대가 있다면, 그건 웨스트 햄의 서포터즈들, 해머스일 것이다.
원조 훌리건, 해머스.
심지어 오늘 해머스는 해외 전지훈련을 통해, 전투력이 더 올라 있는 상태다.
캄프 누에서의 원정 응원, 꽤 터프했거든.
몇몇 선을 넘은 팬들은 바르샤 팬들과 몸의 대화까지 나누고 왔고 말이다.
덕분에, 오늘은 유독 안필드가 더 시끄러웠다.
<어, 제가 지금 잘못 들었나요?>
<저도 들은 것 같은데요. 웨스트 햄 응원가였잖아요?>
<분명 얼핏 들렸습니다. 방금 막 리버풀의 응원가 제창이 끝났는데요. 그게 끝나자 마자 해머스들의 목소리가 뚫고 나왔습니다.>
<콥들이 자존심이 무척 상하겠는데요? 원정팬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일이 있다니요. 안필드에서 말이죠.>
<뭐, 저희 중계석이 원정석과 가까워서 그런 탓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적은 처음이라서 말이죠. 안필드에서 원정 팀의 응원가를 듣는 일 말이죠.>
경기 초반부터 콥들의 심기는 매우 불편해졌다.
감히, 안필드에서 원정 팀의 응원가가 들리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
물론 원정 팬들이라고 조용히 앉아 경기만 보다가 가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응원을 하는 건 당연한 일.
문제는, 그 응원 소리가 콥들의 응원 소리를 뚫고 나왔다는 것이었다.
다른 경기장이면 몰라도, 안필드에서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건 콥들 입장에선 거의 도둑놈들에게 집을 빼앗긴 거나 마찬가지.
그리고 그런 느낌이 드는 건, 콥들 뿐만 아니라 리버풀 선수들도 똑같았다.
그들에게도 분명 해머스들의 응원 소리가 들렸으니까.
<던컨의 거친 파울. 경고가 주어집니다. 오늘 경기 첫 옐로 카드. 꽤 이른 시간에 나왔는데요.>
<음, 지금은 경고를 감수할만한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수비수인 던컨이 일찍부터 경고 한 장을 안고 간다는 건, 꽤 불편한 상황입니다.>
경기 시작 8분만에 스티브 던컨이 무리한 파울로 경고를 받았다.
리버풀의 주장 던컨은 베테랑.
굉장히 똑똑한 선수다.
경고를 받아도 괜찮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정도는 구분할 줄 아는 선수.
허나 지금은 경고를 받아도 괜찮은 때가 전혀 아니었다.
던컨은 데 클라잉과 듀오를 이루는 센터백.
요한과 계속해서 부딪힐 수밖에 없는 포지션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른 시간에 경고를 받게 되면 굉장히 불편할 수밖에 없다.
요한은 깔끔한 수비만으로 막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니까.
경고 한 장을 감수하고서라도 요한을 막아야 하는 상황은 분명히 생긴다.
근데 이리 쓸모없이 카드 한 장을 수집했으니.
그런 상황이 온다면, 던컨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중 하나가 되었다.
경고가 아니라 퇴장을 각오하고 막든지, 아님 그냥 허수아비가 되든지.
“후우.”
이미 말했듯 베테랑인 던컨이 그걸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유스 때부터 리버풀에서 커 온 리버풀의 성골이자 캡틴.
던컨이라서 참을 수가 없었던 거다.
안필드에서 원정 팀의 응원 소리가 들린다는 게.
그럴 수만 있다면 죽어서도 안필드에 묻히고 싶은 던컨이다.
그런 던컨에게 안필드를 내준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
감정이 격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은 명백한 실수였고, 웨스트 햄에게 좋은 일이라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좋아, 천천히 해! 여유있게 해도 돼!”
“상대가 급하다! 콜 들으면서! 끌어 들이면서 하면 된다!”
초반의 분위기를 가져오는 웨스트 햄.
웨스트 햄은 천천히 공을 돌리면서 점유율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리버풀 특유의 압박이 평소보다도 강하게 들어오는데, 꽤나 능숙하게 패스를 돌리며 공을 지켜내는 모습.
확실히 여유가 있다.
다들 동료들의 목소리도 잘 듣고 있고, 침착하게 대처하는 모습에서 안필드의 분위기에 당황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역시, 불과 4일 전 겪었던 캄프 누에서의 경험이 도움이 된 듯한 느낌.
특히,
<페트로비치, 오오! 좋은 탈압박!>
<카르발류에게 한 방 먹여주는데요! 가랑이를 허용한 뒤 분해하는 카르발류!>
페트로비치가 가장 눈에 띄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캄프 누에서 봤던, 얼타는 모습의 페트로비치는 온데간데없었고, 달라진 모습의 페트로비치만이 있었다.
사실 전혀 도움이 안 될 거라 생각했는데, 도움이 됐다.
요한의 조언이 말이다.
“경기 땐 무슨 생각을 하니?”
“아무 생각 안 하는데요.”
처음엔 그저 요한이답다, 라고 생각하고 말았었는데.
생각해보니 그게 자신에게 가장 필요했던 답이란 걸 느끼게 된 페트로비치였다.
스스로를 새가슴이라 말할 정도였던 페트로비치.
페트로비치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었다.
챔피언스 리그라는 꿈의 무대를 뛰게 된 건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그만큼 긴장이 되는 일이었다.
때문에 이번 시즌을 앞두고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던 페트로비치였다.
그나마 준비라도 열심히 해야, 긴장되는 가운데서도 1인분은 할 수 있을 테니까.
이번 바르셀로나 전을 앞두고도 그랬다.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던 페트로비치였다.
너무 준비를 하다, 경기 전날 새벽 3시에 잠들었을 정도로.
여러모로 너무 생각이 많았던 거다.
그런데, 막상 경기에 들어가고.
머릿속이 복잡한 상태에서, 경기가 자신이 준비했던 것과 조금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하니.
페트로비치는 좀처럼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었었다.
그럴수록 머릿속은 점점 더 복잡해져만 갔고, 실수는 더욱 연발이 되었다.
그나마 동료들이 도와줬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패배의 원흉이 될 뻔했고 말이다.
그 경기에서, 요한이가 자신을 살려준 만큼.
이번 리버풀 전을 앞두곤 요한이를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한 페트로비치였다.
생각을 비우자.
빅매치고, 중요한 경기라고 해서 평소와 다르게 준비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냥 똑같이, 하던대로.
그동안 자신이 유독 큰 경기에 약했던 이유가, 큰 경기를 큰 경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으니까 말이다.
타타탓-!
“헤이!”
“앞으로!”
파아앙-!
리버풀의 전방 압박을 풀어 나온 웨스트 햄이 빠르게 공격을 전개한다.
리버풀의 에이스, 카르발류를 제쳐낸 페트로비치가 중앙의 카펠로에게 내준 뒤 전방을 향해 뛰었고, 카펠로는 그 움직임에 맞춰 리턴 패스를 내줬다.
“···.”
하프라인을 넘어 공을 이어받은 뒤 전방을 살피는 페트로비치.
전방 압박을 빠르게 벗겨내고 나왔기에, 조금 공간이 넓다.
선택지는 여러 가지다.
하지만, 페트로비치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훈련 때 하던 그대로 하는 거다.
생각대로 움직이는 게 아닌, 몸이 움직이는 대로 놔둔다.
오늘 경기는 무패 팀끼리 맞붙는 중요한 경기가 아니라, 서른 여덟 번의 리그 경기 중 하나일 뿐인 경기다.
뻐어어어어엉-!
<페트로비치의 얼리 크로스!>
<곧바로 박스 안으로 붙입니다!>
얼리 크로스를 올리는 페트로비치.
페트로비치의 장기는 역시 크로스.
그 크로스가 크고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박스 안을 향해 날아갔다.
타타탓-!
그 크로스를 향해 동시에 두 명이 뛰어 올랐다.
요한과 데 클라잉이다.
그런데, 사실은 세 명이 뛰어야 했던 크로스였다.
요한과 데 클라잉에 더해, 스티브 던컨까지.
데 클라잉이 혼자 경합해서는, 어지간해선 공이 요한의 이마에 맞을 확률이 높다.
그러니 던컨까지 뛰어 2대1로 경합을 해줘야 했다.
하지만, 던컨이 자신감 있게 뛰지 못한 건 역시나 카드가 한 장 있기 때문일 것.
심지어 박스 안이 아닌가.
여기선 주심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특히나 상대가 요한이라면 말이다.
똑같은 반칙이라도, 득점 확률이 높은 상황에서 범한 반칙은 카드를 받을 확률이 높다.
박스 안의 요한이라면, 어떤 상황이라도 득점 확률이 매우 높은 상황이 된다.
작은 반칙으로도 두 번째 카드 수집과 동시에 페널티 킥까지 내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던컨은 경합을 위해 뛸 수가 없었다.
슈우우우우웅-
어찌 됐든, 데 클라잉도 못 뛴 건 아니었다.
하지만 페트로비치의 크로스는 정확했고, 요한의 점프는 마이클 조던 같았다.
데 클라잉이 어쩔 수 있는 조합이 아니었다.
파아아아앙-!
임팩트 순간, 고개를 휙 돌리며 공의 방향을 돌려놓는 요한.
사실 뒤에서 날아오는 얼리 크로스를, 다이렉트 헤더로 처리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공의 힘이 좀 죽는 건 당연하고, 방향이라도 골문 안쪽으로 돌려놓으면 그게 곧 최선의 헤더.
그러나, 요한은 그 와중에도 헤더에 힘을 실었다.
철썩-!
골망에 철썩, 하고 감기는 골.
리버풀의 골키퍼 케러허는 그 골을 가만히 서서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와아아아아앗-!”
동시에 터져 나오는 함성.
캄프 누와 달리, 안필드는 요한의 골에도 조용한 도서관이 되지 않았다.
대신 해머스들의 함성이 똑똑히 들리고 있었다.
*
“야, 데이비드 페컴!”
“응, 나 불렀어?”
“짜식, 크로스 미쳤다! 반품 불가 택배였다고!”
“이게 우리가 알던 페트로비치지!”
골이 터진 후, 요한에게 먼저 달려든 뒤.
동료들은 페트로비치에게도 달려들어 과격한 축하를 건넸다.
확실히 아름다운 크로스였다.
카펠로마저 인정할 정도로.
“뭐, 나름 잘 올렸네.”
“고맙다.”
그렇게 셀레브레이션이 끝난 뒤.
페트로비치는 요한에게 따로 다가가 포옹했다.
그리고 고마움을 표했다.
“네가 해줬던 말이 도움이 됐어. 난 솔직히 네가 대답하기 귀찮아서 그렇게 대답한 거라고 오해했었거든. 근데 생각해보니까 아니더라. 아무 생각을 안 한다는 건, 결국 큰 경기라고 해서 특별하게 받아들이지 말라는 뜻이더라고. 너, 생각보다 생각이 깊더라. 하하!”
요한의 등을 두드려준 뒤 페트로비치는 제자리로 돌아갔고, 그런 페트로비치를 보며 요한은 머리를 긁적였다.
‘뭐라는 거야···.’
뭐, 꿈보다 해몽이면 뭐 어떠랴.
결과만 좋으면 됐지.
페트로비치와 요한의 합작으로 선취골을 뽑아낸 웨스트 햄은, 안필드 원정을 전혀 어려워하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