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4)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4화(14/202)
< 013화 – 증명해 볼 텐가 >
“훈련은 어땠니? 뭐, 다들 보자마자 깜짝 놀라지?”
“아니요. 전혀요.”
“응? 아니라고?”
“저한텐 관심도 없던데요. 뭘 해도 그게 아니라고만 하고. 혼나기만 했어요.”
“음··· 그래?”
첫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요한.
반석호는 처음 보는 요한의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요한이 이렇게 화난 표정으로 집에 들어온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러려니, 천하태평.
유유자적한 성격의 요한이었는데.
그런 녀석이 씩씩대며 돌아왔으니, 놀랄 수밖에.
하지만 놀랄 일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이해가 안돼요. 제가 틀렸으면, 뭐가 틀렸는지 가르쳐줘야 하잖아요. 근데 말도 안해주고. 그냥 틀렸다고만 하니 인정할 수가 없잖아요.”
“음···”
“근데 제가 볼 땐 틀린 게 없단 말이에요. 전 틀리지 않았어요.”
요한은 옷을 벗지도 않고 오늘 훈련장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요한이 먼저 축구 얘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반석호는 내가 지금 로한이를 요한이와 헷갈리는건가 싶어 눈을 비볐다.
그러나,
눈을 비벼봐도 자기 앞에서 울분을 토하고 있는 건 요한이가 맞았다.
“음. 그랬구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요한은 첫 훈련이었던 오늘 코치들에게 혼이 많이 난 모양이었다.
뭘 어떻게 해도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틀렸다는 소리만 듣고 왔다고.
심지어 틀렸다면서 뭐가 틀렸는지 가르쳐주지도 않았단다.
“억울했겠구나.”
그렇게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이렇게 울분을 토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반석호도 예상치 못한 일이긴 했다.
요한이가 혼이 나다니.
입단 테스트 때도 그랬고, 아카데미 입단 후에도 그랬고.
더 과거로 올라가, 녀석이 코흘리개였을 때부터도.
매번 모두를 놀라게만 했던 요한이었다.
안해서 그렇지, 일단 공을 잡기만 하면 모두 요한의 실력에 감탄하기 바빴다.
그러니, 반석호는 웨스트 햄 1군이라 할지라도 다르지 않을 줄로 기대했었다.
요한의 재능은 당장 PL에서도 먹힐만한 재능이라고 믿었기에, 오늘도 모두를 놀라게 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랬는데,
막상 그와는 정반대였다고 하니 사뭇 놀랄 일은 맞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반석호는 전혀 실망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분해하는 요한의 모습을 보니 엔도르핀이 샘솟는 느낌이었다.
혼이 났든 어쨌든,
요한이 이렇게 먼저 축구 이야기를 꺼내고 있지 않나.
그 얼마나 바라왔던 일이란 말인가.
요한이와 이렇게 축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
반석호는 꿈만 같았다.
“아마 지각을 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어요. 20분밖에 안늦긴 했지만.”
“그럼, 내일은 좀 더 일찍 준비하는 게 어떻겠냐.”
“예. 그러려구요.”
“···!”
아니, 이거 진짜 꿈인가?
조심스럽게 내일은 지각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했더니, 요한의 입에서 그러려고 했다는 대답이 나오다니?
요한이는 건성으로라도 알겠다고 대답하는 녀석이 아니었다.
워낙 뻔뻔하다고 할만큼 솔직한 녀석이었으니까.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는 녀석이 아니었다.
불과 아카데미에 입단한 뒤 훈련장으로 출근할 때까지만 해도 가기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요한이었고.
그런데,
그런 요한이가 지금 내일은 일찍 가야겠다고 대답을 하다니.
강요한 것도 아닌데, 녀석이 스스로 의욕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무슨 마법을 부린 겁니까. 감독님···’
반석호는 속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하엘 슈미트 감독.
반석호도 잘 아는 인물이었다.
그가 1년 전 웨스트 햄에 부임한다는 오피셜이 떴을 때, 중위권을 맴돌던 웨스트 햄이 유로파권까지 갈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였을 정도로 슈미트 감독은 꽤 유능한 인물이었다.
특히나 선수 관리에 있어선 전문가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요한이 1군에 콜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렇게 기뻐했던 것이기도 했다.
슈미트 감독이라면, 요한을 확실히 붙잡아줄 수 있을 것 같았으니.
그러나 이렇게 하루 만에 녀석을 바꿔 놓을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일까.
어쩌면, 첫 훈련부터 요한이 호되게 혼난 것도 다 계획이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슈미트 감독의 조련이 시작된 것이다.
실제로, 요한이 반응하고 있지 않나.
요한이 이렇게 호승심을 내비치는 걸 본 적이 없는 반석호였다.
“저 들어갈게요. 내일은 연습 경기가 있대요.”
“그래. 이는 닦고 들어가라.”
방으로 들어가는 요한을 보며, 지금까진 항상 내일 얘를 어떻게 깨울까 걱정만 했던 반석호였지만.
내일 아침만큼은,
평화로운 아침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로한이 엄마, 자나?”
기분이 좋아진 반석호가 안방으로 슬쩍 다가간다.
그리곤 닫혀 있는 문에 귀를 기울이더니,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확인하곤 주방으로 향한다.
“오늘 같은 날 한 잔 안하면, 언제 마셔.”
찬장을 열어 깊숙히 손을 집어넣는 반석호.
이쯤 숨겨 놨었는데.
반석호는 찬장 깊숙한 곳에서 달그락 거리며 무언가를 꺼내다가,
“여보. 지금 뭐해요?”
“···어?”
등 뒤에서 들려온 싸늘한 목소리에 사색이 되고 말았다.
ㆍㆍㆍ
“와, 하루만에 달라졌는데요? 10분이나 일찍 오다니.”
제이미 코치는 일찍 훈련장에 나와 몸을 풀고 있는 요한을 보며 슈미트 감독의 어깨를 두드렸고, 슈미트 감독은 콧방귀를 뀌었다.
뭐, 일찍 나왔다고 해봐야 10분.
다른 선수들은 30분, 1시간도 미리 먼저 나오는 게 대부분이다보니 따지고 보면 일찍 나온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18세 이하 팀 매니저인 맥웰의 말에 의하면 30분은 기본으로 늦는 게 요한이라고 했거늘.
녀석에겐 10분 일찍 나온 것도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확실히,
슈미트 감독의 방책이 통하고 있는 모양.
“오늘 연습 경기가 있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오늘도 늦었을 거야. 근데, 자기도 보여주고 싶은 거겠지.”
어제 훈련을 마무리하면서,
슈미트 감독은 오늘 연습 경기가 있을 것임을 공지했다.
시즌이 막바지로 흘러가면서, 일정이 꽤 여유로운 웨스트 햄이었다.
컵 대회를 모두 아쉽게 탈락한 탓에, 남은 경기 일정은 리그밖에 없었으니까.
그 리그 경기도 순위가 거의 확정된 시점이니, 큰 압박은 없었고.
때문에 내부 연습 경기를 계획한 것인데,
그 얘기를 듣고 요한의 눈빛이 바뀌는 걸 슈미트 감독은 놓치지 않았다.
“크, 역시 감독님의 예상은 틀리지 않네요.”
예상대로였다.
녀석은 이번 연습 경기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자기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할 기회.
증명하겠다는 녀석이 경기를 대충 뛰진 않을 것이다.
자신의 모든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하겠지.
그렇게 열심히 하라고 해도 하지 않던 녀석이, 스스로 말이었다.
딱히 일찍 오라는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10분이나 일찍 나타난 것처럼.
“감독님은 다 계획이 있으시다니까.”
“그럼, 내가 너처럼 막 사는 하루살이인 줄 알았냐?”
“저 웨스트 햄 최연소 수석 코치인데요?”
“그거야, 네가 형편없는 선수였다는 증거일 뿐이고. 그리고, 그렇게 어린 놈이 맨날 따박 따박 말대꾸냐?”
“감독과 수석 코치간의 대화는 많을수록 좋죠. 소통이 안되면 팀이 안굴러갑니다.”
“말만 번지르르 하지. 말만.”
낄낄대는 제이미 코치와 한숨을 내쉬는 슈미트 감독.
“그나저나,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요? 기대되는데요.”
“흐음.”
팔짱을 끼는 슈미트 감독.
오늘 연습 경기는 요한에겐 1군 선수들과 뛰어 보는 첫 경험이 될 것이었다.
녀석이 아무리 재능이 있다지만, 첫 경기부터 눈에 띄는 활약을 하긴 힘들 터.
증명할 수 있는 기회는 주었지만,
사실 증명하길 바라고 기회를 준 것은 아니었다.
증명하지 못할 게 뻔했다.
열여섯살 짜리가 아무리 재능이 넘쳐봐야, 프리미어 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선수들 사이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할 게 뻔했다.
그런데,
그게 슈미트 감독이 원하는 바였다.
“어차피 고집을 꺾을 녀석은 아닐 테니까.”
요한은 오늘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다 해도, 제 고집을 꺾을 녀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녀석은 증명을 해낼 때까지 달려들 것이었다.
본인이 맞았다는 걸 증명할 때까지, 계속.
그럼 그것만으로 이미 게으름과는 작별 인사를 하게 될 거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몸에 벨 것이다.
노력이라는 녀석이 말이었다.
“근데요, 감독님.”
“응?”
“만약 잘하면요? 녀석이 오늘 막 서너 골씩 넣어버리면, 그럼 어떡하실 겁니까?”
제이미 코치의 물음에 슈미트 감독이 피식 웃었다.
글쎄.
그건 계획안에 없는 이야기였다.
그럴 리는 없었으니까 말이었다.
“됐고. 선수들 불러 모으게. 슬슬 시작하지.”
“알겠습니다. 삐이익-! 집합, 집합!”
*
“야, 꼬맹아. 너 주 발이 어느 쪽이냐?”
“예? 주 발이요?”
“그래. 잘 쓰는 발이 어느 쪽이냐고. 그걸 알아야 우리가 패스를 예쁘게 줄 것 아니냐. 왼발이야, 오른발이야?”
연습 경기를 앞두고, 조끼를 입고 있는데 무섭게 생긴 선수 하나가 요한에게 와서 묻는다.
웨스트 햄의 주장이자, 오늘 연습 경기 같은 팀으로 뛰게 된 미드필더 팀 고든이다.
“잘 쓰는 발··· 잘 모르겠는데요.”
“···모른다고?”
자기 주 발도 모른다니?
이건 또 뭐하는 돌아이인가 싶었던 고든이 미간을 찌푸리자, 요한이 말을 이었다.
“양쪽 다 똑같아서, 딱히 주 발이랄만한 쪽은 없는 것 같습니다.”
“호오.”
이 놈 봐라?
요한의 대답에 고든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발칙한 신인이로다.
고든은 이런 신인들을 좋아했다.
물론 제일 좋아하는 건 잘하는 신인이지만,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게 이렇게 건방지게 느껴질만큼 자신감에 차있는 신인이다.
이런 녀석들이 대게 예의 바르기만 한 녀석들보단 잘할 확률이 높으니까.
모르는 게 약이기 때문이다.
프리미어 리그라는 벽이 얼마나 높은지.
그걸 잘 아는 녀석들은 지레 겁을 먹고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들은 오히려 겁이 없기에 제 기량을 펼쳐낸다.
물론,
이러나 저러나 처음부터 그 벽을 넘는 녀석은 보지 못했지만.
“그래. 어차피 연습 경기니까, 긴장하지 말고. 어디 네 실력을 마음껏 뽐내봐라.”
“예.”
요한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는 고든.
고든이 제일 재밌어 하는 일은,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신인에게 프리미어 리그가 어떤 곳인지 알려주는 것이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벽을 마주한 녀석의 벙찐 얼굴을 보는 것만큼 재밌는 건 없었다.
때문에,
‘경기가 끝나고 나면 더 헷갈리게 될거란다, 꼬맹아. 내 주 발이 왼쪽이었는지, 오른쪽이었는지 말야. 둘 다 내 발이 아닌 기분일 테니까.’
고든은 벌써부터 뭔가 보여주겠다는 듯 결의에 찬 녀석의 얼굴이, 바보처럼 벙찐 얼굴로 바뀌게 될 그 순간이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원래 처음엔 다 그런 거라고, 너무 충격받지 말라고 잘 위로 해줘야지, 뭐.
“삐이이이익-!”
휘슬과 함께 요한의 첫 1군 연습 경기가 시작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