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40)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40화(140/202)
< 139화 – 낭만이 살아 있는 필드 >
“좋은 경기 부탁드립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경기 전, 악수로 인사를 나누는 양 팀의 감독들.
맨시티의 조제 에르네스토 감독은 벤치에 앉은 뒤, 마른 세수를 했다.
‘젊었을 때 만났으면, 오줌을 지렸을지도 모르겠군.’
슈미트 감독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기운에 몸서리를 치며 생각하는 에르네스토 감독.
웃고는 있었지만, 그 미소가 이상하게 무서웠다.
지금은 인자해 보이는 백발 노인이지만,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슈미트 감독을 마주했다면 진짜 무서웠을 것 같다.
솔직히 좀 민망했다.
미안하기도 하고.
경기를 앞두고 세간에 떠돈 이야기 때문이었다.
구단이 웨스트 햄의 선수들을 노린다는 그 얘기 말이었다.
하필 이 경기를 앞두고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는 건, 누가 봐도 의도가 자명했다.
아니, 애초에 그런 의도가 아닐지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한창 분위기가 좋은 웨스트 햄을 내부적으로 흔들려 한다는 목적 말이다.
그건 사실이었다.
에르네스토 감독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게 자신의 뜻은 아니었다.
구단 내부 누군가의 짓이었지.
솔직히 말해, 그게 룰 적으로 위반되는 일은 아니라해도, 좀 치사한 짓 아닌가.
돈으로 경쟁 팀의 선수를 빼온다는 게 말이다.
설사 실제로 빼오려는 생각이 없는데 그런 이야기를 흘리는 것 자체도 그렇고.
아니, 그게 더 치사한 짓이겠지.
그런 식으로, 경쟁자를 제거하면서 자신들이 위로 올라갈 생각은 없는 에르네스토 감독이었다.
뭐?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왜 요한의 영입은 그렇게 애원했냐고?
아니, 그건 웨스트 햄의 전력을 약화시키기 위함이 아니잖나.
요한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향의 선수고, 그래서 원하는 것일 뿐이었다.
세상에 어떤 감독이 요한을 원치 않겠나.
자신이 욕을 먹는 건, 그저 맨시티라는 팀이 현실적으로 돈이 많기 때문일 뿐이었다.
막말로 저기 2부 리그의 노리치 시티 감독도 요한을 영입하고 싶어할 거다.
구단에 그럴 돈이 없을 뿐.
맨시티는 그럴 돈이 있으니,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것이고 말이다.
‘아무튼간에···’
필드로 입장하는 선수들을 보며 생각하는 에르네스토 감독.
에르네스토 감독의 시선이 조너선 네이슨과 제이콥 버클리에게로 향했다.
비록 자신의 뜻이 아니었고, 오히려 부끄럽게 생각한다 해도.
이미 저질러진 일을 아니라고 나서서 부정할 생각도 없긴 하다.
저 둘은 분명 오늘 경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조금은 다를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자신들에게 벌어졌으니까.
지금껏 맨시티와 링크가 났던 선수들의 면면을 보라.
기본이 7, 800억에서 시작이다.
항상 그 이적 시장에서 가장 핫한 매물들만이 맨시티와 연결이 되었었다는 뜻이다.
네이슨과 버클리는 솔직히 그 급이 되지 않는다.
웨스트 햄이 그들을 영입했을 당시, 둘의 이적료는 약 200억, 300억대 초반 선.
한 시즌이 지난 지금, 트랜스퍼 마켓이 책정한 그들의 가치는 약 400억대 후반, 500억대 초반 선이다.
많이 오르긴 했다만, 맨시티로서는 푼돈에 가까운 이적료다.
그러나, 만약 그들을 데려옴으로써 요한까지 데려올 수 있다면.
구단은 고작 400억, 500억 따위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큰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만 해도, 그들에게 책정된 이적료가 6, 700억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물론 바이아웃 때문에 그게 당연한 금액이긴 하지만, 맨시티는 그걸 아무런 망설임 없이 지를 수 있는 팀이라는 게 중요하다.
시장 가치 기준으로 2억 5천만 유로(약 3천 400억)의 몸값이 책정된 요한도 영입하려하는 맨시티인데, 그깟 6, 700억이 문제겠는가.
당연히 연봉 역시도, 웨스트 햄과는 비교가 안되는 수준의 대우를 해줄 것이고.
그 이야기를 듣고도 마음이 싱숭생숭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
2년 전까지만 해도 무명이었던 선수들이, 맨시티의 관심을 받는다?
그것도 구단 출입 기자들이 직접 이야기할 만큼 구체적으로?
겨울 이적 시장은 불과 몇 달 남지 않았다.
몇 경기만 더 치르다 보면 벌써 1월이 된다.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얼마 남지 않은 일이라는 거다.
‘적어도 고민은 좀 해보라고, 친구들.’
네이슨과 버클리를 지켜보며, 에르네스토 감독은 턱을 매만졌다.
*
“치사한 것들.”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죠.”
“돈이 세상의 전부가 아닌 것을.”
“사실 대부분이긴 하지만요.”
“어허.”
오늘도 경기장을 찾은 반석호와 로한 부자.
참, 맨시티는 영 정이 가지 않는 팀이다.
뛰어난 유망주들을 꾸준히 배출해 온 웨스트 햄의 팬으로서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저기 맨시티 유니폼을 입고 뛰고 있는 잭 프라이스도 그렇고, 뭐 한 두 명 빼앗겨본 게 아니니까.
요한이 데뷔한 뒤로는, 꾸준히 군침을 흘리며 찝쩍대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뭐,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이 바닥의 생리이기도 했다.
물론 팬 입장에서 욕할 수 있는 것도 맞지만, 그렇지 않은가.
돈이 많은데 굳이 안 쓸 이유도 없다.
좋은 선수를 영입하고 싶은 건 모든 팀들이 마찬가지고, 선택을 하는 건 선수의 몫이다.
선수들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팀으로 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아주 정상적인 일이고.
한데, 이번에 떠돌고 있는 얘기는 좀 다르다.
맨시티가 네이슨과 버클리를 동시에 노린다는 건 다분히 의도가 보이는 일이었다.
요한을 돈으로 살 수가 없으니, 그 동료들을 인질로 삼겠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워딩이 좀 과격하긴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웨스트 햄 팬들 입장에선 분개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런다고 될 줄 아나.”
“네이슨과 버클리의 로얄티는 돈 따위로 흔들릴 게 아니죠. 누구보다 요한이와 뛰는 걸 좋아하는 선수들인데.”
“흐음. 그렇···겠지?”
“그렇···겠죠.”
대부분의 팬들은, 네이슨과 버클리를 믿는다는 반응들이었다.
설마, 떠날까.
물론 두 선수 모두 웨스트 햄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선수들이었다.
둘 다 유스 출신 성골들도 아니었고, 웨스트 햄이 드림 클럽이었던 선수들도 아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당장 맨시티로 떠난다고 해도 이상한 상황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 두 선수가 보여준 클럽에 대한 충성심과 헌신은 웬만한 유스 출신 선수들 못지않았다.
항상 인터뷰를 통해 밝혀오지 않았나.
웨스트 햄에서 꼭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웨스트 햄에서 은퇴하고 싶다던 둘이다.
아무리 맨시티가 거액을 준다 해도, 둘은 팀에 남을 것이라는 믿음이 팬들 사이엔 있었다.
“사실 잭통수도 누구보다 충성스러운 선수였지만요···”
“어허.”
뭐, 사실 잭 프라이스도 팀을 떠나기 전까진 그 누구보다 충성스러운 선수였단 걸 생각한다면.
믿음보다는 바람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만.
“발라 버려! 웨스트 햄에서 맨시티 따위로 갈 필요가 없다는 걸 보여주라구!”
“그래! 순위가 더 밑에 있는 팀으로 갈 이유가 있겠어?”
아무튼, 팬들은 오늘 경기를 통해 그 둘이 보여줬으면 했다.
그 둘이 맨시티로 갈 이유가 없음을 말이었다.
*
<맨시티는 오늘 경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지난 경기에서 사미르 리샤드가 무릎에 통증을 느끼면서 교체되었었는데요. 결국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오늘 경기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스테판 그라나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오늘 경기일 텐데요.>
<요한과 비교하는 팬들 때문에 준수한 활약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그라나흐입니다. 오늘, 자신도 요한에 못지않은 선수라는 걸 보여주려 하겠죠.>
<반면 웨스트 햄에선 조너선 네이슨과 제이콥 버클리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 둘이 얼마나 맨시티 중원진을 압박해줄 수 있느냐가 관건일 테니까요.>
<공교롭게도, 맨시티 이적설이 나고 있는 두 선수인데요. 과연, 왜 맨시티가 그들을 노리는지, 오늘 경기를 통해 보여주어야겠죠.>
시작된 경기.
오늘, 여러 이유들로 양 팀 선수들이 의욕적이다.
리그 우승에 있어, 서로가 가장 신경 쓰이는 상대이다 보니 당연한 일인데.
특히 그라나흐는 요한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심기일전하는 모습이었고, 네이슨과 버클리는 행여나 딴 소리가 나올까봐 오늘 팀 승리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물론, 요한 역시도 오늘은 조금 남다른 모습이다.
지금 여기 서 있는 이유가, 여전히 훈련장에 출근해야 하는 이유가 맨시티 때문인데.
적당히 할 수는 없지.
<빠르게 패스를 돌리는 맨시티. 웨스트 햄의 압박이 상당합니다.>
<맨시티를 상대로도 주도권 싸움을 놓치지 않으려는군요. 웨스트 햄.>
역시나 경기 양상은 초반부터 불이 붙었다.
양 팀의 경기 양상은, 항상 맨시티가 주도권을 잡고 경기를 풀어가면, 웨스트 햄이 선 수비 후 역습을 노리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아마 파리 생제르맹, 바르셀로나와의 경기가 웨스트 햄에겐 큰 자신감이 된 듯 보였다.
유럽 전역에서도 1티어로 분류되는 메가 클럽들과 맞붙어도, 굳이 수비만 하며 버틸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말이다.
물론 맨시티도 마찬가지지만, 리그에서 보는 국내팀과 말로만 듣던 해외 팀이 주는 느낌은 또 다르다.
티비에서나 보던 팀들과도 대등히, 아니 우월하게 경기를 펼쳤는데.
맨시티라고 쫄 필요가 있겠는가.
웨스트 햄은 강하게 압박을 밀고 들어가며 맞불을 놓았다.
“패스 타이밍 빠르게 해!”
“볼 끌지마! 템포 올려!”
그런 웨스트 햄의 기세에, 맨시티는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오늘 경기를 앞두고, 에르네스토 감독은 선수들에게 우리가 언더독이라는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할 것을 주문했었다.
물론 자만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막상 경기에 들어와 보니 진짜 자신들이 언더독인건가 싶을 정도였다.
그만큼 웨스트 햄 선수들은 두려움도 없이 공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물론, 이렇게 되면 맨시티로서는 경기를 좀 더 쉽게 풀어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상대가 작정하고 웅크리는 쪽과, 싸우자고 덤벼드는 쪽.
득점을 하기 더 쉬운 쪽은 후자니까.
웨스트 햄의 뒷공간은 평소보다 꽤 넓었다.
“헤이!”
뻐어어어엉-!
전방에서의 외침에, 잭 프라이스가 로빙 패스를 찔렀다.
타깃은 그라나흐.
그라나흐가 라인 브레이킹을 시도하며 패스를 향해 뛴다.
그러나,
“삐이익-!”
이내 부심의 깃발이 올라갔다.
오프사이드.
“굿!”
동료들을 향해 엄지를 세워 보이는 셰이 벨라미.
벨라미 덕분에 과감한 오프사이드 트랩도 사용할 수 있게 된 웨스트 햄의 수비다.
<웨스트 햄이 오프사이드 트랩을 사용하는군요. 지금은 수비 라인이 한 몸처럼 움직였습니다.>
<오프사이드 트랩은 위험 부담이 꽤 있는 수비 방법입니다만, 아무래도 그라나흐가 빠른 선수는 아니니까요. 행여나 놓쳐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 보입니다.>
물론, 위험한 방법이기에 주구장창 사용할 순 없다.
다만, 그라나흐는 주력이 빠른 선수가 아니었다. 만약 트랩에 실패한다 해도, 충분히 뒤따라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다.
더군다나 오늘은 사미르 리샤드도 없고 말이다.
“···.”
오프사이드 판정에 잔디를 차고 돌아가는 그라나흐.
자존심이 꽤 상했다.
그라나흐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웨스트 햄이 과감한 오프사이드 트랩을 구사할 수 있는 이유를.
“···쳇.”
웨스트 햄과 달리, 후방에 멀찍이 물러서 있는 동료 수비수들을 보며 그라나흐는 침을 퉤 뱉었다.
*
맨시티는 무조건 라인을 올리고 경기를 풀어가는 팀이다.
상대가 누구든 말이다.
지난 시즌도 그랬고, 지지난 시즌도 그랬다.
올 시즌도 예외는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예외였다.
요한을 상대로 라인을 올린다는 건, 감당하기 힘든 도박이었다.
물론 잘만 하면, 오프사이드 지옥에 빠뜨릴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놓치게 된다면.
그 이후의 대가는 안 봐도 비디오다.
때문에 라인을 올리고 경기할 때 가질 수 있는 이점을 포기하고서라도, 맨시티는 라인을 내린 채 플레이하고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내렸다는 얘기다.
맨시티 입장에선 많이 뒤로 내린 거지만, 보편적으로 봤을 땐 딱 정석적인 포지셔닝이다.
그런데, 그것은 웨스트 햄에겐 상당한 자신감을 불러 일으키는 일이었다.
맨시티가 라인을 뒤로 물렀다.
이유가 뭐겠나.
두려워하고 있다는 거다.
요한이에게 털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상대의 모습은 자신감을 갖게 하기 충분했다.
자신감이 충만해진 웨스트 햄 선수들은 더욱 더 강하게 맨시티를 압박했다.
특히 네이슨과 버클리가.
<두 대의 진공청소기가 필드 위를 돌아다니는 것 같습니다.>
<다른 선수들이었다면, 오버 페이스를 조심해야 한다고 했을 텐데요. 저 둘이라면 그런 걱정은 필요 없죠.>
<맨시티가 빌드업에 이렇게 고전하는 건 처음 봅니다.>
둘의 활발한 압박에, 좀처럼 매끄러운 빌드업을 보여주지 못하는 맨시티.
그에 더불어 웨스트 햄의 수비 라인도 높으니, 맨시티의 공격이 계속해서 빌드업을 생략한 긴 패스로 이뤄지는데.
그라나흐의 느린 스피드가 발목을 잡으며 이렇다할 찬스가 나지 않고 있다.
결국 맨시티가 이래선 안된다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했다.
압박이 들어와도, 그걸 이겨내고 풀어가는 게 맨시티의 원래 스타일.
파아앙-
파아앙-!
후방에서 짧은 패스를 주고받는 맨시티.
이번엔 짧은 패스를 통한 맨시티 특유의 빌드업을 시도하려는 모양인데.
타타탓-!
어김없이 버클리가 달려든다.
‘벌써?’
공을 잡은 맨시티의 수비수 후안 밀리토는 순간 당황했다.
분명 패스를 받기 전, 버클리의 위치를 확인했던 밀리토다.
근데, 패스를 받은 뒤 다시 고개를 들었더니.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가까운 위치에서 녀석이 달려들고 있었다.
저놈은 대체 뭔데 내일이 없는 것처럼 뛰어다니는 걸까?
파아앙-!
황급히 옆으로 공을 돌리는 밀리토.
그런데, 그 패스가 너무 성급했다.
버클리가 밀리토에게 압박을 들어가는 동시에, 네이슨 역시 패스가 갈 수 있는 루트를 파악하곤 달리고 있었다.
파아앙-!
밀리토의 패스를 끊어내는 네이슨.
네이슨은 공을 끊어내자마자,
“···.”
요한의 위치부터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