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44)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44화(144/202)
< 143화 – 지는 법을 잊다 >
<그라운드에 엄청난 야유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벨라미에게 향하는 야유일텐데요.>
<오늘은 첼시 선수가 아니라, 웨스트 햄 선수로서 스탬포드 브릿지에 서 있는 셰이 벨라미입니다.>
<경기 전에, 이 때문에 양 팀이나 서포터들간의 신경전이 장난 아니었죠?>
<첼시 팬들의 분노는 이해할만 합니다. 다만 벨라미 선수의 선택도 이해할 수 있죠. 양 쪽의 말이 다 맞다면, 결국 경기를 이기는 쪽이 판정승을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첼시는 올 시즌 15라운드에서 7승 4무 4패를 거두며 리그 7위를 마크하고 있다.
역시 지난 시즌보다 안 좋은 흐름.
팀이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지 못했다는 건, 확실히 꽤 큰 일이었다.
그것만으로, 팀에 남아 있을 이유를 찾지 못하는 선수들이 생겨났고, 이 팀에 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선수들이 생겼다.
여름 동안 다른 빅6 클럽들이 활발히 보강에 나선 반면, 첼시는 있는 선수들을 지키기에도 급급했다.
그나마도 잘 되지 않았고.
덕분에 빅6도 개편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였다.
첼시가 빠지고, 그 자리에 웨스트 햄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그런 여론에 첼시 팬들은 차라리 토트넘이나 아스날이 빠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는데, 오히려 말 잘했다며 빅4 체제로 돌아가자는 여론이 득세하기도 했다.
뭐, 여튼.
첼시는 그만큼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얘기다.
“우우우-! 벨라미! 너 같은 건 애초에 필요 없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리그 최악의 더티 플레이어, 셰이 좆라미!”
“레프리! 녀석에게 경고 한 장 주고 시작해! 어차피 경고 받을 짓을 무조건 하는 녀석이니까!”
스탬포드 브릿지를 찾은 첼시 팬들은 벨라미에게 열정적인 야유를 보내고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야유의 크기는 벨라미를 잃은 아픔의 크기와 비례했다.
아군일 때 가장 든든한 선수, 벨라미.
그런 벨라미와 적으로 만나게 된 것부터 머리가 지끈지끈한 일이다.
벨라미를 누구보다 잘 아는 첼시 선수들 역시 그랬다.
“오늘은 조용히 지나가라. 블루스들 성깔 알지?”
“글쎄. 해머스들이랑 지내다 보니, 블루스들은 얌전한 편이었단 걸 알아버렸네.”
“너한테는 다를걸. 특히 오늘은.”
“아이고, 무서워라.”
첼시 선수들이 다들 벨라미에게 한 마디씩 걸고 지나간다.
역시 다들 전투적이다.
벨라미는 어깨를 으쓱이며 여유롭게 웃었다.
“왜 다들 나한테 그래. 니들도 내가 문제가 아니라는 거 알잖아.”
맞다.
첼시에게 진짜 문제는, 벨라미가 아니라 요한이다.
첼시 선수들도 그걸 아주 잘 알고 있다.
때문이었다.
경기 초반, 첼시가 미친 듯이 닥공을 하기 시작한 것은.
<전방으로 길게 경합을 붙여줍니다!>
<웨스트 햄이 스탬포드 브릿지의 분위기에 적응할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보입니다!>
마치 과거 크루이프를 위시로 한 토탈 풋볼의 원시적 형태를 보는 듯, 전방으로 롱 패스를 때려놓고 벌떼처럼 달려드는 첼시.
뒤가 없어 보이는 그 전진에, 웨스트 햄 수비진도 잔뜩 긴장했다.
그러나,
상황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파아앙-!
파아앙-!
<문전 앞 혼전!>
흔히 말하는, 우당탕탕.
0대1로 뒤지고 있는 팀이 후반 막판 노리는 그 그림이 경기 시작과 동시에 펼쳐졌다.
문전 앞에서 루즈 볼 상황이 나왔고, 벌어진 혼전 상황.
이런 상황에선 50대 50이다.
공격과 수비가 50대 50이라는 것도 있고, 집중력과 운이 50대 50으로 작용한다는 것도 있다.
이번엔 운이 첼시에게 좀 더 따라준 듯 했다.
<들어갔어요, 들어갔어요!>
<체임벌린이 찬 공이 골라인을 넘었습니다! 골로 인정이 됩니다!>
투닥투닥대더니, 얼렁뚱땅 골라인을 넘어가버린 공.
어쨌든, 골이다.
첼시가 시작한 지 2분 만에 선제골을 터뜨린 것이었다.
“우, 우와아앗-!”
“x발, 그렇지!”
“권선징악이다아아아!”
“배신자의 최후다, 벨라미!”
어?
이, 이게 아닌데?
벨라미의 얼굴에 당황이 피어 올랐다.
*
<첼시 팬들이 더 놀란 것 같은 모습인데요. 첼시가 먼저 앞서갑니다.>
<뭔가 완벽하게 만들어냈다기보단, 운이 좀 따라준 느낌이었는데요. 어쨌든 골은 골이죠. 문제는 이 리드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일텐데요.>
<벨라미가 있을 때에도 요한을 막지 못했던 첼시입니다. 과연 오늘은 어떨까요.>
<뭐, 더 힘들겠죠. 그래도 어쩔 수 있겠습니까. 최선을 다해 봐야죠.>
선제 골을 넣은 건 첼시 입장에서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이었다.
근데, 이제 문제는 요한이다.
구스타보는 정말 신기했다.
요한 반이라는 선수를 파면 팔수록 말이다.
대체 어떻게 이런 선수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훈련 태도? 불성실.
축구에 대한 열정? 없음.
그럼 성적은? 리그 득점왕, 유로 우승 및 MVP, 발롱도르 수상.
이게 말이 되는가.
무엇보다도 제일 말이 안되는 건, 꾸준함이다.
물론 요한의 경력이 꾸준함을 논할 정도로 긴 것은 아니었다.
풀 시즌을 소화한 게 지난 시즌 뿐이니까.
하지만, 지금까지는 꾸준하다는 게 문제다.
데뷔전부터, 직전의 경기까지.
요한은 모든 경기에서 일관적인 기량을 선보였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가 구스타보는 제일 궁금했다.
선수들은 어쩔 수 없이 매 순간 불안에 떤다.
매주 최고의 기량을 보여줘야 한다는 불안감.
그리고 그걸 다음 주에도 이어가야 한다는 불안감.
그걸 해소해줄 수 있는 건 훈련 뿐이다.
훈련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몸을 힘들게 만드는 일이지만 정신은 편안하게 만드는 일이다.
훈련을 함으로써, 내일도 오늘과 같은 플레이를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근데 저놈은 뭐냐.
매일 같이 그 불안감에 시달리며, 도태되지 않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그것도 재능이 없냐 하면 그것도 아닌, 노력하는 천재들 사이에서 저놈은 대체 뭐냐는 말이다.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기량이 퇴보하긴커녕 점점 더 발전하는 것 같다.
실제로 그랬다.
지난 시즌 경기들과, 올 시즌 녀석의 경기들을 비교해보면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녀석은 오늘이 제일 잘했다.
<웨스트 햄, 활발한 압박으로 공을 따냅니다! 빠르게 동점을 만들고 싶은 듯 합니다!>
<공을 넘겨받는 카펠로. 줄곳을 찾다가, 곧바로 요한에게 넘겨줍니다!>
시작하자마자 약간은 어이없게 내준 실점에, 곧바로 동점 골을 노리는 웨스트 햄.
카펠로가 공을 잡자 벨라미가 절박한 목소리로,
“요한이한테! 야! 요한이한테!”
요한이한테를 부르짖었고, 그 목소리가 워낙 다급해 카펠로도 엉겁결게 패스를 내줬다.
요한에게 향하는 공과, 몸을 긴장시키는 구스타보.
그라운드에 입장하기 전, 지기 싫어 허세를 부리긴 했지만.
솔직히 답을 찾진 못했다.
이 녀석을 제어할 수 있는 답 말이다.
그저 한 가지 바랄 수 있는 건, 벨라미의 말이 거짓말이었다는 거.
요한의 컨디션이 최상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그러나, 요한과 첫 몸의 대화를 나누는 순간.
구스타보는 그래도 벨라미가 아직 친정 팀에 정이 남아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벨라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큭···!”
패스를 받기 위해 등을 보이고 있는 요한을 향해 달려든 구스타보.
보통의 공격수들에겐 이런 식으로 부딪히진 않는다.
할 수가 없지.
이런 식으로 ‘몸통 박치기’를 해버리면, 열에 아홉은 고꾸라질 테고 심판은 파울을 선언할 것이다.
근데, 열에 하나인 녀석이 이 녀석이다.
작정하고 밀어도,
“···.”
꿈쩍하지 않는다.
도리어 달려들었던 구스타보가 뒤로 살짝 밀려났다.
니클라스 긴터가 원망스러웠는데, 지금 와서 보니 이해도 된다.
좋든 싫든 부딪혀야 한다니까, 긴터가 사색이 되면서 고개를 저었었거든.
긴터가 못하겠다니, 어쩔 수 없이 자신이라도 나선 것이었고.
근데, 이해가 된다.
뒤에서 덮쳤는데도 이 정도인데, 긴터는 이런 녀석과 정면으로 부딪혔었지.
그나마 긴터니까 살아남은 거다.
타타탓-!
일단 돌아서고 나면 막을 수가 없기 때문에, 돌아서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는데.
요한은 어느새 돌아서 있었다.
돌덩이 같은 몸을 가진 놈이, 민첩하긴 또 무지 민첩하다.
이런 상황에서 할 생각은 아니지만, 8살짜리 아들내미가 축구 게임을 하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으앙! 진짜처럼 안 움직여! 엉터리 게임!”
꼭 사고 싶은 선수가 있다며 하도 졸라대길래, 내심 아빠인가 하는 생각에 현질을 좀 해줬더니 요한 반 카드를 사던 아들 녀석.
카드를 살 때까지만 해도 좋아서 방방 뛰던 녀석은, 게임을 플레이해보더니 울상을 지었었다.
게임 캐릭터가 현실처럼 안 움직인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불평하는 것과 달리 요한 캐릭터는 8살 아들의 미숙한 조작으로도 해트트릭을 하며 날아다니더라.
하지만 그것조차도, 현실엔 비할 바가 못된다는 거다.
현실의 요한을 눈앞에 둔 구스타보는, 역시 아이들의 눈은 언제나 정확하다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아니, 이젠 눈앞이 아니구나.
어느새 녀석은 자신을 지나쳐 있었으니.
현실의 요한은, 확실히 게임 캐릭터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각종 능력치들을 쳐발라 놓은 캐릭터보다도, 훨씬 더 사기다.
뻐어어어어엉-!
구스타보를 가볍게 제쳐낸 요한이 오른발 슈팅을 때렸다.
이 위치에서 조준하고 때리는 요한의 슈팅은, 언제나 빗나가는 법이 없다.
슈우우우우웅-
철썩-!
“아···.”
“x발, 웬일인가 했다.”
“5분을 못 가네.”
골망이 출렁이자 한숨을 내쉬는 홈 팬들.
그리고, 벨라미는 요한을 향해 전력질주로 달려와 안겼다.
“바로 이거다! 요한아! 한 골만 더! 아니, 두 골만 더!”
“아, 알았어요.”
전반 7분.
벨라미, 개같이 부활.
*
10분도 안되어서 한 골씩을 주고받은 양 팀.
스코어는 1대1이 되었고, 경기는 다시 시작하는 느낌으로 재개되었다.
그러나, 양 팀의 입장은 완전히 같을 수가 없었다.
분명 스코어가 1대1인 건 사실인데, 실질적으로는 1대1이 아닌 듯한 느낌이랄까.
같은 한 골이라 해도, 그 골들이 과정이 조금은 달랐기 때문일 터였다.
첼시의 골은 운이 따른 골이었다면, 요한의 골은 명백히 첼시가 ‘막지 못한’ 골이었다.
그 차이를 첼시 선수들이 누구보다 제일 잘 알고 있었고, 첼시는 어딘가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플레이를 보여주며 스스로 말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래서 성적이 중요한 거고, 기세가 중요한 겁니다. 괜히 최근 다섯 경기 전적을 비교하는 게 아니에요.>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지만, 양 팀의 상황은 반대가 되었습니다. 첼시는 챔스를 나가지 못하는 팀이고, 웨스트 햄은 챔스를 나가는 팀이죠.>
<웨스트 햄은 플레이로서 그 이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웨스트 햄은 스탬포드 브릿지를 제 집 안방처럼 휘젓고 다녔다.
버클리와 네이슨은 눈밭에 풀어놓은 말라뮤트처럼 뛰어다니며 공을 따냈고, 카펠로가 공을 잡을 때마다 벨라미는 요한에게 패스할 것을 종용했다.
그 압박에 카펠로는 자기도 모르게 계속해서 요한에게 패스를 보냈고, 기회를 몰아받은 요한은 벨라미의 목숨을 구원했다.
<고오오올-! 멀티 골! 요한의 두 번째 골이 터지면서, 웨스트 햄이 어렵지 않게 경기를 뒤집어 냅니다!>
전반이 끝나기 전에 요한은 게임을 뒤집었다.
그리고,
2대1로 시작된 후반전도 양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해트트릭! 요한이 이번엔 머리로 첼시의 골망을 가릅니다!>
<못 막아요. 네, 못 막습니다. 첼시는 오늘 경기 모든 운을 5분 만에 다 써버린 느낌이네요.>
요한의 쐐기 골이 터졌을 때, 벨라미는 그제서야 여유로운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아무 믿는 구석 없이 입턴 게 아니라니깐?
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배짱을 부릴 수 있었던 거라고.
“휴우. 그렇게 쪼개지 마라.”
“쪼개다니. 너흴 쪼갠 건 내가 아니라 요한인 걸.”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후반 막판.
웨스트 햄의 코너킥 상황에서, 박스 안으로 올라온 벨라미와 구스타보가 대화를 나눴다.
“야, 벨라미.”
“왜?”
“미안하지만, 오늘 경기를 통해 찾은 것 같다.”
“뭘?”
“우리가 그렇게 찾아 헤맸던 정답을 말이다.”
“뭐, 맞으면서 배운다, 그런 건가? 뭔데? 힌트라도 줘 봐. 훈련장에서 써먹게.”
피식 웃으며 벨라미의 어깨를 두드리는 구스타보.
“이번 시즌, 너희가 우승해라.”
“응?”
“그럼 다음 시즌엔, 우리가 이길 거다. 그리고 나서 죽여주마, 벨라미.”
“···그건 좀 무서운데.”
차라리 웨스트 햄이 리그 우승을 하도록 놔두는 것.
그게 요한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자, 유일한 방법인 듯 했다.
그리고 그건 꽤 현실적이어서, 벨라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시게 만들었다.
뭐 아무튼, 아직은 미래의 이야기긴 했지만 말이다.
<경기 끝났습니다. 3대1, 요한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웨스트 햄이 원정 승리를 가져갑니다.>
<오늘 승리로 16라운드까지 전승을 하게 되는 웨스트 햄인데요. 웨스트 햄, 정말 패배를 잊은 모습입니다. 지는 법을 잊은 모습이에요.>
<전반기를 세 경기만 남겨둔 시점인데요. 웨스트 햄의 남은 상대는 울버햄튼, 사우스 햄튼, 그리고 승격팀 풀럼입니다. 충분히 전승이 가능한 일정이 남아 있는 건데요.>
<전반기 전승도 충분히 가능해 보이는군요.>
<정말 대단한 기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웨스트 햄은 패배하는 법을 잊어 버린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