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46)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46화(146/202)
< 145화 – 모든 경기를 이길 순 없다지만 >
“다들 괜히 긴장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어차피 전반기 전승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아무 의미 없는 기록이잖아요.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 결국 우승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그렇지. 근데, 괜찮아. 긴장해도 돼. 어차피 요한이가 있으니까.”
“그것도 그렇네요.”
리그 19라운드, 사우스햄튼 전을 보기 위해 로한과 반석호가 런던 스타디움을 찾았다.
오늘은 클럽 역사에 있어 꽤 중요한 날이 될 수도 있는 날이었다.
오늘 경기만 이긴다면, 전반기 전승이라는 유례없는 대기록을 작성하게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좀 다르게 생각한다면 큰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되는 날이기도 했다.
전반기 전승이라는 기록은 아주 대단한 기록이 될 수도 있지만, 어쩌면 놀림거리가 될 수도 있는 기록이다.
후반기 성적에 따라서, 그리고 시즌 마지막의 결과에 따라서 말이다.
웨스트 햄이 리그 우승을 차지한다면, 전반기 전승은 대단한 업적으로써 칭송받을 것이었다.
하지만, 리그 우승에 실패한다면?
전반기 전승을 해놓고도 리그 우승을 하지 못한, 역시 우승과는 인연이 없는 팀이라는 냉소와 조롱을 받게 될 것이다.
결론은 하나였다.
기록에 의미를 둘 것이 아니라, 본질에 집중하면 될 뿐이라는 것.
전반기 전승이라는 기록을 위해 오늘 경기를 이겨야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경기가 있으니 이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요한이가 제일 잘 하는 게 그거죠. 자기한테 필요한 것 외엔 다 쌩까는 거.”
“발롱도르도 택배로 받으려고 했던 녀석이니까.”
하지만, 솔직히 웨스트 햄 선수들은 평소와 같은 마음으로 오늘 경기를 준비할 수 없었다.
전반기 전승을 위해선 1라운드를 이겨야 하고, 5라운드도 이겨야 하며, 19라운드도 이겨야 한다.
매 경기에 있어 차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반기 전승을 확정짓는 건 19라운드 경기의 결과지만, 그렇다고 19라운드 경기가 다른 경기들보다 중요한 경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선수들의 마음가짐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진짜 이러다 우리 전승하는 거 아니냐?”
평소보다 더 큰 설렘도 있었고,
“여기서 말도 안되게 미끄러지면, 진짜 억울할 것 같은데.”
더 큰 불안감도 있었다.
그건 기계가 아닌, 인간이라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넌 사람이 아니야. 사람이라면 이렇게 태평할 수가 없어.”
“?”
유일하게 그런 감정들에서 자유로웠던 게 요한이었다.
요한에겐 전반기 전승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요한에게 중요한 건, 그저 경기에서 얼마나 많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해, 다음 주 훈련에서 빠질 수 있는지 뿐.
그런 요한 덕분에, 웨스트 햄은 참 다행이었다.
<베일리의 실수가 나옵니다. 오늘 자잘한 터치나 패스 실수가 잦은 웨스트 햄인데요.>
<체력 문제일까요?>
<그렇다기엔, 지난 경기까진 이런 모습을 볼 수 없었거든요. 아무래도, 선수들이 전반기 전승이라는 목표를 의식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확실히, 목전에 다다랐을 때 꼭 위기가 오는 법이지요.>
퇴근을 위해 이제 막 버스에 탄 남자가 있다.
그런데, 갑자기 배가 살살 아파 온다고 생각해보자.
상황은 심각하다.
집앞 정류장까지는 30분이나 가야 하고, 내려서도 10분 정도를 더 걸어가야 한다.
심지어 중간에 내릴 수도 없고, 정류장부터 집까지 가는 길엔 화장실이 있을만한 곳도 없다.
그렇담 이 남자가 가장 조심해야 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버스가 출발할 때? 과속방지턱을 거칠게 넘을 때? 버스에서 내렸을 때? 집까지 걸어갈 때?
다 아니다.
집에 도착해, 화장실 문을 열 때다.
항상 가장 큰 위기는 마지막 순간에 찾아오는 법이다.
이날, 사우스햄튼과의 경기에서 웨스트 햄의 모습이 그러했다.
경기 초반, 대부분의 선수들이 평소 같지 않은 플레이를 보여주며 팬들을 불안케 만들었다.
쉬운 패스를 실수하기도 하고, 여유로운 상황에서의 볼 터치가 길게 튀기도 하고, 마킹을 놓쳐 위험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물론 사우스햄튼이 쉬운 상대인 것은 아니었다. 지난 시즌도 그랬지만, 소튼은 만날 때마다 까다롭다는 인상을 주는 도깨비 같은 팀이었다.
하지만, 소튼이 리버풀이나 맨시티, 맨유 같은 팀들보다 강한 것은 아니지 않나.
평소의 웨스트 햄이라면, 소튼은 충분히 압도할 수 있는 팀이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는 건, 다들 경기 외적인 부분에 신경이 팔려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 사이에서, 홀로 경기에 온전히 집중한 게 요한이었다.
오늘 경기만 이기면 전반기 전승이라고?
알게 뭐야.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골을 넣어야 한다.
지난 시즌보다 더 많이.
지금 필요한 건 더 많은 골 뿐이었다.
<사우스햄튼이 뭔가 눈치를 챈 걸까요. 빠르게 압박하며 웨스트 햄을 몰아 세웁니다.>
<웨스트 햄이 흐트러진 전열을 가다듬기 전에 승기를 잡겠다는 생각인데요.>
웨스트 햄이 영 별로인 모습을 보이자, 사우스햄튼은 이때다 싶어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강한 압박은 상대의 실수를 유도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웨스트 햄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고, 다행히 먼저 중심을 잡아준 건 벨라미였다.
“카펠로! 내려와!”
“···!”
상대가 전방 압박을 들어오자, 벨라미는 카펠로를 후방으로 불러 들였다.
카펠로는 혼자서 탈압박을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자원.
카펠로가 사우스햄튼의 전방 압박을 대처해줘야 한다는 게 벨라미의 생각이었다.
파아앙-!
그렇게 아래로 내려온 카펠로에게 공이 맡겨졌다.
그리고, 빙글빙글 돌며 상대의 압박을 피해낸 카펠로는 단순하게 볼을 처리했다.
전방으로 길게.
뻐어어어어엉-!
패스의 질은 썩 카펠로답지 못했다.
어쨌든 여유로운 상황에서, 정확히 보고 때린 롱 패스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상관은 없었다.
그 패스를 받을 선수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줬기 때문이었다.
꽤 어울리는 장면은 아니지만, 떨어지는 공을 향해 요한이 달렸다.
파아아앙-!
페널티 아크 부근, 오른쪽 하프 스페이스에서 요한이 가슴으로 공을 받아냈다.
경합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사우스햄튼의 센터백 제이 벤틀리가 함께 뛰었는데, 그럼에도 요한은 여유롭게 가슴으로 공을 받았다.
머리가 아닌 가슴 말이다.
그 정도로 높이 차이가 났다.
투우웅-!
트래핑 후 착지한 요한은, 공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허벅지로 공을 튕겼다.
등 뒤로 사람 하나가 휙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공중에서 멈춰선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에, 벤틀리가 관성을 못 이기고 요한의 등 뒤를 지나친 거다.
요한이 허벅지로 공을 다시 튕겨 올린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미 슈팅 각이 열렸다고 판단한 것.
쉬이익-
뻐어어어어어엉-!
중거리 터닝 발리 슈팅이라고 해야 할까.
요한은 민첩하게 몸을 뒤틀며 왼발로 발리를 때렸다.
거침없이 미들킥 같은 느낌.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사선으로 들어간 그 킥의 스윙 덕에, 슈팅은 꽤 높게 뜨는 동시에 강한 회전이 걸렸다.
자연히, 공이 그리는 역방향의 아치는 아름다울 수밖에 없었다.
슈우우우우우웅-!
골키퍼 정면 방향으로 높게 떠가다가, 순식간에 감기며 골대 왼쪽 구석으로 뚝 떨어지는 공.
약간 앞으로 나와 있었던 키퍼는 뒷걸음질 치다 뒤로 몸을 날리며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손은 공에 닿기엔 택도 없었다.
철썩-!
<어, 엄청난 골이 들어갔습니다! 판타스틱! 페뷸러스! 센세이셔널한 골!>
해설자의 말대로 환상적이고, 기막히며, 놀라운 골이 터졌다.
하지만, 요한에겐 어떻게 들어가든 똑같은 한 골일 뿐이다.
때문에 요한은 딱히 기뻐하지도 않았다.
아직 넣어야 할 골이 많았으니.
“허어!”
“뭐, 뭘 본 거여!”
동료들과, 홈 팬들만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을 뿐이었다.
*
팀이 흔들리건 말건, 요한은 골을 넣는다.
솔직히 말하면, 웨스트 햄이 지금까지 리그 전승을 달릴 수 있었던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결국 그것 뿐이었다.
상대 팀이 넣은 골보다, 요한이 더 많은 골을 넣었다는 것.
그 사실이 바뀌지 않는 이상, 웨스트 햄의 승리 공식은 언제나 같은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이날 사우스햄튼과의 경기도 그랬다.
다른 동료들이 조금씩 흔들렸다거나 한 건 크게 중요치 않았다.
요한은 혼자서 사우스햄튼보다 많은 득점을 만들어냈고, 덕분에 웨스트 햄은 이겼다.
뭐, 물론 상대가 사우스햄튼이 아니라 유벤투스였다면 달랐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요한은 3골을 몰아쳤고, 웨스트 햄은 3대1로 사우스햄튼에게 승리를 거뒀다.
<웨스트 햄! 압도적인 기록을 씁니다! 19라운드, 전반기 전승!>
<리그가 반환점을 도는 동안,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팀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는 말이지요.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여러분이 가장 잘 아실 겁니다!>
전반기 전승.
웨스트 햄은 리그 19경기에서 19경기를 모두 이기는 미친 전적을 기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오늘도 그러했듯이.
요한이 있었다.
*
“고생했다. 하지만, 오늘이 특별한 날은 아니다. 괜히 헛바람 들어서 딴 길로 새지 말고. 다들 곧장 집으로 돌아가 휴식 충분히 취할 수 있도록 하고.”
“예!”
경기가 끝난 뒤.
슈미트 감독은 매 경기 그랬던 것처럼, 짧게 선수들의 수고를 독려했다.
오늘은 꽤 특별한 승리였고, 특별한 날이기도 했지만.
어떻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날이기도 했으니.
선수들도 그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모두 떠들썩하게 승리를 즐기는 대신,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샤워를 하고, 근육을 풀며 조용히 장비들을 챙기는 모습이었다.
“···.”
“···.”
다만, 다들 그래도 아무런 자축 없이 지나가긴 아쉬운 눈치들이다.
뭔가 좀 더 해줄 말이 없냐는 듯, 슬쩍슬쩍 슈미트 감독의 눈치를 살피는 선수들.
“흐음.”
슈미트 감독은 입술을 씰룩였다.
그래.
솔직히, 오늘 경기 내용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만.
어쨌든 목표로 했던 결과를 얻어내긴 했다.
어렵게 목표를 쟁취했을 때, 그 성취감이 밋밋하다면 다음 스텝을 힘차게 밟기 힘들다.
적어도, 힘이 날 만한 한마디는 해주는 게 좋겠지.
슈미트 감독은 짧게 손뼉을 쳤다.
“값진 승리였다. 우린 어려운 일을 해냈다. 맞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어려운 일. 너희들이 해낸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고, 박수를 받을만한 일이었다. 다들, 서로에게 박수 한 번 쳐볼까.”
“와아-”
“유후!”
그제서야 탄성을 지르며 환호하는 선수들.
사실 많이 참고들 있었다.
마음 같아선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드레싱룸을 파티장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감독님 눈치가 보여 자중하고 있었거든.
“마! 노래 한 곡 뽑을까예!”
“앉아라, 버클리. 오버하지 말고.”
“···아, 예.”
흥을 발산하려던 버클리가 머쓱하게 자리에 앉은 뒤, 슈미트 감독은 말을 이어 나갔다.
한 가지 목표를 이뤘으니, 이제 다음 목표를 제시할 차례다.
“정말 어려운 일을, 이미 우린 해냈다. 그런 지금 이 시점에서, 이 늙은이는 우리가 전반기 전승이 아니라, 리그 전승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려울 뿐이지.”
적어도 몇 명은 피식 웃음을 터뜨릴만한 이야기였다.
리그 전승?
에이, 그 무슨 말도 안되는.
“···.”
“···.”
하지만, 드레싱룸의 그 누구도 웃음을 터뜨리진 않았다.
도리어, 다들 결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이미 해냈기 때문이다.
전반기 전승, 즉 모든 팀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말도 안되는 일을.
이걸 한 번만 더 하면 되는 거다.
그러니,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말 그대로, 어려울 뿐이지.
“모든 경기에서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근데, 38경기를 이길 수는 있는 것 아닌가. 그 38경기가 모두 리그 경기라면, 리그 전승인 것이고. 모든 경기에서 이기자고 말하진 않을 거다. 대신, 38경기만 이기자. 다들, 알겠나.”
“옙!”
“마, 그까이꺼!”
“해봅시다! 해보자고!”
모두가 주먹을 불끈 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카펠로와 요한, 이 둘만 빼놓고 말이다.
‘이제 벌써 후반기인데, 젠장. MOM 회수가···’
카펠로는 오늘도 MOM을 요한에게 내준 것에 못마땅해 하고 있었고,
’38더하기 3··· 41··· 아직도 4개가 모자라?’
요한은 오늘도 지난 시즌의 자신을 따라잡지 못했음에 놀라워하고 있었다.
형이 계산해 준 바에 따르면, 지난 시즌 이맘 때까지 기록한 공격 포인트는 45개.
이번 시즌은 오늘 기록한 3골까지 포함해 41개다.
아직도 4개가 모자라다.
하, 진짜 올해는 열심히 살고 있네.
짜증나게.
어쩌다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이 된 걸까?
‘이런 이런.’
사람은 늘 한결 같아야 하는데.
이러다 정말 아빠나 형처럼 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
그건 너무 끔찍한 일인데.
깊게 한숨을 내쉬는 요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