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48)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48화(148/202)
< 147화 – 요한의 시선 >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에게, 크리스마스란 휴일이 아니다.
박싱 데이가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12월 26일, 박싱 데이엔 경기를 한다는 PL의 전통 때문에,
선수들은 가족들과 조촐한 식사를 하는 것 정도가 크리스마스를 최대로 즐기는 일이었다.
물론, 저 남미 쪽 흥의 나라에서 온 선수들이나, 놀기 좋아하는 선수들은 시끄러운 파티를 벌이는 경우도 있긴 하다만.
그걸 걸리기라도 할 경우 팬들의 질타를 받게 된다.
경기 앞두고 뭐 하는 짓이냐고, 정신이 썩어 빠진 거냐면서 말이다.
-실시간 시내 펍에서 맨유 애런 다이슨 발견
└저 새끼 저기서 뭐하냐?
└ㅅㅂ 얼굴 벌개진 거 보소
└거하게 취했네 미친 새끼 ㅋㅋㅋ
└이 새끼 내일 경기 안 나옴?
└얜 하우어 감독이 무섭지도 않나
└하우어도 이 새낀 구제 못함 ㅋㅋㅋ
-[속보] 에버튼 브라질 3인방 클럽에서 발견
└브라질리언들은 ㅇㅈ이지
└팔자도 좋다
└니들 순위에 놀고 싶냐?
└어차피 질 거 놀기라도 해야지
└내일 브라질 향우회 놈들 경기력 좆박을 거 생각하니 벌써 개빡치네
이번 크리스마스도 그랬다.
몇몇 선수들이 거한 파티를 즐긴 것이 포착되며, 팬들의 질타를 피해가지 못했다.
여러 클럽의 여러 선수들이 아주 신랄하게 욕을 처먹었다.
사실 좀 가혹한 일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아니, 다른 날도 아니고 크리스마스인데.
하루 정돈 좀 즐길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축구 선수들도 사람인데, 크리스마스 파티 좀 했다고 그게 그렇게 욕먹을 일인가.
근데, 아니다.
적어도 PL의 팬들 입장에서는 말이다.
많은 프리미어 리그 팬들은 크리스마스가 반가운 이유로, 그 부근에 축구 경기가 많아서라고 대답한다.
그만큼 다들 축구에 미쳐 있는 거다.
Football is life.
축구가 인생인 이들에겐, 크리스마스 당일날 파티를 벌이는 것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크리스마스가 중요한가?
크리스마스는 그저 박싱 데이 경기가 있는 전날 정도 밖엔 안되는 것이다.
이게 보편적인 팬들의 인식이었다.
그런데, 이번 크리스마스엔 단 하나의 예외가 있었다.
한 선수가 크리스마스에 놀고 있는 모습이 팬들에게 포착 되었는데, 그걸 본 팬들이 욕을 하긴커녕.
도리어 환호한 것이었다.
-[인증o] 나 파크 호텔 직원인데 요한 경 봤다 ㄷㄷㄷ 가족들이랑 VIP 라운지 옴
└반또 당첨 ㄷㄷ
└와 ㅅㅂ 존나 부럽다 같이 찍은 사진은 없음?
└귀찮아할까봐 멀리서 훔쳐보기만 하는 중 ㅇㅇ;
└크 찐팬이네 ㅋㅋ
└그런 놈이 도촬해서 인터넷에 올리냐?
└너 같으면 사진 안 찍을거임?
└난 도촬 안 하고 당당히 같이 찍자고 했을건데?
└찐
└내일 경기 선발 아닌가 보네 로테 타이밍이긴 하지
└그래도 크리스마스엔 집 밖으로 나오네 ㅋㅋㅋ 보기 좋다
└가족들 행복해 보인다. 웨머니랑 웨버지한테 안부 좀 전해드려
└ㅅㅂㅅㅂㅅㅂ 존나 부럽다 ㅅㅂㅅㅂ 거기 취직하기 어려움?
└VIP 라운지 들어오려면 최소 3개 국어는 해야 됨 ㅅㄱ
└안녕하세요랑 감사합니다는 할 줄 아는데 이걸론 안되겠지?
└되겠냐?
-[실시간] 아까 인증했던 호텔 직원인데 요한 경 아빠 몰래 도넛 두 개씩 먹다 걸려서 혼나는 중
└ㅋㅋㅋㅋㅋㅋㅋㅋ
└존나 귀엽네
└세계 최고의 선수가 도넛 먹다 혼난다니 ㅜㅜ
└웨버지가 있었기에 요한의 피지컬은 완성되었다···
└지금 요한 경 삐져서 집에 가자고 투덜대는 중 ㄷㄷ
└진짜 아직 애긴 하구나··· ㅋㅋㅋ
└요한아 사실 이 세상에 산타는 없어
└산타가 없었으면 어떻게 우리 팀에서 요한이 같은 선수가 나왔겠냐?
└그런 거였냐? 고마워요, 산타 할아버지!
└당장 호텔로 출격한다! 지금 가면 볼 수 있는거지?
└걍 닥치고 방구석에 있어라;;
└어차피 VIP 라운지 갈 돈도 없자너 ㅋㅋㅋ
웨스트 햄의 구단주, 아담 긴즈버그 소유의 호텔인 그랜드 스테이트 파크 호텔 VIP 라운지에 요한과 가족들이 떴다는 소식이 인터넷에 올라오자, 웨스트 햄 팬들은 열광했다.
드디어 요한이 집구석을 탈출했다며 말이다.
팬들이 요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경기장 안, 그리고 SNS에 가끔씩 올라오는 사진들 뿐이었다. 그 가끔씩 올라오는 사진들도 전부 집 안에 있는 모습 뿐이었고.
팬들은 당연히 스타들의 사생활을 궁금해 한다.
축구 선수 요한 반의 팬이기에, 인간 요한 반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하는 거다.
그런 면에서 요한은 너무나도 신비주의였다.
아니, 신비주의라기보단 그냥 사생활이 없는 사람이었다.
껀덕지조차 없는 거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를 가족들과 즐기는 모습에 팬들이 열광한 것이었다.
아마 요한이 유일할 것이었다.
박싱 데이 전날 파티를 즐겨도 팬들에게 욕 먹지 않고, 오히려 환호받는 선수는 말이었다.
*
“그럼, 약속해.”
“무슨 약속이요?”
“내일 경기, 가족들이랑 같이 보러 가자.”
“경기장에서요?”
“당연하지.”
“그냥 집에서 티비로 보면 안 될까요?”
“차로 5분만 가면 경기장이 있는데, 집에서 보자고?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지.”
“아···”
도넛을 손에 든 요한은 그대로 굳은 채 고민에 빠져 있었다.
방금, 아빠 몰래 도넛을 두 개씩 집어 먹다 걸려 혼이 난 참이었다.
혀 위에서 노니는 그 단맛이 너무나 황홀해, 눈이 돌아가고 말았다.
마음 같아선 여기 있는 거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당연히 아빠에게 발각되자마자 제지를 당했다.
그런데 그때, 아빠가 제안 하나를 한 것이다.
도넛을 어느 정도 먹게 해주는 대신, 내일 경기를 가족들이랑 다 같이 보러 가자고.
“와, 동생아. 이걸 고민한다고?”
누군가에겐 고민거리도 아닐 것이었다.
도넛 마음껏 먹기랑 축구 경기 보러 가기.
둘 다 좋은 건데 대체 뭐가 고민이 된다는 건지.
하지만 요한에겐 고민이다.
지루하기만한 경기를 보러, 그것도 직접 경기장까지 가야 한다니.
“흠···”
그러나 손에 쥔 이 고리 모양의 설탕 덩어리의 자태가 너무나 영롱하다.
마치 천국으로 이끄는 천사들의 손길 같았다.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큭!”
“먹었네? 간다는 거지?”
결국 요한은 손에 쥔 도넛을 놓지 못했고, 그것을 입으로 가져갔다.
아니, 사실은 손이 알아서 움직여 도넛을 구강으로 밀어 넣었다.
ㆍㆍㆍ
2028년 12월 26일.
런던 스타디움.
<리그가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박싱 데이에 펼쳐지는 시즌 20라운드, 웨스트 햄과 브라이튼의 경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후반기 첫 경기.
웨스트 햄이 리그 12위 브라이튼을 만났다.
<전반기 막판 분위기가 모두 좋았던 두 팀이었는데요.>
<사실 전반기, 후반기로 나눠 부른다면 되게 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만, 전반기 마지막 경기가 고작 3일 전이었죠. 웨스트 햄은 사우스햄튼을 잡으며 전승을 기록했고, 브라이튼은 허더즈필드를 잡으며 기세를 올렸습니다.>
프리미어 리그엔 쉬운 상대가 없다.
강등권 팀을 만나도 무조건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할 순 없다.
더군다나 브라이튼은 강등권 팀도 아니며, 최근 기세도 좋으니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때문에 아무리 박싱 데이가 시즌 중 가장 힘든 시기라고 하지만, 슈미트 감독이 요한의 명단 제외를 쉽게 생각하고 결정내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쩔 순 없는 일이었다.
요한이 마지막으로 결장한 경기가 11라운드, 브렌트포드 전이었다.
벌써 8경기를 연속으로 뛴 요한이니, 되려 휴식이 늦은 거라고 봐야 한다.
본인은 상관 없다고 했지만, 어쨌든 휴식이 필요한 순간.
따라서, 오늘은 요한 없이 브라이튼을 상대하게 되는 웨스트 햄이었는데.
<음? 갑자기 환호성이··· 아! 전광판에 요한 반 선수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군요!>
<로테이션을 위해 오늘 명단에서 제외된 요한인데요.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직접 찾았네요?>
<매주 보는 얼굴입니다만, 이렇게 사복을 입은 채로 관중석에 있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보니 그냥 인물 좋은 고등학생이네요.>
<실제로 그렇죠. 평범한 고등학생인데, 인제 골을 세계에서 제일 잘 넣을 뿐인.>
경기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런던 스타디움이 환호성으로 물들었다.
팔짱을 낀 채 뚱한 표정으로 관중석에 앉아 있던 요한의 모습이 전광판에 잡힌 것.
“요한아, 손이라도 한 번 흔들어 줘.”
“···.”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로한에, 요한은 카메라에 대고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경기장이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피식 미소를 짓는 요한.
매주 보는 얼굴인데도 왜 처음 본 사람들처럼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 것일까.
좀 이해가 안 되어서 지은, 헛웃음에 가까운 미소였지만 그 미소에 경기장은 하이톤의 비명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렇게 있으니까, 마치 미리 체험하는 것 같네.”
“뭘?”
“너가 은퇴하고 난 뒤. 그럼 이렇게 다 같이 앉아서 경기를 보게 될 거잖아.”
“뭔 소리야. 은퇴하면 경기장은 쳐다도 안 볼 건데.”
“아빠랑 이 형이랑 이렇게 행복해하는데도?”
“···.”
요한과 이렇게 나란히 앉아 경기를 보게 된 로한과 반석호는 색다른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좀 다른 의미로 설레는 기분이었다.
물론, 제일 행복한 순간은 요한이 관중석이 아니라 필드 위에 있을 때다.
하지만, 오늘은 분명 쉬는 날인데도 요한이와 함께 경기장에 왔다.
그것만으로 행복한 일이었다.
요한이와 함께 경기를 보면서, 해줄 이야기도 산처럼 쌓여 있었고 말이다.
다만, 동시에 묘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있으니, 마치 미래를 미리 체험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요한이 은퇴한 이후를 말이다.
똑부러지게 이유를 설명할 순 없지만, 아무튼 그런 느낌이었다.
“시작한다. 렛츠 고! 해머스!”
“가자! 발라 버려!”
“···.”
아무튼, 요한도 사뭇 색다른 기분인 건 마찬가지다.
물론, 팀의 경기를 앉아서 지켜보는 일이야 낯설게 전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벤치에 앉아서 보는 것과, 관중석에 앉아서 보는 건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단순히 벤치의 의자가 훨씬 더 편하고, 관중석의 의자는 딱딱하다는, 그런 정도의 차이가 아니다.
심리적인 경계선이 확 구별되는 것이다.
벤치에 앉아 있을 땐, 감독의 결정에 따라 얼마든지 경기에 투입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신분이다.
그러나 관중석에 앉아 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필드 위로 올라갈 수 없다.
그냥 오늘만큼은 팀의 선수가 아닌 거다.
만약 경기가 어려워진다고 해도, 지켜만 봐야 한다는 거지.
“으음. 막시맹은 저렇게 놔두면 안되는데.”
“네이슨이 좀 많이 지친 것 같아요.”
실제로 경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브라이튼은 확실한 에이스가 있는 팀이고, 전반기 동안 웨스트 햄에게 득점을 기록한 8개의 팀 중 한 팀이었다.
그때 득점을 기록했던 에이스가 바로 로랑 막시맹이다.
‘드리블 성공 회수’ 만 놓고 본다면, 막시맹은 유럽 전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드리블 능력이 좋은 선수.
지금도 막시맹 때문에 성가심을 느끼고 있는 웨스트 햄이었다.
“···이상하네.”
“응? 뭐가?”
“같이 뛸 땐 몰랐는데, 왜 이렇게 다들 답답하지?”
막시맹 하나에 고생하고 있는 동료들을 보며, 요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렇게 답답하지?
같이 뛸 때도 답답함을 느낀 적은 자주 있었다. 쉬운 걸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콱 막히는 듯한 답답함이 느껴졌다.
요한은 그 이유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해 볼 의지가 없었지만, 사실 그 이유야 자명했다.
같이 뛰는 입장일 땐, 답답하면 본인이 해결하면 됐다.
실제로 해결할 수 있었고.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팔짱을 끼고 지켜보는 것 뿐이다.
자신이 나서서 바꿀 수 있는 게 없으니, 답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니, 거기서 저걸 왜···”
경기가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졸려 죽겠다는 듯한 표정이던 요한은, 어느새 몸을 앞으로 기울인 채 경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심지어 동료들의 미스 플레이가 나오면 투덜대기까지 하면서.
“···”
“···”
그런 요한의 모습에, 로한과 반석호는 눈이 마주친 뒤, 얘가 웬일이냐는 듯 몰래 웃었다.
요한이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