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49)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49화(149/202)
< 148화 – 요한의 시선 >
축구를 직접 ‘할 때’와, 축구를 ‘볼 때’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일단은 인칭의 문제다.
티비 중계나 관중석에 앉아 축구를 본다는 건, 3인칭이다.
누구나 시야가 넓을 수밖에 없다.
위에서 내려다 보니까 당연한 거다.
그래서 관중석엔 지단과 사비가 수천 명씩 앉아 있다.
저기로 패스해야지, 여기로 패스해야지.
다들 패스 길을 훤히 꿰고 있다.
반면 필드에서 직접 뛰는 입장이 되면, 축구는 1인칭 게임이 된다.
이때의 시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위에서 내려다 볼 때와 달리.
내가 왼쪽을 보고 있으면 오른쪽은 볼 수 없고, 앞을 보고 있으면 뒤는 볼 수가 없다.
멀리서 볼 때와 달리 패스의 길도 쉽게 찾기 힘들다.
인칭의 문제 뿐만인가.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매우 쉽게 하고 있다면, 그건 그 일이 쉬워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일을 굉장히 잘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 프로 선수들이라 그렇지, 90분 동안 전력을 다해 뛰고, 매 순간 빠르게 판단을 내려 정확하게 패스를 하고 슈팅을 한다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고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행위이다.
‘상대 선수들의 방해’ 속에서 말이다.
축구를 보는 건 쉽지만, 하는 건 차원이 다르게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그 차이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축구 경기를 보며 굉장히 답답해하곤 한다.
왜 왼쪽이 열려 있는데 오른쪽으로 패스하지?
왜 뒤에서 돌아 들어가는 선수를 놓치지?
빈공간이 훤히 보이는데 왜 거기로 침투할 생각을 안 하는 거지?
터치를 저렇게밖에 못해?
무슨 저런 터무니 없는 슈팅을 해? 완전 개발이구만?
답답할 수밖에 없는 거다.
때문에 이들은 선수들을 과하게 욕하기도 한다.
밥 먹는 시간 외엔 축구만 하고, 축구로 돈 버는 놈들이 저것 밖에 못 하냐면서 말이다.
그러나, 축구를 해 본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쉽게 욕하지 않는다.
물론 개인의 성격에 따라 다르기야 하겠지만,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왜 저 선수가 그럴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해가 있다.
때문에 답답해 하긴 해도, ‘어쩔 수 없긴 하지. 그래도 A보단 B로 플레이하는 게 정답이었어.’ 라든가, ‘어려운 슈팅이긴 했지.’ 정도로 넘어가는 경우가 보통이다.
“아, 주장. 쫌···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재밌는 건, 요한의 반응이 전자가 아니라 후자였다는 것이었다.
마치 축구 경험이 아예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동료들의 플레이가 이해가 안된다는 듯, 내내 혀를 차고 답답해하며 경기를 지켜보는 요한.
이건, 전자도 후자도 아닌 쪽에 속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이다.
축구 경험은 많은데, 실제로 축구를 할 때조차 어려움을 느껴보지 못한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 말이다.
이들에겐 하는 거나, 보는 거나 다를 게 없다.
둘 다 쉽다.
그러니, 답답할 수밖에 없다.
그 극소수에 속하는 게, 요한이었다.
“아···”
결국 요한이 폭발한 건 전반 20분 경이었다.
웨스트 햄이 기어코 막시맹에게 선제 실점을 내준 것.
막시맹이 공을 잡으면 무조건 드리블을 시도한다는 걸 알면서도 막지 못했다.
한숨을 내쉬는 요한.
“지금은 반칙으로 끊었어야지!”
“패스를 자유롭게 받게 한 것부터 문제야. 경합을 붙어줬어야지.”
물론 로한과 반석호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울분을 터뜨리고 있었다.
요한은 투덜대려다, 그런 형과 아빠를 보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된다.
몇 년 전까지, 저 둘이 왜 맨날 축구를 보면서 그렇게 답답해 했었는지.
요한은 당장이라도 유니폼으로 옷을 갈아입고 싶었다.
*
실점 후에도 경기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발딱 선 막시맹은 계속해서 골문을 위협했고, 선수들의 몸은 무거워 보였다.
결국, 0대1로 뒤진 채 경기는 후반으로 접어 들었다.
<웨스트 햄의 무패이자 전승 기록이 여기서 마감되는 것일까요? 남은 시간은 45분 뿐. 전반과는 다른 모습이 필요한 웨스트 햄입니다.>
<전광판에 계속 잡히고 있는 요한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죠. 전반은 상당히 답답한 흐름이었습니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후반을 위해 필드로 나서는 웨스트 햄 선수들의 표정이 전반과는 달랐다는 점일 것이다.
해설자의 말대로, 경기장 전광판엔 한숨을 내쉬는 요한의 얼굴이 전반 내내 띄워졌었다.
선수들도 당연히 그걸 봤고, 마치 혼나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녀석이 지켜보고 있다’ 같은 느낌으로.
솔직히 선수들도 꽤나 놀랐다.
요한이 경기장에 직접 경기를 보러 오다니.
그건 선수들에게 요한이 그만큼 리그 우승에 대해 진심이구나, 라고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선수들도 자존심이 있지.
녀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고,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행여나, 요한이 이런 녀석들과 우승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그러한 생각들로, 하프타임 동안 정신 재무장을 하고 나온 선수들은 후반전, 좀 더 정돈된 경기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벨라미가 한 발 먼저 패스를 커트해냅니다. 지금은 상대의 의도를 아주 잘 읽었습니다!>
<페트로비치의 크로스! 케인의 헤더! 이게 키퍼의 슈퍼 세이브에 막힙니다! 그러나 좋은 시도! 웨스트 햄의 공격이 슬슬 올라옵니다!>
특히, 오늘 요한 대신 선발 출장한 케인의 마음가짐이 남달랐다.
지난 시즌 FA컵 우승으로 마수걸이, 커리어 첫 트로피를 가지게 된 케인이다만.
그것만으로 만족하기엔 여전히 목이 마른 케인이었다.
커리어 내내 무관의 악령에 시달렸던 케인이다. 그 오랜 기다림 끝에 맛봤던 트로피의 맛은 너무나 달콤했고.
마치 긴 다이어트를 끝내고, 먹고 싶었던 음식을 ‘한 입’ 맛본 것처럼.
트로피를 향한 케인의 욕구는 오히려 더 커져 있는 상태.
물론 요한의 곁에 찰싹 붙어만 있다면, 트로피를 따내는 건 시간 문제로 보였다.
그러나, 그 시간이라는 게 자신에겐 충분하게 남아 있지 않다는 걸 아는 케인이다.
요한에게야 시간은 많지.
하지만 자신은 아닌 것이다.
아직까진 그나마 이렇게 가끔씩 경기에 나왔을 때, 팀에 짐이 되는 정도는 아닌 폼을 유지하고 있다지만.
1년만 지나도 어찌될지 모르는 일이다.
애초에 내년엔 이 팀을 떠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케인, 슛-! 아슬하게 골대를 빗나갑니다! 케인 쪽에서 일이 한 번 날 것 같은 분위기인데요!>
적어도 폐가 돼서는 안된다.
버스 우승 따위는 쳐주지 않는다는 팬들(대부분 토트넘)의 비난 때문이 아니라, 자신과 요한을 위해서다.
자신에게 우승을 선물해 줄 은인 요한에게 폐가 되지 않고, 자신에게도 떳떳하게 우승을 할 수 있도록.
경기에 나설 때마다 100퍼센트 이상을 다하려 노력하는 케인이었다.
특히, 요한이 지켜보고 있는 오늘은 더더욱 말이다.
<고오오오올-! 드디어 동점골이 터집니다! 해리 케인의 클래스 있는 마무리! 시간이 많이 남진 않았지만, 웨스트 햄이 일단 균형은 맞췄습니다!>
요한이 지켜보고 있다는 게 웨스트 햄 선수들에겐 큰 동기부여가 되었고, 결국은 동점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
“···으음.”
자신이 앉아 있는 곳을 가리키며 셀레브레이션하는 케인을 보며, 요한은 헛기침을 했다.
드디어 골을 넣은 건 좋았지만, 이 많은 관중들 중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찾아내 손으로 가리켰다는 게 좀 그랬다.
어떻게 알고 있던 거지.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소는 또 뭐고.
“한 골만 더 가자. 제발!”
“빠르게, 빠르게!”
아무튼 동점을 만들어낸 건 좋았지만, 아직 답답함을 완전히 해소하기엔 부족했다.
남은 시간은 15분 정도로 많지 않은 상황.
“연승이 이렇게 깨지기엔 너무 아쉽잖아! 한 발만 더 가보자고!”
사실 전승 기록이 깨진다는 건 웨스트 햄 팬들에게 생각보다 큰일이 아닐지도 몰랐다.
어차피 전승을 할 거란 기대는 없었다.
아무리 분위기가 좋아도, 그게 가능할거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었으니.
다만, 연승이 깨지는 순간이 지금이기엔 너무 아쉽다.
홈에서, 그것도 브라이튼을 상대로는 말이다.
남은 15분, 홈 팬들은 열과 성을 다해 응원을 보냈고, 요한도 옆 사람들 만큼은 아니지만 응원했다.
그리고, 후반 42분.
<으아아! 케인의 멀티골이 터집니다! 웨스트 햄이 기어코 경기를 뒤집습니다!>
<무서운 집중력이네요! 이게 강팀의 면모죠! 이게 강팀의 저력이죠! 어떻게든 승점 3점을 따내는 그 집념!>
결국 케인의 역전골이 터지며 런던 스타디움이 광란의 분위기로 물들었다.
“으아아아아!”
“요한아! 요한아!”
“억, 억.”
반석호는 옆자리의 모르는 신사분과 얼싸안고 기뻐했고, 로한은 요한의 볼에 뽀뽀하며 역전의 기쁨을 표출했다.
어렵게 일궈낸 역전인만큼 모두가 더 기뻐하는 이 순간.
“···.”
기뻐하는 관중들을 슬쩍 둘러보는 요한.
이런 팬들의 모습이야 익숙한 모습이다.
자신이 이곳에서 골을 넣을 때마다, 이들은 항상 이런 반응을 보여줬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역시나 느낌이 좀 달랐다.
환호하는 관중들을 필드 위에서 볼 땐, 그들이 기뻐하는 게 재밌긴 했어도, 본질적으로 그들이 ‘왜’ 환호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하는지.
환장을 하는 건지를 말이었다.
*
“진짜 진땀승이었네.”
“좀 답답하긴 했어도, 어쨌든 이겨서 다행이에요. 오늘 연승 끊기는 줄.”
경기는 2대1로 웨스트 햄이 승리를 거뒀다.
말 그대로 진땀승.
특히 마지막 추가시간에 동점골 위기가 있었어서 더욱 아찔했다.
그래도 다행히 승리를 거뒀으니, 이제 시즌 연승 기록을 20연승까지 이어가게 되는 웨스트 햄이었다.
“요한아.”
“응?”
집으로 가는 길.
로한이 요한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오늘 경기 내내, 형이 무슨 생각한 줄 아냐?”
“몰라.”
“아직은 아니라서 다행이다라는 생각.”
“연승?”
“아니. 우리 팀이 아직은 우승하지 않았다는 거 말이야. 넌 은퇴하지 않았고, 다음 경기엔 네가 뛰겠지. 그래서 답답해도 버틸 수 있었어. 어차피 한 순간일 테니까.”
기분 좋게 웃는 로한.
반석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요한이와 함께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보니, 느낌이 묘했던 둘이다.
마치 요한이의 은퇴 이후를 미리 체험하는 것처럼.
그 날은 분명히 올 것이고, 그때가 되면 지금처럼 경기를 보는 게 매 순간 즐겁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 경기만 해도 희노애락이 넘쳤고, 그 중 노(怒)의 비율이 높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게 지금은 아니니까.
“다음 경기는 안 답답하게 해줄거지?”
“응.”
요한도 고개를 끄덕였다.
답답하면 니들이 뛰든지라는 말에, 요한은 축구화를 신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ㆍㆍㆍ
“아주 효자야.”
“좋은 동생이기도 하구요.”
“요한이가 은퇴하고 나면, 우리 팀이 차라리 못했으면 좋겠어.”
“엥? 그건 왜요?”
“요한이가 답답해서 복귀할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오.”
브라이튼 전이 있은 지 3일 후.
웨스트 햄은 브렌트포드의 홈구장, 커뮤니티 스타디움에서 원정 경기를 가졌다.
이날 역시, 웨스트 햄은 브라이튼 전과 마찬가지로 적절한 로테이션을 가동했다.
수비의 핵심 벨라미가 휴식을 취했고, 네이슨과 버클리가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으며 왼쪽 공격수 조슈아 베일리 역시 명단에서 이름이 제외되었다.
순전히 머릿수만 놓고 본다면, 이날 경기에서 선발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주전 선수의 수가 브라이튼 전보다도 많았다.
브라이튼 전엔 요한과 라이트백 옌킨슨, 이 둘이 휴식했을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날 웨스트 햄은 브라이튼 전과 같이 손에 땀이 나는 경기를 펼치진 않았다.
오히려 지난 경기에서의 답답함을 완벽히 해소하는 모습이었다.
요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답답해서 내가 뛰겠다는 요한이.
“확실히, 요한이가 가성비가 좋아요.”
“음?”
“요한이가 쉬려면, 나머지 애들이 다 뛰어야 하잖아요. 그나마도 빈자리를 채우기가 어렵고. 근데, 요한이만 뛰면 나머지가 대거 휴식을 취해도 별 무리가 없잖아요?”
“음.”
제이미 코치는 싱글벙글했고, 슈미트 감독도 고개를 끄덕였다.
팀에 확실한 에이스가 있다는 건, 사실 매우 불안정한 일이기도 하다.
그 에이스가 없는 순간, 팀의 경기력이 확 하락하니까.
하지만, 그 에이스가 혼자서도 다 해낼 수 있을 만큼 아주 아주 확실한 에이스라면.
이런 장점도 있는 것이다.
에이스만 있으면 다른 선수들에게 휴식을 좀 더 부여할 수 있다는 장점.
시즌 전체를 보고 팀을 운영해야 하는 코칭 스태프 입장에선, 혼자서도 승점 3점을 벌어오는 요한이 여러모로 보물일 수밖에 없었다.
<바니-! 침착한 PK로 해트트릭을 완성합니다! 하루 쉬고 돌아오더니, 더 무서워져서 돌아왔습니다!>
요한의 3골 1도움에 힘입어, 웨스트 햄은 4대2로 브렌트포드에게 승리를 거뒀다.
벨라미가 없는 수비진이 꽤 불안한 모습을 노출하긴 했지만, 그런 건 별 상관이 없었다.
4골을 만들어 주는 요한이 있었으니까.
“이게 어려워요?”
“데헷.”
쉽게 이기는 게 어렵냐는 요한의 물음에, 동료들은 다들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