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5)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5화(15/202)
< 014화 – 증명해 볼 텐가 >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훈련처럼.
슈미트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슈미트 감독 밑에서 뛰고 있는 웨스트 햄 선수들 역시 그 문구를 모토로써 항상 머릿속에 박아두고 경기를 뛴다.
“케이타! 정신 차려, 이 개자식아!”
“멍청하게 서 있지 말고 움직여!”
“롤린스! 지금 몸 사리는 거냐? 그 공을 왜 포기해!”
단순한 연습 경기일 뿐이었다.
주전 선수들과 후보 선수들, 유스 선수들 몇몇이 섞여 훈련의 일환으로 치루는 연습 경기.
그러나,
경기는 시작부터 실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빠르고 격렬하다.
타타타탓-
촤아아아-!
다들 서로 감정이 있기라도 한건지.
어깨 싸움을 넘어 팔로 밀어 버리는 선수도 있고, 슬라이딩 태클을 실전보다도 깊숙하게 하는 선수도 있다.
유럽 리그들 중에서도 거칠기로 유명한 프리미어 리그.
딱 그 프리미어 리그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그런 거칠고 빠른 경기가,
아무런 관중도, 중계 카메라도 없는 이 훈련장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좋아, 좋아! 밀어붙여!”
“밀리지 마, 밀리지 마!”
슈미트 감독이 부임한 뒤로,
웨스트 햄은 PL에서도 가장 터프한 팀으로 거듭난 팀이었다.
역시나 슈미트 감독의 색깔 때문이었다.
슈미트 감독은 유럽의 여러 지도자들 중에서도 색깔이 가장 확실한 감독 중 하나였다.
끊임없이 상대를 압박하고, 패스를 받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무조건 상대보다 한 발을 더 뛰는 축구.
이건 이제 거의 모든 팀들, 특히 프리미어 리그 팀들에겐 기본이 되어버린 스타일이지만,
슈미트 감독은 보다 더 그것을 강조하는 타입이었다.
커리어의 대부분을 중위권 팀들에 몸 담았던 슈미트 감독이었다.
웨스트 햄에 부임하기 전,
분데스리가의 프랑크푸르트, 헤르타 베를린.
프리미어 리그의 사우스 햄프턴을 거쳐온 슈미트 감독.
그런 중위권, 혹은 중하위권의 전력을 가진 팀을 이끌고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선, 결국 상대보다 한 발 더 뛰는 수밖엔 없다.
때문에 슈미트 감독은 항상 그걸 강조하고 또 강조했고, 지금 이 훈련장에서 경기를 뛰고 있는 웨스트 햄 선수들은 그런 슈미트 감독 밑에서 1년간 훈련해왔던 선수들이었기에 연습 경기라 할 지라도 실전을 방불케 하는 경기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다.
“약간 당황한 것 같은데요?”
경기를 지켜보던 제이미 코치가 말했다.
요한 얘기였다.
경기가 시작된지 10분 여.
요한은 아직 한 번의 볼 터치도 가져가지 못하고 있었다.
뭐랄까.
혼자만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다른 선수들과 템포가 전혀 맞지 않으니 당연한 일.
요한에겐 이렇게 빠른 템포가 익숙할 리가 없었다.
익숙한 걸 떠나,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스피드와 격렬함일 터.
당황스러움을 느끼는 게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었다.
그런데,
재밌는 건 요한이 그 템포를 따라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 뛰질 않고 있었다.
박스 근처를 어슬렁 걸어 다니며, 마치 남의 경기를 지켜보듯 선수들을 바라보고만 있는 요한.
어찌됐든 선수들과 템포를 맞추려면 활발히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요한의 모습은 ‘활발히’라는 단어와는 완전히 거리가 있는 모습이었다.
“어허. 감독님이 제일 싫어하는 건데.”
만약 요한이 어제 훈련에 합류한 열여섯살짜리 꼬맹이가 아니었다면, 아마 크게 혼쭐이 날 플레이였다.
저렇게 공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플레이 말이었다.
혼만 나면 다행이지, 당장 엔트리에서 제외되고 2군으로 내려갔어도 이상하지 않은 일.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이니 다행인 일이었다.
“녀석 때문에 다른 애들이 고생이네요.”
뛰지 않는 요한 때문에, 경기는 반대편이 주도권을 꽉 쥔 채로 흘러가고 있었다.
한 명의 효과가 이리도 컸다.
한 명의 활동량이 부족하면, 나머지 열 명이 한 발을 더 뛰어야만 한다.
한 명 때문에 팀 전체가 희생해 그 부담을 대신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한 선수를 꼭 써야만 이유가 있다면 뭐 괜찮겠지만.
그럴 이유가 없다면 팀에 둘 이유도 없을 것이다.
“슬슬 조급해질만도 한데, 역시 고집이 있네요.”
“고집을 버릴 놈이었으면, 진작에 버렸겠지. 어제, 그렇게 틀렸다는데도 안바뀌는 것 봤잖은가.”
경기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갔음에도, 여전히 어슬렁거리는 요한을 보며 혀를 내두르는 제이미 코치.
슬슬 조급할만도 할텐데, 참 뚝심은 있다.
어쨌든 보여주고자 하는 생각이 가득할텐데, 그럼에도 발은 바삐 움직일 생각을 안하니.
본인의 스타일을 바꿀 생각은 전혀 없는 모양인데.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지금까진, 저러다가도 두세 골씩 넣고 했었을 테니까.”
슈미트 감독이 처음 요한을 보게 됐던 그 영상.
첼시와의 경기에서도 요한은 저랬다.
저렇게 박스 근처에서 어슬렁대다가, 공이 왔을 때, 그 때를 놓치지 않고 골로 연결시켜 팀을 승리로 이끌었었다.
사실 그럼 장땡인 건 맞았다.
결국 모든 건 승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저렇게 경기 시간 내내 걸어다니든 뭘하든 골로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면 다른 단점 따위야 다 덮을 수 있는 건 맞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여기서도 통할 리는 없다는거고···”
그걸 여기서도 똑같이 할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프로와 유스의 가장 큰 차이는, 아무래도 수비다.
유스는 미래를 위해 뛰는 팀이고, 프로는 오늘 이기기 위해 뛰는 팀이다.
아카데미에선 뚫려도 괜찮으니 수비수들에게 공격수들과 1대1을 일부러 시키기도 한다.
대인 수비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서.
하지만 프로에선 그딴 거 없다.
당장 막아내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러니 온갖 방법을 동원해 수비한다.
거친 몸싸움이든, 조직적인 협력 수비든.
프로 레벨의 수비는 유스 레벨과 차원이 다르며, 특히나 슈미트 감독이 수비 전술에 공을 들이는 감독이었기에 웨스트 햄의 수비력은 꽤 괜찮은 편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런 선수들 사이에서 열여섯짜리 꼬맹이가 두세 골씩 넣는다?
그것도 저렇게 느릿느릿 어슬렁대다가?
그게 가능할 리 없었다.
“스스로 느껴보면 알겠지.”
가진 재능은 슈미트 감독도 인정하는 바.
애초에 재능이 있으니 키워보고 싶어 녀석을 데려왔다.
하지만,
그 재능만 믿고 나태해지면 반쪽짜리가 될 뿐이다.
슈미트 감독은 요한을 완전체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스스로 느끼는 게 중요했다.
어차피 남의 말을 곱게 들을 녀석은 아니니까.
스스로 느껴보고, 본인의 부족함을 인정했을 때 녀석은 비로소 남의 말을 듣기 시작할 것이다.
다만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임은 분명했다.
스스로 인정하기까지 말이다.
그치만, 그 기간 동안 어느새 녀석에겐 성실함이 배어 있게 될 것이고, 슈미트 감독은 성실함을 장착한 요한을 지도해주면 될 일이었다.
어차피 시간은 많았다.
요한은 고작 열여섯살이었니까.
“오, 드디어 공 간다.”
때문에,
경기가 시작된지 15분쯤이 지나는 무렵.
공이 처음으로 요한에게 흘러가기 시작했을 때.
슈미트 감독은 잠시 후 요한이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헤이, 꼬맹아! 여기!”
“반대도 있다!”
“돌아 들어가는 사람 잡아!”
아크 정면.
상대 수비 하나를 등지고 있는 요한에게 공이 굴러갔고, 동시에 좌우 측면 윙어들이 수비 뒷공간으로 쇄도해 들어가며 손을 든다.
자연히 수비는 공간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좌우로 벌어지는데.
정작 공을 잡은 요한에겐 한 명의 수비만이 그대로 붙어 있는다.
공을 잡은 스트라이커보다, 공이 없는 좌우 공격수들을 더 경계하는 모양새.
당연한 일이었다.
PL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선수들에게, 열여섯짜리 꼬맹이가 위협적일 리는 없었으니까.
게다가 이렇게 수비를 등지고, 제 자리에 선채로 공을 받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랬다.
절대로 돌아서지 못하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렇담 녀석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백 패스뿐.
때문에 그 시점에서,
수비수들은 공을 받은 요한에게 주의를 두기보단, 그 이후의 상황을 더 염두에 두며 움직임을 가져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순식간이었다.
“···엇?”
요한이 등지고 있던 센터백, 안토니오가 당황스러운 눈빛을 띄었다.
어느새 자신의 무게 중심이 뒤쪽으로 밀려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한을 앞으로 밀고 있었던 안토니오였다.
그런데, 그런 안토니오의 무게 중심이 뒤로 쏠렸다는 건.
하나의 의미밖에 없었다.
요한에게 힘 싸움에서 밀렸다는 것이었다.
이 놈 봐라?
타앗-!
등으로 안토니오를 밀쳐낸 요한이 그 틈에 재빨리 돌아섰다.
일단 돌아서는데 까지는 성공.
허나 여기서부터가 더 문제다.
돌아섰다고 해서 수비를 제쳐낸 것도 아니었고, 안토니오와 실갱이를 벌이는 그 잠깐의 틈에 이미 수비수들이 다 자리를 잡고 있었다.
패스를 줄만한 곳이 없다.
그렇다면 공격수에게 선택지는 두 가지뿐.
눈앞의 수비수를 제쳐내거나, 다시 뒤로 공을 돌리거나.
물론 이런 상황에서 공격수들 대부분은 전진을 택한다.
기껏 돌아섰는데, 다시 뒤로 공을 주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안토니오도 그걸 알고 있었다.
“옳지, 환영한다! 꼬맹이.”
아니나 다를까, 요한이 왼발을 앞으로 내미는 모습을 보고 활짝 웃는 안토니오.
힘은 꽤 있다만, 아직 얼굴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귀여운 꼬맹이에게 한 수 가르쳐줄 심산이었다.
드리블 돌파라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
요한은 왼발을 내민 건, 안토니오의 예상과 달리 드리블 돌파를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요한이 내민 왼발은 디딤발이었다.
슈팅을 위한 디딤발.
요한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오른발을 당겼다.
뻐어어어어어엉-!
“···!”
안토니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감히 자신을 앞에 떡하니 두고 슈팅을 때리다니.
그런데,
“큿!”
그게 자신의 가랑이 사이를 통과하다니!
촤아아아아아아-!
안토니오의 가랑이 사이를 통과한 공이 잔디를 스치며 골대 구석으로 쏘아져 나갔다.
골대 구석으로 향하는 빠른 스피드의 땅볼 슛.
게다가 수비 바로 앞에서 때려 시야도 가렸다.
골키퍼 입장에선,
가장 막기 어려운 슈팅이었다.
철썩-!
첫 슈팅만에.
요한이 이 경기장에서 가장 먼저 골망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