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50)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50화(150/202)
< 149화 – 브라질 식 통성명 >
“해피 뉴 이어!”
“해피고 나발이고, 힘들어 죽겠습니다만.”
“힘들수록 즐거워 해야지. 그만큼 우리가 빅클럽이 되었다는 거니까.”
“즐거워도 힘든 건 힘든건데.”
“이제 FA컵도 곧 시작이네.”
“월드컵 예선도 있고.”
밖은 즐거운 새해 분위기가 가득하지만, 웨스트 햄 선수들에겐 새해가 그닥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들 1월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숫자만 봐도 헛구역질이 나올만한 일정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리그 경기만 3경기를 치러야 하고, FA컵도 한 경기가 예정되어 있으며, 2030년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이 시작되기도 한다.
이미 개막부터 12월까지, 누적된 피로가 상당한 선수단이었다.
지난 여름 유로의 여파, 처음으로 뛰게 된 챔피언스 리그, 어쩌다 보니 이어가고 있는 연승 기록을 좀 더 이어가고픈 욕심에서 기인한 스트레스까지.
지치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할 정도의 상황이다.
“안 그래도, 너희 걱정에 감독님이 말씀 잘 해놓으셨으니. 기대하면서 좀만 참아보자고.”
오늘따라 지쳐 보이는 선수들에게 말하는 제이미 코치.
그 말에 다들 반색하는 분위기다.
이렇게 힘든 상황이니, 웨스트 햄은 이번 겨울 이적 시장에 작은 기대를 걸어볼 수밖에 없었다.
지난 겨울도 지금처럼 힘들었었다.
그렇게 힘들었을 때, 카펠로와 케인의 합류는 엄청난 힘이 되어주었었고.
백업 자원도 좋지만, 즉시전력감 선수의 충원은 말 그대로 수혈(輸血)이다.
팀이라는 배의 노를 젓는 노잡이가 한 명이라도 더 생기면, 다른 노잡이들이 굉장히 편해질 수밖에 없다.
제이미 코치가 한 말이 그 얘기였다.
슈미트 감독은 이미 겨울이 오기 전부터 구단 프론트 관계자들과 잦은 미팅을 가졌고, 12월 중순부터는 매일 연락을 주고받으며 의견을 조율했다.
“지금과 같은 선수단 뎁스로는 절대 두 개의 트로피를 따낼 수 없습니다. 하나로만 만족할 거라면, 없어도 됩니다. 유스 선수들 많으니까요. 하지만, 두 개를 따내고 싶다면 필요합니다. 투자가.”
사실 웨스트 햄이 외부 영입에 의존해 온 팀은 아니었다.
잉글랜드 최고의 유스 아카데미라는 든든한 보물 창고가 있으니.
다만, 유스를 키워, 즉시 전력감을 넘어 팀의 확고한 주전으로 만들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는 게 문제다.
과거의 몇몇 선수들-지금은 웨스트 햄 소속이 아닌-이나 베일리처럼 빠르게 1군에서 활약하는 케이스는 몇 년에 한 번 나오는 특수 케이스고, 요한 같은 케이스는 전무후무한 케이스니.
이런 케이스들을 기대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즉 리그와 챔피언스 리그, 또 FA컵에서 좋은 성적을 목표로 할 거라면, 겨울 영입은 필수였다.
지난 여름과 겨울, 그리고 이번 여름에도 그랬듯.
이번 겨울 이적 시장에 임하는 웨스트 햄의 모토는, 윈나우(Win-Now)였다.
윈나우란 말 그대로 미래보다는 현재를 보겠다는 뜻.
이번 시즌에 모든 걸 걸어 보겠다는 뜻이었다.
웨스트 햄은 맨시티 같은 팀이 아니다.
맨유 같은 팀도 아니고, 리버풀 같은 팀도 아니다.
우승을 노려볼 수 있는 시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거다.
아니, 많지 않다고 표현하면 너무 긍정적이고.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테지.
즉, 지금과 같은 기회는 또 언제 찾아올지 모르고, 그게 10년 후 혹은 50년 후가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아니, 어쩌면 영영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17살에 리그에서 50골을 넘게 넣고, 발롱도르를 받는 선수가 유스에서 나와야 하는 이야기니까.
물론 요한이 이제 17살이니, 팀에 붙잡아둘 수만 있다면 10년, 15년 뒤까지 요한을 중심으로 한 장기 계획을 세워도 무리는 없을 터였다.
하지만 요한이 평범한 선수가 아니지 않은가.
지금에야 겨우 우승이라는 동기 부여를 통해 잡아두고 있는 상태다.
만약 연이어 우승에 실패한다면?
사실 재능이 압도적으로 뛰어나 그렇지, 지금도 훈련 태도만 보면 태업이나 다름이 없다.
언제 기량이 뚝 떨어질지 모르는 일이라는 거다. 혹은 다른 팀으로 떠나버릴 수도 있는 일이고.
그러니 지금은 미래를 볼 때가 아니라, 현재를 봐야할 때였다.
그리고, 그게 오히려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기도 했다.
우승 트로피를 한 개씩 쌓아가다 보면, 클럽의 위상도 많이 바뀔 테니까 말이다.
무튼, 이번 겨울을 통해 슈미트 감독이 원한 건 센터백 라인의 보강이었다.
현재의 베스트 일레븐 중에서, 주전과 비주전의 갭이 가장 적은 포지션이 바로 중앙 센터백이다.
벨라미의 파트너 자리 말이다.
현재 그 자리엔 루카스 시모네와 로사노 안토니오가 번갈아 가며 출장하는 중.
둘 중 그래도 주전에 가까운 건 시모네였다.
시모네는 유스 출신은 아니지만, 이젠 웨스트 햄 성골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팀에서 뛴 기간이 긴 베테랑.
시모네는 머리가 좋은 선수라, 벨라미와 나름 좋은 시너지를 내며 지난 시즌보다는 확실히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곤 있었다.
다만 문제는 나이와 체력이다.
이는 시모네가 스스로 호소하고 있는 문제였다.
“예전 같지 않다. 예전 같지 않아.”
“이 노인네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감독님이 몇 살에 은퇴하셨다고 했었죠?”
“서른셋이다.”
“제가 올해로 서른다섯입니다.”
“나 때랑 지금이랑 같냐?”
“힘든 건 매한가지라구요.”
단순 체력이 문제가 아니다.
나이를 먹으며 가장 크게 체감이 되는 건, 신체의 회복 속도가 더뎌진다는 거다.
같은 100의 체력으로 1경기를 뛰어도, 일주일 뒤 경기에 베일리 같은 어린 선수가 95까지 체력을 충전해 온다면 시모네는 80정도까지밖에 충전이 안된다.
뿐만 아니라 작은 부상들 역시 쉽게 회복이 되지 않는다.
경기에 뛰지 못할 만큼의 부상이 아니더라도, 몸이 성한 곳이 없다는 것.
역시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저도 한때는 이틀 쉬고 나와도 쌩쌩했죠.”
“궁상 떨지 말고, 네 밥그릇 빼앗아 먹을 놈 데려올 테니 그때 가서 딴소리 하지 말아라.”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제가 여기 클럽하우스 밥을 좀 축냈습니까. 대신, 밥값은 하는 놈으로 데려와야 돼요.”
결론은 하나다.
기량이 현시점에 절정을 찍은 중앙 수비수를 데려오는 것.
-웨스트 햄, 발렌시아 CF의 브라질 수비수 다니 기마랑이스에 접근··· 이적료 약 45m€
-기마랑이스, 이미 개인 합의 완료? 구단 협의만 남았다
브라질 국적의 센터백, 다니 기마랑이스.
나이는 스물아홉으로, 수비수로서 딱 전성기의 중앙에 선 나이고, 기량 역시 올 시즌 피크를 찍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기마랑이스는 발렌시아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발렌시아의 재정이 악화되면서, 라 리가의 샐러리캡 규정에 가로막힌 발렌시아는 눈물을 머금고 기마랑이스를 매물로 시장에 올렸다.
팔아 치워야 할 악성 재고가 아니라, 눈물의 땡처리인 것이다.
웨스트 햄에겐 이보다 꿀 매물이 없었다.
“그 친구가 오게 되면, 우리 팀에서 유일한 남미 사람이네?”
“다행히 파벌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만.”
이적 성사 여부야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만약 그가 오게 된다면 팀에 좋은 자원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였다.
ㆍㆍㆍ
웨스트 햄의 2029년 첫 상대는 리그 최하위, 허더즈필드였다.
리그 1위와 최하위의 만남.
큰 이변이 없는 한 웨스트 햄이 가볍게 승리를 가져갈 수 있을 경기로 보였고, 실제 경기도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흐름으로 흘러갔다.
체력 안배를 위해 이번 경기 역시 로테이션이 가동된 웨스트 햄의 선발 명단이었지만, 요한이 선발 출장했으니까.
<오늘 경기 멀티 골, 그리고 멀티 도움! 이것으로 시즌 49개째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는 요한!>
요한은 이날 전반 24분만에 멀티 골을 터뜨렸고, 41분과 62분에 각각 도움 한 개씩을 기록하며 4개의 공격 포인트를 적립한 뒤 71분 교체되어 그라운드를 빠져 나왔다.
이리하여 요한은 시즌 22라운드까지 리그에서만 40골 9도움을 기록하며 공격 포인트를 49개로 늘렸다.
‘하나 남았나.’
골든 크로스는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지난 시즌, 22라운드까지 기록했던 공격 포인트 개수가 딱 50개였으니까.
이제야 좀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무튼, 이날 경기의 결과보다 해머스들의 관심을 더 끈 것은 구단 내부 기자들의 SNS였다.
구단 관련 소식을 가장 빠르게 전하는 이들의 SNS에, 기마랑이스의 관련된 소식들이 속속 업데이트 되었기 때문이었다.
@Anthony_Taylor
[BREAKING] 다니 기마랑이스, 메디컬 테스트 위해 런던 도착. 개인 및 구단 합의 완료.@HAMcCarthy
발렌시아의 29세 센터백 다니 기마랑이스 도스 산토스의 오피셜 이적 발표는 이번 주 내로 발표될 것입니다.
기마랑이스의 영입은 기정 사실인 듯 보였고, 팬들은 환호했다.
벌써부터 기마랑이스의 개인 SNS에 해머스들이 몰려가 환영의 메시지를 보낼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런던에 도착한 기마랑이스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
“멋진 활약을 부탁하네.”
“최선은 다해보겠습니다.”
기마랑이스의 첫인사에, 슈미트 감독은 약간의 불길함을 느꼈다.
‘최선을’이 아니라, ‘최선은’ 다해보겠습니다라.
뜻은 같을지 몰라도, 어감이 확 다른 말이다.
뭐랄까.
내키진 않지만 그래도 해보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더군다나, 남미 특유의 쾌활한 성격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별로 말을 많이 하고 싶지 않아 보였다.
사실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기마랑이스는 발렌시아를 떠나고 싶지 않아했던 선수였다.
그는 브라질에서 보낸 유년기를 제외하곤, 커리어 내내 발렌시아에서만 뛴 사실상의 원클럽맨이었다.
떠나기 직전까지도 구단과의 사이가 좋았던 선수였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금전적 사정 때문에 발렌시아를 떠나야 했던 기마랑이스다.
한마디로, 웨스트 햄에 ‘팔려오게 된’ 거다.
그러니, 발렌시아에서보다 꽤 많이 오른 주급이나, 리그 1위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는 것, 챔피언스 리그를 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기마랑이스에겐 크게 중요치 않을 수도 있었다.
그에게 유일한 위안거리는, 오로지 발렌시아에게 자신이 안겨준 이적료 뿐일지도 몰랐다.
“고든. 저 친구, 적응 좀 잘 도와줘.”
“예, 알겠습니다.”
프로의 세계라지만, 축구 선수들도 사람이다.
축구 외적인 부분 때문에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하는 케이스도 많다.
특히, 남미권에 속하는 선수들에게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유형.
향수병이다.
슈미트 감독은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
일단 기마랑이스가 빠르게 전 소속팀을 잊고, 이 팀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이유를 찾게 해주는 것이 중요했다.
때문에 주장인 고든에게도 당부하고, 기존 선수들을 불러모아 따로 또 당부하기도 했다.
기마랑이스가 팀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지만, 사실 그게 말처럼 쉬울 리 없다.
아무리 주변에서 도와준다 해도, 본인의 의지가 없다면 말이다.
“마, 니 이름 참 특이하네. 뭐라 불러야 되노? 기마랑이스는 너무 어렵다 아이가.”
“어려우면, 부르지 마.”
“이 색··· 이 아니라. 기마랑! 이럼 되나?”
“야, 버클리. 넌 그냥 네 할 일이나 하러 가라. 도움 안되니까.”
기마랑이스가 합류한 뒤, 첫 훈련.
고든은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기마랑이스의 훈련 태도 자체는 별 문제 없었다.
웨스트 햄의 훈련 프로세스가 생소할텐데, 녀석은 잘 따라 했고 별다른 불만도 토로하지 않았다.
다만, 녀석은 쉽게 마음의 문을 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일단 새로운 팀에 왔으면, 동료들의 얼굴과 이름을 파악할 생각부터 하는 게 보통일텐데.
녀석은 전혀 관심도 없어 보였다.
통성명도 하지 않고, 어떻게 친해질 수가 있겠는가.
“안되겠다. 통성명부터 제대로 해야겠군. 어이, 막내.”
“네?”
“공 하나 가지고 일로 와봐라.”
고든은 베일리를 불렀다.
베일리가 공을 들고 오자, 고든은 기마랑이스를 불러세웠다.
“이봐, 신입. 이 꼬맹이랑 통성명 해라. 브라질 식으로.”
“···브라질 식?”
“그래. 브라질에선 이런 식으로 인사하는 거 아니었어? 공으로 말이야.”
고든은 베일리의 등을 떠밀며 말했다.
“저 녀석, 탈탈 털어줘라. 발렌시아 주전 센터백은 어느 정도 수준인지 보자고.”
그러자, 기마랑이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눈빛을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