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54)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54화(154/202)
< 153화 – 특급 도우미 >
“유벤투스가 원래 이런 스타일이었나?”
“무슨 스타일?”
“입들이 이렇게 가벼운 스타일이었냐고.”
휴식 시간 중 핸드폰을 뒤적이던 고든이 혀를 찼다.
코앞으로 다가온 유벤투스 전.
유벤투스와는 아무런 접점이 없던 웨스트 햄이었다.
같은 리그도 아니고, 유럽 대항전에서 만나는 것도 처음이다.
마지막으로 만난 경기가 10년도 넘었고, 그것도 친선전일 뿐이었다.
일말의 라이벌리도 없는, 정말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 팀.
근데, 경기를 앞두고 유벤투스 놈들의 입이 쉴틈 없이 나불대고 있었다.
별들의 전쟁에 소행성이 껴 있다느니, 런던 스타디움에서 챔스 경기를 주관할 수 있겠냐느니, 또 뭐? 유로파인 줄 알았다고?
“원래 그런 놈들이다. 괜히 마피아라고 불리겠나. 양아치들이란 거지.”
카펠로가 냉소적으로 말했다.
카펠로는 유독 유벤투스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기도 했다.
이유야 역시, 유벤투스와 진하게 났던 이적 링크가 어그러졌었기 때문일 거다.
웃기는 일이었다.
카펠로는 공식적으로는 물론, 비공식적으로도 유벤투스에 가겠다 말한 적이 없었다.
물론, 유벤투스가 모든 이탈리아 선수들에게 드림 클럽인 건 사실이었다.
근데, 그렇다고 모든 이탈리아 선수들이 유벤투스가 부르면 무조건 가야 하는가?
피오렌티나 소속이었던 카펠로는, 오히려 유벤투스를 만날 때마다 더 이기고 싶은 욕구가 강한 선수였었다.
“와, 너 엄청 까이고 있네.”
“축알못들이 뭐라 떠들든, 이 몸은 관심 없다.”
“관심 없다기엔 너 엄청 신경쓰고 있잖아?”
“이 몸이?”
“다 보여, 인마. 그럼 개인 훈련 시간은 왜 늘렸는데?”
“···”
고든의 말이 사실이긴 하다.
신경, 무지하게 쓰고 있긴 했으니까.
솔직히 신경이 안 쓰인다면 이상한 일이다.
└이미 볼레로비치가 있는데 카펠로를 데려와야 한다는 게 웃기긴 했음
└카펠로한테는 웨스트 햄 간 게 좋은 선택이었지 무혈입성으로 주전 먹었으니. 유베였으면 주전 먹는데 2, 3년은 있어야 됐음
└3년 안에 주전? 개뿔이. 쟤는 원래부터 백업용 자원이었음
└딱 웨스트 햄 정도 되는 중소 클럽에 알맞은 선수.
└웨스트 햄에 월클은 요한 한 명 뿐. 카펠로 잘한다는 애들 보면 웃음만 나오더라
└걍 팀에 도움되는 스타일이 아님 ㅇㅇ 리그에서 어시 쌓은 것도 다 요한 빨. 의미 있는 스탯이 전혀 아님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이렇게나 ‘억까’를 당하고 있으니 화가 안 나고 배기나.
카펠로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피오렌티나에서 뛰던 시절, 그리고 유벤투스를 상대로 큰 활약을 했었을 때.
유베 팬들이 뭐라고 했었는지를 말이다.
다들 유베로 오라고 난리였었다.
유베에 오면 바로 에이스가 될 수 있을 거라며, 앞으로 중원 걱정은 10년 동안 하지 않아도 될 거라며, 클럽의 레전드가 될 수 있을 거라며.
그렇게 물고 빨고 하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딴 소리를 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그렇다고 웨스트 햄에 온 뒤로 활약이 미미했나.
전혀.
올 시즌만 봐도, 리그에서만 20경기를 출장해 벌써 14개의 도움을 올렸다.
도움으로는 당연히 단독 선두.
경기 평균 평점도 7.71점으로 팀 내 2위.
팀 내 2위라니까 그냥 준수한 정도인가보다 할 수도 있겠지만, 리그 전체에서 5위다.
하필 팀에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괴물이 있어서.
뭐, 그 괴물 덕분에 도움왕을 하고 있으니 불평할 처지는 아니긴 하지만.
어쨌든, 웨스트 햄에서의 활약으로 카펠로는 이전보다도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프리미어 리그는 물론, 유럽 각지의 빅클럽들에게서 말이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이야기는 없지만, 바이에른 뮌헨이나 맨시티에서 접근을 해오기도 했었다.
이런 상황이니, 카펠로는 유벤투스 팬들의 저런 공격을 당당히 ‘억까’라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번 경기로, 입을 다물게 만들 것이다.”
“좋은 생각이네. 말처럼 쉽진 않겠지만.”
“쉽지 않을 거라고?”
피식 썩소를 짓는 카펠로.
“내겐 이미 좋은 방법이 있다.”
“좋은 방법? 뭔데?”
“넌 몰라도 돼.”
“몰라도 된다니. 유벤투스를 이길 비법이라면 다 같이 알고 있어야지.”
“몰라도 된다니까.”
유벤투스를 이기고, 놈들의 억까도 멈출 수 있는 방법.
카펠로는 이미 그 방법을 알고 있었다.
*
“어이.”
“?”
“그, 뭐냐.”
“뭐가요?”
“네 라커, 열어 봐.”
카펠로의 말에, 고개를 갸웃이며 라커를 열어보는 요한.
곧 요한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라커 안엔 유명 브랜드의 도넛 박스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걸 열어보니, 미친.
누텔라가 발라진 도넛이다.
“그, 근데 이게 여기 왜 있어요?”
“그게, 그러니까.”
머리를 긁적이며 우물쭈물대는 카펠로.
요한이 다시 물으니, 카펠로는 한숨을 내쉬곤 말했다.
“오다 주웠다.”
“이걸 오다가 주워서 여기 넣어 놨다구요?”
“너 그거 좋아하잖아.”
“없어서 못 먹죠. 근데 이걸 왜···?”
“휴우. 이 몸이 부탁 하나만 하자.”
“무슨 부탁이요?”
뭔가 자존심이 상한다는 듯,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말하는 카펠로.
“이번 유벤투스 전, 한 번만 도와줄 수 없겠냐.”
“어떤걸요?”
“골이 넣고 싶다.”
어렵게 털어놓은 부탁에, 요한이 싱겁다는 듯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뭐 그렇게 쉬운걸 어렵게 부탁하냐는 듯이.
“근데, 갑자기 왜요?”
“지금까진 내가 많이 도와줬잖아.”
“그건 그런데,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
“유벤투스 놈들, 그 축구를 알지도 못하는 놈들이 이 몸을 얕잡아 보고 있다. 참을 수가 없잖아.”
딱히 이해할 순 없는 이유지만, 요한은 어깨를 으쓱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건 아니니까.
“알겠어요.”
“······고맙다.”
“고맙다는 말하는 건 처음 보네요.”
“됐다. 본론은 끝났어.”
속으론 매우 기뻐하고 있으면서, 괜히 퉁명스럽게 답하는 카펠로.
요한은 다시 어깨를 으쓱였고, 카펠로는 라커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카펠로는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겨 물었다.
“너도 맨시티와 경기할 때, 이런 기분이었냐?”
“맨시티요?”
“맨시티가 너를 데려가고 싶어 했었지. 하지만 넌 가지 않았고. 덕분에 나처럼 그쪽 팬들한테 억울하게 욕을 먹었을 거 아냐. 너도 그걸 복수하고 싶었던 거지?”
카펠로의 말에 머리를 긁적이는 요한.
맨시티 팬들?
“아뇨? 전 욕 먹은 적 없는데요.”
팀은 별로여도, 거기 팬들은 착하던데.
맨시티 홈구장에서 녀석들을 이겼을 때도, 거기 팬들한테 욕먹은 기억은 없는데 말이지.
이겼는데도 우리 팀으로 와달라고 하는 팬들은 봤어도 말이다.
“···재수 없군.”
카펠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ㆍㆍㆍ
이탈리아 피에몬테주, 토리노.
유벤투스 FC의 훈련장.
“오케이, 조금만 더 빠르게! 다시 한번!”
웨스트 햄과의 챔스 16강 전을 대비한 훈련이 한창인 가운데.
“좀 더 시선에 집중해! 집중하면 패스 다 끊어낼 수 있어!”
“반응이 늦다! 크로스가 절대 올라가게 해선 안 돼! 사이드에서 끊어줘야 한다고!”
역시 유벤투스가 신경 쓰고 있는 건 수비 훈련이었다.
물론, 원래도 유벤투스는 수비 훈련에 쏟는 시간이 많은 팀이다.
다만 웨스트 햄 전 준비를 하는 동안엔 더욱 수비 훈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역시 요한 때문이었다.
회장이라는 사람의 말마따나, 웨스트 햄에서 ‘챔피언스 리그 레벨’에 걸맞는 선수는 요한 하나뿐이라 생각하는 유벤투스다.
나머지는 사실 안중에도 없었다.
오로지 요한만 막아낼 수 있다면 경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었고, 그렇기에 수비 훈련에 힘을 쏟고 있던 것인데.
“최선은 패스 자체를 사전에 차단하는 거지만, 만약 공이 녀석에게 갔다? 그럼 세 명이 붙어도 좋아. 아니, 아예 인원수 생각을 하지 마. 원래의 개념을 버리고, 새로운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위치 상관없이, 붙어줘야겠다 싶으면 붙어라.”
요한을 막기 위한 비책으로, 유벤투스는 두 가지를 맹훈련했다.
첫 번째는, 카펠로로부터 요한에게 전달되는 패스를 사전에 차단하는 훈련.
그리고 두 번째는 요한에게 공이 갔을 때, 최대한 많은 인원이 요한에게 붙어주는 이른바 벌떼 수비다.
보통 상대 공격수가 아무리 에이스라고 해도, 한 선수에게 세 명 이상의 수비가 붙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쩌다 상황이 그렇게 될 수는 있어도, 세 명이 붙어야 한다고 미리 매뉴얼을 정해두는 경우는 없다는 이야기.
만약 그런 상황이 나오면, 보통은 수비 밸런스가 무너졌다고 봐야 하는 상황이다.
수비 전술의 실패인 것이다.
하지만, 그 상대가 요한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세 명 이상은 필수로 붙어줘야만 하는 녀석이다.
따라서 이번 경기만큼은 수비수들 머릿속에 박혀 있는 개념부터 바꿔야 했다.
“중요한 토너먼트 경기인만큼, 웨스트 햄의 녀석의 개인 능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거다. 다른 쪽은 신경 쓰지 않아도 좋아.”
물론 요한에게 모든 수비가 붙어버리면, 나머지 쪽이 비어 버리는 문제가 생기겠지만.
그 문제는 무시해도 괜찮을 것으로 보였다.
홈 앤 어웨이, 단 두 경기로 승부가 결정되는 토너먼트다.
더군다나 웨스트 햄은 챔스 토너먼트가 처음.
상당히 긴장되고, 어딘가 불안할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경기를 하게 되면, 자연히 가장 높은 확률에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떻게든 요한에게 공을 몰아주고, 녀석이 마무리까지 하게끔 ‘몰빵’을 해주겠지.
믿을 녀석이 그 녀석뿐이니까.
즉 유벤투스 입장에선 선택이 쉬운 것이다.
다른 쪽은 다 제쳐두고, 오로지 요한만 막는다.
그게 웨스트 햄을 꺾을 아주 간단한 비책이었다.
“자, 오늘은 이쯤 해둘까. 어차피 16강 전용 단기 전술이니, 너무 오래 할 필요도 없어.”
훈련을 마친 유벤투스는 상당히 자신만만해 보였다.
이미, 16강을 넘어 8강을 먼저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말이었다.
ㆍㆍㆍ
2029년 2월 10일.
웨스트 햄과 유벤투스의 경기가 있기 하루 전, 런던 스타디움.
“어때요? 보기에. 위압감이 들어요?”
“제가 유베 선수였으면, 시작부터 기가 팍 죽을 거 같은데요.”
“아주 좋습니다. 이거, 경기 끝나도 철거하지 말고 이대로 그냥 놔둡시다. 기선 제압으로 딱이네.”
웨스트 햄의 세 구단주들이 몇몇 구장 관리자들과 함께 드레싱 룸부터 경기장으로 향하는, 선수 입장 터널을 쭈욱 걸으며 둘러보고 있다.
이번 경기를 앞두고, 3일 전부터 준비해 온 시공 작업이 방금 막 마무리된 상태다.
그 시공이란, 터널의 바닥부터 천장, 그리고 벽면까지.
온통 요한이 골을 넣는 모습으로 도배해버린 것을 말했다.
마치 요한의 전시관 같은 모습이 되어버린 입장 터널.
“선수들의 머릿속에서 이 그림들이 떠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 그림이, 눈앞에서 재현되겠지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쪽에서 먼저 건든 걸 어쩌겠어요.”
사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경기 외적인 걸로 조금이라도 기선 제압을 하려는, 조금은 유치한 방법을 쓰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냥 참고 있기엔 유벤투스가 경기 한참 전부터 너무 신경을 긁어댔다.
웨스트 햄이 챔스 16강에 올라온 건 얼음물을 탄 에스프레소를 아메리카노란 이름으로 파는 일-이탈리아인에겐 ‘용납될 수 없는 일’이란 뜻이다-이라 하질 않나, 유벤투스의 리그 우승 회수에서 웨스트 햄의 리그 우승 회수를 빼도 숫자가 변하질 않는다며 조롱하질 않나.
특히 제일 열 받았던 발언은, “웨스트 햄은 근본과 역사가 보잘것없는 중소 구단에 불과하다.”라는 발언이었다.
뭐, 솔직히 말해서.
비록 창단년도는 웨스트 햄이 유벤투스보다 2년 정도 빠르다 해도.
그간 쌓아온 역사는 유벤투스 쪽이 훨씬 더 찬란했던 건 인정하는 바였다.
지난 100년간의 과거를 본다면, 유벤투스와 비교되는 것조차 실례인 일인 건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과거보다 중요한 건 미래고, 미래보다 중요한 건 현재가 아닐까.
현재가 과거가 되고, 미래가 현재가 되는 법이다.
“직접 다시 보니까, 또 가슴이 벅차오르는데요. 허허.”
“광이 철철나네.”
“요한이 아버님이 하루에도 몇 번씩 닦으신다잖아요.”
“나라도 그럴거야. 내 아들이 발롱도르를 타온다면 말이지.”
이번 ‘터널 기선제압’의 마침표이자 화룡점정.
그건 시선이 갈 수밖에 없도록 화려하게 제작된 진열대였다.
그 진열대엔, 요한에게 특별히 부탁해 잠시 받아온 발롱도르 트로피가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큼지막하게 문구를 적어넣었다.
우리의 역사는 지금, 그리고 여기에 있다.
그 어떤 부연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과거에 유벤투스 소속으로 발롱도르를 받은 선수들이 얼마나 많건, 지난 시즌의 발롱도르를 수상한 건 웨스트 햄 소속의 요한이었다.
그리고, 그 요한은 내일 경기에 나올 것이고 말이다.
유벤투스의 역사는 과거가 될 것이지만, 웨스트 햄의 역사는 현재이고 미래가 될 것이다.
내일 경기를 통해, 모두가 그걸 확인하게 될 것이다.
“기대가 되는군요.”
“이길 겁니다. 반드시.”
“이겨야죠. 이길 수밖에 없지요.”
세 구단주들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벤투스는 분명히 강한 상대다.
하지만, 사방에 도배된 요한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도저히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