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55)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55화(155/202)
< 154화 – 특급 도우미 >
‘뭐야 이건.’
챔스 16강 전 당일.
런던 스타디움에 도착한 유벤투스 선수들은 당황스러웠다.
여기가 런던 스타디움인지, 요한의 전시회인지 헷갈렸기 때문.
“너무 노골적인데.”
“유벤투스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지만, 웨스트 햄보다 위대한 선수는 있다. 딱, 웨스트 햄의 위상이 이 정도밖에 안된다는 거지.”
“다른 선수들 사진은 없는 거야? 지들도 지네가 원맨 팀이라는 걸 인정하는 거냐고?”
“하하!”
이건 뭐, 축구 클럽인지 팬 클럽인지 모르겠네.
비웃음을 머금으며 떠들썩하게 통로를 지나쳐 원정팀 드레싱룸으로 향하는 유벤투스 선수들.
그러다, 선수들이 한쪽을 지나며 잠시 멈칫한다.
요한의 발롱도르가 진열된 진열장이다.
“얼마나 소중한 보물이면, 이런 걸 경기장에 전시해.”
“소중하겠지. 역사상 처음인데.”
“우린 몇 개나 있지? 7개였나?”
“8개야, 인마. 한 개를 줄이면 어떡해.”
“너무 많아서 헷갈리니까 그렇지.”
이내 다시 비웃음을 터뜨리는 선수들.
실제로, 유벤투스 소속으로 발롱도르를 받았던 선수는 다섯 명.
그 중 한 명인 미셸 플라티니가 단독으로 3회를 수상하면서 총 회수로 따지면 여덟 번이다.
무려 리오넬 메시보다 1개가 더 많은 셈.
메시보다 많은 발롱도르를 보유한 클럽은 한 손에 꼽고, 그 중 하나가 유벤투스다.
선수들은 고작 하나로 자랑하듯 전시를 해 둔 모습이 우습다는 듯 웃었다.
“···”
그러나, 이들이 트로피를 보고 잠시 멈칫했던 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유벤투스가 품은 발롱도르의 개수는 8개지만, 그 8개 중 현재의 선수가 보유한 것은 하나도 없다.
마지막 수상이 2003년 파벨 네드베드였으니, 무려 26년 전의 일.
반면, 전시되어 있던 트로피의 주인공은 오늘 경기에 나온다.
진열장에 쓰여 있던 문구처럼 말이다.
쳇.
웃기고 있네.
유벤투스 선수들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드레싱룸으로 향하는 선수들은 모두 한 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찰 수밖에 없었다.
‘요한을 막아야 한다. 요한만 막으면 된다.’
17세의 나이로 발롱도르를 받은, 그리고 현재 세계에서 가장 폼이 좋은 스트라이커가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말 그대로 도배를 해놓아서 그런지, 선수들의 눈앞엔 요한의 득점 장면이 어른거리는 듯 했다.
*
안 그럴 거라고 자신은 했었지만, 막상 경기 날이 되니.
웨스트 햄 선수들은 사뭇 긴장한 얼굴들이었다.
웨스트 햄은 평균 연령이 비교적 어린 편인 팀이다.
물론 요한이 평균을 많이 낮춘 탓도 있긴 한데, 그걸 빼고 봐도 대부분이 젊다.
당연히 경험이 적다.
심지어 챔스 토너먼트는 아예 처음이다.
긴장이 안 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경기에 앞서, 슈미트 감독은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이런저런 말들을 해주었다.
그 말들의 핵심은 하나였다.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는 것.
구단주들이 새겨 놓은 문구와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였다.
유벤투스는 전통의 강호다.
그러나, 오늘 맞붙는 건 과거의 유벤투스와 과거의 웨스트 햄이 아니다.
현재의 유벤투스와, 현재의 웨스트 햄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긴장하거나 쫄 필요는 전혀 없었다.
“우리가 누구!”
“프리미어 리그 무패의 1위 팀!”
“웨스트 햄엔 누가 있지!”
“발롱도르 위너,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
“좋았어! 렛츠 고!”
“가자!”
선수들은 큰소리로 파이팅을 외치며 경기장으로 나섰고, 경기장의 분위기는 뜨거웠다.
“···토너먼트다.”
“두 경기를 이기면 챔피언스 리그 8강. 전 유럽에서 가장 강한 8팀이 되는 거야.”
런던 스타디움에 울려 퍼지는 챔피언스 리그의 테마곡을 들으며, 반석호와 로한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미 조별예선부터 토너먼트급 대진을 했었던 웨스트 햄이다.
하지만, 진짜 토너먼트의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다.
기회는 단 두 번.
그 두 번의 경기로 승자와 패자가 갈리고, 한 팀만이 8강으로 갈 수 있다.
그런 중요한 길목에서, 상대로 만난 게 하필 유벤투스.
티비, 혹은 게임에서나 보던 선수들이 이곳, 런던 스타디움의 필드 위에 서 있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물론, 그런 선수들을 이긴다면 더욱 비현실적으로 황홀하겠지.
“홈에선 무조건 이겨야 해요. 그래야 가능성이 있을 거예요.”
“오늘은 더 크게 응원하자.”
“I’m forever blowing bubbles!”
해머스들의 우렁찬 응원가 소리와 함께,
“삐이이익-!”
경기가 시작되었다.
*
‘귀찮네. 증말.’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요한은 상당한 귀찮음을 느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성가시다.
공이 멀리 떨어져 있는, 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상황인데도 상대 선수들이 비비적대고 있기 때문이었다.
팬들도 이렇게 귀찮게는 안 하는데.
툭-!
이거 봐.
또 이러잖아.
우리 골대 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뒤에서 슬쩍 툭 치고 간다.
그 와중에 심판한테 걸리는 건 무서운지, 괜히 앞으로 지나가려던 것처럼 슬쩍 나왔다가 다시 뒤로 돌아간다.
“···”
요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을 주변으로 반경 20미터 이내에 네 명이나 어슬렁거리고 있다.
상대 중앙 수비 두 명, 바르첼리와 마르치오는 물론, 좌우 수비수들까지 중앙으로 치우쳐 좁게 서 있는 것.
덕분에 좌우 공간이 넓게 벌어져 있었고, 그 공간에 베일리와 버클리가 서 있는데 별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인다.
상당히 노골적이다.
물론 이런 경험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익숙한 상황이다.
팀에서도 이럴 걸 예상하고, 그에 대한 훈련을 해 온 상황이고.
나쁠 게 없다는 이야기였다.
다만, 팀은 나쁠지 몰라도 요한 스스로는 짜증이 날 뿐.
‘겸사겸사, 잘됐네.’
뭐, 그래도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이런 상황이라면, 카펠로의 부탁을 들어주기 쉬울 것 같으니까 말이다.
본인이 골을 넣고 싶다던 카펠로.
카펠로에게 골을 몇 번 만들어 주면, 부탁도 들어주게 되는 것이고.
이 땀내 나는 아저씨들을 좀 떨어지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흐음.”
근데, 그러려면 일단 공을 받는 게 우선이다.
이 아저씨들 사이에 서 있으면 공을 받기는 쉽지 않다.
한두 명 정도야 몸으로 막아내면서 경합할 순 있긴 한데, 나머지가 문제다.
경합하는 동안 앞으로 튀어나가 패스를 잘라내는 것까지는 어쩔 도리가 없으니.
결국, 좀 움직여야 하나.
귀찮지만 어쩔 수 없을 듯 했다.
도넛만 안 받아먹었어도 이럴 필요까진 없었을 텐데.
그래도 아빠 몰래 맛있게 먹었으니, 입을 싹 닦을 순 없지.
“···”
은근슬쩍 왼쪽으로 움직인다.
그러자, 땀내 나는 아저씨들도 슬금슬금 따라온다.
그럼 중앙은 누가 막을 건데?
‘흠.’
중앙 수비 두 명이 왼쪽으로 치우치니, 상대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래로 내려오는 게 보였다.
저 녀석이 빈자리를 채우는 역할인가.
그럼, 녀석의 원래 자리가 또다시 빈다.
그 빈공간을,
“···!”
카펠로가 캐치한 듯 보였다.
타타탓-!
천천히 패스를 돌리다, 갑자기 스피드를 올려 공을 몰고 하프라인을 넘어오는 카펠로.
그럼에도 요한의 주변을 둘러싼 수비수들은 원래 자리로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거점인 아크 정면을 비워 놓고서라도 요한을 막겠다는 듯.
어차피, 카펠로의 선택은 요한에게 킬 패스를 넣는 것 아니냐는 듯한 태세.
‘오히려 좋아.’
공을 몰고 오던 카펠로가 슬쩍 요한 쪽을 바라봤고, 순간 둘의 눈이 마주쳤다.
요한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카펠로는 시선을 거두어 정면을 바라본 뒤,
뻐어어어어어엉-!
그대로 중거리 슈팅을 시도했다.
슈우우우우우웅-
파아아앙-!
아아, 아깝다.
체중을 실어 잘 찬 슈팅이었는데, 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저 골키퍼도 아는 얼굴이다.
이탈리아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만났던 키퍼.
카펠로와 대표팀에서 함께 뛰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슈팅의 방향을 미리 읽고 뛴 모습이었다.
“삐익-! 코너!”
카펠로의 슈팅이 키퍼 손에 맞고 골라인을 나간 탓에, 경기는 코너킥으로 이어졌다.
*
“까다롭긴 하네.”
“상당히 노골적이네요. 오늘 볼레로비치는 수비형 미드필더라기보단 거의 스토퍼예요.”
“수비 시엔 사실상 파이브 백이군.”
“밸런스 신경 안 쓰고 요한이만 막겠다는 거네요.”
웨스트 햄의 코너킥 찬스가 빗나가, 골킥으로 경기가 재개되는 것을 보며.
반석호와 로한은 턱을 매만졌다.
“솔직히 말하면, 저게 맞긴 하지.”
“제가 유벤투스 감독이었어도, 저렇게 했을 테니까요.”
확실히 유벤투스는 만만한 팀이 아니다.
특히나 수비력 면에선, 프리미어 리그의 웬만한 강팀들도 유벤투스를 따라가긴 어려울 거다.
과연 저걸 요한이 어떤 식으로 극복해낼지가 관전 포인트로 보였다.
평소처럼, 괴물 같은 개인 능력으로 전술 따위 다 무시해버리고 기어이 골을 넣을지.
아니면 다른 방법도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
“팀으로서 보면, 다른 쪽에서 골이 나와주면 좋을 것 같은데.”
“예. 그게 효과적이긴 할 거예요. 상대 머리가 복잡해질 테니까. 하지만 요한이 혼자서 극복해내는 것도 보고 싶긴 하네요.”
“그럼 유벤투스의 멘탈도 무너지겠지. 이렇게 해도 막을 수 없는건가, 하면서.”
어느 쪽이어도 좋다.
일단은 선취 골이 웨스트 햄 쪽에서 나오기만 한다면 말이다.
모든 경기가 그렇지만, 오늘 경기는 특히 선취 골이 가지는 의미가 클 것이었다.
무대는 챔스 16강 토너먼트 1차전.
상대는 유서 깊은 세리에의 챔피언 유벤투스.
이런 상황에서 선취 골을 넣을 수 있다면, 긴장이 크게 해소될 것이고 자신감은 차오르게 될 것이다.
반대로, 선취 골을 내주게 되면 그 정반대가 될 것이고 말이다.
“안 돼, 사람 놓치면 안 돼!”
“휴우- 다행. 지금은 위험했다.”
이어진 유벤투스의 공격에서,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인 볼레로비치의 패스를 이어받은 유베의 스트라이커, 블라호비치의 날카로운 슈팅이 터져 나왔다.
다행히 골대를 비껴가긴 했지만, 수비가 완벽히 되진 않았던 장면.
아마 요한에게 저런 찬스가 갔다면 꼼짝없이 실점했을 거다.
그나마 블라호비치라 다행이지.
“확실히 유베가 수비만 있는 팀은 아니야.”
“요즘 유베를 먹여 살리고 있는 건 오히려 공격 쪽 일지도요.”
물론 블라호비치라고 나쁜 공격수는 아니다.
요한과 비교해서 그렇지, 블라호비치는 오히려 탑급 스트라이커.
유벤투스의 공격력은 절대 약하지 않다.
때문에 선취골을 이쪽에서 가져오고 싶다면,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왕이면, 요한이가 빠르게 골을 만들어 줬으면 좋을 듯 했다.
*
‘오히려 이쪽이 더 편한 것 같기도 하고.’
요한은 머리를 긁적였다.
과연 할아버지의 말씀은 새겨 들을만 하다.
지금까지 열심히 골을 넣어와서 그런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수비가 알아서 붙는다.
덕분에, 열심히 뭘 하지 않아도 동료들에게 빈공간이 열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 셈.
그 과정에서, 몇 차례 카펠로의 슈팅이 나왔다.
하지만 마무리의 정교함이 아쉽다.
더불어, 카펠로는 혼자서 마지막 수비까지 제쳐낼 돌파력이 부족한 듯 보였다.
지금까지의 슈팅 모두가 수비 하나를 앞에 두고 때린, 중거리 슈팅에 가까운 슈팅이었다.
수비 하나만 더 제쳐내면, 더 확실하게 찬스를 맞이할 수 있을 텐데.
‘그것까지 도와줘야 되나.’
흐음.
지금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도와주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카펠로는 아무래도 입에 완전히 떠먹여줘야 하나보다.
그럼, 그렇게 해볼까.
파아앙-
파아앙-!
하프 라인 근처에서 공을 돌리고 있는 동료들.
요한은 유벤투스 입장에서 왼쪽 사이드, 웨스트 햄 입장에선 우측 윙 포워드 위치에 서 있었다.
그러다, 카펠로가 공을 잡고 다시 전진을 시도하기 시작했을 때.
‘지금.’
요한이 뛰었다.
그 방향은 하프라인 쪽.
골대 쪽으로 쇄도하는 것이 아닌, 역주행 방향이었다.
그 일반적인 개념과는 반대되는 움직임에, 요한에게 붙어 다니던 수비수들이 멈칫하는 것이 보였다.
이걸 따라가야 하나, 아님 자리를 지켜야 하나 고민되는 듯한 움직임.
덕분에, 순간 요한은 자유의 몸이 되었고.
“헤이!”
“···!”
요한이 외치자 카펠로가 그쪽을 바라봤다.
찰나의 순간, 카펠로는 요한이 어떤 움직임을 원하는 것인지 이해한 뒤 패스를 넘겼다.
파아앙-!
요한에게 전달되는 패스.
요한은 패스를 받아 공을 몰고 중앙 쪽으로 움직였다.
동시에 상대 미드필더들의 거센 압박이 요한에게 가해진다.
하지만, 웬만한 수비수들도 막지 못하는 요한을 미드필더들이 저지하긴 쉽지 않았다.
요한은 무자비한 피지컬과 부드러운 테크닉으로 공을 지켜내며 경기장을 가로질렀고, 덕분에 모든 유벤투스 선수들의 시선에 요한에게로 이끌렸다.
요한이 노린 건 그것이었다.
뻐어어어어엉-!
요한의 발에서 패스가 전방을 향해 뻗어져 나갔다.
카펠로가 페널티 박스를 향해 계속해서 뛰고 있었다. 카펠로가 요한의 의중을 정확히 이해한 것.
요한의 로빙 스루 패스는 딱 그곳으로 날아갔다.
슈우우우우웅-
절묘했다.
킥의 타이밍이나, 방향, 높이, 그리고 세기, 심지어 회전까지.
투우웅-!
요한에게 시선을 빼앗겼던 상대 수비의 머리를 절묘히 넘긴 패스는 박스 안에 떨어졌고, 역회전이 걸린 공은 속도가 확 죽으며 키퍼가 나와서 처리하기에도 애매하게끔 멈춰섰다.
카펠로에게 완벽한 밥상이 차려진 것이었다.
뻐어어어어엉-!
다른 컨트롤도 필요 없었다.
그저 다 된 밥상에 숟가락을 올리듯, 슈팅만 차면 됐다.
카펠로는 골대 왼쪽 구석을 향해 깔아 차는 슈팅을 때렸고,
촤아아아아아-
철썩-!
유벤투스의 골문이 열렸다.
“와아아아아아아앗-!”
관중석에서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