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6)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6화(16/202)
< 015화 – 증명해 볼 텐가 >
철썩-!
“···!”
“···엉?”
골망이 세차게 흔들렸을 때,
모두가 멍청한 표정으로 눈을 껌뻑였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슈팅부터 골이 골문 구석에 쳐박히기까지, 눈 깜빡할 새에 벌어진 일.
“···허?”
가랑이를 허용한 안토니오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굴욕감을 느낄 경황도 없었다.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을 뿐.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을 정리해보자면.
웨스트 햄에서 4년을 뛰어 온 수비수인 자신이, 어제 막 훈련에 합류한, 아직 데뷔도 못한 열여섯살짜리 꼬맹이에게 골을 허용했다는건데.
그것도 가랑이 사이를 내주면서.
‘말이 돼?’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당장 지난 주까지만 해도 리그 정상급 공격수들을 상대하던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런 선수들에게도 이런 식으로 굴욕적인 골을 내준 적은 없는 자신이었고.
그런데,
그런 자신이 꼬맹이한테 이렇게 허무하게 뚫려 버렸다고?
“안토니오! 정신 안 차리냐!”
“아무리 상대가 어리다고 해도 그렇지, 방심하면 되냐.”
“어? 방심···? 아, 맞아. 맞아, 방심. 방심했다.”
동료들의 입에서 방심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안토니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맞다.
방심.
안토니오는 이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한 이유로 방심밖에는 찾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이런 꼬맹이에게 실력으로 뚫렸다는 건 말이 안되는 일이었으니까.
방심 했을 뿐이다.
꼬맹이라고 너무 얕잡아본 탓일 뿐인거다.
“안토니오. 쪽팔리다, 쪽팔려.”
“야, 야. 이제 막 자라나는 새싹을 밟아버리면 되겠냐? 선배로서 기 좀 살려 준거다.”
“오냐 오냐 해주는 것도 도움 안된다. 다음엔 제대로 해.”
“암, 암. 그래야지.”
웃음으로 넘어가는 안토니오.
그러나,
그런 안토니오의 웃음은 너무나 어색했다.
그건,
아마 안토니오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저 방심 때문이었을 뿐이라며 넘어가려 하고 있긴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본다면.
그건 꼭 방심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걸 말이었다.
*
“···감독님? 들어갔는데요?”
제이미 코치는 혀를 내둘렀다.
경기가 시작된지 15분만에 첫 터치.
그런데, 그 첫 터치는 첫 슈팅으로 이어졌고 첫 골로 이어졌다.
원 샷 원 킬.
분명 재능 있는 녀석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지만,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골이었다.
“안토니오가 불안할 때는 많지만, 저렇게 쉽게 찬스를 주는 녀석은 아닌데 말이죠.”
비록 안토니오가 팀의 붙박이 주전 센터백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쨌든 녀석도 프리미어 리그에서 수년을 뛰었던 수비수였다.
헌데 그런 녀석을 앞에 두고, 완벽하게 자신의 슈팅을 가져가다니.
그것만으로도 크게 칭찬해 줄 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들어가 버리기까지 했다.
완벽한 스피드와, 완벽한 코스로.
어찌나 빠르고 정확한 슈팅이었던지, 주전 골키퍼 셰링엄은 손을 뻗을 생각조차 못했다.
그 골을 넣은 게 요한이 아니라,
리그 정상급의 공격수였다고 해도 감탄할만한 골이었다.
그런데,
요한은 열여섯살 짜리 꼬맹이가 아닌가.
이건 정말 경악할만한 장면이었다.
“···”
아닌체 하고 있지만, 슈미트 감독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녀석이 오늘 경기에서 골을 넣을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슈미트 감독이었다.
그것도 녀석의 플레이 스타일을 고집하면서.
유스 레벨대까지는 저런 플레이가 통할 수 있어도, 프로 레벨대에선 절대 통하지 않을거라 생각했었단 말이다.
그런데, 통했다.
프로 레벨, 그것도 자신이 1년간 지도해온 선수들 사이에서.
슈미트 감독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가는 순간이었다.
“감독님?”
“···왜.”
“이럼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뭐가.”
“저 녀석이 저렇게 잘해버리면, 감독님 계획이 틀어지게 생긴 거잖아요.”
제이미 코치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확실히 슈미트 감독의 계획과는 반대되는 일이었다.
오늘 슈미트 감독이 바란 건, 요한이 증명해내지 못하고 그것에 더 자극 받아 증명을 해낼 때까지 덤벼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손쉽게 증명해 버리면?
녀석은 열심히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거다. 원래대로처럼.
그렇게 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된다는 건데.
“아직이다.”
“예? 아직이요?”
그렇기에 슈미트 감독은 쉽게 인정할 수 없었다.
“아직 모자라다고. 고작 1골로는 말이다. 15분 동안 걸어다니기만 하느라 동료들 힘들게 하고 있는 건? 그걸 고작 골 하나로 커버 가능하다 보는거냐?”
“그건 그렇지만···”
잘 넣은 골이긴 했다.
녀석 딴엔 충분히 증명하였다 느낄 수도 있는 골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방금의 골 하나로 증명이 되었을거라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었다.
고작 1골로는, 아직 녀석이 보여주고 있는 단점들을 상쇄하기엔 부족하다는 게 슈미트 감독의 생각이었으니까.
“15분인데 벌써 에너지 레벨의 차이가 보이고 있다. 그게 다 저 녀석 때문이잖느냐.”
슈미트 감독의 말이 사실이긴 했다.
요한 때문에 다른 선수들의 체력이 갉아 먹히고 있다는 것.
불과 15분 여 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양 팀의 에너지 레벨 차이가 느껴질 정도다.
그 차이는 가면 갈수록 더 커지겠지.
그 차이를 메꾸기 위해, 선수들은 체력이 바닥날 때까지 뛰어야 할 것이고.
그런 동료들의 희생에 비하면, 확실히 1골로는 부족한 일이 맞다.
그러니, 요한이 충분히 증명했다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확실히 오산이었다.
“그럼, 몇 골이면 되는 건데요?”
몇 골이면 되냐고?
“···”
슈미트 감독은, 옆에서 자꾸만 조잘대는 제이미 코치가 오늘따라 유독 더 거슬렸다.
*
뻐어어어엉-!
슈우우우웅-
타아아앙-!
골대를 강타하는 청명한 소리가 울려 퍼진 건 20분 경이었다.
요한의 두 번째 슈팅이었다.
첫 번째 골 때와 똑같이 아크 정면서 안토니오를 등지고 공을 받은 요한은,
이번엔 반만 돌아선 뒤 그대로 왼발 터닝 슈팅을 때렸다.
첫 슈팅과 달리 이번엔 큰 호를 그리는 감아차기.
감아찬 슈팅의 궤적은 아름다웠지만, 아쉽게도 골망을 흔드는 대신 골대를 강타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선수들을 다시 한 번 놀라게 하기엔 충분했다.
또한,
요한과 한 팀으로 뛰고 있는 B팀 선수들이 요한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기에도 충분했고.
“어이, 캡틴. 저 꼬맹이, 생각보다 침착한데?”
“그러게. 아무리 연습 경기래도, 처음엔 정신도 못차리는 게 보통인데.”
상대가 골킥을 준비하는 잠깐의 틈을 이용해 숨을 고르며 대화를 나누는 B팀 선수들.
경기 시작 전, B팀 선수들은 다들 한 명이 없다 생각하고 경기할 생각이었다.
열여섯짜리 꼬맹이가 있어봐야 뭘 할 수 있겠나.
그냥 한 명이 퇴장 당했을 때를 대비한 훈련이다, 생각하고 뛰는 게 맘 편할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녀석은 생각보다 침착했다.
뿐만 아니라 날카로웠다.
이게 첫 1군 경기인 녀석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첫 슈팅이 오른발이었고, 방금은 왼발. 단순한 허세는 아니었다, 이거지?’
경기 전 녀석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피식 미소를 짓는 주장 팀 고든.
분명 녀석이 20분 동안 한 거라곤 고작 슈팅 두 번을 때린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 중 하나가 골이었고, 하나는 골대를 맞혔다.
기대감을 갖기엔 충분한 두 개의 슈팅이었다.
고작 슈팅 두 개로 1골 1골대를 만들어냈는데, 만약 좀 더 녀석에게 공을 몰아준다면 어떤 결과를 보여줄 것인가 하는 기대감.
그 기대감이 요한이 속한 B팀 선수들에게 들고 있었다.
딱 2개의 슈팅만으로 말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귀여운 꼬맹이 좀 밀어줘볼까?”
“나쁠 거 없지. 나도 저 꼬맹이의 슈팅이 좀 더 보고 싶던 참이야.”
“참고로, 자기 입으로 양 발이 다 주 발이라 했으니까 아무렇게나 패스해도 될 거야.”
“지 입으로 그랬다고? 하하. 간만에 마음에 드는 녀석인데? 좋아. 일단 어떻게든 공을 줄테니, 한 번 만족시켜 보라고.”
사실, 요한은 동료들 입장에서 그다지 먹음직스러운 스타일의 패스 선택지는 아니었다.
요한은 항상 박스 근처에서 걸어다닐 뿐이었고, 그러다 보니 좋은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좋은 패스를 받기 위해선 활발히 움직이며 빈공간을 찾아 다녀야 한다는 게 기본 상식.
그런데 계속해서 수비와 나란히 서 있기만 하니, 선수들 입장에서도 요한에게 패스를 주기가 애매했다.
하지만,
어쩌다 준 지극히 평범한 패스 두 개를 모두 위협적인 슈팅으로 가져가는 모습을 보니.
그냥 줘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 때부터.
20분 경을 기점으로 B팀 선수들의 패스 공급이 요한 쪽으로 집중되기 시작한 것인데.
잠시 후.
그 기대감은,
확신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자, 해봐라!”
파아앙-!
발밑으로 향해오는 패스.
공이 요한에게 굴러옴과 동시에 안토니오가 뒤에서 강하게 붙어온다.
안토니오는 적잖이 빡친 상태였다.
앞선 두 차례의 슈팅에서, 모두 요한에게 몸싸움을 밀렸던 안토니오였으니까.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중학생에게 몸싸움을 밀린다니.
이건 한 명의 남자로서도 용납할 수 없는 일.
‘이번엔 진짜로 안봐준다, 꼬맹아.’
요한에게 달려드는 안토니오는 아예 작정한 상태였다.
공은 보지도 않고 있었다.
이번에야 말로 녀석이 공도 잡지 못하도록, 뒤에서 눌러버릴 생각.
그런 생각으로,
안토니오가 요한의 등 뒤로 있는 힘껏 덮쳐 들었을 때였다.
휘이익-!
“···!?”
안토니오의 눈이 크게 떠졌고,
잠시 후 안토니오의 얼굴이 땅에 쳐박혔다.
요한이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몸을 틀어 안토니오의 대시를 피해버린 것.
안토니오를 바보로 만들어 버린 요한은, 공의 흐름을 그대로 살려 유유히 안토니오를 지나쳤다.
또 다시 바보가 되어버린 안토니오.
그러나,
이젠 그런 안토니오를 비웃는 선수는 없었다.
녀석이 그렇게 당한 게,
꼭 녀석이 바보여서만은 아니란 걸 다들 슬슬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간 막아!”
“커버 들어와!”
“슈팅 주지 마!”
안토니오가 뚫린 탓에 드러난 공간.
그 공간을 향해 양쪽 수비수들이 좁혀 들어온다.
그 커버는 나름 빨랐다.
요한의 슈팅이 인정할만 하다는 건 이제 다 알고 있었다.
때문에, 슈팅 시도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중앙을 향해 몰려드는 수비수들.
그러나,
그런 수비수들이 아직 모르고 있는 게 한 가지 있었다.
요한이, 사실은 슈팅보다 패스를 더 선호하는 유형이라는 것이었다.
파아앙-!
요한에게 시선이 이끌린 나머지 좌우 양쪽이 프리.
요한은 수비수들이 자신에게 이끌리자 여유롭게 왼쪽으로 패스를 꺾었고,
뻐어어엉-!
프리 찬스로 공을 건네받은 동료가 가볍게 골대로 차넣었다.
요한이 두 번째 공격 포인트를 만들어낸 것이었고, 동료들의 기대감에 부응하는 순간이었다.
*
“감독님. 감독님?”
“귀 안 먹었다, 이놈아.”
“이 정도면, 아무래도 뒤집어진 것 같은데요?”
“뭐가 뒤집어져?”
“감독님 속이··· 가 아니고. 마이너스보다 플러스가 훨씬 많은 것 아닙니까? 2골 1도움인데···”
경기는 어느덧 후반 30분.
스코어는 2대3.
B팀이 앞서고 있었다.
시종일관 A팀이 주도권을 쥐고 있던 것과는 반대의 결과.
역시나 요한 때문이었다.
몇 번 안되는, 기회라고도 하기 뭐한 찬스들을 공격 포인트로 만들어낸 요한.
확실히 녀석의 플레이 스타일은 팀에 마이너스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훨씬 큰 플러스를 더해주기도 하고 있었다.
공격수가 모든 공격 포인트를 만들어 내고 있는데, 그보다 더 큰 플러스가 어디있단 말인가.
아무리 활동량이 적다고 해도 말이다.
“아직도 인정 못하시는 겁니까?”
“···”
“아무래도, 고집을 먼저 꺾어야 할 건 감독님이신 것 같은데요.”
“아이, 자식아! 경기 내내 조잘대네, 거참!”
“깜짝이야.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러세요, 감독님.”
“나도 알아! 아니까 그만 떠들라고!”
“나한테만 승질이시지. 어휴.”
이미 알고 있는 걸 자꾸 떠들어대면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슈미트 감독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요한이 증명해 버렸다는 것을.
요한을 길들이기 위한 시도가, 오늘만큼은 실패라는 것을.
요한이 오늘 보여준 플레이는 슈미트 감독이 제일 싫어하는 플레이였지만, 그런 슈미트 감독마저도 팀에 해가 되고 있다는 말은 할 수 없는 플레이였다.
“내일부턴 또 지각하겠는데요? 어쩌실 겁니까, 감독님?”
“어쩔 거냐고?”
만약, 충분히 증명했다는 생각에 녀석이 내일부터 또 게으른 모습을 보인다면.
감독으로서 고수해온 자신의 원칙에 따른다면 녀석을 다시 18세 팀으로 보내야 했다.
게으른 선수는 절대 쓰지 않는다는 게 자신의 원칙이었으니까.
하지만···
저 재능을 다시 내려 보낸다?
그게 과연 맞는 선택일까.
“···”
슈미트 감독은 이미 강한 유혹에 끌리고 있었다.
저 녀석에 한해서만큼은 예외를 두고 싶다는 유혹.
수십 년간을 고수해 온 자신의 원칙마저도 뒤로 제쳐두고 싶은 유혹에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