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61)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61화(161/202)
< 160화 – 입방정 >
웨스트 햄의 해법은, 그냥 빌드업을 생략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맞이한 골킥 상황에서, 휴리첼은 다시 후방 빌드업을 시도하려는 듯 벨라미에게 짧은 패스로 골킥을 처리했다.
이에 맨유는 역시나 전방 압박을 가하기 위해 빠르게 올라왔다.
그걸 확인한 벨라미가 휴리첼에게 곧바로 리턴.
그 리턴 패스를 휴리첼이 전방을 향해 때렸다.
그 롱 킥은 요한의 머리에 연결되었다.
다만 수비가 헐거운 건 아니었다.
공이 하늘 높이 떠가는 동안 맨유 수비는 이미 자리를 잡은 상태였고, 요한에게 공을 내주는 대신 각자의 위치를 지키며 지역 방어 태세에 들어갔다.
그런데, 여기서 보고도 믿기 힘든 요한의 솔로 플레이가 나왔다.
페널티 박스 라인에 배치된 수비만 넷.
그 앞에서 백 포 라인을 보호하고 있는 볼란치가 둘.
공을 사이에 두고 요한과 대치하고 있는 맨유 선수만 여섯이었다.
물론 웨스트 햄 선수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침투를 하고 있었으니, 완벽히 6대1의 상황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맨유의 선수들은 자기와 가장 가까이 있는 선수보다도 요한을 최우선적으로 경계하고 있었다.
만약 내 앞, 혹은 옆의 동료가 뚫리게 되면, 지금의 마킹을 버려두고라도 요한에게 뛰어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실상 이건 6대1의 싸움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실제로 그러했다.
요한이 가장 먼저 상대한 건 맨유의 투 볼란치, 대런 맥케니와 미켈 로드리게스.
둘 다 190센티미터가 넘어 센터백 듀오라고 봐도 될 정도로 피지컬이 좋은 이 둘은, 같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주는 장벽이었다.
하지만, 요한 앞에선 그저 큰 덩치답게 반응 속도가 느린 허수아비들일 뿐이었다.
요한은 하느님도 속을 상체 페인팅 한 번으로 둘을 동시에 한쪽으로 쏠리게 만들었고, 반대 방향으로 스프링처럼 튕겨나가며 그 둘을 제쳐냈다.
이어서 마주한 건 센터백 라인.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벨라미와 합을 이루는 주드 해리슨과 티아고 모랄레스.
이 둘도 하우어 감독 아래서 꾸준히 기량을 발전시켜, 올 시즌 리그 베스트급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든든한 라인이었다.
만약, 요한이 아니라 다른 공격수가 단신으로 이 둘 사이를 뚫어내기 위해 달려 들었다면, 양쪽의 풀백들은 협력 수비를 들어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앞쪽으로 뛰었을 거다.
역습을 준비하기 위해서 말이다.
해리슨과 모랄레스가 당연히 볼을 탈취해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니.
하지만, 지금 저 둘을 향해 달려드는 게 요한이었으니.
양쪽의 풀백들도 간격을 좁히며 중앙으로 조여 들어왔다.
즉, 요한이 볼란치 라인을 제쳐내고 페널티 아크까지 진입하긴 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상대의 올가미 속으로 발을 들인 형국이 된 셈.
그 사이에선 더 드리블을 하거나, 동료들에게 패스를 하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그 정도로 좁은 공간.
실제로, 요한도 잠시 멈추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재밌는 건, 요한이 공을 세우고 멈춰 서자, 수비수들도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섣불리 다가서지 못했다.
충분히 발을 뻗거나, 몸싸움이라도 시도해볼만 한데, 아니 그게 당연해 보이는데.
요한을 둘러싼 수비수들은 그저 몸을 긴장시키며 요한의 움직임에 집중할 뿐이었다.
네 명이 동시에 달려든다 해도 장담할 수 없다는 긴장감.
그게 몸싸움이든, 아니면 태클이든.
네 명이 한꺼번에 요한을 덮친다 해도, 공을 뺏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기에 그랬다.
어쩌면 잠깐이나마 요한을 멈춰 서게 만들었다는 것 자체로 만족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것은 실수였다.
요한에게 시간과 공간을 준 것.
물론 아주 짧은 시간이었고, 아주 좁은 공간이었지만.
요한에겐 그걸로 충분했다.
툭-
뻐어어어엉-!
투 터치 슈팅이었다.
그래도 해리슨과 모랄레스는 수비의 기본을 지키고 있었다.
최대한 슈팅 각도를 줄이며 수비 자세를 취하고 있었던 것.
그래서, 요한은 왼발 아웃사이드로 공을 살짝 밀었다.
슈팅 각도를 확보하기 위함.
그리고, 그 왼발 그대로 감아 차는 슈팅을 때렸다.
그 첫 번째 터치와 두 번째 터치는 눈 깜짝할 새에 이어졌다.
덕분에 수비가 반응할 틈은 없었다.
슈우우우우우웅-
강한 슈팅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었다.
수비가 반응하기 전에 때려야 했기에, 도움 닫기도 없었고 다리의 스윙도 짧게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대신에, 슈팅의 코스와 감겨 들어가는 각도의 크기가 예술이었다.
처음엔 모두가 슈팅이 골대 밖으로 나가는 줄 알았을 거다.
그것도 한참이나.
하지만 스핀이 걸린 공은 공기를 휘감으며 큰 아치를 그렸고, 마치 자석이라도 달린 듯 골대 안으로 감겨 들어갔다.
골키퍼가 애초에 뛸 생각도 할 수 없는 슈팅이었다.
<고오오오오올-! 요한 반! 올 시즌 가장 중요한 득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웨스트 햄이 1대0으로 앞서나갑니다!>
올 시즌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경기.
그 경기에서도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는 시점.
거기엔 요한의 모든 개인 능력이 폭발한 원더 골이 있었다.
*
선수들도 눈이 달린 사람들이다.
그저 우당탕탕, 어쩌다가 들어가버린 골이었다면.
맨유 선수들은 쉽게 잊어버리고 다시 경기에 집중할 수 있었을 거다.
혹은 믿을 수 없는 원더 골이라고 할 지언정, 그게 행운 가득한 원더 골이었다면.
본인들의 운이 없었구나, 하고 가볍게 불평 몇 번 한 뒤 치워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니었다.
볼품없는 골이 아니라 눈부신 원더 골이었는데, 행운이 깃들었다고 할 수 있는 원더 골도 아니었다.
그 골을 넣은 선수가 요한이었으니까 말이다.
대부분의 원더 골들은, 그 골을 기록한 선수에게 다시 넣어보라고 해도 재현하기 쉽지 않다.
원더 골이라는 건 보통 그 상황, 그 순간에 모든 아다리가 딱 맞아 떨어짐과 동시에 운까지 더해져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하지만 방금의 골은?
요한은 몇 번이고 똑같이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한 번 더 차서 똑같은 골을 넣을 수 있을지는 반반이지만, 10번을 차면 7번은 똑같이 넣을 수 있을 거다.
그건 오로지 스킬만으로 만들어낸 골이었다.
그러니, 맨유의 기세가 다운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생각보다도 더 중요한 요소였다.
맨유의 경기 스타일이나 전술, 그리고 선수단의 나이까지.
모든 걸 고려해봤을 때, 이 팀은 기세와 흐름이 굉장히 중요한 팀이다.
기세에 불이 붙으면 어떤 팀을 상대로도 압살할 수 있는 팀이지만, 기세가 꺾였을 땐 어떤 팀에게도 질 수 있는 팀이다.
그 기세를 꺾는 게 올 시즌의 다른 팀들에겐 어려웠을 뿐.
요한의 선제 골이 터진 이후, 웨스트 햄은 한결 편하게 경기를 운영해 나가기 시작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웨스트 햄 선수들이 맨유 선수들을 상대로, 훨씬 더 능숙하게 경기를 운영했다는 게 말이다.
하지만 이젠 그게 가능했다.
경험이 더 많은 쪽은 웨스트 햄이다.
맨유는 올 시즌 챔스에 나가지 못했지만, 웨스트 햄은 8강에 올라 있다.
큰 무대를 한 번이라도 경험해 봤느냐, 그러지 못했느냐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우승도 해본 놈이 또 하는 게 축구계에선 흔한 일.
괜히 월드컵이나 챔스를 경험한 뒤 기량이 만개하는 선수들이 많은 게 아니다.
결국 안팎으로 강한 프레셔를 느낄 수밖에 없는 이런 중요한 경기에서, 웨스트 햄에겐 챔스에서의 경험이 상당히 큰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맨유는 어딘가 급했고, 웨스트 햄은 조금 더 여유가 있었다.
<기마랑이스의 헤더가 꽂힙니다! 프리미어 리그 데뷔 골! 그 데뷔 골을 이런 중요한 순간에 터뜨립니다!>
전반이 끝나기 전에 웨스트 햄은 한 골을 더 추가했다.
코너킥 상황에서 기마랑이스가 멋진 헤더를 성공시키며 2대0.
맨유 수비진의 모든 이목이 요한에게 쏠린 틈을 타 좋은 위치 선정을 한 게 주효했다.
기마랑이스는 동료들의 격한 축하를 받았고, 경기는 후반전으로 이어졌다.
*
후반전에 들어서도, 맨유의 레전드이자 레알 마드리드, 그리고 포르투갈의 레전드 공격수의 분은 풀리지 못했다.
맨유의 경기력이 전반보다 나아진 것은 사실이었다.
하프 타임 동안 맨유 선수들은 하우어 감독의 헤어 드라이어 MAX를 맞으며 심기일전했고,
<애런 다이슨의 만회 골! 그래도 한 점을 따라갑니다! 역시 저력이 있는 맨유! 아직 우승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듯 합니다!>
후반 9분, 꽤 빠르게 만회 골을 터뜨리며 희망의 불씨를 살리는데엔 성공했다.
하지만 그 분위기가 오래가지 못했다는 게 중요했다.
만회 골이 터진지 불과 3분 뒤.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입니다. 아, 물론 다른 경기였다면 먼 거리에서의 프리킥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만, 요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프리킥 찬스가 웨스트 햄에게 주어졌다.
골대 정면에서 살짝 왼쪽.
거리는 대략 30미터.
통상적으론 매우 먼 거리다.
프리킥 지점에서부터 골대까지의 거리보다, 하프 라인까지의 거리가 더 짧은 정도니까.
웬만한 킥력을 가진 선수가 없는 팀이라면, 세트 피스로 연결 했을만한 위치.
그러나 웨스트 햄엔 요한이 있었다.
공을 두고 멀찍이 떨어지는 요한을 보며, 맨유는 두텁게 벽을 세우며 긴장했다.
그리고 여기서 요한은 증명했다.
이미 모두 알고 있었지만, 굳이 한 번 더.
전반전의 원더 골이 운이 아니었음을 말이었다.
뻐어어어어어어엉-!
슈우우우우우우웅-
먼 거리에 걸맞게, 상당히 강한 프리킥이었다.
다만, 대게 발등에 제대로 얹힌 슈팅이 그러하듯 빨랫줄 같은 일직선의 궤적을 그린 프리킥은 아니었다.
그 공의 궤적은, 아마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었다.
‘공이 만취했다.’
아마 음주 측정을 했다면 이 공은 세계 최초로 감옥에 들어간 공이 됐을 거다.
요한의 슈팅은 공중에서 이리저리 흔들렸고, 공이 쏘아져 가는 동안 골키퍼는 역동작에만 서너 번을 걸렸다.
강력한 무회전 슈팅이었다.
철써억-!
누군가는 이 골을 보며 매우 분개했을 테지만, 일각에선 쾌재를 부를 수밖에 없는 골이었다.
이야깃거리로 먹고 사는 기자들 말이다.
마치 누군가의 전성기 시절을 떠오르게 만드는 장거리 무회전 프리킥.
하필 그 누군가가 이 경기를 앞두고 온라인 상에서 뜨겁기도 했으니.
벌써 기사 한 편이 뚝딱 만들어진 셈 아닌가.
아마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을 인터뷰하는 프레스 라인의 자리 싸움은 매우 치열할 게 분명했다.
허나 어쩌면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어차피 모든 기자가 같은 질문을 할 테니.
뭐, 이런 식이겠지.
후반전에 넣은 그 무회전 프리킥, 혹시 누군가를 의식하고 일부러 시도했던 것이냐고.
물론 요한은 아마 그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요한이 의식하고 있는 건 단 하나.
가장 강력한 우승 경쟁자인 맨유를 먼 발치로 내려보내고, 한 라운드라도 빠르게 우승을 확정 짓는 것.
그래서 하루라도 빠르게 은퇴를 확정 짓는 것.
그것 외에 요한이 신경 쓰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요한의 목표는 분명하다.
세계 최고가 되는 것도 아니고, 역대 최고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따위 것들은 전혀 관심 없다.
그냥, 은퇴하는 것.
웨스트 햄에서 은퇴할 수 있다면, 요한은 그걸로 족했다.
*
후반 막판, 맨유는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요한의 목표가 분명한 것처럼, 하우어의 목표도 분명했다.
요한의 은퇴를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든 이 경기를 잡아야 하고.
<공격수들을 연이어 투입하는 맨유. 어차피 스코어는 중요치 않고, 승점만이 중요하죠. 공격수만 4명이 뛰게 되는 맨유입니다.>
최소한 승점 차가 더 벌어지는 거라도 막기 위해 닥공을 퍼붓는 맨유.
맨유는 계속해서 전방으로 롱 볼을 투입하며 단순하지만 꽤 위협적인 공격을 거듭 시도했고, 하우어의 절박함은 통했다.
<골-! 우격다짐으로 밀어넣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경기, 아직 모릅니다! 추가 시간을 포함해 5분 밖에 남지 않은 시간! 그러나 골은 5초 만에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추가 시간을 남겨두고 들어간 골.
스코어는 3대2가 되었고,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며 정말 알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유 선수들은 공을 들고 빠르게 하프 라인으로 돌아와 공을 내려놓은 뒤,
“할 수 있어!”
“끝까지 해! 끝까지!”
서로에게 파이팅을 외치며 기세를 끌어 올렸다.
몇몇 선수들은 가까운 원정 서포터 석을 향해 두 팔을 휘저으며 더욱 크게 응원해달라는 제스쳐를 취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경기 재개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고, 요한이 달리고 있었다.
어수선해진 경기장의 분위기는, 곧 맨유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안 그래도 공격수들을 투입하느라 헐거워진 미들진과 수비진.
그 사이로 요한이 돌진했고, 어어 하는 순간 요한은 맨유의 골문 앞에 다다라 있었다.
그리고, 요한은 쐐기를 박았다.
<해트트릭! 해트트릭! 결국 자신의 발로 결정 짓습니다!>
오늘 요한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내 우승은 내가 만든다, 라고.
*
“고생했어.”
최종 스코어 4대2.
경기가 끝난 뒤, 하우어 감독은 직접 그라운드로 나가 의기소침해 있는 선수들을 독려했다.
다들 어리고 젊은 선수들이다.
너무 좌절할 필요는 없다.
오늘 경기도 이들에겐 좋은 경험이 될 거고, 리그라는 건 토너먼트가 아니라서.
오늘 모든 게 끝나는 것도 아니다.
고개를 들 필요가 있다.
“좀 살살해줄 순 없었나? 하하.”
자기 선수들을 모두 챙긴 뒤, 하우어는 요한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아쉬운 듯 말하는 하우어.
“그렇게 은퇴가 하고 싶은겐가.”
“네.”
“아쉬운 걸. 자네가 딱 10년만 더 뛰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0년만 더 뛰어도 역대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을 텐데.”
10년 뒤에도 요한은 스물일곱이다.
어떻게 보면 전성기에 접어드는 나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딱 그 전성기의 나이에 은퇴한다 해도.
지금부터 10년만 더 뛰어도 요한이 역대 최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우어 감독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10년이요···? 우욱-”
10년이란 소리에 요한은 표정을 구기며 헛구역질을 했고,
“미, 미안하네. 그렇게까지 싫어할 건 없잖아.”
하우어는 당황하며 요한의 등을 두들겨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