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63)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63화(163/202)
< 162화 – 회춘 >
웨스트 햄 1군 훈련 센터 내부에 위치한 미디어 실.
오늘은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 준비를 위한 데이터 분석 미팅이 있는 날이다.
모든 선수들이 훈련을 마친 뒤 미디어 실에 모였고, 요한 역시 맨 뒷자리에 앉아 자세를 잡았다.
몰래 숙면을 취할 자세를.
“요한아. 자려고?”
“···? 형?”
“오늘은 좀 참아봐. 중요한 이야기 할 거야.”
“형이 여기 왜 있어?”
“팀장님 대신 왔다, 인마.”
그런데, 예상치 못한 얼굴의 등장에 요한이 깜짝 놀랐다.
형이었다.
로한이 감독님, 코치들과 함께 미디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데이터 분석 시간에 전력분석관이 참여하는 건 원래 당연한 일이다.
근데, 원래 지금까지 쭉 미팅에 참여해왔던 건 전력분석팀의 팀장님이다.
“팀장님이 오늘은 내가 가라고 하셨어.”
“왜?”
“글쎄. 오늘 건 팀장님이 보기에 너무 복잡했나봐. 하긴, 내가 봐도 복잡하긴 해.”
오늘은 팀장이 로한을 대신 보냈단다.
오늘 미팅은 굉장히 중요한 미팅이었다.
다음 경기가 바이에른 뮌헨과의 챔스 8강전 경기고, 그 경기 분석을 하는 게 오늘이니까.
그 중요한 걸 팀 막내인 로한에게 맡긴 이유야, 뭐 간단하다.
로한이 팀 막내이긴 하지만, 사실상 팀장의 역할을 다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팀장 역할 뿐만일까.
거의 모든 걸 다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구단주들과의 인맥으로 철밥통 짓이나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던 웨스트 햄의 전력분석팀이, 굉장히 날카롭고 트렌디 해졌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한 건 로한이 합류한 이후부터였으니까.
“씁, 떨리네.”
“뭐가 떨려?”
“감독님까지 나한테 맡기시더라고. 브리핑을. 이 선수들 앞에서 내가 브리핑을 해야 한다니까.”
“그게 뭐가 떨려.”
“그래. 넌 이해 못 하겠지. 우리 동생은 수만 명 앞에서도 안 떠는 대단한 분이시니까.”
전력분석팀에 들어와, 직접 경기장을 돌아다니고 실무를 접하며 일을 배우길 벌써 1년이 넘었다.
로한은 이 일이 정말 재밌었다.
이게 일, 그러니까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때문에 로한은 팀 내의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고, 열정적으로 일했다.
단순히 열심히만 한 것도 아니었다.
‘잘’ 했다.
원래 팀에 있던 분석관들은, 처음엔 로한이 너무 어리다보니 썩 믿음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로한의 능력을 인정했고, 나중에 가선 십수 년 동안 이 업계에서 일해 온 팀장마저 로한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며 역으로 배우기까지 했다.
“나 같은 건 빨리 은퇴해야겠군. 내가 은퇴하면, 팀장 자리는 로한 군이 맡아줘.”
로한의 일 솜씨를 보며, 팀장은 빨리 은퇴해야겠다는 말이 버릇이 됐을 정도였다.
로한에게 빨리 팀장 자리를 넘겨야겠다며 말이다.
아무튼, 전력분석팀에서 준비한 자료들을 선수들에게 브리핑하는 것은 보통 슈미트 감독이나 제이미 코치의 몫이다.
하지만, 자료들을 미리 검토한 슈미트 감독은 로한에게 직접 브리핑을 해줄 것을 부탁했다.
“어째 수석 코치란 놈보다 분석팀 막내가 더 믿음직스러운겐지.”
“예에? 너무하신데요, 감독님.”
“로한 군. 수석 코치해 볼 생각 없나? 몇 개월 정도 공부하면서 자격증 몇 개만 따면 돼.”
“아니죠. 요양원에 가서 나이 지긋한 노인 수발하는 법부터 배워야죠.”
로한에 대한 슈미트 감독의 신뢰는 뭐, 처음 만났을 때부터 굳건했다.
로한이 요한의 혈육이라 그런 건 아니었다.
애초에 로한의 존재를 인지한 게, 익명의 아이디로 쓴 칼럼을 보고 나서였으니까.
아무튼, 슈미트 감독은 로한에게도 꽤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현대 축구에서 코칭 스태프들의 역할은 매우 크다.
괜히 여러 감독들이 자신만의 사단을 꾸리는 게 아니다.
슈미트 감독은 반드시 로한을 오랫동안 곁에 두고 싶었다.
때문에 경험도 쌓게 해줄 겸, 오늘 브리핑을 직접 하도록 부탁한 것이고.
“휴우. 떨린다.”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들 앞에서 직접 프리젠테이션을 하게 되어 긴장되는지, 로한은 동생을 애착 인형처럼 주무르며 마음의 안정을 취했다.
“그럼, 간다. 오늘은 졸지 말고 잘 들어.”
“응···”
슬슬 미팅이 시작될 시간.
로한은 한숨을 한번 내쉬고 자리로 향했고, 요한은 그런 형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문득, 예전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축구를 아빠보다도 좋아했던 형.
아빠가 뛰었던 팀에 들어가겠다며 매일같이 훈련하던 형.
테스트에 번번이 떨어지고도 포기하지 않던 형.
요한에게 형은 정말 이해가 안되는 사람이었다.
대체 축구가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질리지도 않는지.
또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어릴 때부터 그런 형을 요한은 이해할 수 없었고, 그건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형이 그랬던 이유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많이 미안하기도 했다.
형은 좋아서 하는 거라지만, 결국 형은 동생의 몫까지 하려고 했던 거니까.
때문에 요한은 형이 행복하길 바랐고, 잘 되길 바랐다.
지금 형의 모습은 무지 행복해 보였다.
지금뿐만이 아니라 요즘은 계속 행복해 보인다.
자신이 이 팀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쭉.
그런 형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요한은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형!”
“?”
“파이팅.”
“오냐. 걱정 마.”
요한이 주먹을 들어 보이자, 로한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유벤투스랑은 또 차원이 다르다, 이건가.”
“빡세긴 하네.”
미팅 내내.
선수들은 푹푹 나오는 한숨을 멈출 수가 없었다.
브리핑을 들으면 들을수록, 바이에른 뮌헨이라는 팀의 체급이 얼마나 거대한지 느껴져서.
올 시즌 바이에른 뮌헨은 23승 1무의 기록으로 분데스리가에서 압도적인 선두를 달리고 있었고, 포칼(독일 FA컵)에서도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이거야 뭐 당연한 일이고.
문제는 이번 챔스에서의 성적들이다.
비야레알, 포르투, 브뤼헤와 같은 F조에 속했던 뮌헨은 조별예선을 6승 0패로 마무리 짓고 16강에 진출했다.
사실 그냥 6승 0패의 기록만 봐도 압도적인데, 더 압도적인 건 골득실.
골득실이 무려 +18.
21득점을 넣었고, 단 3실점만을 했다.
경기 내용들도 차마 이게 챔피언스 리그, 그러니까 각 리그의 챔피언들끼리 붙는 경기라곤 상상하기 힘들만큼 일방적이었다.
물론 뮌헨을 제외한 F조의 다른 팀들 네임 밸류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같은 8강에 진출해 있는 비야레알마저 뮌헨에게 아무것도 못하고 깨졌다는 것이었다.
비야레알은 이번 시즌 젊은 재능들을 주축으로 한 화끈한 공격 축구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팀.
그런 비야레알이 뮌헨에겐 0대3, 1대4로 크게 두들겨 맞았다.
그렇게 16강에 진출한 뮌헨은 에레디비시의 챔피언 아약스를 만났고, 역시나 일방적인 폭행을 보여주며 8강에 진출해 있는 상태였다.
16강의 합산 스코어는 6대1.
에레디비시 팬들에겐 충격과 공포일 정도의 경기 내용들이었다.
아약스 역시도 리그 내에선 압도적인 강팀인데, 뮌헨에겐 상대가 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아약스는 4-4-2의 포메이션으로, 수비 시에 투톱과 미드필더들이 올가미를 형성하는 모양새로 강력한 압박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뮌헨은 좌우 풀백들을 언더래핑 시키며 그 압박에 대처했고, 결과적으로 수적 우위를 통해 아약스의 압박을 무력화시켰습니다. 동시에 하프 스페이스를 점거한 미드필더들에게 빠르게 공을 전달했고, 공격 쪽에서도 수적 우위를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아약스는 마치 13명을 상대하는 기분이었을 겁니다.”
영상 자료와 전술판을 활용해 분석 내용을 브리핑하는 로한.
상당히 디테일한 그 내용에, 벨라미나 카펠로를 비롯한 몇몇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버클리 같은 선수들은 너무 어렵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요한은 형을 봐서, 쏟아지는 졸음을 간신히 참고 있었고.
거, 되게 복잡하네.
“결국 우리는 수동적인 압박보다, 능동적인 압박이 필요합니다. 상대의 수적 우위를 가져가기 위한 움직임에 끌려가선 안 됩니다. 역으로, 볼 줄기를 유도해서 잡아먹는 그림이 필요합니다. 버클리, 네이슨 선수. 이런 식으로 움직여주셔야 합니다.”
로한은 전술판의 자석들을 하나씩 움직이며, 선수들 한 명 한 명의 움직임을 가이드해 주었다.
“카펠로 선수는 이런 식으로 움직여 주셔야 합니다.”
“···”
필드 위에선 사령관 역할을 담당하는 카펠로 역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로한의 브리핑은 일리가 있었고 날카로웠다.
그리고,
“요한 선수. 요한 선수는 평소와 다를 것 없습니다. 다른 건 필요 없으니, 골을 넣어 주세요.”
다른 선수들과 달리, 요한에겐 아주 간단한 지령만이 내려졌다.
브리핑을 마친 로한은 슈미트 감독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슈미트 감독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뮌헨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가장 완벽에 가까운 팀’ 정도가 될 거다. 뚜렷한 강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뚜렷한 약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뮌헨은 모든 면에서 유럽 최고 레벨을 자랑한다.”
뮌헨은 딱히 강한 색채를 띠지 않는 팀이다.
어느 한 가지에 특화되어 있기보단, 꽉 찬 육각형의 느낌.
빈틈이 없다.
뮌헨은 언제나 경기를 소유하려 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끌고 가려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 왔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완벽주의자들의 특징이 뭔 줄 아나? 사소한 흠결도 용납하지 못한다는 거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도, 이 완벽주의자란 종자들은 쉽게 지나치질 못하지. 심력을 소모해가며 신경 쓰고, 괴로워하고, 견디질 못해. 우리가 노려야 할 것은 그것이다.”
뮌헨은 항상 완벽에 가까운 경기를 해 왔다.
지금까진 어떠한 팀도 그런 뮌헨의 완벽주의에 흠결을 내지 못했다.
뮌헨은 위기에 빠져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뮌헨은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이 필요하지 않았고, 필요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그래서 웨스트 햄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뮌헨을 최초로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 기회.
위기에 익숙한 팀보다, 위기가 낯선 팀이 위기에 더 약할 수밖에 없다.
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방한 대책을 항상 강구해 추위에 대비하지만, 더운 지방에 기상 이변이 일어난다면?
“우린 기상 이변을 일으킬 것이다.”
슈미트 감독과 코칭 스태프들, 그리고 모든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한도 마찬가지로.
“···”
아, 물론 끄덕임의 이유는 혼자 다르긴 했지만.
형의 차례가 끝나자마자 요한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ㆍㆍㆍ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 하루 전.
어제 미리 뮌헨 현지에 도착해 휴식을 취했던 웨스트 햄 선수단은, 오늘 구장 적응 훈련을 위해 알리안츠 아레나를 찾았다.
“잔디 별론데.”
“좀 감기네. 큰일이다. 무릎 슬라이딩 세레머니는 못 하겠어.”
“그거 중요하지.”
그라운드 여기저기를 밟아보며 간단히 몸을 푸는 선수들.
모두 이곳은 처음이다.
하지만, 한 명만큼은 이곳이 처음이 아니다.
“···”
경기장을 주욱 둘러보는 슈미트 감독.
프리미어 리그로 넘어오기 전, 프랑크푸르트와 헤르타 베를린에서 감독 생활을 했던 슈미트 감독이다.
때문에 이곳에 올 일이 1년에 두세 번씩은 있었다.
‘여전하구만.’
7만여 명의 수용 인원을 자랑하는 알리안츠 아레나는 여전히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정말 큰 곳이다.
바이에른이라는 독일 최고의 팀에게 걸맞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스타디움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과는 별개로, 원정 팀들에겐 공포의 대상인 곳이다.
특히 같은 분데스리가 팀들에겐 말이다.
뮌헨만큼 극강의 홈 승률을 자랑하는 팀은 유럽 전체에서도 몇 없다.
‘나도 한몫 했었지.’
안타까운 얘기지만, 슈미트 감독은 이곳에서 단 한 번의 승리도 거둬본 적이 없었다.
프랑크푸르트를 이끌 때도, 헤르타 베를린을 이끌 때도.
여기서 승리를 가져갔던 적은 없었다.
그땐 정말 이겨보고 싶었었다.
다른 경기를 모두 져도 좋으니, 여기서 만큼은 이겨보고 싶었다. 딱 한 번이라도.
얼마나 이기고 싶었던지,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개인 통산 12패째를 하고 돌아왔던 날엔 분이 풀리지 않아 감독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했었다.
‘그땐 나도 젊었어.’
그때를 떠올리며 미소를 짓는 슈미트 감독.
그땐 정말 젊었다.
기운이 워낙 넘쳐서, 발길질 한 방에 소파가 뒤집어지고 테이블을 천장까지 던져버리기도 했었다.
그땐 선수들이랑 몸싸움을 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말야.
“감독님?”
“응?”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계세요? 슬슬 약 드실 시간이에요.”
“···그래.”
이젠 뭐, 약을 제 때 먹지 않으면 큰일 나는 다 늙은 노인네가 되었지.
지금 소파를 걷어찼다간, 제이미 코치가 무지 고생할 거다.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할 테니까.
선수들과 몸싸움은커녕 손자와 놀아주는 것도 벅찬 나이가 됐다.
“···”
다시 한번 알리안츠 아레나를 둘러보며 슈미트 감독은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참 빠르게도 흘렀다.
여기서 한 번 이겨보겠다고 생난리를 치던 괴팍한 남자는, 이제 백발이 뒤덮인 노인이 되어 다시 돌아왔다.
시간이 흐르며 바뀐 건 머리의 색깔 뿐만이 아니다.
많은 것들이 변했다.
근데···
근데 말이다.
“씨발.”
“···예? 뭐라구요, 감독님?”
“아무래도, 이기고 돌아가야겠어.”
“그건 당연한···”
“씨발! 이긴다! 이길 거라고!”
아무리 나이가 먹어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슈미트 감독은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뜨거움을 참지 못하고 주먹을 꽉 쥐었다.
“잠시만요, 감독님.”
그런 슈미트 감독의 모습에, 제이미 코치는 혈압 약을 가지고 오기 위해 라커룸으로 향했고.
슈미트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긴다.
언젠가 한 번은 꼭 이기겠다고 했었던 다짐.
그 다짐을, 내일 지키고 말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