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68)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68화(168/202)
< 167화 – 즐기자 >
-멈출 줄 모르는 웨스트 햄의 기세, 사상 첫 우승이 아닌 사상 첫 트레블 노린다
-뮌헨 꺾은 웨스트 햄, FA컵 32강전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격돌
-FA컵에서 만나는 웨스트 햄과 맨유의 동상이몽? 맨유는 절실, 웨스트 햄은 여유
뮌헨과의 챔스 8강 1차전 이후, 웨스트 햄의 다음 일정은 FA컵 32강전이었다.
그 상대는 맨유.
만만치 않은 상대를 꽤 이른 라운드에서 만나게 됐는데.
“트레블?”
감독실에 앉아 기사들을 둘러보던 슈미트 감독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트레블이라.
하여간, 기자라는 것들의 설레발 솜씨는 알아줘야 한다.
벌써 트레블이라는 이야기를 꺼내다니.
앞서가도 너무 앞서간다.
뭐, 이론적으로야 가능한 이야기였다.
리그에서도 꽤 넉넉한 승점 차이로 1위를 달리고 있고, 챔스에서도 4강 진출에 있어 유리한 고지를 밟은 상태다.
이번 경기인 FA컵에서도 승리를 거두고 16강에 진출한다면, 우승에 한 걸음 다가서는 것이고.
하지만, 모든 결과는 시즌이 끝나야 결정되는 것이다.
트레블의 가능성도 열려 있지만, 무관의 가능성도 똑같이 열려 있는 게 지금의 상황이다.
리그에서 말도 안되게 역전당할 수도 있고, 챔스에서도 결승 진출에 실패할 수 있으며, FA컵도 역시 갈 길이 멀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뭐, 팬들이야 트레블의 가능성을 더 크게 보고 이 순간을 즐길 수도 있겠지만.
팀을 이끌고 운영하는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해선 안된다.
적어도 감독인 자신 만큼은 항상 보수적으로, 트레블의 가능성보다 무관의 가능성을 더 크게 보고 경계해야 한다.
그래야, 더 좋은 선택을 내릴 수 있고,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게 슈미트 감독의 생각이었다.
“으음.”
볼펜을 들고, 빈 A4 용지 한 장을 내려다보며 생각하는 슈미트 감독.
매 경기 선발 라인업을 짤 때, 이렇게 A4 용지에 직접 수기로 이름을 적어넣는 스타일인 슈미트 감독이다.
옛날부터 이렇게 해와서, 지금도 이게 편하다.
“오늘은 좀 어렵군.”
볼펜을 빙글빙글 돌리며, 쉽게 명단을 작성하지 못하는 슈미트 감독.
요한이 팀에 들어온 이후, 명단을 작성하는 건 정말 쉬웠다.
일단 최전방에 요한의 이름부터 써넣고 시작하면 그만이었으니까.
어차피 확고한 베스트 일레븐도 정해져 있었고.
하지만 오늘 유독 라인업을 짜는 게 어려운 이유는 당연하다.
이번 FA컵 32강 맨유전.
베스트 일레븐을 가동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64강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슈미트 감독은 후보 선수들과 유스 선수들을 이 경기에 내보낼 생각이었다.
물론 주전 선수들을 내보낸다면, 충분히 맨유를 잡고 16강에 올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리그에서도 맨유를 두 번이나, 그것도 큰 스코어 차이로 잡았으니까.
하지만 현재 팀이 엄청나게 빡빡한 일정의 한 가운데 있다는 게 문제다.
그리고 그걸 다 소화해내다간 탈이 날 거라는 게 문제고.
당장 32강전 3일 뒤 리그 29라운드 토트넘과의 경기가 있고, 일주일 뒤엔 뮌헨과의 2차전이 있다.
여기서 FA컵까지 욕심을 내는 건, 말 그대로 욕심이라는 게 슈미트 감독의 판단.
배가 올바르게 가기 위해선, 조타수가 이랬다 저랬다 해선 안된다.
시즌을 시작하기 전부터 팀의 목표는 확고했고, 그 목표에 FA컵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그랬는데 각이 조금 보인다고 경로를 틀었다간, 배가 폭풍우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도 있다.
“브랜든 스미스··· 시구르드손··· 오케이.”
유스 팀 책임자인 브라이언 맥웰이 보내준 보고서를 참고해 명단 작성을 마친 슈미트 감독.
그리고 나서, 슈미트 감독은 감독실을 나섰다.
언론과의 인터뷰 하나가 잡혀 있어 그 스케쥴을 소화하러 가야 했다.
ㆍㆍㆍ
“···”
FA컵 32강전 당일.
공개된 양 팀의 선발 라인업을 받아든 맨유 감독 예룬 하우어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 능구렁이 같은 영감이···!’
웨스트 햄의 선발 명단을 보자마자, 하우어 감독은 ‘당했다’는 생각을 했다.
골키퍼부터 최전방까지, 모두 후보 선수들로 채워진 명단.
심지어 교체 명단까지도 유스 선수들로 구성한 웨스트 햄이었다.
사실 이거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웨스트 햄은 64강에서도 그랬었으니까.
물론 64강과 32강은 다르고, 그 상대도 다르다지만.
리그와 챔스를 병행 중인 웨스트 햄의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이번에도 후보 선수들로 FA컵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는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하우어 감독이 당했다고 느낀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건 며칠 전, 슈미트 감독이 언론과 했던 인터뷰 내용 때문이었다.
-트레블에 대한 자신감 내비친 슈미트 감독, FA컵 32강 맨유전 필승 예고
······슈미트 감독은 올 시즌 트레블 가능성에 대해 “자신 있다.”고 대답했다. 또, “이런 기회는 흔치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라며 트레블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슈미트 감독은 이번 FA컵 32강 맨유전에 대해, “FA컵은 버리는 대회가 아니다. 우린 모든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 자격이 있다.”며 총력전을 벌일 것임을 예고했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자신이 너무 순진했음을 하우어 감독은 깨달았다.
그 기사를 철썩 같이 믿고, 오늘 라인업을 짰으니까 말이다.
오늘 맨유의 선발 라인업은, 리그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주전 선수들이 선발로 이름을 올렸다.
전력을 다할 각오로 왔다는 얘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슈미트 감독의 인터뷰를 봤기도 했고, 웨스트 햄에게 또 다시 진다면 타격이 클거라 생각하기도 했다.
현재의 맨유는 젊다.
이 경험이 적은, 앞으로 뛸 날이 많이 남은 선수들이 웨스트 햄을 만날 때마다 진다면 어떻게 될까.
나중엔 웨스트 햄만 만나면 기가 죽고 시작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 무조건 이기겠다는 각오로 풀전력을 들고 나왔던 거다.
근데, 웨스트 햄이 전부 후보로 스쿼드를 다 채워 왔으니.
김이 빠질 수밖에.
게다가 지금의 맨유는 맨시티와 경쟁하며, 마지막까지 웨스트 햄을 추격해야 하는 입장.
그런데, FA컵까지 전력을 다한다면 그 여파가 생길 수밖에 없다.
반면 웨스트 햄은 선택과 집중을 확실하게 한 것이고.
“하아···”
하우어 감독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자신이 젊고 유능하기로 업계에서 정평난 감독이라지만, 슈미트 감독의 연륜은 무시할 수 없는 듯 했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웨스트 햄을 3대1로 꺾고 16강에 진출합니다! 길고 길었던 웨스트 햄전 연패를 끊어내는 맨유! 웨스트 햄은 아쉽지만 올 시즌 트레블의 가능성은 멈추게 되었습니다!>
이날 경기는 맨유가 승리를 가져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경기를 마친 후 악수를 나누는 양 팀 감독들의 표정은 승패가 뒤바뀐 것처럼 보였다.
하우어 감독은 찝찝해 보였고, 슈미트 감독은 홀가분해 보였으니.
비록 전반이 끝나자마자 4명을 한꺼번에 교체하고, 70분 경에 한 명을 더 교체하면서 주전들의 체력을 아끼긴 했지만.
그래 봐야 다섯 명. 나머지 여섯 명은 꼼짝없이 풀타임을 뛰었다.
반면 웨스트 햄은 시작부터 끝까지 후보 선수들과 유스 선수들이 경기를 뛰었고, 주전 선수들은 벤치에도 앉지 않았으니.
애초에 이길 마음이 없는 상대를 이겼다한들 어찌 기분이 좋을까.
하우어 감독은 이겼음에도 오히려 잃은 게 더 많은 느낌이었다.
ㆍㆍㆍ
웨스트 햄과 토트넘의 리그 29라운드 경기가 있는 날.
경기가 열리는 토트넘 핫스퍼 스타디움 주변은 경기를 보러온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얼마라고? 젠장, 말도 안 돼.”
“이 정도면 싸게 파는 거야.”
“거짓말 치지 마.”
“거짓말 같으면 다른 놈한테 가서 구해봐. 그땐 나한테 다시 와도 팔지 않을 거야.”
“후, 젠장. 알겠어. 내가 사지.”
“잘 생각했어.”
그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뭔가 은밀한 거래를 하는 듯한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흔히 말하는 ‘암표’를 사고 파는 사람들이다.
판매자의 대부분은 토트넘 팬들이고, 구매자의 대부분은 웨스트 햄 팬들이다.
“누가 돈 밝히는 놈 회장으로 둔 팀 팬 아니랄까봐. 돈 겁나게 밝히네.”
“어쩔 수 없잖아. 그래도 시세가 너무 오르긴 했어.”
투덜대면서도 표를 구한 웨스트 햄 팬들이 경기장으로 향한다.
오늘 경기는 공식적으로 이미 매진 상태.
62,850석의 티켓이 모두 팔려나간 상태다.
요즘 해머스들 사이에선 티켓 예매가 거의 전쟁 수준이었다.
원래도 그렇긴 했지만, 최근 들어선 매우 심해졌다.
이렇게 말도 안 될 정도의 웃돈을 주고 암표를 구매해야 할 만큼 말이다.
“어쨌든 구해서 다행이네.”
“토트넘 시즌권 티켓이 내 손에 들려 있다니. 으으.”
요즘 들어 특히 암표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이유야 간단했다.
팬들 사이에서 초조함이 감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경기를 포함해, 올 시즌 남은 리그 경기는 9경기.
그 9경기가, 어쩌면 요한 반이라는 클럽 최고의 스타를 직접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초조함이 말이다.
“쟤들한텐 기대하면 안 되겠지?”
“할 걸 해야지.”
“하긴. 서포터란 놈들부터가 지네 시즌권을 팔고 있을 정도인데.”
“나 참. 살다 살다 토트넘을 응원하고 싶은 순간이 올 줄이야.”
참, 여러모로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어릴 때부터 응원해왔던 클럽이 우승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한 거고.
특히 한번도 우승을 해본 적이 없는 웨스트 햄의 팬들이니 그 마음이 더욱 큰 것 역시 당연한 건데.
리그 우승을 할 경우 더 이상 요한을 볼 수 없게 되니.
모든 걸 얻게 되는 그 순간이, 모든 걸 잃게 되는 순간인 것이나 다름이 없다.
요한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고 싶고, 그러면서도 팀의 우승은 보고 싶고.
그래서 요즘 해머스들이 가장 바라는 건, 리그 우승 경쟁이 최대한 끝까지 가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전력을 다하는 요한의 플레이를 마지막까지 보고 싶었으니까.
“우승하는 순간,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다면서 더 뛰겠다고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 기쁘겠지. 근데, 이젠 우리도 요한이 어떤 녀석인지 다 알잖아.”
“그래.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
요한이 생각이 바뀌어, 은퇴를 없던 일로 하고 계속 뛰겠다고 해준다면 정말 좋겠지만.
팬들도 요한에 대해 이젠 너무나 잘 안다.
데뷔 때부터 은퇴에 대한 열망을 밝히던 괴짜 천재 소년.
그 소년이 팬들이 원하는 선택을 해줄 것을 기대하긴 어려울 거라는 걸.
요한이 그동안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자신들에게 가져다준 행복은 너무나 컸다.
때문에 팬들도 마냥 이기적으로 굴 순 없었다. 이젠 요한이 스스로의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팬들이 대부분.
그래서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어쨌든 지금은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
경기는 아직 남아 있고, 오늘은 요한이 토트넘을 박살 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니,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이 순간을 최대한 즐기자.
팬들이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백 넘버 텐, 다니엘레 카펠로-”
“카펠로-!”
“백 넘버 나인, 요한 반-”
“요하아아안!”
“바아아아안-!”
경기가 시작되기 전, 웨스트 햄의 선발 라인업을 소개하는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우렁차게 복창하는 웨스트 햄 팬들의 목소리가 핫스퍼 스타디움을 가득 채웠다.
오늘 핫스퍼 스타디움은, 토트넘의 홈구장이 아니라 웨스트 햄의 홈구장 같은 느낌이었다.
*
이날 경기는 여러모로 토트넘 선수들에게 당황스러운 경기였다.
이번 경기를 굉장히 열심히 준비했던 토트넘이었다.
웨스트 햄과 더비 관계에 있는 토트넘이, 우승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웨스트 햄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고춧가루.
어떻게든 우승 경쟁에 빨간불, 아니 노란불이라도 들어오게끔 해주는 것뿐이었다.
때문에, 자신들의 홈에서 열리는 오늘 경기를 칼을 갈며 준비했던 토트넘이었다.
그런데, 경기장 분위기부터가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여기가 핫스퍼 스타디움인지, 런던 스타디움인지 헷갈릴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그런 가운데, 이곳을 확실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 건 요한이었다.
“와아아아아앗-!”
“컴 온! 그렇지이이이!”
“성자 요한이시여! 악의 무리 토트넘을 박살내주셔서 감사하옵니다!”
“이제 여긴 런던 스타디움 2호점이다! 크하하하하!”
요한은 전반에 1골, 후반엔 1골과 1도움을 기록하며 토트넘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후반 31분.
“substitution for West ham···”
요한이 케인과 교체되어 나왔을 때.
요한에겐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더비 관계에 있는 팀의 홈구장에서, 상대팀 선수에게 기립 박수가 쏟아지는 장면이라니.
토트넘 팬들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장면이었지만, 그들도 할 말은 없었다.
애초에 웨스트 햄 팬들에게 자신들의 표를 판 게 그들이었으니까.
“자! 다음은 에미레이츠다!”
“런던 스타디움 3호점 오픈 커밍-쑨!”
“근데 너 표는 있냐?”
“헤헤헤! 미리 구해놨지롱!”
“삽니다! 가격 제시요!”
아무튼.
이날 핫스퍼 스타디움의 분위기를 보며, 다음 리그 경기 상대인 아스날은 무척 긴장하고 있을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