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69)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69화(169/202)
< 168화 – 즐기자 >
“어, 요한아. 왔어?”
“예.”
“고생했다. 좀 쉬렴.”
경기를 마치고 돌아온 집.
엄마와 인사를 나눈 요한은 묘한 조용함에 집안을 둘러보았다.
“형이랑 아빠는요?”
“다 방에 들어가 있어. 기운들이 별로 없더라고.”
“왜요?”
“글쎄다. 아까 같이 경기 볼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경기 끝나니까 풀이 죽어서 들어가더라고. 뭐라더라. 이제 요한이 경기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아서 슬프다나.”
“흠.”
어깨를 으쓱이곤 방으로 들어가는 요한.
집사님이 청소를 해주시는 방은 항상 청결하게 유지되어 있어, 경기가 끝나고 방에 들어오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
깔끔한 게 좋다기보단, 청소를 할 필요 없다는 게 기분이 좋은 거다.
“흣차.”
침대에 벌렁 드러눕는 요한.
방에 돌아오면 요한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정말 아무것도.
또래 아이들이 흔히 하는 게임도 안하고, 그 흔한 유투브도 보지 않는다.
요한이 방에서 하는 건 오로지 잠을 자는 것뿐이다.
뭔가 좀 다른 걸 해보고 싶어도, 글쎄.
일단 경기를 뛰고 오면 그것만으로 하루 치 활동량을 다 소모한 기분이라, 집에 돌아오면 손 하나 까딱하기도 싫다.
그래서 항상 미뤄왔다.
뭘 좀 해보고 싶어도, 은퇴한 다음에.
항상 은퇴하고 나서 하지 뭐, 라는 식으로 미뤄왔던 요한이다.
누워서 자는 게 제일 좋다지만, 사람이 24시간을 잘 수는 없는 법이다.
요한도 하고 싶은 게 있다.
예를 들면 뭐··· 아빠랑 같이 맥주를 마신다든지.
형이랑 과자 먹으면서 게임을 한다든지.
또는 엄마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든지.
이런 일상적인 것들.
좀 더 거창하게 계획을 짠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아직 확인해 본 적은 없지만, 주급이 많이 쌓여 있을 테니 그걸로 가족들이 함께 지낼 새 집을 산다거나.
아빠가 좋아하는 자동차를 몇 대 선물 하고, 엄마에겐 백화점을 통째로 빌려 쇼핑을 하게 해드리고.
형에겐, 글쎄.
형이 하는 축구 게임에 현질이나 왕창 해줄까.
‘다들 좋아하겠지?’
요한은 천장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 외에도 많을 텐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뭘 할지의 생각조차 은퇴 뒤에 하자고 미뤄 왔어서 그런가.
‘흐음.’
근데, 문득 생각해보니 뭔가 다 일맥상통 한다는 느낌이 든다.
모든 게 한가지 키워드로 묶인다.
‘가족.’
요한은 1년 전, 가족들과 함께 호텔에 갔을 때를 떠올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꽤 행복했었다.
아빠와 엄마, 형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행복했었다.
그 모습을, 좀 더 오래 보고 싶었다.
기왕이면 아주 오랫동안.
사실 축구를 결국 하게 된 것도 그렇지.
형이 좌절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고.
아빠가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기에 그날 그렇게 테스트에 뛰어든 것이었으니까.
결국 제일 소중한 건 가족들이었다.
아빠, 엄마, 그리고 형.
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곧 가장 큰 행복이었다.
“···”
요한은 방금 집에 돌아왔을 때, 조용한 집에서 느꼈던 묘한 느낌이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언제나 경기가 끝나면, 아빠와 형이 잔뜩 흥분한 상태로 자신을 맞이해 주었었다.
오늘 경기는 어땠고, 골 장면이 어땠고, 정작 자신은 관심 없는 이야기를 하며 맞이해주던 가족들.
매주 마다 항상 그러니, 이젠 귀찮을 지경이었지만.
막상 없으니 또 허전하다.
단순히 허전하기만 한 게 아니라, 뭐랄까.
“흐음.”
잘 모르겠다.
진짜 잘 모르겠다.
‘얼마 안 남긴 했지.’
아직 모르는 일이긴 하지만, 만약 이번 시즌에 우승을 차지한다고 가정해 본다면.
많아야 열 몇 경기 정도가 남은 걸로 알고 있다.
정말 몇 경기 남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꿈꿨던 은퇴까지.
지금까지는, 그저 은퇴를 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뿐이었다.
은퇴를 하면 훈련장에 가지 않아도 되고, 경기장에 가지 않아도 되며, 먹고 싶은 걸 마음대로 먹을 수도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한데, 오늘따라 다른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은퇴를 하고 나면, 가족들은 어떨까.
자신 때문에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자신이 골을 넣고 경기에 이겼을 때만큼, 순수하게 행복해하는 모습을.
“···”
요한은 말똥말똥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봤다.
침대가 아니라 어디든 머리만 닿으면 30초만에도 잠드는 요한이, 오늘따라 쉽게 잠에 들지 못하고 있었다.
*
“표정 어땠어요?”
“좀 시무룩해 보였어?”
“글쎄. 별 생각 없어 보이던데.”
김라희의 말에 머리를 긁적이는 로한과 반석호.
별 생각 없어 보이면 안되는데.
“쩝. 안 통하는 건가?”
“하고 싶은 얘기도 잔뜩 참았는데. 괜히 참았구만.”
“그러게요. 핫스퍼 스타디움에서 기립 박수 받은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얘기해주려고 했는데.”
아쉬운 얼굴의 로한과 반석호.
언제나 그렇듯 경기를 마치고 돌아온 요한이를 반갑게 맞이해주고 싶었지만, 일부러 참고 방구석에 숨었던 둘이었다.
근데, 뭐 녀석답게 별 생각 없어 보인다니.
역시 안 통하는 건가.
뭐, 어쩔 수 없네.
“다음엔 괜히 연기하지 말죠. 아빠. 이긴 거 축하해줄 날도 얼마 안 남았어요.”
“그래. 헛수작 부리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하자꾸나.”
“오늘 경기나 다시 보실래요?”
“그러자.”
로한과 반석호는 언제나 그렇듯, 티비 앞에 앉아 요한의 경기를 돌려보기 시작했다.
ㆍㆍㆍ
“요한 경. 오늘따라 컨디션 좋아 보이는데?”
“제가요?”
“어. 너, 이렇게 적극적으로 워밍업하는 건 처음 봐.”
“그랬나.”
고든의 말에 요한이 어깨를 으쓱였다.
적극적으로 몸을 풀었다니, 그랬나.
딱히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다들 1차전처럼만 하자. 방심하지 말고, 그렇다고 조심스럽게 하지도 말고. 0대0이라 생각하고, 우리가 늘 하던대로. 오늘도 박살 내보자!”
“어이예!”
오늘은 바이에른 뮌헨과의 8강 2차전이 있는 날.
선수들은 상당한 의욕을 내비치고 있었다.
오늘, 말도 안되는 스코어로 패배하지만 않는다면 챔스 4강에 진출할 수 있다.
지난 시즌 FA컵 4강에 진출했을 때도 꿈만 같았는데, 챔피언스 리그 4강이라니.
그것도 바이에른 뮌헨이라는 메가 클럽을 꺾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지만, 자신감은 있다.
지금까지 쌓아온 승리들로 누적된 자신감은 이제 확신이 되어가고 있다.
선수들은 모두 홈팬들 앞에서 팀이 4강에 진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함께 기쁨을 누리고 싶었다.
“요한 경. 오늘도 잘 부탁한다.”
“오늘도 3골만 넣어달라구. 이왕이면 1, 2차전 다 이기고 올라가야 가오가 살지 않겠어?”
“걱정 마세요.”
“크으,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걱정할 이유가 없지.”
요한도 마찬가지다.
얼마 남지 않은 이번 시즌.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
요한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은퇴 이후를 걱정하는 건, 일단 은퇴를 하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다.
나중을 미리 걱정할 바엔, 일단 지금에 충실하는 게 먼저.
경기가 얼마 남지 않은만큼, 그 경기들에 집중할 생각이다.
모든 경기를 이기기 위해 노력할 거고, 오늘도 마찬가지다.
“자, 가자!”
“소시지 놈들, 런던에 온 걸 환영해주자고!”
“야 이놈아. 네 감독도 소시지냐?”
슈미트 감독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이는 고든을 보며 피식 웃은 뒤, 요한은 동료 형들과 함께 그라운드로 향했다.
*
<오늘 뮌헨의 선발 라인업은, 다소 무게감이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최전방에 페테르 얀센 대신 데어 로마이어가 출전했고, 라이트백엔 카밀 타운젠드 대신 얀 페데르센이 출전합니다.>
<그 두 선수도 좋은 자원들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주전이 두 명 빠졌다는 게 중요한 사실이겠죠. 더 중요한 건, 모든 주전들이 뛰었던 1차전에도 뮌헨이 패배했다는 것이구요.>
<물론 1차전엔 예상치 못한 퇴장이 있었던 뮌헨이었습니다. 사고가 없었다면 결과가 다를 수도 있었지 않겠습니까?>
<오늘 경기를 통해, 확인해보면 알겠죠.>
<자, 반면 웨스트 햄은 1차전의 멤버들이 모두 그대로 출전했습니다. 3대0의 점수 차가 있지만, 방심하진 않겠다는 모습입니다.>
뮌헨은 여러모로 상황이 좋지 않다.
일단 0대3의 스코어를 뒤집어야 하는 상황인데, 홈도 아니고 원정에서 기적을 만들어내야 하는 어려운 상황.
게다가 1차전의 카드 트러블 때문에 주전도 둘이나 빠졌다.
1차전 멤버들이 그대로 나온 웨스트 햄과 비교하면, 정말 여러모로 암울한 상황.
이 암울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최대한 빠른 득점.
무슨 일이 있어도 최대한 이른 시간에 만회골을 터뜨리고 경기를 시작하는 것.
때문에,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뮌헨은 상당히 공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0대1로 뒤지고 있는 팀이 후반 막판 무지성 공격을 시도하는 것처럼.
<필리프 패스벤더, 전방으로 길게 패스를 시도합니다!>
<단순하게 공격을 전개하는 뮌헨이네요. 뮌헨에겐 90분도 넉넉지 않은 시간일 테니까요.>
원래 스타일과는 정반대의 패턴으로 공세를 퍼붓는 뮌헨.
본래 후방 빌드업과 정교한 패스로 완벽하게 찬스를 만드는 걸 즐기는 뮌헨이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완벽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시도하는, 모 아니면 도의 도전이 필요한 상황.
<로마이어, 헤더! 키퍼 손 맞고 튀어 나오는! 재차 슛!>
<어어, 들어갔어요! 들어갔습니다!>
<부심의 깃발이 올라갔습니다! 골라인을 넘어갔습니다!>
<이거, 상황이 재밌게 흘러가는데요!>
확실히 절박한 상황의 뮌헨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전반 8분.
패스벤더가 박스 안으로 붙인 롱 패스를 키가 큰 로마이어가 헤더로 연결했고, 그걸 휴리첼이 잘 쳐냈으나, 그 공이 하필 로마이어 앞으로 다시 가면서 리바운드 슈팅을 내줬다.
그 슈팅마저도 휴리첼이 반응을 해내며 막았나 싶었지만, 공은 간발의 차로 골라인을 넘어버려 골로 인정이 되었다.
“돌아가! 돌아가!”
“이제 시작이다!”
공을 들고 빠르게 하프라인으로 뛰는 뮌헨 선수들.
일단 계획대로 이른 시간에 만회골을 터뜨리는데 성공하며, 뮌헨의 분위기가 확 살아나기 시작했다.
뮌헨 정도의 팀이 분위기를 타기 시작하면, 10분에 세 골을 넣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다.
때문에, 약간의 불안감이 퍼지기 시작하는 런던 스타디움인데.
<웨스트 햄의 킥오프로 경기가 재개됩니다.>
<천천히 공을 소유하면서, 뮌헨이 계속 공격의 기세를 올리지 못하도록 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요, 웨스트 햄.>
재개되는 경기.
해설자의 말대로, 웨스트 햄은 좀 더 공을 여유롭게 소유하면서 경기의 템포를 늦출 필요가 있어 보였다.
“헤이!”
“자, 카펠로!”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인지, 공이 카펠로에게로 넘어간다.
공을 소유하며 템포를 조절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카펠로.
물론 뮌헨도 지켜보고만 있지 않고, 빠르게 전진하며 압박을 들어간다.
그런데,
“뛰어!”
뻐어어어어어엉-!
카펠로는 공을 오래 소유하고 있지 않았다.
대신, 오히려 전방을 향해 길게 패스를 때려 넣었다.
공을 소유하며 점유율을 높이는 것, 물론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그게 최선은 아니라고 카펠로는 생각했다.
오늘, 요한의 컨디션이 굉장히 좋아 보였으니까.
슈우우우우웅-
파아앙-!
카펠로의 패스는 요한에게 이어졌고, 요한은 꽤 널찍한 공간에서 공을 받아냈다.
급한 뮌헨이 빠르게 압박을 올라갔는데, 카펠로가 더 빠르게 패스를 찔렀으니 당연한 일.
타타탓-!
공을 받은 요한은 번개처럼 뮌헨의 골문을 향해 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뮌헨 입장에선 두려울 정도.
<빠, 빠릅니다!>
<저지하지 못합니다! 뮌헨!>
요한의 돌파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뮌헨의 수비수들.
속도를 잡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몸으로라도 막을 수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어쩌면, 뮌헨이 2차전을 맞이하면서.
가장 암울한 지표는 0대3의 스코어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도, 주전이 2명 빠졌다는 것도, 원정에서 경기를 해야 한다는 것도 아닐지 몰랐다.
경기를 뒤집어야 하는 뮌헨에게 가장 암울한 사실은, 요한이 오늘따라 보고 싶은 게 있다는 것일지도 몰랐다.
<요한! 슈우우웃-!>
<고오오오올-! 들어갔습니다!>
<눈 깜짝할 새에 동점골, 아니 다시 달아나는 골을 터뜨리는 요한!>
<잠시나마 불안해하던 홈팬들에게 확신을 주는 골입니다! 자기가 있는데 불안해할 게 뭐 있냐는 듯이 말이죠!>
오른발로 때린 슈팅이 골망을 출렁였을 때.
요한은 기뻐하고 있을 가족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보고 싶다.
형과 아빠, 그리고 엄마가 자기 때문에 기뻐하고 있는 모습을.
“와아아아아아-!”
“요하아아안!”
“바니!”
물론 그 모습을 지금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요한은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이 팬들 한 명 한 명이 형, 아빠, 엄마라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 팬들이나 가족들이나, 똑같이 기뻐하고 있을 게 분명하니까.
“컴 온-!”
요한은 이례적으로, 골라인을 따라 달리며 주먹을 불끈 쥐고 포효했다.
그러자 팬들에게서 더 큰 함성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