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7)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7화(17/202)
< 016화 – 뛰기 싫어서 뛰는 사람 >
“감독님, 예상대로예요. 정확히 20분 늦었네요.”
“···”
“한 마디 해야겠죠? 제가 한 소리 하고 오겠습니다.”
“놔둬.”
“···예?”
“놔두라고, 멍청아.”
연습 경기가 있고, 다음 날.
요한은 첫날 때와 마찬가지로 훈련 시작 시간보다 20분 늦게 나타났다.
예상대로였다.
어제,
연습 경기에서 충분한 활약을 펼쳤으니 목표를 잃은 녀석은 다시 게을러질거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봐라.
바로 20분을 늦어 버린다.
게으른 것도 게으른 건데, 배짱도 보통이 아닌 녀석이었다.
나이 30먹은 베테랑들도 훈련에 늦으면 슈미트 감독에게 혼날까봐 벌벌 떠는데.
녀석은 슈미트 감독이 무섭지도 않은건지.
아니면 게으름이 무서움을 이길 정도인건지, 참.
“그래도, 한 마디 해야죠. 감독님. 수석 코치로서 가만둘 수가 없습니다.”
“네가 무슨 학생지도 선생이냐?”
“뭐 잘못 드셨어요, 감독님?”
그런데,
더 어이 없는 건 슈미트 감독의 반응이었다.
얼척이 없다는 표정으로 슈미트 감독을 바라보는 제이미 코치.
늦었으니 한 마디 해야하는 게 당연한데,
하지 말란다.
훈련 시간에 늦으면 누구보다도 화를 내던 게 본인이시면서.
“그럼 벌금은요? 벌금은 걷어야죠?”
“저 어린 녀석한테 벌금이 걷고 싶냐? 에라이, 피도 눈물도 없는 놈.”
“와, 지금 누가 누구보고?”
슈미트 감독을 보좌하는 수석 코치로서, 제이미 코치가 해야 할 일들은 매우 다양했다.
각종 서류의 글자 크기 키우기,
경기 영상 다시 보는 법 가르쳐 드리기,
매일 차로 출퇴근 시켜 드리기,
감독님 목 건강을 위해 대신 소리 치기,
그리고 지각한 선수들에게 벌금 걷기.
이 중 슈미트 감독이 제일 신경 쓰라고 했던 게 벌금 걷기였다.
1분이라도 훈련에 늦는 놈들은 모조리 체크해서, 빠짐 없이 벌금을 걷으라고 그렇게나 강조하던 영감님이었는데.
아무리 요한이 어린 아이라 해도, 원래 인정사정 없는 융통성 제로 끝판왕이 영감님 아니던가.
이건 명백한 차별이었다.
“차별?”
“차별이죠. 특혜를 주는 것 아닙니까.”
“내가 뭘 했다고?”
“지각했는데 안 혼내고, 벌금도 걷지 말라고 하셨는데요.”
“한 번 실수한 거 가지고 빡빡하게 굴어야겠냐? 열여섯살 짜리한테? 내 손자가 열여섯이다 이놈아. 넌 저 나이 때 실수 한 번 안했냐?”
“아니, 이걸 또 내가 혼난다고?”
헛기침을 하는 슈미트 감독.
어제, 훈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서.
꽤나 깊은 고민에 빠졌던 슈미트 감독이었다.
요한이, 이놈을 앞으로 어떻게 다뤄야 할까하는 고민.
기존 계획이 실패했다지만,
그렇다고 녀석을 길들이고픈 욕심을 접을 순 없었다.
어제 경기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한 녀석의 재능은, 말그대로 ‘진짜’였으니까.
축구 경력도 말도 안되게 짧고, 그 짧은 기간 동안 훈련도 열심히 하지 않았던 녀석.
그런 녀석이 1군 선수들을 상대로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
지금 이 상태로도 녀석의 재능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건 분명했다.
하지만,
한 명의 지도자로서 어찌 그것에 만족할 수 있으리오.
선수가 가진 능력이 100이라면 150을 끌어내야 하는 게 지도자의 의무다.
훈련을 게을리 해도 저 정도인 녀석이,
훈련을 열심히 하기 시작한다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보고 싶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만들어줄 수만 있다면, 녀석은 두 가지 중 하나가 될 것임이 분명했다.
장차 웨스트 햄의 돌풍을 이끌거나,
역대급의 이적료를 클럽에 선물하거나.
아니,
어쩌면 클럽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녀석의 가능성만 놓고 보자면, 그것도 절대 과언은 아닐 것이었다.
그러니 이대로 쉽게 포기할 순 없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녀석이 다시 어제와 같은 의욕을 보일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 방법.
슈미트 감독은 밤새 여러 방안들을 떠올려 본 결과, 결국 근본적인 답은 하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제 요한이 녀석답지 않게 의욕을 보인 건,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인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겠다는, 확실한 목표.
아무리 요한처럼 게으른 녀석이라도,
목표가 생기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달려들게 되어 있다.
“요한이 좀 불러와보게.”
“아, 예.”
그렇담,
결국 자신이 해야할 건 녀석에게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주고, 그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슈미트 감독은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어, 그래. 요한 군.”
“네.”
“어디 아픈 곳은 없지?”
“아, 네. 없어요.”
“다행이네. 표정이 별로 안좋길래 말이야.”
“좀··· 졸려서 그렇습니다.”
“허허허. 그래. 한창 아침잠이 많을 나이지.”
인자하게 웃으며 요한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슈미트 감독을 보며 제이미 코치가 미간을 찌푸린다.
저럴 영감님이 아닌데.
만약 팀내 최고 말썽쟁이인 맥카시가 지각을 하고, 졸려서 컨디션이 별로였다고 했으면 엉덩이를 걷어 차여서 쫓겨났을텐데.
“어제 경기하면서, 느낀 점은 있었나?”
슈미트 감독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이는 요한.
느낀 점이라.
“다들 엄청 열심히 뛴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 그럼 자네도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조금은 들었겠지?”
“···그렇진 않았어요. 전 그렇게 못 뛰어서요.”
“못 뛰는 게 어딨···을 수도 있지. 으음. 그래. 사람은 모두 다르니까.”
요한의 대답에, 하고 싶었던 말을 간신히 목구멍으로 삼키는 슈미트 감독.
제이미 코치는 아예 입을 틀어 막고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맥카시가 똑같은 말을 했다면, 과장 안하고 따귀를 맞았을지도 모른다.
이걸 참는다고?
저 영감님이?
‘재능이 다구나. 재능이 다야. 타고난 거 못 쫓아가···’
요한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제이미 코치였다.
뭐, 아무튼.
슈미트 감독은 슬슬 본론을 꺼냈다.
“그, 요한 군에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물어봐도 되겠나?”
“어떤거요?”
“뜬금없다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냥 할아버지랑 얘기한다 생각하고 편하게 대답해주게. 요한 군은 꿈이 뭔가?”
“···꿈이요?”
사뭇 진지하게 묻는 슈미트 감독.
꿈, 즉 목표.
무엇을 원하는가.
요한에게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주기 위해선, 일단 요한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음···”
조금은 예상치 못한 질문이라 잠시 생각에 잠기는 요한.
꿈이라.
사실 아주 어릴 때부터, 남들과 같은 거창한 꿈 따위는 없었던 요한이었다.
왜, 남들은 꿈이라 하면 의사, 군인, 변호사 같은 직업을 이야기하거나 세계 여행, 부자 되기 등의 소망을 얘기하는데.
요한은 항상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아.
다만,
생각해보니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건 하나 있긴 했다.
그게 뭐냐면.
“아무것도 안하고 사는 것··· 그게 꿈인데요.”
“아무것도··· 안하고 사는 것?”
아무것도 안하고 사는 것.
굳이 꿈이란 걸 찾자면, 그게 꿈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안하는 것.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아무것도 안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요한이었다.
“으음··· 멋진 꿈이구나.”
참으로 요한다운 대답에, 슈미트 감독이 뭔가를 꾹 참더니 말했다.
마음 같아서야 그렇게 게을러서 뭘 하겠느냐고 호통을 치고 싶었지만.
참아야지.
요한이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참아야지.
그래, 좋다.
영 내키지는 않는다만, 그거라도 목표로 삼을 수 있다면 됐다.
뭐가 됐든 목표가 있는 게 중요한 거니까.
“그 꿈, 이 영감탱이가 이뤄줄 수도 있는데.”
“···감독님이요?”
“그래. 아무것도 안해도 되게끔 말이야. 대신, 요한 군도 알고 있겠지. 아무런 노력도 없이 목표를 이룰 수는 없다는 걸.”
등가교환의 법칙이다.
목표를 이루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요한 군. 이번 주말에 리그 경기가 있네. 상대는 노리치 시티라고, 현재 리그 18위인 팀인데.”
“네.”
“그 경기에 나가 보겠나?”
“경기에요? 제가요?”
파격적인 제안을 던지는 슈미트 감독.
경기에 나가보겠냐고···?
글쎄다.
예상치 못한 제안에 요한이 머리를 긁적였다.
감독이 나가라면 나가야 되는거긴 하지만···
만약 강제가 아니라 선택권을 주는 거라면, 요한의 선택은 당연히 정해져 있었다.
안나간다.
경기에 나간다는 건 무지 귀찮은 일이니까.
때문에 요한이 고개를 저으려는 찰나.
슈미트 감독이 그 제안에 거부할 수 없는 한 가지 조건을 덧붙였다.
“만약 경기에 나선다면, 한 가지 약속하겠네. 그 경기에서 올린 공격 포인트 하나 당, 하루씩. 훈련 면제 쿠폰을 주지.”
“훈련··· 면제 쿠폰이요?”
“그래. 훈련 나오지 않고, 집에서 푹 쉬어도 되는 쿠폰.”
훈련을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집에서 푹 쉬어도 괜찮다고?
합법적으로?
요한의 얼굴에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 서리자, 슈미트 감독이 씨익 웃었다.
“해볼텐가?”
“···”
훈련 면제라.
생기 없이 멍했던 요한의 눈이 갑자기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ㆍㆍㆍ
“···티켓. 티켓! 티켓부터 구해야 돼! 설마 매진되진 않았겠지? 노리치가 그렇게 인기 있는 팀은 아니니까!”
우당탕탕!
요한은 갑자기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아버지 때문에 기겁했다.
이번 주말,
노리치 시티라는 팀과의 경기에 나가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드린 참이었다.
슈미트 감독의 제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그 경기에서 공격 포인트를 올리면, 그 개수 당 하루씩 훈련을 면제해주겠다니.
이를 어찌 거절할 수 있을까.
훈련에 안나갈 수 있다면야 뭐든 할 수 있는 요한이었다.
때문에,
요한은 슈미트 감독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
물론,
할 수 있을 것 같으니 받아들인 것이기도 했다.
올린 공격 포인트 당 하루니까, 한 개의 공격 포인트라도 기록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경기는 경기대로 뛰고, 또 훈련은 훈련대로 나가야 될 수도 있는 일 아닌가.
하지만,
큰 고민 없이 경기에 나가겠다고 대답했던 건 공격 포인트를 올릴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별로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두, 두 자리. 아니, 세 자리. 엄마도 가야지. 아들 데뷔전인데! 아이, 망할 놈의 인터넷! 로한아! 로한아!”
“네? 부르셨어요?”
“이거, 티켓팅 좀 해봐라. 빨리!”
“무슨 경기인데 그렇게 급하세요?”
“웨스트 햄 대 노리치! 이번 주말꺼!”
“노리치요? 빅매치도 아닌데요?”
“그게 아니라! 요한이가 그 경기에 나가게 됐다잖냐!”
“···예? 정말요? 요한아, 정말이야?”
“응.”
“핸드폰! 핸드폰! 젠장! 아빠, 카드요! 카드 좀 줘보세요!”
“여, 여기! 세 자리로 구해라! 제일 좋은 자리로!”
···뭐가 저리들 급하실까.
티켓 하나 예매하는데 전쟁이라도 일어난 듯 호들갑을 떠는 아빠와 형을 보며 요한은 이마를 짚었다.
“됐다! 됐어요! 구했어요, 세 자리!”
“좋았어! 컴 온!”
“우와이씨, 이게 실화인가? 벌써 요한이가 데뷔전을 치른다고?”
“아빠도 안 믿긴다, 안 믿겨!”
경기를 나가게 된 건 요한인데,
아빠와 형이 얼싸 안고 방방 뛰기 시작했다.
뭐, 당연히 그럴만 한 일이었다.
꿈에만 그리던 일이, 이렇게나 빠르게 현실이 되었으니까.
“요한아!”
요한의 손을 덥썩 잡는 반석호.
“잘해보거라. 아니, 잘 안해도 된다. 부담 가질 필요는 없지. 그냥, 네가 가진 능력. 딱 가진만큼만 보여줘라. 그럼 충분할거야. 그럼, 세상이 놀랄거다. 알겠지?”
“네.”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할 생각이다.
잘해야만 하는 경기다.
그래야,
쉴 수 있다.
반드시 따낼거다.
훈련 면제 쿠폰.
‘진짜, 하루 종일 자야지.’
요한은, 벌써부터 면제 쿠폰을 쓸 그 날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