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71)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71화(171/202)
< 170화 – 악당 출현 >
사실 프리미어 리그의 팬들에게 공동체 의식 같은 건 전혀 없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예를 들어 지난 시즌, 맨시티와 레알 마드리드가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맞붙었을 때.
프리미어 리그의 각 팀 팬들이, 같은 프리미어 리그 소속이라는 이유로 맨시티를 응원하진 않았다는 거다.
모르긴 몰라도 오히려 맨시티가 지길 바란 팬들이 훨씬 더 많을 거다. 훨씬.
특히 맨유 팬 같은 경우에야 말할 것도 없고.
물론 라 리가의 팬들도 비슷은 하겠지만, 프리미어 리그 팬들은 유독 그게 심하다.
이들에겐 이미 프리미어 리그가 그 자체로 완성된 세계 최고의 리그고, 이 안에서 우승을 하는 게 중요하지, 같은 리그의 팀이 유럽 정상을 차지하는가에 관해선 관심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차라리 안되길 바라면 바랐지.
한때는 대표팀마저도 응원하지 않는 팬들이 있을 정도였는데 뭐.
하지만, 올 시즌의 경우는 얘기가 좀 달랐다.
웨스트 햄을 제외한 프리미어 리그의 팀들이 모두 챔스에서 탈락한, 그것도 라 리가 팀들에게 탈락한 지금.
프리미어 리그의 팬들 사이에서, 은근히 웨스트 햄이 결승까진 진출하기 바라는 여론이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거다.
-프리미어 리그 챔피언은 왜 유럽의 챔피언이 될 수 없는가··· 맨시티, 챔피언의 굴욕
-라리가 3, 프리미어 리그 1··· 땅에 떨어져 버린 프리미어 리그의 자존심
-‘라리가 잔치’ 챔피언스 리그, 라리가 팀끼리의 결승전 되나? 유일한 희망, 웨스트 햄에게 달려 있어···
-벌써 결승전 대비? 레알 모레노 회장, “웨스트 햄 걱정 안 해··· 그들이 리그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자랑하고 있는 건, 그들이 라리가 소속이 아니기 때문.”
일단.
4강의 세 자리가 라리가 팀들의 차지가 되자, 라리가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다는 게 굉장히 거슬렸다.
특히,
-세비야 꺾고 4강 진출한 비야레알, PL 조롱? “우리가 프리미어 리그 소속이었다면 우승 트로피를 닥치는 대로 수집했을 것··· PL은 챔스 8강권 팀이 우승하는 리그.”
-대진운이 좋았다는 평가에 비야레알 페르난데스 감독 발끈, “우린 8강에서 같은 라리가의 세비야를 만났다. 프리미어 리그 팀을 만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대진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나?”
-레알과 준결승서 만나게 된 비야레알, 대진에 아쉬움 토로··· “우리가 AT 마드리드 자리에 있었다면 결승 진출이 훨씬 쉬웠을 것··· 뮌헨을 이기고 올라온 웨스트 햄? 뮌헨은 우리도 잡아 봤다. 놀랄 일 아냐.”
4강에 진출한 팀들 중, 비교적 최약체로 꼽히는 비야레알의 혀놀림이 프리미어 리그 팬들의 심기를 매우 건드렸다.
솔직히 말해 대진빨로 4강에 올라간 것들이, 맨시티나 리버풀을 한 수 아래의 팀이라며 입을 터는 꼴이 정말 꼴 보기 싫었다.
심지어 비야레알은 웨스트 햄까지도 깔보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근데 더 열 받는 건, 할 말이 없다는 거였다.
어쨌든 비야레알은 4강에 진출한 상태고, 웨스트 햄을 제외한 프리미어 리그 팀들은 모두 라리가 팀들에게 패해 8강에서 탈락했다.
이것은 그저 팩트.
심지어 비야레알은 2021/22시즌 챔스에서, 뮌헨을 8강에서 꺾고 준결승에 진출한 경험이 있어 웨스트 햄의 4강 진출이 놀랄 일 아니라는 말을 할 자격이 있기도 했다.
다 맞는 말이니, 억울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고.
그러니 더 열이 받는 것이다.
뿐만 아니었다.
사실 제일 열 받는 건, 리버풀을 꺾고 웨스트 햄과 만나게 된 AT 마드리드의 태도였다.
-자신감 드러내는 AT 마드리드 마르코 다린 감독, “리버풀을 통해 프리미어 리그의 수준 확인. 그들의 패턴은 뻔해서 막기 수월하다.”
└ㅈ까는 소리 하네. 주구장창 텐 백만 하면 누가 막기 어려움?
└90분 내내 수비만 하는 게 축구냐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안티 풋볼을 하고 있냐
└얘네 경기하는 거 보면 그냥 이길 생각이 없음. 무조건 비겨서 운빨로 올라가겠다는 생각뿐임
└밤에 잠 안 올 때 이 ㅅㄲ들 경기 틀면 바로 잠 오더라
-“최악의 180분이었다”는 비판에··· AT 마드리드는 오히려 즐기는 반응. “4강은 더 최악으로 만들어 줄 것.”
└하 이 새끼들이 한 라운드씩 올라올수록 챔스 흥행은 떨어진다 ㅋㅋ
└ㅅㅂ 어느 팀보다 얘네가 제일 무섭다
└진절머리나네 진짜 ㅋㅋ
└이게 다 리버풀 잘못이다
└4강도 개노잼이겠네 ㅅㅂ 얘네 결승까지 가면 진짜 재앙인데
└얘네가 결승 가면 올 시즌 챔스는 멸망이지 ㅋㅋㅋ
리버풀과 AT 마드리드가 맞붙은 이번 8강전.
이 두 팀이 벌인 180분간의 경기는, 이번 시즌 최악의 180분으로 평가받고 있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지리멸렬한 경기였다.
AT 마드리드는 공격수들까지 내려와 전원이 수비에만 집중했고, 리버풀은 그런 AT 마드리드를 공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답답함을 연출했다.
아마 AT 마드리드나 리버풀 팬들도 이 180분 동안을 다 본 사람이 드물 정도로, 정말 볼 것 없는 경기였다.
때문에 엄청난 비판들이 따르기도 했다.
리버풀은 AT 마드리드를 떨어뜨리지 못했다는 걸로 비판을 받았고, 노잼의 주범인 AT 마드리드는 축구의 질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극렬한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그렇게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그들의 논리를 이길 수 없었다.
-안티 풋볼 논란에 입 연 AT 마드리드 마르코 다린 감독, “프로 축구에서 승리보다 중요한 것이 있나? 우린 누구보다 본질에 충실했을 뿐.”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다.
이 문장에 반박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순 있지만, 어쨌든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 축구의 세계에서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다.
결국 말 문이 막힌 팬들이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외부의 적 앞에선 내부의 적도 동료가 되는 법.
AT 마드리드를 상대하게 된 웨스트 햄을 응원하는 일 말이었다.
└요한한테 참교육 당해봐야 정신 차리겠지
└제발 AT 떨궈서 결승이라도 좀 재밌게 보자
└이번만큼은 웨스트 햄 응원한다
└그래도 결승 한자리에 프리미어 리그 팀이 있어야 가오가 살지 않겠어?
└웨스트 햄 니들 잘 해라. 고작 AT 마드리드한테 떨어지면, 우리까지 우스워지는 거야
└안티 풋볼 빌런을 무찌르기 위해 풋볼 그 자체 요한이 간다
└될까···? 되겠지?
└설마 요한을 못 믿는거임? 불안하면 니들이 응원하는 팀이랑 웨스트 햄이랑 했던 경기 다시 보고 와
└니넨 뒤졌다 노잼 마드리드 ㅋㅋㅋㅋ
ㆍㆍㆍ
챔피언스 리그 8강 일정을 마무리한 뒤.
웨스트 햄의 다음 일정은 리그 30라운드.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아스날과의 원정 경기였다.
이날 경기 역시, 지난 29라운드 토트넘 전의 양상이 비슷하게 이어졌다.
평소보다 훨씬 많은 해머스들이 토트넘 핫스퍼 스타디움을 메웠던 것처럼, 이번에도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엔 웨스트 햄의 응원가가 더욱 크게 울려 퍼졌다.
안 그래도 런던 내에서의 원정은 원정 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워낙 가까우니까.
리버풀이나 맨체스터, 뉴캐슬 같은 곳으로 떠나는 원정에 비하면 그냥 동네 마실 수준이라.
그나마 원정이라는 느낌을 주는 게 경기장의 분위기, 그리고 홈팬들의 격한 환대다.
그러나 오늘은 그것마저도 느껴지지 않으니, 사실상 원정 경기라는 의미가 전혀 없었다.
“이 배신자 새끼들이···”
“푼돈에 영혼을 팔다니···”
“푼돈은 아니긴 하던데··· 요즘 보니까···”
“뭐라고?”
“아, 아냐.”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제 집 안방처럼 만들고 있는 해머스들을 보며 이를 가는 구너들.
지난 번, 핫스퍼 스타디움이 해머스들의 차지가 되는 걸 보고.
구너들은 모두 약속했었다.
돈 따위에 영혼을 팔지 말자고.
돈밖에 모르는 토트넘의 수전노들과 달리, 자신들은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지켜 아스날의 정신을 보여주자고.
근데, 말뿐인 약속이었나.
다들 그렇게 약속해놓고, 다 어디 간 건데.
“웰컴 투 어나더 런던 스타디움!”
“런던 스타디움 3호점 오픈!”
“프랜차이즈 문의 대환영!”
구너들에겐 안타까운 일이긴 하나, 어쨌든.
에미레이츠 스타디움도 요한을 눈에 담아두고 싶어하는 해머스들에게 점령이 되었고.
경기는 아스날에게 매우 어렵게 흘러갔다.
*
<웨스트 햄이 오늘도 무패의 기록을 이어갑니다!>
경기는 3대1, 웨스트 햄의 승리로 끝났다.
요한은 1골 2도움을 기록한 뒤 77분에 교체되었고, 남은 선수들이 점수를 잘 지키며 승리 역시 지켜냈다.
재밌는 건, 경기가 끝난 뒤 아스날의 몇몇 젊은 선수들이 자기들끼리 다툼을 벌였다는 것이었다.
근데, 그 다툼의 이유가 형편없었던 경기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내 거라니까!”
“그게 왜 네 건데! 맡겨놨어?”
“야, 야! 가위바위보 하자, 가위바위보.”
선수들은 요한과 유니폼 교환을 할 수 있는 특권을 두고 서로 다퉜다.
어쩌면 오늘이 요한과 유니폼을 교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으니까.
아무튼 그 특권의 주인공은 아론 레이놀즈가 되었고, 요한의 유니폼을 받아간 레이놀즈는 미소를 감추지 못해 성난 구너들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어쨌든 이날 승리로, 웨스트 햄은 30라운드까지 28승 2무라는 압도적인 전적을 기록하게 되었다.
전승은 아니지만, 무패.
이젠 웨스트 햄의 우승 여부보다도, 무패 우승이 가능할 것이냐가 더 주목받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경기는 8경기.
그 8경기에서 패배하지만 않는다면, 웨스트 햄은 창단 이후 첫 1부 리그 우승을 무패 우승으로 달성하는, 진귀한 기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남은 일정 중 까다로운 경기라면, 첼시나 맨시티와의 맞대결이 있을 거다.
다만 그 경기들도 모두 탑독은 웨스트 햄이다.
첼시는 물론이고, 맨시티도 이젠 웨스트 햄을 만나면 언더독으로 평가 받는다.
물론 변수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맨시티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탈락했고, 따라서 리그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다.
그 부분은 무시할 수 없을 거다.
하지만, 그래도 이길 수 있다. 충분히.
첼시나 맨시티보다 걱정인 건 역시 로테이션이다.
특히 요한이 휴식을 취하는 날.
그날이 가장 위험한 날이 되겠지.
또는, 조기 우승을 확정 지은 이후의 경기들도 위험할 것이다.
동기부여를 잃은 요한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뭐, 어차피 클럽이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는 모습을 볼 수만 있다면.
무패 우승이든 유패 우승이든 상관없는 해머스들이다만.
그래도 기왕이면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예쁘게 전적을 쌓아 왔는데,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떨어지면 더 좋지 않은가.
이런 기회가 다시 올 수 있을지도 미지수고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팬들이 무패 우승을 염원하는 건 다른 이유가 컸다.
요한 때문이었다.
요한은 이미 클럽 역대 최고의 선수.
곧 웨스트 햄을 대표하는 선수다.
그렇기에, 요한의 커리어가 곧 웨스트 햄의 자랑이 된다.
팬들은 요한을 수식하는 많은 문구 중, 이런 문구 하나가 추가되길 원했다.
웨스트 햄의 마법 같은 무패 우승을 이끈 사나이.
팬들이 원하는 건 그것이었다.
ㆍㆍㆍ
“으음. 여긴가. 바르셀로나, 유벤투스, 뮌헨이 처절하게 깨졌던 곳이.”
“내 생각보다는 조금 작네. 원정 팀들이 여기만 오면 정신을 못차리길래, 좀 더 클 줄 알았는데.”
“챔스 4강 경기가 열리기에 어울리는 곳은 확실히 아니야.”
2029년 4월 5일, 런던 스타디움.
빨간 줄무늬 트레이닝복을 입은 한 무리의 선수들이 텅 빈 경기장을 둘러보며 이야기한다.
하루 뒤에 있을 챔피언스 리그 4강 1차전을 위해 런던을 찾은 AT 마드리드의 선수들이다.
“그래도 요즘 인기 장난 아니던데.”
“나도 뭐 들은 것 같아. 원정 경기까지 다 매진시키고 다닌다던데?”
가볍게 적응 훈련을 시작한 선수들에게서, 최근 폭발적인 웨스트 햄의 인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홈 경기는 물론, 원정 경기도 웨스트 햄 팬들이 다 매진을 시킨단다.
“그럼, 내일도 당연히 꽉 들어차겠군.”
“그러겠지.”
관중석을 슥 둘러보는 선수들.
이 많은 관중석이 웨스트 햄의 팬들로 가득 찬다라.
선수들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재밌겠네.”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이야.”
약간은 변태끼가 느껴지는 미소들이다.
사실, 마르코 다린 감독이 이 팀에 부임한 이후.
그리고 다린 감독의 색깔을 입고 지금과 같은 축구를 하게 된 이후.
AT 마드리드의 선수들은, 홈팬들의 응원보다도 즐기게 된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상대 팀 팬들의 야유와 분노다.
극단적인 수비 축구로 안티 풋볼이라는 별칭까지 얻게 된 AT 마드리드다.
덕분에, 이들은 어딜 가나 엄청난 야유를 받는 팀이었다.
처음엔 선수들도 그런 야유에 고충을 겪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상대의 야유가 커질수록, 우리가 잘하고 있다는 뜻이다.”
멘탈적인 힘듦을 토로하던 선수들에게 다린 감독이 했던 말.
그게 선수들에겐 큰 영감이 됐다.
그리고 지금.
이미 AT 마드리드의 선수들은 다들 귀에 필터를 장착하고 있는 상태였다.
상대 팀 팬들의 야유를 곧 자신들을 향한 응원으로 바꿀 수 있는 필터 말이다.
그래서 내일 경기가 기다리기 힘들 정도로 기대가 되었다.
여기서 쏟아질 과격한 팬들의 야유.
얼마나 짜릿할까.
“악당 출현이다.”
“흐흐흐.”
AT 마드리드 선수들은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