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73)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73화(173/202)
< 172화 – 악당 퇴장 >
“어으···”
“진짜 아예 공격할 생각이 없네.”
고작 10여 분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답답함은 극에 달해 있는 상태였다.
멀찍이 주저앉아 박스 안을 점거하고 있는 AT 마드리드 선수들이 징그럽게 보일 지경.
마치 고구마를 10개 먹은 듯, 목이 턱 막히고 시원한 사이다를 갈구하게 되는 느낌을 모든 관중들이 받고 있을 때.
“어···!”
“움직인다!”
경기장의 한 선수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움직임에 모든 관중들이 기대감을 품기 시작했다.
특별한 움직임은 아니었다.
그 선수는 그저 박스 쪽에서 아래로 내려가고 있을 뿐이었고, 그 움직임에 AT 마드리드 선수들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선수의 움직임에, 모든 관중들이 반응하며 술렁이기 시작한 건.
그게 요한이기 때문일 것이다.
관중들이 찾고 있던 바로 그 사이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보여줘!”
요한이 하프라인 부근에서 공을 잡자, 관중들이 하나씩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어···?”
“가, 간다!”
전광판의 시계가 1초씩 흘러갈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관중들이 늘어난다.
요한이 달리고 있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리를 잡고, 촘촘하게 그물망을 펼친 채 기다리고 있는 11명의 상대 선수들을 향해,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타타탓-!
“으핫!”
“컴 온!”
요한이 자신을 가장 먼저 막아선 AT 마드리드의 투 톱, 제나스와 마르티네스를 가벼운 스텝 오버로 제쳐내자, 앉아 있는 관중의 숫자는 더 적어졌다.
이어서,
타타탓-!
“예에! 렛츠 퍽킹 고!”
“킵 고잉! 바니!”
AT 마드리드의 왼쪽 중원 라인, 데 파울과 펠릭스 사이를 엄청난 속도로 파고들고,
타타탓-!
마주한 레프트백 데울로페우를 힐 챱으로 속여내며 제쳐낸 뒤 다시 중앙으로 접어들어 갔을 때.
이미 관중석에 앉아 있는 관중들은 없었다.
하프라인에서부터 박스 근처까지.
눈 깜짝할 새에 다섯 명을 제껴버렸으니 당연한 일.
하지만.
“이제 어떻게···?”
“공간이 없어!”
일어선 관중들이 이를 깨문다.
요한이 깊숙하게 파고든 것까진 좋았다.
그러나,
깊숙하게 파고들었다는 건 결국 상대 선수들이 가장 많은 곳에 스스로 발을 들이밀었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박스 모서리 부근.
요한의 주변을 대여섯 명의 AT 마드리드 선수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근데 그뿐만이라면 양반.
나머지 선수들도 그 포위망의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다.
모든 선수들이 요한을 바라보고 있었고, 포위망이 한 곳이라도 뚫리면 곧바로 구멍을 덧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좁아도 너무 좁다.
아무리 요한이라지만, 저 좁은 공간을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
앞으로도 뒤로도 빠져나올 구멍이 없어 보인다.
“보여줘···!”
“해줘!”
답이 없어 보이지만, 요한은 언제나 생각지도 못했던 답을 보여줬던 선수.
때문에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간절히 요한을 바라보는 홈 팬들.
그 팬들의 외침에, 요한이 응답했다.
툭-!
박스 앞에서 살짝 속도를 죽였던 요한이, 왼쪽으로 공을 밀었다.
그리고 도움닫기.
슈팅을 때리려는 모션이다.
좋은 해법으로 보였다.
어차피 더 들어갈 수 없다면, 여기서 그냥 때려버리는 것도.
물론 수비수들이 촘촘하게 몸으로 막고 있어, 슈팅이 통과할 수나 있긴 할까 싶긴 했지만.
요한이라면 어떻게든 빈틈을 찾아내지 않을까 싶었다.
AT 마드리드의 선수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페인팅이었다.
스르륵-
다음 순간.
런던 스타디움에 작은 지진이 일었다.
모든 관중들이 손 머리를 하고, 동시에 펄쩍 뛰어올랐기 때문이었다.
“홀리 쉿-!”
“흐어엇!”
이 모두를 놀라게 한 건, 스쿱 턴이었다.
공을 주걱(스쿱)으로 긁는 듯 하다 하여 스쿱 턴이라 불리는 스킬.
요한은 슈팅을 때릴 듯 뒤로 당겼던 왼발로, 공을 부드럽게 긁으며 방향을 바꾸었다.
마치 물리 엔진에 버그가 일어난 듯한 움직임이었다.
어쨌든 수비가 속을 만큼의 슈팅 페이크를 주려면, 스윙의 속도를 미리 줄여선 안된다.
발에 공이 닿기 직전까지, 최대한 늦게 속도를 죽여야 상대를 완벽하게 속일 수 있는 거다.
그런 면에서 요한의 슈팅 페인팅은 완벽했다.
요한의 왼발은 공에 닿기 직전까지도 정말 슈팅을 때릴 것처럼 뻗어졌다.
그러나,
공 바로 앞에서 마법처럼 멈춘 발은, 과격하게 뻗어진 것과는 이질감이 들 만큼 공을 부드럽게 긁어갔다.
타타탓-!
순식간에 오른쪽.
방향 전환을 한 요한이 공을 툭 치고 달렸다.
슈팅 페이크에 완전히 속아버린 AT 마드리드 선수들은 몸을 한 번 뒤틀어야 했고, 그걸로 이미 요한을 따라잡기엔 늦어버렸다.
요한은 이미 완벽한 슈팅 각도를 눈앞에 둔 상태였다.
뻐어어어어어엉-!
니어 포스트를 보고 오른발로 때린 슈팅.
그 슈팅은,
슈우우우우우웅-
골키퍼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
철썩-!
골망을 꿰뚫었다.
“···”
그 순간, 필드 위의 모든 선수들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AT 마드리드 선수들이나, 웨스트 햄 선수들이나 모두.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우와아아아아아앗-!”
거대한 함성이 런던 스타디움을 감싸 안았다.
*
<앙까라 요한, 앙까라 요한, 앙까라 요한-! 골! 골, 골, 골, 골, 골, 골, 골ㄹㄹㄹㄹㄹㄹㄹ-!>
요한의 골이 작렬한 순간, 스페인의 한 방송사에선 익숙한 해설이 흘러나왔다.
앙까라 요한.
앙까라(encara)는 카탈루냐 어로 ‘여전히’, 또는 ‘계속’이라는 의미다.
그니까 앙까라 요한, 앙까라 요한은 여전히 요한, 계속해서 요한이라는 뜻이 된다.
하프라인에서부터 페널티 박스까지.
AT 마드리드의 1차 저지선부터, 최후의 마지노선까지.
모든 수비 라인이 붕괴되는 그 일련의 과정에, 요한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전히, 계속 있었다.
도저히 답이 안 나와 보이는 AT 마드리드의 밀집 수비를, 요한이 1인 돌격으로 뚫어 버렸다.
“내가 뭘 본 거지.”
“이걸 여기 와서 본 게 다행이야. 만약 집에서 혼자 봤다면, 난 내 눈에 문제가 생긴 줄 알았겠지.”
“속이 시원해지다 못해 얼어버리겠어!”
관중들은 AT 마드리드의 킥오프로 경기가 재개된 후에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다들 얼이 빠진 얼굴로 고개를 젓거나, 이마를 짚고 축 늘어져 버렸다.
몇몇은 혀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몇 번을 생각해봐도 말도 안되는 골이었다.
“···”
그건 AT 마드리드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말도 안 된다.
정말 말도 안 된다.
이런 식으로 실점을 당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팀도 아닌, 자신들이 고작 한 명의 선수에게 실점을 내준다고?
그것도 하프 라인에서부터 돌파 당하면서?
“바-니! 바-니!”
방금까지만 해도 자신들을 향한 야유로 가득했던 경기장이, 지금은 요한을 경배하는 찬양으로 가득하다.
이건 AT 마드리드가 좋아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전혀, 전혀 아니었다.
*
<자, 저희도 정신을 좀 차려보죠. 올해 푸스카스 상이 확실한 골이 나왔고, 웨스트 햄이 1대0으로 앞서가게 됐습니다. 이제 AT 마드리드가 어떻게 나올까요?>
<글쎄요. 일반적으로 생각해본다면, 동점을 맞추기 위해 이전보다는 공격적으로 나서는 게 보통이겠지만요. AT 마드리드는 좀 다르거든요. 0대1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지고 있는데도 계속 수비를 한다구요?>
<시간은 많이 남았으니까요. AT 마드리드는 그런 팀입니다.>
AT 마드리드는 독한 팀이었다.
상식적으로 0대1이 됐으면, 조금은 공격적으로 나오는 게 보통.
선수비 후역습의 스탠스는 유지하더라도, 적어도 좀 더 역습을 적극적으로 노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AT 마드리드는 독하게도 전원 수비의 잠금을 해제하지 않았다.
“버려!”
뻐어어어어엉-!
수비에 성공한 AT 마드리드의 수비수 살가도가 공을 멀리 차낸다.
역습을 위한 롱 패스가 아니라, 말 그대로 버리는 클리어링인데.
중요한 건 어쩔 수 없이 공을 버리는 게 아니라, 일부러 공을 버린다는 거다.
<전열을 재정비합니다, AT 마드리드.>
<오늘 경기는 전혀 이길 생각이 없어요. AT 마드리드가 노리는 건 오로지 2차전뿐입니다.>
역습도 결국은 공격이다.
역습을 나가는 순간, 역습에 투입되는 인원을 아무리 최소화한다 해도 수비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나 AT 마드리드는 공격수들까지 수비에 가담하는 전술을 사용하는 팀이다.
공격수 두 명이 역습을 한다는 건, AT 마드리드에겐 두 명의 수비가 자리를 비운다는 의미였다.
때문에, AT 마드리드는 역습을 노려봄직한 상황에서도 스스로 기회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쩌면 요한에게 한 방 제대로 얻어맞은 충격이 너무 커서, 더욱 웅크리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웨스트 햄으로서도 나쁠 것 없는 거 아닙니까?>
<그렇기야 한데, 확실히 한 점 차이로는 아쉽죠. 불안하기도 하고요. 2차전은 마드리드에서 치러지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웨스트 햄도 최소한 한 골은 더 만들고 싶을 거예요.>
지고 있는 상대가 공격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확실히 이쪽에서도 나쁠 게 없는 상황이다.
다만, 그래도 1점 차로는 부족한 게 사실.
무엇보다 요한이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1골을 누구 코에 붙여?
<요한이 다시 내려와서 공을 잡습니다.>
<저기서 공을 잡는 것만으로 경기장을 들썩들썩하게 만들 수 있는 선수는 요한뿐일 겁니다.>
<또한, 상대 선수들을 긴장하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요한뿐일 거구요.>
요한은 이따금씩 하프라인까지 내려와 공을 잡았다.
물론 자주는 아니었다.
요한으로서도 귀찮은 일이었으니.
다만, 가끔씩이라도 요한이 내려와 공을 잡는 건 굉장히 효과적이었다.
그것만으로도 AT 마드리드 선수들 전원이 긴장 상태에 들어갔고, 요한의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전체가 출렁거렸다.
굉장히 효율이 좋은 교환이었다.
요한 한 명의 한 발자국만으로, AT 마드리드의 모두가 두 발자국은 움직여야 했으니.
엄청난 이득의 체력 교환.
이 부당한 거래의 효과는, 시간이 지나 그 효과가 드러날 것으로 보였다.
<전반전이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웨스트 햄이 요한의 믿을 수 없는 원더 골로, 1대0으로 앞서간 채 전반을 마칩니다!>
뭐, 어쨌든 AT 마드리드가 전반을 0대1로 마친 건 괜찮은 결과라고 볼 수 있었다.
요한에게 말도 안되는 실점을 내준 게 옥의 티라면 옥의 티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공격을 잘 틀어막았고, 실점 이후에도 무너지지 않고 멘탈을 잘 잡았다.
<후반전, 시작됩니다.>
문제는 체력이다.
체력도 결국 상대적인 법이다.
안 그래도 공격보다 수비하는 쪽이 체력 소모가 크다.
하물며 그러한데, 웨스트 햄은 전반 동안 체력 소모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AT 마드리드에 비하면 말이다.
후반전 들어, 양 팀의 에너지 레벨 차이는 점점 눈에 띄기 시작했다.
<베일리, 왼쪽을 파고듭니다! 좋은 드리블! 그대로 크로스!>
<브루노 키퍼의 펀칭!>
<좋은 펀칭이었습니다만, 점점 웨스트 햄의 크로스 시도가 박스 안으로 전달되고 있습니다.>
템포를 높이기 시작하는 웨스트 햄의 공격에, 단단하기만 하던 AT 마드리드의 수비도 조금씩 빈틈을 노출하기 시작했다.
전반전 동안은 절대 용납하지 않던 크로스도 통과가 되기 시작하고, 몇 번의 중거리 슈팅도 골대 근처를 스치고 지나갔다.
“···”
무서운 얼굴로 필드를 바라보는 AT 마드리드의 마르코 다린 감독.
이대로 가면 시간 문제라는 걸 다린 감독은 느끼고 있었다.
체력 보유 상황이 너무 차이 난다.
선수 교체만으로 좁힐 수 없을 만큼.
“···아라고네스!”
필드 위의 리더 아라고네스를 부르는 다린 감독.
다린 감독은 스페인 어로 뭐라 뭐라 지시를 내렸고,
“···!”
아라고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악당이라고 불릴 거라면, 가장 지독한 악당이 되어주마.’
어금니를 깨무는 다린 감독.
이대로 흘러가게 놔둘 생각은 없다.
분위기를 반전시킬 생각이다.
모두가 자신들을 악당이라 부르고 있다.
다린 감독은 그게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그래서, 기왕 악당이 된 거.
가장 지독한 악당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모두!”
“?”
“뒤 생각은 하지 말고, 죽여.”
“···!”
다린 감독의 지시를 전하는 아라고네스의 말에, AT 마드리드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