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74)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74화(174/202)
< 173화 – 악당 퇴장 >
마르코 다린 감독은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다.
지금의 베스트 일레븐에서, 한두 명이 바뀐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다.
레프트백의 데올로페우 대신 벤치에 앉아 있는 후안 보토가 들어가든, 오른쪽 미드필더 그라네로 대신 미겔 카사스가 들어가든.
자신들이 추구하는 축구는 그대로 할 수 있다.
텐백이라는 건, 어떤 특정 플레이어의 개인 기량에 의존하는 전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건 플레이어들끼리의 호흡, 그리고 전술적 이해 능력 정도다.
그 다음은 개개인의 수비력과 체력 정도가 될 것이고.
그런 면에서 벤치 플레이어들이 2차전에 선발 출장한다고 해도, 팀의 전체적인 전력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애초에 이런 축구를 1년 동안 구사하기 위해선 엄청난 체력이 필요했고, 그 체력을 완성시키기 위해 엄청난 체력 훈련을 소화했던 선수들이다.
전술이 선수를 타지 않는다는 건, 분명한 자신들의 장점이었다.
반면, 웨스트 햄은?
선수 의존도가 높다.
무지하게 높다.
베스트 일레븐에서 한 명만 빠지더라도 심대한 타격을 입는 팀이다.
왜?
그들이 하는 축구는, 저 열한 명이 아니면 안되니까.
특히, 절대로 빠져선 안되는 선수가 한 명 있다.
그게 누구인진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겠지.
그 녀석만 없다면, 웨스트 햄은 솔직히 별 것 아니다.
여기까지, 아니 8강에 올라올 팀도 아니었다.
웨스트 햄이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건, 순전히 그 녀석 때문이다.
심지어 오늘, 실점을 내준 것도 오로지 그 녀석 때문이었고.
‘이해할 수 없었다고.’
입꼬리를 씰룩이는 다린 감독.
그동안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웨스트 햄을 상대하는 팀들이, 왜 그렇게 젠틀하게 공을 찼는지.
이렇게 답이 명확한데, 왜 모두 빙글빙글 돌아갔던 것일까?
욕먹는 게 두려워서?
에이.
‘욕은 이미 배부를 만큼 먹어봤어.’
어차피 욕은 많이 먹어봤다.
그러니 두려울 것도 없다.
‘비난은 한순간이야.’
게다가, 욕먹는 건 한순간이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남는 건 기록뿐이다.
AT 마드리드가 챔스 결승에 진출했다는 기록, 챔스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는 기록.
사람들이 4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관심이나 있을 것 같나?
심지어, 축구라는 건 몸을 맞부딪히는 스포츠다. 테니스나 탁구처럼 네트를 사이에 두고 고상하게 경쟁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예기치 못한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
그 정돈 다들 감수하고 경기를 하는 것 아닌가.
<후반 10분이 지나고 있습니다. 웨스트 햄이 다시금 템포를 높이려 하고 있는 듯 보이는데요.>
후반 10분이 지날 무렵.
경기의 양상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전반까지만 해도 속이 꽉 막힐 정도로 느린 흐름이었는데, 점점 템포가 빨라지기 시작한다.
웨스트 햄이 비축한 체력을 기반으로 좀 더 공격적으로 나선 탓도 있지만, AT 마드리드의 대응이 바뀌었기 때문이 더 크다.
타타탓-
퍼억-!
<강하게 붙습니다, 아라고네스! AT 마드리드가 거칠게 저항합니다!>
촤아아-
쿠당탕-!
<어어, 지금은 태클이 상당히 깊었는데요! 카펠로가 쓰러져서 고통스러워 합니다! 디오고 데 파울! 경고를 받습니다!>
공을 잡는 족족 거칠게 달려드는 AT 마드리드 선수들에, 웨스트 햄 선수들이 하나씩 나뒹굴기 시작한다.
카펠로는 패스를 넘긴 이후에 태클을 당해 크게 넘어지기까지 했다.
곧바로 쏟아져 나오는 야유.
그리고, 웨스트 햄 선수들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기 시작했다.
“어이!”
“뭐 하는 짓이야!”
웨스트 햄 선수들이 달려들자, 순순히 뒤로 물러나는 AT 마드리드 선수들.
괜히 싸우다 불필요한 카드를 받을 필요는 없다.
카드 한 장 한 장을 소중하게 써먹어야 하는 이들이다.
불필요하게가 아니라, 필요하게 받아야 한다.
“데 파울. 부탁한다.”
“어.”
아라고네스의 말에, 카펠로에게 가한 태클로 경고 한 장을 받은 데 파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역할이 데 파울에게 맡겨졌다.
이왕 거사를 치를 거라면, 경고가 없는 몸이 나서는 것보단 이미 경고 한 장이 있는 몸이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게 낫다.
데 파울은 슬금슬금, 조금 더 낮은 위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웨스트 햄의 프리킥으로 경기가 재개됩니다.>
짧은 프리킥으로 경기가 재개되고.
웨스트 햄은 좀 더 빠르게 패스를 돌리며 상대의 반칙에 휘말리지 않도록 주의했다.
파아앙-
파아앙-!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거칠게 압박하는 AT 마드리드.
그런 가운데, 자연히 빈틈이 열리기 시작한다.
그 빈틈을 카펠로가 놓치지 않았다.
파아아앙-!
빠르게 찔러 넣는 패스.
패스가 향한 곳은 요한의 발 아래.
그와 동시에,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데 파울이 요한에게 붙기 시작했다.
‘확실하게.’
침을 꿀꺽 삼키는 데 파울.
어설프게 처리해선 안 된다.
이쪽에서도 손해를 감수하고 하는 일인 만큼, 어정쩡하게 달려 들었다간 얻는 것 없이 손해만 볼 수 있다.
게다가, 상대는 만만치 않은 녀석이다.
웬만한 몸싸움도 콧방귀를 뀌며 튕겨내는 녀석.
그러니, 확실하게···!
촤아아아-!
미끄러져 들어가는 데 파울의 스터드.
날카로운 챙이 숭숭 나 있는 스터드가 향하는 곳은, 요한의 발목이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미안한 감정은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팀을 위한 일일 뿐.
데 파울은 뻗은 다리에 단단히 힘을 주었다.
그러나.
촤아아아-!
“···!?”
데 파울의 스터드가 허공을 갈랐다.
고개를 드니, 요한의 몸이 공중에 떠 있다.
데 파울의 태클이 닿기 전, 요한이 미리 점프를 뛴 것이다.
슈우우웅-
사실 원했다면, 요한은 얼마든지 두 발로 착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냥 좀 눕고 싶었거든.
퍼어어어억-!
요한이 둔탁한 소리를 데 파울의 위로 떨어졌다.
그 과정에서 요한의 대포알 같은 어깨가 데 파울의 명치를 짓눌렀고, 한쪽 팔꿈치는 데 파울의 턱을 돌려버렸다.
“크허억!”
“삐이이익-!”
곧바로 주심이 휘슬을 불려 달려왔다.
이상한 상황이었다.
굉장히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건 데 파울이었다.
하지만,
<옐로 카드를 꺼내드는 주심! 어, 그리고 레드 카드까지 꺼내듭니다!>
<데 파울에게 경고를 준 것 같네요. 그럼 두 장째니, 퇴장이죠. 데 파울이 퇴장입니다.>
<방금의 깊은 태클을 위험한 플레이로 판단한 주심! AT 마드리드가 한 명을 잃습니다!>
카드를 받은 것도 데 파울이었다.
방금의 태클은, 닿지 않았더라도 의도가 다분했기에 명백한 파울.
그 이후 요한이 착지하는 과정에서 가격이 있었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태클을 피하느라 뛰었고, 뛰었으니 떨어졌는데 거기에 데 파울이 있었을 뿐.
<데 파울, 일어나지 못합니다. 들것이 들어오고 있는데요.>
<엄청 고통스러워 하네요. 어쨌든 퇴장은 퇴장이니까요. 일단 나가야죠.>
데 파울은 들것에 실려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자신의 옆을 지나가는 데 파울을 보며, 다린 감독은 어금니를 깨물었고.
“내 말 맞지?”
“이런 쪽에선 귀신 같으시네요.”
“전문가 아니냐. 전문가. 어딜 굼벵이 앞에서 주름 자랑하려 들고 있어.”
벨라미가 웃으며 요한을 일으켜세워 주었다.
사실, 방금 카펠로가 쓰러졌을 때.
요한에게 슬쩍 다가와 귀띔을 해줬던 벨라미다.
상대 놈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고.
아니나 다를까.
데 파울이 방금 했던 태클은 공과 전혀 상관없는, 그저 사람 하나 담그려는 태클이었다.
그러나 벨라미 덕분에 대비를 하고 있던 요한이었고, 오히려 담궈진 건 녀석이 되었다.
“내가 저 아픔 잘 알지. 사실상 교통사고나 다름없어. 나도 며칠 동안은 목이 안 돌아가더라고.”
“···”
낄낄대며 요한의 어깨를 두드리는 벨라미.
벨라미가 제일 잘 알지.
요한이에게 잘못 맞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무튼, AT 마드리드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
데 파울이 제 꾀에 넘어가면서, AT 마드리드는 아무런 수확 없이 뼈 아픈 손해만을 보게 되었다.
애초에 두드려 보았던 계산이 전혀 맞지가 않았다.
1명을 잃는다는 것까진 계산에 있었지만, 그 손해를 감수할 수 있었던 건 상대도 핵심을 잃는다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핵심만 제거할 수 있다면, 다린 감독은 10명으로도 충분히 남은 시간을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서, 2차전에 승부를 뒤집을 생각이었지.
그러나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
심지어 실려 나가던 데 파울의 상태를 확인하니, 다린 감독은 계속해서 요한을 저격하라는 지시를 내릴 수도 없었다.
심각했거든. 데 파울의 상태가.
팀 닥터가 얘기하길, 아마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해야 할 거라고 했다.
아무리 1차전을 이미 망쳤다곤 하지만, 여기서 더 선수들을 잃을 순 없었다.
선수들을 더 꼬라 박는다고 해도,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결국,
남은 건 마지막 발악에 실패한 악당의 비참한 최후뿐이었다.
<웨스트 햄이 강하게 몰아붙입니다! 수적 우위를 살리겠다는 듯, 선수들이 모두 전진하는 웨스트 햄!>
11명이 합심해 최선의 수비를 펼치고도 한 점을 실점했던 AT 마드리드다.
그런데, 이젠 한 명이 없다.
한 명을 잃는 과정에서 얻은 것도 없다.
이젠 야유라고 쓰고 응원이라고 읽는, 홈 팬들의 분노도 없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웨스트 햄의 공격에, AT 마드리드는 속절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페트로비치의 크로스! 길게 빠져 나갑니다!>
<좀 높은 크로스, 그러나! 요한! 찍어 누릅니다! 들어갔습니다! 엄청난 타점의 헤더! 오늘 멀티골! AT 마드리드의 골문을 또다시 열어 젖힙니다!>
후반 21분, 요한은 경기 초반 AT 마드리드가 왜 그렇게 크로스 방어에 진심을 다했는지 그 이유를 보여주었다.
베일리와 공을 주고 받으며 왼쪽 사이드를 파고든 페트로비치가 높은 크로스를 올렸고, 그 공을 머리로 처리할 수 있는 건 요한밖에 없었다.
이건 박스 안에 아무리 수비가 많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높이의 공을 처리할 수 있는 게 요한 뿐이었으니.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후반 33분.
이번엔 카펠로가 기회를 열었다.
<좋은 전환 패스! 반대쪽이 비어 있습니다!>
<한 명이 부족한 AT 마드리드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빈 공간은 존재할 수밖에 없어요!>
오른쪽에서 짧게 패스를 이어가며 기회를 엿보다, 순식간에 왼쪽으로 긴 전환 패스.
그 패스가 요한에게 닿았고, 요한은 왼쪽에서부터 차근히 AT 마드리드의 수비 라인을 무너뜨리며 중앙으로 침투했다.
추풍낙엽이었다.
리드미컬한 스텝 오버로 풀백을 제쳐낸 요한은 중앙으로 접어 들어가다, 힐 챱으로 방향을 전환하며 다시 직선으로 치고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수비 둘이 동시에 미끌려 넘어지는 진귀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요한 정도의 바디 밸런스가 아니면, 그런 급격한 방향 전환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는 선수는 몇 없는 게 사실.
그 이후엔 간단했다.
요한은 파 포스트를 보고 강하게 슈팅을 깔아찼고, 키퍼가 발을 뻗어 보았으나 막을 수 있는 스피드가 아니었다.
<3대0! 3대0입니다! 라리가를 즐겨 보시는 분들이라면, 이 스코어가 놀라운 스코어라는 걸 아실 겁니다!>
<요한이 그걸 해냅니다!>
요한의 세 번째 골이 들어갔을 때.
웨스트 햄 팬들도 당연히 기뻐했지만, 사실 더 기뻐하고 있는 건 라리가의 팬들일지도 몰랐다.
AT 마드리드와 만나는 걸 제일 싫어했던 그 팬들 말이다.
라리가엔 요한처럼 AT 마드리드를 참교육해줄 수 있는 선수가 없었다.
정말 빌런 중의 빌런이었던 AT 마드리드를, 결국 요한이 참교육 해주는 모습을 보고.
라리가 팬들도 쾌재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 누구보다 제일 기뻐하고 있는 건 결승전의 흥행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UEFA 회장일 테지만.
<경기 끝났습니다! 3대0! 웨스트 햄이 홈에서의 1차전을 완벽하게 가져갑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시원한 대승에 홈 팬들은 큰 환호성으로 승리를 자축했고,
“···”
그 환호성을 들으며 AT 마드리드 선수들과 다린 감독은 굳은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이들이 예상했던 건 야유였다.
경기가 끝났을 때, 엄청난 야유가 쏟아지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다들 기뻐하고 있다.
엄청난 환호성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모습이 굉장히 열 받지만, 할 수 있는 건 없다.
악당 역할에 익숙해졌고, 이젠 즐기는 단계까지 왔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나 보다.
자신들의 패배에 사람들이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씁쓸하다.
여러모로 회의감이 드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