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78)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78화(178/202)
< 177화 –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
“좋은 아침···”
“굿모닝.”
“······어?”
눈을 비비며 방을 나오던 로한이 뭔가 이상함을 느끼곤 번쩍 잠을 깼다.
방금 아침 인사를 받아준 거, 아빠나 엄마의 목소리가 아닌데?
“요한아?”
“왜?”
“너 뭐해?”
“훈련 갈 준비하는데.”
“···네가 왜?”
요한이었다.
사과 하나를 우적우적 씹으며 신발을 신고 있는 요한.
로한은 자기가 늦잠을 잔 건가 싶어 시계를 다시 확인해봤다.
아닌데.
이른 아침인데.
요한이가 일어나 있을 시간이 아니란 말이다.
아니, 근데 잠깐만.
훈련 갈 준비를 한다고?
이 시간에 일어나 있는 것도 모자라서?
“훈련 가면 안되나. 나도 축구 선수인데.”
“···그건 그런데. 오늘 가는 날 아니잖아. 너, 첼시 전에서 네 골이나 넣었잖아.”
“꼭 오늘 써야 한다는 법은 없어.”
오늘은 월요일.
요한이가 경기를 뛰면서.
월요일 날 출근했던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나마 경기에 출장하지 않은 날 정도가 다였지, 경기에 뛰었던 그 다음 주엔 한 번도 없었다.
매 경기 공격 포인트를 올렸고, 그 공격 포인트로 훈련 면제권을 따냈었으니까.
그걸, 아주 당연하게 월요일부터 써왔으니 요한이에게 월요일은 무조건 쉬는 날이나 다름 없었던 거다.
근데, 그런 요한이가 훈련하러 간단다.
쟤 왜 저래?
“다녀올게.”
“어··· 그래. 잘 다녀와.”
머리를 긁적이며 요한을 배웅하는 로한.
나 참.
무슨 바람이 든 건지.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보다.
“누구랑 얘기하니?”
“어, 아빠. 요한이요. 아니 글쎄, 요한이 방금 나갔어요.”
“이 시간에 어딜?”
“훈련장이요. 훈련하러 간대요. 지 발로.”
“걔, 걔가?”
거실에서 들려온 소리에 방에서 나온 반석호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피식 웃는 반석호.
“요게 아빠를 놀려?”
“예?”
“농담도 믿을 농담을 해야 속는 시늉이라도 해주지.”
“농담 아닌데요. 요한이 방 열어보세요. 나갔다니까요.”
“···진짜라고?”
농담이 아니라는 로한의 말에, 요한의 방문을 열어보는 반석호.
진짜 없다.
아주 당연히 저 침대에 파묻혀 쿨쿨 자고 있어야 하는데.
“···뭐지?”
“몰라요.”
그래도 프로 축구 선수인데.
요한의 자발적인 출근은 굉장히 놀랄 일이었다.
*
요한의 출근에 놀란 건 반석호와 로한 뿐만이 아니었다.
당연히 웨스트 햄 선수들도 놀라 자빠졌다.
“뭐, 뭐고? 요한 경이 여기 왜 있노?”
“요한이? 헐. 진짜네?”
“뭐야? 왜 나왔어?”
요한의 등장에 다들 놀람을 넘어서 경악하는 수준.
다들 못 볼 걸 보기라도 한 듯 하다.
“뭐가요.”
“아니, 여기 왜 있냐니까?”
“훈련하러 왔는데요.”
“오늘 월요일인데? 면제권 있잖아? 그것도 네 장이나.”
“킵해뒀다가 나중에 쓰려고요.”
“···”
웃긴 일이었다.
다들 요한을 여기 있으면 안 될 사람처럼 취급하고 있었으니.
요한도 동료 형들의 반응이 좀 웃겼다.
물론 가장 재밌었던 건, 감독님의 반응이었다.
“···어?”
훈련 준비를 하는 선수들 사이에서 요한을 발견한 슈미트 감독은 두 눈을 비볐다.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 벌써 노안이라도 온 건가 싶었다.
아니면 요한이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헛것이라도 보나 싶었다.
“진짜 요한인데요, 감독님?”
“맞지? 내가 노망이 난 게 아니지, 제이미?”
슈미트 감독은 도저히 믿기지 않아 요한의 몸을 더듬더듬 만져보기까지 했다.
“···왜 이러세요.”
“혹시 어디 다쳤니? 헤딩 같은 거 하다가 머리 쪽이라든가···”
“아뇨. 멀쩡한데요.”
“그럴 리가. 멀쩡한 요한이가 제 발로 훈련에 나올 리가···”
겉으로 보기엔 아주 멀쩡해 보였지만, 헤딩을 잘못해서 머리를 다치기라도 한 건가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녀석이 왜?
근데, 놀랄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저, 오늘은 형들이랑 똑같이 훈련할게요.”
“···똑같은 프로그램으로 훈련하겠다고?”
“예.”
이것 봐라.
진짜 어딜 심하게 다친 게 분명하다.
형들이랑 똑같이 훈련을 받겠다니.
요한이는 항상 별도의 프로그램으로 훈련을 진행해 왔었다.
녀석만을 위해 짜여진 과업형 훈련 말이다.
때문에 항상 혼자서만 퇴근 시간이 달랐었지.
자기 것만 다 끝내면 퇴근이니 말이다.
그게 골키퍼들 훈련처럼 완전히 독자적인 것이든, 동료들과 섞여서 하는 것이든.
어쨌든 요한이는 모든 선수들과 똑같이 훈련을 시작해서, 똑같은 프로그램으로 훈련받고, 똑같이 퇴근한 적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시킬 생각도 해본 적 없었고.
그런데 지가 먼저 그렇게 하겠단다.
이쯤 되니 반가움보단 불안감이 먼저 엄습한다.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뭔가가 있는 거다.
“아무튼··· 알겠다. 다만 한 가지는 명심해둬라.”
“뭘요?”
“일단 시작하고 나면, 중도 포기는 없다. 아무리 떼써도 안 받아줄 거야. 그래도 할 텐가?”
“예, 뭐···”
그래도 하겠다는 요한의 대답에, 슈미트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은퇴가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걸까.
이제 다 끝이라고 생각하니, 말년의 마인드로 귀찮음도 잊은 것일까.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언제나 초심을 잃어선 안 된다.
슈미트 감독은 오늘, 요한이의 초심을 잡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놈아, 맛 좀 봐라.
다시는 제 발로 출근하지 못하도록 해주마.
*
솔직히 별 이유는 없었다.
오늘, 갑자기 변덕을 부린 것 말이다.
그냥 아침 일찍 눈이 떠졌고, 마땅히 할 게 없어서 훈련이나 갈까 생각해서 온 것뿐이다.
근데, 생각해보면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이상한 일이었다.
일단 아침 일찍 눈이 뜨여졌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고, 할 게 없어서 심심하다는 생각이 든 것도 이상했다.
‘심심하다’라는 감정을 느끼다니.
게다가 그 심심함을 해소하기 위해 훈련을 하러 나오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이상한 일이긴 했다.
결국 사람이라는 건 적응의 동물이고, 바뀌는 것이며, 자신도 평범한 한 명의 사람인걸까.
모르겠다.
그냥, 문득 한 번쯤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동료 형들과 함께 훈련을 하겠다고 한 거고.
“오늘따라 훈련이 왜 이렇게 힘들지?”
“그러게. 무슨 프리 시즌 훈련 같아.”
요한이 그 선택을 후회한 건 훈련이 시작한 뒤 불과 10분 만에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무래도 잠깐 미쳤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대체 이걸 왜 하겠다고 했지?
아니, 애초에 왜 훈련장에 나왔을까.
그냥 집에서 잠이나 잘걸.
한 번쯤은 경험해봐도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다.
이런 건 영원히 몰라도 된다.
“···집 가고 싶다.”
“응? 뭐라고?”
“하하하! 요한 경 하는 말 들었어? 집 가고 싶대.”
“어이, 어이. 이 정도로 죽는 소리하면 안 되지. 이제 시작인데.”
“우린 이걸 1년 내내 해왔다고?”
죽상을 쓰는 요한을 보며 낄낄대는 동료들.
새삼스럽게 동료 형들이 대단해 보이는 요한이다.
이 힘든 걸 시즌 내내 해 왔다니.
심지어 시즌 초나 프리 시즌 땐 훈련 강도가 훨씬 강했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시즌 말미다 보니, 고강도의 체력 훈련 같은 게 빠진 거라고.
“못 해먹겠네요, 축구 선수라는 것도.”
“마, 장난 아이지?”
“예. 오늘부로 모든 축구 선수들은 리스펙 하려구요.”
“이 직업이 만만한 게 아이라니까.”
요한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하는 버클리를 보며 선수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발롱도르를 타 놓고 축구 선수가 쉽지 않은 직업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는 녀석이나.
발롱도르 위너한테 축구 선수란 게 만만한 직업이 아니라고 말하는 녀석이나.
“자, 오전 훈련은 여기까지. 각자 휴식하고 오후 훈련 준비할 수 있도록.”
아무튼, 오전 훈련이 끝났을 때.
요한은 이곳을 어떻게 해야 빠져나갈 수 있을지 궁리했다.
다만 감독님 너무 당당히 약속을 한 터라, 방법이 있을까 싶다.
감독님 성격상 약속을 바꾸실 분은 아니니까.
“자, 자. 다 모여. 마무리 하자.”
“근데 주장. 이거, 요한이도 끼워서 해야 하나?”
“그러게. 쟤 끼면 밸런스 붕괴인데.”
“끼워야지. 한 명도 빠짐없이 다 하는 게 우리 룰인데.”
그냥 조용히 짐 챙겨서 갈까 하고 있는데, 동료들이 뭔가 토의를 하고 있는 게 들려왔다.
“요한 경! 일로와. 경도 오늘만큼은 룰을 따라라.”
“무슨 룰이요?”
“오전 훈련 끝나면, 크로스바 챌린지로 음료수 내기 하거든.”
“음료수 내기요?”
웨스트 햄 1군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룰이 하나 있다고 한다.
오전 훈련이 끝나면, 모든 선수들이 모여서 팀을 나눠 크로스바 챌린지를 한다고.
여기서 진 팀이 이긴 팀에게 음료수를 쏴야 한다고 한다.
이걸 2년 만에 알게 된 요한이다.
어쨌든, 룰이라니까 하긴 해야지.
“어떻게 나눌까. 원래 하던대로 영국 대 대륙?”
“그럼 영국이 너무 유리하잖아.”
“야, 맨날 우리가 졌는데 오늘은 좀 유리하면 안되냐?”
“대신, 그럼 요한 경은 5번 연속 성공해야 성공으로 해. 콜?”
“콜.”
팀은 영국 대 대륙으로 나뉘어졌고, 요한은 영국 팀에 속했다.
크로스바 챌린지의 룰은 간단.
센터서클 끝에서 공을 차서 크로스바를 맞추면 통과.
통과된 선수들은 빠지고, 마지막에 선수가 남는 팀이 지는 거다.
여기에 오늘은 특별 룰 추가.
요한에겐 크로스바 챌린지가 껌이나 다름없으니, 5번을 연속으로 성공해야 통과라는 룰이다.
“나부터 간다.”
선수들이 한 명씩 라인에 서서 공을 차기 시작했다.
뻐어어어엉-!
슈우우우우웅-
“어림없는 볼.”
뻐어어어엉-!
슈우우우우웅-
“으아, 아깝다!”
“아깝긴. 골대가 두 배로 두꺼웠어도 안 맞았겠다.”
뻐어어어엉-!
슈우우우우웅-
태애애앵-!
“워후, 나이스!”
“와, 뽀록 봐라.”
누군가는 첫 시도만에 성공하고, 누군가는 어림도 없이 실패하고.
그럴 때마다 서로를 놀리고, 깎아내리는 모습을 보며 요한은 피식 웃었다.
웨스트 햄은 젊은 팀이지만, 그래도 대부분이 요한보다 훨씬 형들이다.
경기 때도 이들은 항상 진지했고, 형들답다는 느낌을 주었었지.
하지만, 이렇게 보니 다들 나이 차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또래 친구들과 노는 느낌이랄까.
색다른 기분이었다.
“요한 경. 네 차례.”
“다섯 번이라고 했죠.”
“아무리 요한 경이라도 힘들걸? 이 거리에서 5번? 그건 하늘의 운이 따라야지.”
“우우우우-!”
“요한 경한테 야유하는 거야?”
“와, 진짜 쓰레기다.”
“뭐, 뭐가. 상대 팀이니까 그냥···”
“아무리 상대 팀이라도 그렇지.”
“내가 봐도 그건 좀···”
“비 영국팀이 아닌, 페트로비치의 개인 의견임을 밝힐게요.”
시끌벅적 떠들어대는 형들을 뒤로 하고.
요한은 공 다섯 개를 센터 서클 라인에 나란히 세운 뒤, 하나씩 골대를 향해 날리기 시작했다.
슈우우우우웅-
태애애앵-!
슈우우우우웅-
태애애앵-!
슈우우우우웅-
태애애앵-!
“미친.”
“저게 된다고?”
요한은 흔들림 없이 계속해서 크로스바를 맞추었다.
새삼 경악하는 동료들.
이게 된다고?
슈우우우우웅-
태애애앵-!
“끝.”
결국 요한은 공 다섯 개로 챌린지를 통과했다.
그런 뒤,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저었다.
“챌린지라는 말이 붙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다들 이게 어려운가 봐요?”
“와···”
“겁나 재수 없네···”
“귀족답구만.”
“카펠로 병이 걸렸나.”
“···이 몸은 저런 적 없다.”
한숨을 내쉬는 동료 형들을 보며 피식 웃는 요한.
형들 놀리는 거, 이거 재밌네.
재밌어.
훈련을 하겠다고 한 건 무척이나 후회되지만, 나름 재밌는 것도 있어.
“음료수는 그냥 제가 다 쏠게요.”
“응? 정말?”
“주급, 제가 제일 많잖아요. 다들 돈 아끼세요.”
“형님!”
“주급 많으면 형이지.”
“너 방금 겁나 재수 없다고 하지 않았냐?”
“닥쳐.”
요한이 참여한 이 날의 훈련은, 그 어느때보다 분위기가 좋았다.
*
“어때. 정신이 좀 드나.”
“···예.”
“그래. 항상 초심 잃지 말고.”
“알겠습니다.”
오후 훈련까지 마친 뒤.
요한은 감독님의 말씀을 새겨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훈련을 소화 하면서, 초심을 잃어선 안된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내일부턴 다시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가야지.
“그래도, 나름 재밌었어요.”
“···그러냐.”
“예.”
그래도 나름 재밌었다는 요한을 보며, 슈미트 감독은 싱겁다는 듯 피식 웃었다.
녀석의 입에서 재밌었다는 소리가 나오다니.
참.
오늘, 이 녀석이 끝까지 사람 놀라게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