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8)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8화(18/202)
< 017화 – 뛰기 싫어서 뛰는 사람 >
“아침은 뭐 먹었냐?”
“그냥 엄마가 해주신 밥 먹고 왔어요.”
“그래? 너희 어머니 요리 잘 하시냐?”
2027년 5월 15일.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홈 구장, 런던 스타디움의 라커룸.
오늘은 노리치 시티와의 리그 35라운드 경기가 있는 날이자, 요한의 프리미어 리그 데뷔전이 있는 날.
“오, 그래? 나도 한국 음식 몇 번 먹어 봤는데.”
요한의 옆에 앉은 주장, 팀 고든은 아까부터 계속해서 요한에게 쉴틈없이 말을 걸고 있었다.
진짜 시답잖은 얘기들.
뭐 경기장에 터주대감 고양이가 있는데 네 선배니까 직접 찾아가서 인사를 드려야 한다느니-당연히 안속았다-, 데뷔전엔 신고식으로 라커룸 가운데서 춤을 춰야 한다느니-들은 척도 안했다-, 실없는 말들을 쉬지도 않고 걸어오는 고든이었다.
진짜 귀찮게 왜 이러시나.
첫인상은 진짜 무뚝뚝하고 무서울 것처럼 보이더니, 이렇게 말이 많은 타입일 줄이야.
몇몇 선수들이 주장은 좀 거리를 두는 게 좋은 사람이라고 했던 게 이런 이유였던건가.
뭐, 그래도 나름 데뷔전이라고 주장으로서 긴장을 풀어주려는 의도인 것 같긴 하니.
요한은 대충 귀를 닫고 적당히 맞장구만 쳐주고 있었다.
그게 요한의 특기긴 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거.
아빠의 잔소리 덕분에 단련된 특기.
“야, 잠깐만. 너 생일이 언제냐?”
“생일이요?”
또 한창을 떠들던 고든이 이번엔 갑자기 생일을 묻는다.
요한이 4월 26일이라 대답하자,
“잠깐만 기다려봐.”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를 찾기 시작하는 고든.
그러다 고든이 손가락을 튕긴다.
“야! 이거 봐봐. 프리미어 리그 역대 최연소 데뷔는 당시 풀럼 소속의 하비 엘리엇으로, 데뷔 당시 나이는 16세 30일이었다.”
“···근데요?”
“근데요는 뭐가 근데요야, 임마! 너 생일 4월 26일이라며. 그럼 오늘로 16세 19일인 거잖아. 네가 PL 역대 최연소 데뷔라고! 오늘 네가 기록을 세우는 날이란 말이다!”
와하하, 웃음을 터뜨리며 요한의 등짝을 마구 두들기는 고든.
그런 고든의 매운 손맛에 요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최연소 데뷔 기록이라니.
그런 것도 기록으로 치는건가?
미성년자 노동착취, 뭐 이런걸로?
“야. 게다가 최연소 득점 기록은 훨씬 여유있다. 제임스 본, 16세 271일. 250일 안에만 넣으면 네가 깨겠다, 야.”
최연소 득점 기록이라.
데뷔 기록은 관심 없지만, 저건 좀 관심이 가네.
오늘은 반드시 골을 넣어야 하는 날이니까.
그럼 뭐, 깨지겠네.
오늘.
“뭐? 오늘 깨겠다고? 이거, 진짜 겁 없는 놈인건 알았다만. 하하! 그래. 그렇게 자신감이 있어야지. 좋다, 좋아.”
오늘 그 기록이 깨질 것 같다하니 고든이 크게 웃는다.
단순한 신인의 패기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긴, 뭐 연습 경기때 바로 2골을 넣었으니 자신이 있을만 하지. 근데 말이다, 꼬맹아. 긴 말할 것 없이 나갔다 와보면 알거다. 연습 경기랑 실전은 완전히 다른 게임이라는 걸. 45분이 지나고, 다시 돌아올 땐 너도 생각이 많이 바뀔 거라구.”
“···안바뀔 것 같은데요.”
“하하!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겠지. 자, 가자. 슬슬 전쟁에 나갈 시간이다.”
시계를 확인하니 경기 시간이 임박했다.
좀 편하게 쉬다가 나갈 생각이었는데,
고든 때문에 어쩌다 보니 쉬지도 못했다.
다만, 그 덕분인지 긴장감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가자, 가자!”
“렛츠 고! 다 죽이고 오자!”
진짜 전쟁에 나가는 듯, 소리를 지르며 한 명씩 라커룸을 빠져 나가는 선수들.
그런 선수들을 보며 고개를 한 번 갸웃이고는.
요한이 마지막으로 경기장을 향해 나갔다.
ㆍㆍㆍ
“진짜 비현실적인 광경이다.”
관중석 한켠.
필드가 한눈에 훤히 보이는 좋은 자리에 요한의 가족들이 와 있다.
“잘 찍고 있냐?”
“예. 이제 나올 때가 됐는데··· 아, 나온다! 나와요, 아빠!”
집안의 역사적인 순간.
요한이 웨스트 햄의 유니폼을 입고 피치 위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을 담기 위해 로한은 핸드폰을 들고 있었고, 반석호는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요한이 모습을 드러낸다.
“우와아···”
“이게··· 꿈이냐 생시냐···”
참,
비현실적이라는 말이 딱 맞았다.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요한이 지금 웨스트 햄 선수들과 나란히 경기장으로 걸어 나오고 있다니.
로한은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그 광경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안믿기지 않아요? 요한이··· 아빠···? 아빠 울어요?”
“크흣. 아, 아니다!”
“···”
반석호는 아예 눈물을 찔끔 흘리고 있었다.
감정이 북받쳐오르는 듯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평생의 소원 중 하나가, 지금 눈앞에 현실이 되어 있었으니까.
사랑하는 아들이, 사랑하는 팀 웨스트 햄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하는 모습을 보는 것.
선수를 은퇴한 이후로 그것이 유일한 소원이었던 반석호였다.
하지만 이뤄지긴 힘들 것이라 생각했던 소원이었다.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로한이는 노력을 그만치 해도 잘 안되지,
요한이는 축구공은 쳐다도 안보지.
단 하나뿐인 소원이었지만, 그 소원이 이뤄지긴 힘들어 보였었다.
그런데,
이렇게 하루 아침에 그 소원이 이루어지다니.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터프 가이로 통했던 반석호가 소녀팬처럼 눈시울을 붉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주책 맞게 뭘 울고 그래.”
이 상황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는 건 요한의 어머니 김라희 뿐이었다.
“뚝!”
“큽···!”
축구 집안에 시집 온 김라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김라희는 축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반석호와 처음 만났을 때, 반석호가 축구 선수인줄도 몰랐던 김라희였다.
어딜 가나 축구 스타로서의 인기를 구가했던 반석호는, 그런 자신을 스타가 아니라 한 명의 남자로 대했던 김라희에게 큰 매력을 느끼고 결혼을 했었다.
뭐,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좀 참을 걸, 하고 약간 후회가 되는 건 비밀이고.
“큰아들.”
“네?”
“요한이, 오늘 3골 정도는 넣겠지?”
“에이, 엄마. 3골은 무리예요. 오늘이 데뷔전인데.”
“무슨 소리야. 요한이 엄청 공 잘찬다며. 그럼 3골은 넣어야 되는 거 아니야?”
“엄마. 축구에선 1골만 넣어도 잘하는 거라니까요. 엄마는 진짜 축구 아무것도 모른다.”
“어쭈, 반로한. 까불어, 요게? 그럼 엄마랑 내기할래?”
“무슨 내기요?”
“엄마는 우리 둘째 아들이 3골 넣는다에 10파운드 걸게. 둘도 뭐 걸어.”
아무리 엄마는 아들이 최고라지만,
오늘이 데뷔전인 열여섯짜리 꼬맹이가 3골은 넣는다니.
김라희의 근거 하나 없는 자신감에,
반석호와 로한이 서로를 보며 낄낄 웃는다.
“좋아. 그럼, 난 1골 넣는다에 10파운드.”
“저도 1골에 5파운드 걸게요.”
“둘이 편 먹는다 이거지. 좋아. 다들 돈이나 준비해.”
“돈은 당신이 준비해야지.”
“헤헤.”
축잘알과 축알못의 내기.
그런데, 과연 누가 축잘알이고 누가 축알못일지는.
경기가 끝나봐야 알 일이었다.
*
“삐이이익-!”
군중들의 환호성, 그리고 휘슬과 함께 요한의 프리미어 리그 데뷔전이 시작되었다.
‘확실히 다르긴 하네.’
주변을 한 번 주욱 둘러보는 요한.
실전 경기가 처음은 아닌 요한이었다.
유스 리그긴 하지만 첼시와의 경기를 뛰었었으니까.
하지만,
그 때와는 공기부터가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거대한 경기장, 그 거대한 경기장을 매운 수많은 관중들, 그 관중들이 뿜어내는 열기까지.
고든이 했던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확실히 프리미어 리그는 지금까지 밟아봤던 잔디와는 전혀 다른 차원인 건 분명했다.
그랬기에,
아무리 요한이라도 경기 초반엔 이 분위기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할 듯 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그 시간을 방해하는 녀석이 있었다.
“히야. 아무리 시즌 막바지라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니야?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유스 꼬맹이를 내놓다니.”
바로 옆에서 누군가 제멋대로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4번 등번호를 달고 있는 노리치 선수 하나가 시선은 딴 데 둔 채로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참나, 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어. 나보고 이런 꼬맹이를 상대하라니, 연봉 받기도 미안하다, 미안해.”
혼자 중얼거리곤 있지만, 누가 봐도 들으라고 하는 소리.
녀석은 계속해서 요한을 졸졸 따라 다니며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법적으로 문제 있는 건 아니겠지? 이건 누가 봐도 너무하잖아.”
의도야 뻔했다.
트래시 토크.
요한은 오늘이 데뷔전인 열여섯살 짜리 꼬맹이였다.
심리적으로 불안한 게 당연한 입장이라는 뜻.
노리치 4번은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데뷔전을 가졌던 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간단한 일이었다.
그저 정신 없이 공만 쫓아다니기 바빴던 그 날.
관중들의 별 것 아닌 야유 한 번에도 멘탈이 와르르 무너졌었고, 도저히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리고, 데뷔전을 갖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렇듯 제 기량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었던 노리치의 4번이었다.
심지어 당시 자신의 나이는 22살이었다.
22살 먹고 데뷔전을 치른 자기도 정신이 없었는데,
16살 짜리 꼬맹이는 어떨까.
지나가는 말 한 마디에도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녀석은 그걸 알기에,
시작부터 요한의 멘탈을 괴롭혀주고 싶었던 것이고.
“아이고, 왜 경기장에서 자꾸 급식 냄새가 나지. 여기 학교 운동장이 아닌데.”
너무한 것 아니냐 느껴질 수도 있었다.
이제 막 데뷔전을 치르는 열여섯살 짜리 선수에게, 정정당당히 맞붙어도 모자랄 판에 그런 치사한 방법을 쓰다니.
하지만,
축구라는 스포츠가 그렇다.
90분간 펼쳐지는, 오로지 승자와 패자만이 남는 전쟁.
상대를 이기기 위해 어떤 짓이든 해야만 하는 게 전쟁이다.
상대가 아무리 열여섯살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렇기에, 반칙이 아닌 이상 녀석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아직 걸음마까지밖에 못 뗀건가. 하긴, 뛰려면 좀 더 커야지.”
그래도 정도가 좀 심하긴 하다.
축구를 입으로 하나.
쉬지 않고 입을 놀려대는 노리치 4번.
사실,
녀석이 쉬지 않고 입을 놀릴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걸음마가 어쩌니 하는 녀석의 말대로, 요한은 뛰지 않고 있었다.
박스 근처에서 그저 걷고 있을 뿐.
마실 나온 사람처럼 천천히 어슬렁댈 뿐이었다.
그러니,
요한을 마크하고 있는 녀석도 여유로울 수밖에 없었던 것.
‘잔뜩 굳었구만. 개인적인 감정은 없으니 너무 미워하진 말고.’
멀뚱거리는 요한의 등을 보며 씨익 웃는 노리치 4번.
녀석은 자신의 트래시 토크가 제대로 통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공격수란 녀석이 이렇게 뛸 생각도 못하고 굳어 있었으니까.
그 모습을 보니, 꼬맹이한테 너무 심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지.
‘다 배워가면서 성장하는거다. 꼬맹이.’
이기려면 이런 짓도 해야 하는 게 이 바닥의 생리니까.
트래시 토크를 멈출 생각은 없다.
멈추긴커녕 녀석은 슬슬 치명타를 넣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하아암!”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기지개를 켰다.
자신이 마크하고 있는 공격수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모욕.
지루하다.
그것을 온 몸으로 표현하는,
그 순간이었다.
“헤이, 꼬맹아!”
파아앙-!
전반 8분.
요한에게 첫 패스가 굴러 왔다.
슈미트 감독이 요한을 노리치 전에 내보내겠다 결정한 뒤, 이틀 정도 요한과 합을 맞췄던 웨스트 햄 선수들.
그런 선수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요한에겐 그냥 발밑으로 주는 평범한 패스면 충분하다는 것을.
때문에,
이번 패스 역시 그랬다.
가만히 서 있는 요한에게, 천천히 굴러오고 있었다.
그러니,
주둥이 모터를 단 노리치 4번도 적당히 붙어만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어?”
녀석의 시야에서 요한이 사라졌다.
‘뭐야?’
녀석은 아마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경기 시작부터 지금까지, 주구장창 떠들어댔던 자신의 중얼거림이 철저히 무시되고 있을 거라곤.
요한의 특기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라는 것을 말이었다.
요한은 이미 공을 백힐로 컨트롤한 뒤, 4번을 그대로 통과해 박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타타탓-!
축구는 전쟁이고, 전쟁은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든 해야하는 것이다.
그 상대가 심지어 열여섯이라고 해도,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떤 짓을 해도 손가락질을 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 이유를 한 번 더 자세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상대가 열여섯살 꼬맹이라고 해도, 이기기 위해선 뭐든 해야 한다는 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열여섯살 꼬맹이에게 자신이 찔릴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뜻이었다.
뻐어어어어엉-!
요한은 오늘 경기 자신의 첫 번째 슈팅을 때리며 생각했다.
‘요건, 아침에 도저히 못일어날 것 같은 날에 쓰는 용.’
요한의 눈엔,
골대를 향해 날아가고 있는 공이 그저 훈련 면제 쿠폰 1개로밖엔 보이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