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80)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80화(180/202)
< 179화 – 지키다 >
본디 축구 감독이라는 건, 평범한 성격의 사람이 하기엔 좀 어울리지 않은 일이다.
다들 어디 하나가 틀어져 있거나, 괴팍한 사람들이 주로 하는 직업이고, 또 그런 사람들이 잘 하는 직업이 축구 감독이다.
저마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감독들 사이에서, 맨시티의 조제 에르네스토 감독은 ‘완벽주의자’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에르네스토 감독과 함께 생활을 해봤던 선수들이나 스태프들이 말하길, 에르네스토 감독은 병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디테일에 목숨을 거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그 정도로, 에르네스토 감독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완벽해야만 하는 인물이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인 건 그런 에르네스토 감독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저번 시즌, 웨스트 햄과의 맞대결에서 처음 봤었던 요한 반.
첫눈에 반해버린 그 스트라이커를 갖고 싶어 구단 프론트들을 정말 못살게 굴었었던 에르네스토 감독이었다.
요한은 완벽을 추구하는 에르네스토에겐 마스터 피스와도 같은 존재였다.
어떻게 해서든 그를 맨시티의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세울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완성할 수 있었다.
정말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았다.
그것만으로 팀이 완벽해질 것이기 때문에.
현재 있는 팀의 좋은 자원들과, 그 자원들을 살려주고 또 그들에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요한이 에르네스토 감독의 마지막 바람이었다.
‘차라리 몰랐다면.’
에르네스토 감독은 요한 반이라는 선수가 등장한 것 자체가 원망스러웠다.
그를 본 이후로, 그 어떤 스트라이커도 눈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한의 대안이랍시고 데려온 지금의 스트라이커 스테판 그라나흐 역시 마찬가지였다.
요한이라는 존재를 몰랐다면, 에르네스토는 충분히 그라나흐로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한이라는 이상향을 이미 본 이상.
에르네스토의 완벽주의는 그라나흐로 채워질 수가 없었다.
차라리 요한을 몰랐다면.
어쨌든, 에르네스토 감독은 여전히 요한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한 상태였다.
이번 시즌이 끝나고, 여름에 돌입하면 에르네스토 감독은 다시 프론트에 요청할 생각이었다.
요한의 영입을 추진해달라고.
가용한 모든 자금을 동원해, 역사상 가장 큰 딜을 성사시켜 달라고 말이다.
근데, 그것도 다 웨스트 햄이 우승에 실패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웨스트 햄이 우승해버리면, 요한은 은퇴할 테니까.
그렇게 되면 영원히 요한을 내 선수로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지게 된다.
물론 웨스트 햄이 우승하지 못한다 해도, 요한이 은퇴를 하지 않는다 해도 그를 데려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가능성으로만 따진다면, 굉장히 낮겠지.
이미 몇 번이나 넣었던 지난 오퍼들도, 제시한 금액이 낮았던 건 아니니까.
모두 천문학적인 금액을 제시했었고, 그 외의 조건들도 굉장히 파격적으로 내걸었었다.
아마 그 오퍼가 성사되었다면, 역사상 가장 큰 거래는 이미 이뤄졌을 거다.
하지만 요한은 그런 것보다 다른 것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듯 했다.
에르네스토 감독은 그것마저도 마음에 들었다.
비록 그를 자신의 팀으로 데려오기 힘들게 만들고 있긴 하지만, 그가 지키는 신념은 낭만이 가득했다.
그게 참 멋있었다.
쉽게 가질 수 없어 더 가지고 싶은 걸지도 몰랐다.
아무튼.
결국은 이겨야 한다는 소리다.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안다.
그랬으니, 맨유 감독과 합심하는 짓까지 했지.
이렇게까지 했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할 것이다.
ㆍㆍㆍ
“휴우.”
“응?”
“어, 깜짝이야. 아빠?”
“깼냐?”
“예. 안 주무셨어요?”
“나도 자다가 깼다.”
어두컴컴한 새벽.
잠에서 깨 물이라도 한 잔 마실까 부엌으로 나온 로한은, 이미 맥주를 홀짝이고 있는 반석호를 보곤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아빠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계시는구나.
로한은 컵 하나를 들고 반석호의 옆에 앉았다.
“저도 한 잔만 주세요.”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당연하죠.”
“그럼, 잠깐만 있어봐라. 샐러드라도 하나 해줄게.”
“괜찮아요. 괜히 엄마 깨면 어떡해요.”
“그것도 그렇네. 그럼, 그냥 간단히 한 잔씩만 하고 다시 들어가자.”
“좋아요.”
맥주를 서로의 잔에 따른 뒤, 조심히 건배를 한 후 둘은 시원하게 들이켰다.
“크으···”
자다 일어나서 그런가.
맥주 한 잔을 들이켰을 뿐인데 몽롱한 느낌이 살짜쿵 올라오는 듯 하다.
“좀 낫네요. 솔직히, 긴장돼서 잠이 안 왔거든요.”
“미 투.”
둘 다 새벽에 이러고 있는 이유야 당연했다.
내일 있을 맨시티와의 경기.
그 경기에서 웨스트 햄이 이기면, 팀은 리그 우승을 확정 짓는다.
그 말은 곧, 요한의 은퇴 역시 확정된다는 이야기고.
“짧다면 짧지만,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많은 일들이 있었지. 입단 테스트 날 요한이가 뚜벅뚜벅 피치 위로 걸어가던 뒷모습은 아직도 생생해.”
“리그 데뷔전에서 2골 2도움을 했던 것도 기억 나구요.”
“리버풀 전에서 첫 해트트릭을 했던 거.”
“대표팀이 발탁 되어서 이탈리아 수비수들을 혼자 박살내던 거.”
“처음으로 맨시티를 잡은 거.”
“FA컵에서 우승한 거.”
“신기록으로 득점왕 차지한 거.”
“전 경기 득점하면서 유로 우승한 거.”
“발롱도르 받은 거.”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요한이가 걸어온 길을 이야기하며 웃는 로한과 반석호.
이 모든 것들이 불과 지난 2년 동안 있었던 일들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정말 짧고 굵다.
웬만한 정상급 선수도 이 정도의 커리어를 쌓기 위해선 수 년이 걸렸을 텐데.
“요한이가 딱 3년만 더 뛰면 어떻게 될까요?”
“간단하지. 발롱도르 5회 수상.”
“리그는 세 번 정도, 챔스는 두 번 정도 먹을 수 있지 않을까요?”
“유로 2회 우승도 충분할 거고, 잘 하면 월드컵 우승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커리어를 가진 선수는 없었죠?”
“없었지.”
“그럼, 요한이가 역대 최고 반열에 오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안될 거 있나.”
즐거운 상상을 하며 웃는 둘.
생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단순히 허무맹랑하기만 한 망상이 아니라 더 즐거운 것 같다.
이런 상상들보다 훨씬 더 대단한 일들을, 요한이는 실제로 해내 왔었으니까.
“근데···”
“그럴 일은 없겠지.”
하지만, 다른 의미로 망상인 것도 사실이다.
요한이가 3년이나 더 뛸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쟤, 많이 노력했어요.”
“알지. 내가 잘 알잖니. 쟤 축구 시키려고 얼마나 고집을 부렸었는지. 그래도 안 하던 애가, 여기까지 왔으니.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 건지 잘 알지.”
요한이는 이미 충분히 노력했다.
녀석에게 미안할 정도로 말이다.
로한과 반석호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상상을 하는 것도 미안하다.
요한이는 축구명문 반씨 가문의 위상을 세계 최고로 만들어주었고, 할 수 있는 건 이미 모두 다 했다.
“이겼으면 좋겠어요. 꼭 요한이가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해야지. 할 거다. 요한이가 있는 웨스트 햄이 질 거라고 생각 안 한다.”
고개를 끄덕이는 로한과 반석호.
“기뻐해 줄 거예요.”
“당연하지.”
내일, 웨스트 햄이 승리를 거두고 우승을 확정 짓는다면.
로한과 반석호는 더없이 기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ㆍㆍㆍ
“13번 게이트에서 인원 보충을 요청한답니다. 몇몇 훌리건들이 과격하게 밀고 들어오는 모양입니다. 일반 관중들도 그 사이로 들어오고 있구요.”
“하아, X발. 알겠다.”
5월 5일, 런던 스타디움.
오늘 이곳에서 열리는 경기 하나 때문에, 스트랫포드 근방의 경찰들 대부분이 경기장으로 투입되었다.
엄청난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입장권은 이미 매진 되었지만, 막무가내로라도 경기장에 들어가려는 미친놈들 때문에 보안 인원이 모자랄 지경이다.
“저새끼들, 잡아!”
“막아!”
사실 일반 팬들은 문제가 아니다.
그들도 떼거지로 몰려들면 골치가 아파지지만, 그들보다 중요한 건 앞잡이들이다.
훌리건이라 불리는 놈들.
저놈들부터 잡아 족쳐야 한다.
“후드 뒤집어쓴 놈들 다 잡으라고오오!”
시작부터 이 지랄인데, 우승이라도 하면 어떻게 될까.
꼼짝없이 철야겠지.
경찰들에겐 오늘이 다사다난한 하루가 될 것 같았다.
*
경기장 밖은 난리가 났지만, 반석호와 로한은 VIP석에 편안히 앉아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좀 떨리는데요.”
“저도 잠을 좀 설쳤습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날이니까요.”
옆자리에 앉은 구단주들 중 한 명, 맥마나만이 반석호에게 말을 건다.
그의 말대로, 그토록 기다리던 날이다.
물론 이날이 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드님의 생각은, 변함이 없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만, 전 뭐든 존중해줄 생각입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맥마나만.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아니, 안타까울 정도다.
요한은 창단 이후 클럽 최고의 스타였다.
그것도 앞날이 창창한, 앞으로의 10년 이상은 거뜬히 책임져줄 수 있는 스타.
그런 프랜차이즈 스타를 잃는다는 건 정말 뼈 아픈 일이다.
앞으로 벌어들일 수익적으로나, 팀의 성적으로 보나.
하지만, 그걸 떠나서.
이미 요한 덕분에 얻은 이익이 워낙 크지 않은가.
그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서프라이즈 선물이었다.
여기서 더 욕심을 내는 건, 말 그대로 욕심이다.
“자, 즐깁시다. 오늘은 우리 클럽 역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날이 될 거니까요.”
“맞습니다.”
맥마나만과 반석호를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관중석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시작된 박수 소리가 어느새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선수 입장!”
런던 스타디움의 공식 수용 인원은 6만 명.
그러나,
6만 명은커녕 7만 명도 넘을 듯한 거대한 박수 소리와 함께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입장하고 있었다.
*
웨스트 햄은 주전 선수들이 모두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제프 휴리첼이 골키퍼 장갑을 끼고,
다니 기마랑이스와 셰이 벨라미가 센터백 듀오를 이룬다.
레프트백엔 마틴 페트로비치, 라이트백엔 미카엘 옌킨슨.
포백을 보호하는 볼란치로는 팀 고든이 나서고, 그의 파트너로 다니엘레 카펠로가 선다.
좌우 날개엔 조너선 네이슨과 제이콥 버클리가 출전하며, 처진 스트라이커 위치에 조슈아 베일리가 위치한다.
그리고,
-넘버 나인, 요한!
“바아아아아아안-!”
최전방에 요한이 우뚝 서 있다.
요한의 이름을 연호하는 팬들의 함성이 런던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다.
“···”
반석호는 요한의 데뷔전을 떠올렸다.
그날, 지금처럼 선수 소개 시간에 요한의 이름이 호명 되었을 때.
주변에 앉아 있던 관중들의 반응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쟨 누구야?”
“몰라. 경험 쌓으라고 내보낸 유스인가 보지.”
“호오. 쟤는 좀 싹수가 보이는 애인가?”
“글쎄다. 잭 프라이스 정도만 커주면 좋을 것 같은데.”
“바랄 걸 바라라. 그리고, 그렇게 크면 빅클럽으로 팔려갈 텐데.”
“그럼, 적당히만 크길 바라지 뭐.”
미소를 짓는 반석호.
아무도 요한의 존재를 모를 때.
오로지 아비인 자신만이 요한의 잠재력을 알고 있었을 때.
그때, 반석호는 장담할 수 있었다.
해머스 모두가 요한이한테 반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지금.
“요하아안-! 런던의 자랑!”
“바니! 클럽의 역사를 쓰다!”
“웨스트 햄의 왕! 요한!”
모두가 요한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다.
이제 녀석의 진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세상 모두가, 요한의 빛나는 재능을 알아보고 있다.
반석호는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다 죽여버려-!”
자리에서 일어난 채로 그라운드를 향해 외치는 반석호의 목소리와 함께,
“삐이이익-!”
경기가 시작되었다.
*
사실 에르네스토 감독과 하우어 감독의 밀담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두 감독 모두 서로의 철학이 확고한 사람들이었고, 소신이 매우 강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둘의 대화가 술술 풀리는 게 이상한 일.
하지만, 그런 둘도 한 가지만큼은 합의를 한 사안이 있었다.
“수비로는 못 막습니다.”
“그건 맞죠.”
그건 바로, 요한을 수비로 막을 생각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요한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두 감독이었다.
요한에게 여러 번 털려 봤으니까.
때문에 아예 전제를 깔고 가야 했다.
요한을 90분 내내 막기란 불가능하다.
“중요한 건 요한이 몇 골을 넣느냐가 아니죠.”
“누가 경기를 이기느냐.”
요한을 막지 못 한다고, 경기를 이길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축구란 결국 얼만큼 실점을 하든, 그보다 한 골을 더 넣으면 이기는 스포츠니까.
<맨시티의 선발 라인업이 특이하죠? 평소와는 약간 다릅니다.>
<포메이션 상으론 4-2-4의 전형입니다. 딱봐도 알 수 있죠? 굉장히 공격적인 전술을 들고 나온 맨시티입니다.>
웨스트 햄이 강력한 공격력으로 여기까지 온 팀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수비가 약하다 볼 수 있는 팀은 아니었다.
지난 시즌까진 수비가 약점이다 말할 수 있었겠지만, 이번 시즌에 합류한 벨라미와 기마랑이스는 좋은 호흡을 보여주고 있었다.
따라서 어설픈 공격으론, 요한보다 더 많은 골을 넣기 힘들었다.
평범함 보다는, 뭔가 극단적인 게 필요했고, 에르네스토 감독은 4-2-4라는 깜짝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백 포를 기반으로, 중원은 중앙 미드필더 두 명이 끝.
나머지는 모두 공격수다.
가운데 투 톱이 서고, 좌우에 윙 포워드들이 배치되는, 극단적으로 공격적인 배치.
물론 수비 시엔 좌우 윙어들이 내려오면서 4-4-2의 형태를 갖출 순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양쪽 윙어들이 어중간한 미드필더들이 아니라, 전문 공격수들이란 거다.
맨시티가 필요로 하는 건, 대량 득점이었다.
“못해도 다섯 골은 넣어야 할 겁니다.”
“글쎄. 난 여섯 골이 마지노선이라 봤는데.”
하우어 감독은 최소 다섯 골이 필요하다 봤고, 에르네스토 감독은 최소 여섯 골이 필요하다 봤다.
그래야, 요한 한 명이 뽑아내는 득점을 상회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거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지.
<사미르 리샤드, 오른쪽에서 공을 잡습니다. 템포를 빠르게 올리는 맨시티.>
일단은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