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83)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83화(183/202)
< 182화 – 떳떳하게 >
피지컬 괴물의 바디 체킹도, 퇴장을 각오한 태클도, 그 어떤 것도 요한의 무릎을 꿇릴 순 없었다.
그러나,
웨스트 햄의 리그 우승을 알리는 휘슬은 요한의 무릎이 땅에 닿도록 만들었다.
“요하아아안!”
“마, 해냈다! 네가 해내쓰!”
“요한 겨어어엉!”
휘슬이 울리는 순간.
모두가 요한에게 달려들었다.
주변에 있던 동료들도, 저 멀리 있던 골키퍼 휴리첼도.
그리고 벤치에 앉아 있던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
“으아아아아!”
심지어 슈미트 감독마저도.
모두가 요한에게 달려가 끌어안았다.
요한은 순식간에 파묻혀 버렸고, 이윽고 런던 스타디움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2028/29시즌 프리미어 리그, 웨스트 햄 우승! 웨스트 햄이 3경기를 남겨두고, 우승을 확정 짓는 순간입니다!>
어느 때보다 많은 보안 요원들과 경찰들이 투입된 오늘의 런던 스타디움이지만, 그걸론 역부족.
6만여 명이 넘는 광신도들이 날뛰기 시작하는데, 보안 요원이고 경찰이고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아아아아아!”
“우승이다, 우승!”
하나 둘씩 제 자리를 이탈하기 시작한 팬들은, 결국 관중석을 넘어 그라운드를 침범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이었다.
런던 스타디움의 그라운드가 환호하는 해머스들로 가득 찬 것은.
*
“해냈구나.”
“해냈네.”
반석호와 로한은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벅차올라 주체하기 힘들었지만, 그래서인지 오히려 차분한 느낌.
대신 그 모든 것들이 눈에서 흘러나왔다.
둘은 그저 서로를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아주 오래전부터 응원해왔던, 누군가에겐 친정 팀이었던, 누군가에겐 태어날 때부터 팬이었던, 그리고 그 모두에게 가장 사랑하는 팀이었던 웨스트 햄이 사상 최초로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그걸 해낸 건 집안의 막내.
한때는 아비와 형의 속을 상하게 만들기도 했던 녀석이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막내이자, 집안의 명예를 드높이고, 클럽의 위상을 새로 쓴 요한이다.
요한이가 해냈다.
“축하한다···”
“축하해. 목표를 이뤘구나.”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채로, 반석호와 로한은 요한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동료들에게 파묻혀서, 살아는 있는지 보이진 않지만.
듣고 있겠지.
이 축하의 박수 소리를.
박수를 치고 있는 건, 축하를 보내고 있는 건 우리 둘뿐만이 아니니까.
“···훌쩍. 근데, 너무 오래 깔려 있는데요···?”
“저러다 다치는 거 아니냐?”
그나저나 슬슬 걱정이 된다.
거의 이성을 잃다시피한 동료들에게 깔려 있는 요한.
깔려 있어도 너무 오래 깔려 있는 거 아닌가 싶다.
저러다 숨이라도 막히면···
“으엇!”
“나왔다!”
···괜한 걱정이었나 보다.
동료들이 포개어져 만들어진 봉우리에서 갑자기 화산이 폭발했다.
깔려 있던 요한이 벌떡 일어난 것이다.
녀석은 웃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반석호와 로한 역시 웃었다.
*
안전 상의 문제 때문에, 선수들은 우승의 기쁨을 그라운드 위에서 오래 즐길 수 없었다.
모두 보안 요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그라운드를 빠져 나가야 했고, 물론 그런 와중에도 팬들은 선수들에게 달려들었다.
자칫 위험할 수도 있고, 짜증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선수들은 모두 팬들과 하이 파이브를 나누거나, 함께 사진을 찍어주면서 기쁨을 함께 누렸다.
뭐가 대수겠는가.
적어도 런던 스트랫포드 안에선, 앞으로 무슨 짓을 해도 지켜줄 사람들이 이 사람들인데.
뭐 어쨌든, 덕분에 하나 둘 라커룸으로 들어온 선수들은 하나 같이 얼이 빠져 있는 모습들이었다.
“···”
“···”
너무 기뻐하느라 진이 빠진 건지, 다들 제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른다.
덕분에 묘한 적막이 감도는 라커룸.
그런 라커룸에 슈미트 감독이 제이미 코치의 부축을 받으며 마지막으로 들어오자,
자연히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크흠.”
슈미트 감독은 산발이 된 머리와 옷 매무새를 정돈하고는, 헛기침을 했다.
무언가 다들 한마디 해주길 기다리는 모양새다.
“어··· 그게 그러니까···”
다만 할 말이 번뜩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하고픈 말이 너무나 많았다.
지금 이 순간, 정말 멋진 순간이다.
이 백발 노인이 단언컨대, 일평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멋진 순간 중의 하나다.
이 순간을 선물해준 건, 여기 있는 선수들이었다.
그런 이 녀석들에게 걸맞은 멋진 한마디를 뱉고 싶었다.
최대한 멋진 한마디.
하지만 머릿속이 차분히 정리가 되지 않았고, 수많은 말들이 먼저 나가겠다고 앞다퉜다.
덕분에, 정작 슈미트 감독의 입에서 튀어나온 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고상한 단어들과는 정반대의 단어였다.
“씨발! 우리가 여길 먹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슈미트 감독의 진심은 선수들에게 그대로 전달이 되었다.
충분했다.
“우어어어어어!”
땀에 쩔은 남자들이 내는 우렁찬 소리가 라커룸을 가득 메웠다.
*
라커룸의 분위기는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스피커의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대부분의 선수들은 속옷 차림으로 파티를 즐겼다.
어디서 구해온 건지 다들 맥주를 들고와 서로에게 뿌리며 탄산의 짜릿함을 식도 대신 피부로 즐겼고, 평소 점잖던 코칭 스태프들이나 구단 관계자들도 지금 만큼은 체면을 제쳐두고 어린 아이처럼 뛰놀았다.
“요한 경.”
“예?”
“가야지?”
“예.”
그런 가운데, 고든이 요한을 불러냈다.
요한에겐 경기가 끝나면 항상 하는 것이 되어버린 MOM 인터뷰를 하러 가기 위해서다.
“워우. 라커룸의 분위기가 어떤지 안 봐도 알 수 있겠는데요? 하하.”
요한이 푹 젖은 모습으로 인터뷰 장에 나타나자, 인터뷰어와 기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마침내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확정 지으셨습니다. 먼저,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여쭤보고 싶은 게 많은데요. 먼저, 오늘 경기에 임했던 각오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우승이 달린 경기였죠. 평소와 다른 마음가짐이셨나요?”
기자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이는 요한.
평소와 다른 마음가짐이라.
글쎄.
“다른 건 없었습니다. 똑같았어요.”
“와우.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우승이 달려 있는 경기였잖아요?”
“다른 경기들이랑 마찬가지로, 똑같이 이길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특별할 건 없잖아요.”
“예, 역시. 대단한 자신감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오랜 염원이 이뤄지는 날이지만.
딱히 다를 건 없었다.
다른 날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이길 거라는 생각 외엔 없었으니까.
“자,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해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5골을 기록하면서, 이번 시즌 리그 총 69골을 기록하게 되셨습니다. 말도 안 되는 기록인데요. 지난 시즌보다도 무려 10골을 더 추가했습니다. 혹시, 지난 시즌의 기록을 깨고 싶다는 생각이 그 비결이었을까요?”
“음, 사실 시즌 중반쯤? 그때까지는 좀 의식을 했어요. 지난 시즌보다 골이 적었거든요. 그래서 부지런히 넣었죠.”
“요한 선수에게도, 더 발전하고 싶다는 향상심이 있으셨던 거군요?”
“향상심이요?”
향상심이라는 단어의 뜻을 이해 못 한 요한이 되묻자, 인터뷰어가 풀어서 설명했다.
요한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아니고, 지난 시즌보다 덜 쉬었다니 억울 하잖아요.”
“···그러셨군요. 전 또 웨스트 햄 팬들이 좋아할만한 소식이라도 있을까 했는데. 하하! 뭐, 요한 선수다운 이유입니다. 자, 그럼 결국 이 이야기를 꺼낼 순간이 온 것 같은데요.”
인터뷰어는 사뭇 조심스럽게 질문을 꺼냈다.
“데뷔와 거의 동시에 은퇴에 대한 포부를 밝히셨던 요한 선수입니다. 웨스트 햄에서 리그 우승을 하면 은퇴하겠다고 하셨었죠. 그 다짐, 지금도 변함이 없으신가요?”
이 인터뷰는 생중계 되고 있다.
때문에 이 인터뷰를 지켜 보고 있는 모든 웨스트 햄 팬들은, 요한의 입에서 마음이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길 바랐다.
우승을 하면 은퇴를 하고 싶었지만, 막상 우승을 하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고.
그러나,
요한은 미소를 지었다.
“변함 없습니다.”
“그러시군요. 이번 시즌이 정말 마지막이군요.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만, 누구도 요한 선수를 비난할 순 없을 겁니다. 요한 선수는 처음부터 그렇게 이야기해왔고, 그 이야기를 지키셨을 뿐이니까요.”
안타까울 뿐이지, 실망은 아니다.
원래부터 예정되어 있던 거니까.
“사실 처음 포부를 밝히셨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웃었을 겁니다. 웨스트 햄으로 우승하는 게 말이 되냐면서, 은퇴할 생각이 없는 걸 돌려 말한 거라면서. 그런 사람들에게, 우승을 차지한 지금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해주고 싶은 말···”
소시민은 도전하는 자를 비웃는다.
요한은 카메라를 보며 윙크했다.
“봤지?”
ㆍㆍㆍ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창단 134년 만에 첫 프리미어 리그 우승!
└대 킹 갓 황 웨스트 햄!
└내 생애 최고로 행복한 날이야
└죽어도 여한이 없어!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죽을 때까지 이 팀과 함께할 거야!
└거리로 나가자!
-결국 마지막도 요한이었다··· 맨시티 전 5골 요한 반, 은퇴 생각에 변함은 없었다
└정말 기쁘지만, 동시에 슬프다 ;(
└이건 웨스트 햄에게 뿐만이 아니라 축구계에 있어 크나큰 손실이다
└왕실에서 어떻게 나서주면 안되나···?
└우리 다음 월드컵은 어떡해? 요한이 못 보는 거야?
└지금 많이 좋아해둬라 해머스들아. 내년부턴 예전의 웨스트 햄으로 돌아갈 테니까
-35라운드에 리그 우승 확정한 웨스트 햄, 남은 건 무패 우승과 챔피언스 리그 우승
└그래 아직 끝난 거 아니다. 요한아,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가자!
└아직 기뻐하기엔 일러! 우린 챔스 우승으로 간다!
└다음 시즌부터 요한을 볼 수 없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아직 완전히 끝은 아니라 다행이야
-요한의 은퇴 전이 된 챔피언스 리그 결승, 레알 마드리드도 라리가 우승 확정
└챔스 결승이 은퇴 경기라니
└이 양반 화려하게도 가는구나
└이왕이면 우승하고 가자!
└진정한 챔피언스 리그 파이널이네. 프리미어 리그 챔피언과 라리가 챔피언의 대결···
└근데, 챔결까지 컨디션 관리는 하겠지? 어쨌든 이번 시즌까진 마무리하고 은퇴니까···
└글쎄. 그건 좀 불안하네.
리그 우승은 확정 지었지만, 시즌이 모두 마무리된 것은 아니었다.
아직 세 번의 리그 경기가 남기도 했고, 무엇보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 남아 있다.
때문에, 우승 퍼레이드라든가, 축하 파티 따위는 일단 잠시 미뤄둔 웨스트 햄이었다.
아직은 축배를 터뜨릴 타이밍이 아니다.
모든 건 챔스 결승전, 그 이후에다.
덕분에 요한도 모든 굴레를 벗어던진 것은 아니었다.
반 1등은 확정 지었는데, 아직 전교 1등을 가리는 시험 하나가 남은 느낌이다.
슈 감독님 : 결승전이 끝나기 전까지 경은 내 선수고, 웨스트 햄의 선수다. 그러니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이왕이면, 아름답게 마무리해야 하지 않겠나?
슈미트 감독의 메시지에, 요한은 알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맞는 말씀이다.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찝찝함이나 아쉬움이 남아선 안 될 것이다.
만약 결승에서 패배한다면 그 찝찝함이 남을 수밖에 없을 거다.
만에 하나,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하는 동료 형들이나 감독님의 모습을 본다면.
어쩌면 마음이 약해질지도 모르는 거고.
‘그럴 순 없지.’
그래선 안 된다.
그 순간 괜히 감정에 휘둘려, 자기도 모르게 한 시즌만 더 해보자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 하나.
끔찍한 이야기지.
정말 끔찍한 이야기다.
‘다들 웃을 수 있어야 돼.’
모두와 미련 없이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후련하게, 진정으로 은퇴를 즐길 수 있겠지.
결국 결론은 하나다.
이번 시즌의 마지막 경기, 그 경기 역시 이겨야 한다.
그게 챔피언스 리그 결승이다.
즉, 챔스 우승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좀 빨리 하지···’
요한은 달력을 확인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챔스 결승까진 아직도 2주가 넘게 남았다.
빨리 좀 하지, 왜 이렇게 늦게 하는 거야.
요한은 빨리 챔스 결승전이 뛰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