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88)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88화(188/202)
< 187화 – 가장 화려한 >
<레알 마드리드가 2년 연속 유럽 챔피언 자리에 등극하게 될지! 아니면 요한 반이 역사상 가장 화려한 은퇴 경기를 만들게 될지! 이번 시즌의 마지막 45분이 될 수도 있는 후반전이 시작됐습니다!>
스코어는 1대1.
남은 정규 시간은 45분.
하프 타임 동안 요한은 꽤 많은 생각을 했다.
사실 요한에게 챔피언스 리그 우승 트로피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발롱도르도 별 관심이 없었는데, 그깟 빅이어야 뭐.
그보다 중요한 건,
남은 45분이 인생의 마지막 축구가 될 경기, 가족들이 자신의 경기를 보며 행복해 할 수 있는 마지막 45분이라는 것이었다.
요한은 떳떳하게 은퇴하고 싶었다.
물론 찝찝함이 남더라도 은퇴를 번복할 생각은 없었다.
요한에겐 찝찝한 은퇴가 멋지게 1년을 더 하는 것보다 나으니까.
하지만 이왕이면 떳떳하게 은퇴를 하는 게 낫지 않겠나.
동료들에게도, 가족들에게도.
마지막 45분.
요한은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마지막이니까, 남은 힘을 다 쏟아부을 준비가.
이젠 모든 게 필요 없다.
힘을 아낄 필요도, 훈련 면제권도, 그 무엇도.
필요한 건 딱 하나 뿐이다.
웃으며 이 경기장에서 나가는 것.
아니, 이 축구판에서 뜨는 것이다.
<레알이 후반전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가 궁금한데요.>
<한 번 지켜보죠.>
레알의 선축으로 시작된 후반전.
천천히 공을 돌리며 기회를 엿보는 레알의 태도는 여전히 신중했다.
레알은 연장전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리그는 무승부가 있다.
하지만, 토너먼트엔 무승부라는 게 없다.
90분 동안 승부가 나지 않으면 연장전에 돌입하고, 거기서도 결판이 나지 않으면 승부차기에 들어간다.
경기 시간이 길어지면 누가 유리할까.
선수층이 두터운 레알일까, 주전과 비주전의 갭이 큰 웨스트 햄일까.
물론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90분 내에 승리로 결말을 짓는 것일테지만,
연장전까지 끌고 가는 것도 레알에겐 좋은 선택지임이 분명했다.
<역시 신중하게 가는군요.>
<충격이 좀 있었겠죠. 전반전 그 실점이요. 아마 난타전을 벌였다간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판단을 했을 겁니다. 좀 더 안전한 방법을 선택하는 건 당연한거죠.>
<결승전이니까요.>
레알은 난타전을 피할 팀이 아니다.
원래라면 말이다.
본인의 득점력은 좀 떨어져도, 연계와 버티는 능력이 좋은 센터 포워드 알바로 요렌테, 그리고 파브리시우와 음바페라는 월드 클래스 윙어들이 포진한 레알이다.
어느 팀과 맞상대를 해도 화력에서 밀릴 자신은 없는 레알이었다.
하지만 딱 하나, 그 상대가 웨스트 햄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장담할 수 없었다.
무조건 이길 수 있다는 장담을.
굳이 리스크를 짊어질 필요는 없었다.
결승전이니까.
때문에, 레알은 신중하게 계속 해서 점유율 위주의 패스 플레이를 이어 나갔고, 역시나 경기는 차분한 느낌으로 이어졌다.
“우우우우-!”
“뭐냐, 겁쟁이들!”
“한 방 얻어맞으니까 순한 양이 됐네! 고추 떼라!”
물론 좋게 말해서 차분한 느낌인거지, 있는 그대로 말하면 지루한 느낌이다.
웨스트 햄 관중석 쪽에서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레알 팬들도 그닥 달가운 반응은 아니다.
소극적으로 플레이 한다는 것 자체가, 화력 싸움엔 자신이 없다는 걸 인정하고 간다는 의미니까.
하지만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들도 눈이 있다면, 전반전에 목격했던 그 경악스러운 장면을 잊지 못할테니.
<후반전도 어느덧 15분이 지나고 있습니다. 후반전 점유율은 레알이 59, 웨스트 햄이 41···>
그런데, 레알이 명심하고 있어야 할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이 경기가 요한의 은퇴 경기라는 점이었다.
“···”
요한은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보며 약간의 초조함을 느꼈다.
경기 시간이 흘러가는 걸 오히려 좋아하는 요한이지만, 그건 평소의 이야기.
오늘은 아니다.
가족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데, 그 소중한 시간이 무의미하게 흐르고 있다.
‘짜증나네.’
엿 같았다.
자신은 급한데, 상대는 느긋한 걸 보니 짜증이 솟구친다.
때문에, 요한의 인내심이 바닥나기 시작한 순간.
모든 사람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모습이란, 바로 ‘전방 압박을 하는 요한’이었다.
본래, 웨스트 햄을 상대로 후방에서 공을 돌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웨스트 햄의 전방 자원 중, 반드시 한 명은 압박에 가담하지 않으니까.
그 한 명은 당연히 요한이었다.
그런데,
타타탓-!
요한이 뛰기 시작했다.
공을 돌리고 있는 레알의 수비수들을 향해.
“···!?”
공을 가지고 있던 후안 곤잘레스의 눈이 당황으로 커졌다.
아무리 곤잘레스가 베테랑이라지만, 그도 사람인 이상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닥치면 당황하기 마련.
요한의 전방 압박은 그만큼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고, 곤잘레스는 당황했다.
당황하면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다.
파아앙-!
<어엇, 곤잘레스의 패스가 부정확하게 갑니다! 끊어내는 버클리!>
곤잘레스의 패스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그 패스를 주워담은 건 버클리였고, 버클리는 곧바로 요한에게 패스를 전달했다.
사실 요한의 압박에 버클리조차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고, 때문에 패스가 좀 부정확하긴 했지만.
괜찮았다.
받는 사람이 요한이었으니까.
개떡같이 줘도 찰떡같이 받아먹는 게 요한 아닌가.
파아앙-!
약간은 뒤로 향하는 패스에, 요한이 몸을 돌리며 긴 다리를 뻗어 공을 받아냈다.
일단 받아낸 것만으로도 좋은 플레이였다.
하지만,
요한은 그 와중에도, 그 터치만으로 공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져다 두었다.
뒤로 향하는 공을 받기 위해 몸을 돌린 요한을 기준으로, 왼쪽에서 온 패스를 요한은 다시 왼쪽으로 잡아두었다.
보통의 공격수라면 패스의 결대로, 오른쪽으로 돌아섰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의 선택은 반대였고, 수비가 완전히 속으며 공간이 열렸다.
퍼스트 터치만으로 슈팅 각도를 여는 것.
전 세계 모든 스트라이커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가장 기본이지만 가장 효과적인 스트라이커의 궁극 스킬.
뻐어어어어어엉-!
돌아서는 동작과 거의 동시에 요한의 오른발이 공에 얹혔다.
구분 동작이 거의 없어 터닝슛으로 봐도 될 정도다.
퍼스트 터치부터 슈팅까지.
그 일련의 과정에 불필요한 동작은 없다.
모든 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 골키퍼로서는 한 박자, 아니 두 박자가 빠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슈우우우우웅-
골대 우측 상단으로 쏘아진 슈팅은,
철썩-!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
“우아아아아아아!”
“미, 미친!”
“내가 뭘 본 거지?”
“마, 말도 안 돼···!”
요한의 두 번째 골을 본 모든 웨스트 햄 팬들은 경악했다.
사실 순수하게 골 장면만 놓고 본다면, 두 번째 골은 첫 번째 골에 비하면 지극히 평범한 골이었다.
단신으로 레알의 중앙 라인을 그대로 찢어버린 첫 번째 골은, 지네딘 지단의 발리와 더불어 챔스 결승 역사상 최고의 골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지만.
두 번째 골은 그저 상대의 실수를 잘 캐치해 얻어낸 득점일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웨스트 햄 팬들에겐 그 두 번째 골이 더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요한이 미친 원더골을 넣는 거야 매주 보는 일이니 그러려니 하는 건데, 지금은 무려 ‘전방 압박’을 하지 않았나?
전방 압박 말이다, 전방 압박.
요한이 말이다.
마치 환상 속의 동물을 본 느낌이었다.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
뿔이 달린 말, 유니콘.
전방 압박하는 요한 반.
“결승전이라 그런가, 별 걸 다 보네.”
“결승이 문제가 아니라, 은퇴 경기잖아.”
“생각해보니 그렇네.”
“맞아. 결승인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요한의 은퇴전인 게 중요하지.”
살다보니 별 걸 다 본다 싶었다.
요한이 전방 압박이라니.
웨스트 햄 팬들은 그제서야 잠깐 잊고 있었던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오늘 경기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요한의 은퇴 경기이기도 하다.
챔스 결승전이 아무리 중요한 경기고, 웨스트 햄이라는 팀에게 최초라는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해도.
요한의 은퇴 경기라는 것보다 큰 의미를 가질 순 없었다.
적어도 웨스트 햄의 팬들에겐 말이다.
“요한을 보내는 마지막 경기인데, 심심하게 보낼 순 없지.”
“그럼?”
“일단 벗는다.”
“벗어? 그럼 나도.”
한 팬이 웃통을 벗자, 그 주변에 있던 팬들이 하나씩 웃통을 까기 시작했다.
마지막인 만큼, 화끈하게 즐겨보자는 거다.
“흔들어 재껴!”
“우어어어어!”
마치 카드섹션처럼 번지기 시작하는 살색 물결.
다홍색과 하늘색으로 넘실거리던 웨스트 햄 측 관중석은 어느새 살색으로 물들었다.
웃통을 벗어젖힌 팬들은 유니폼을 머리 위로 빙빙 돌리며 방방 뛰기 시작했다.
그런 팬들의 열광적인 분위기에, 더욱 뜨거워지는 올림피아슈타디온의 열기.
<2대1! 웨스트 햄이 경기를 뒤집습니다! 경기장의 분위기가 웨스트 햄 쪽으로 완전히 넘어가는데요!>
<레알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네요. 이제부턴 신중하게만 할 순 없겠어요.>
재개되는 경기.
요한의 돌발 행동으로 플랜이 완전히 꼬여버린 레알은 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은 30여 분.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갑자기 피치를 올리기 시작한 요한을 생각하면 짧은 시간.
이제는 부릴 여유가 없다.
레알은 다시 전반 초반 때처럼 라인을 올리고 공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비에가, 왼쪽으로 찔러줍니다! 음바페가 달려갑니다! 아, 그러나 벨라미의 좋은 커팅! 터치 라인 바깥으로 한 발 먼저 걷어냅니다!>
<전반 초반과는 달라요. 웨스트 햄의 집중력이 날이 서 있습니다.>
레알은 전반 초반처럼 공격을 했으나, 웨스트 햄은 전반 초반처럼 수비하지 않았다.
훨씬 더 집중력 있는 모습.
모두가 각성한 듯한 모습이었다.
하프 타임 때, 슈미트 감독의 말이 가슴에 와닿기도 했고.
방금, 전방 압박을 하는 요한의 모습을 보며 무언가 끓어 오르는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떳떳하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은 건 요한뿐만이 아니다.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에겐 행운이나 다름없었던 막내의 마지막인데, 그런 막내의 마지막을 찝찝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형들도 막내에게 당당하고 싶었다.
막내의 마지막 기억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고, 그게 형들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으로, 웨스트 햄 선수들은 이를 악물고 뛰었다.
물론 레알 선수들이라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챔스 결승인데, 어떻게 동기부여가 없을 수 있겠나.
하지만, 웨스트 햄의 단결력은 차원이 달랐다.
그들은 빅이어보다도 더 위대한 일념으로 묶여 있었다.
<비에가의 코너킥! 몸을 날려 펀칭하는 휴리첼!>
<파브리시우, 흔들고 들어갑니다! 그러나 어느새 네이슨이 내려와 붙어줍니다. 좋은 협력 수비!>
<요렌테, 뒤로 내주고! 비에가, 슛-! 수비 몸 맞고 튕겨져 나옵니다. 벨라미와 기마랑이스가 동시에 몸을 던졌습니다. 헌신적인 수비!>
동점골이 필요한 레알이 파상공세를 퍼부었지만, 웨스트 햄은 단단하게 막아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고, 남은 시간이 줄어들수록 레알은 급해져만 갔다.
급하다 보니 공격이 단순해지고, 무리해지며, 억지에 가까워졌다.
<남은 시간은 이제 10분! 레알이 몰아붙이곤 있습니다만, 소득이 없습니다! 스코어는 여전히 2대1! 레알 팬들과 웨스트 햄 팬들 모두 가슴을 졸이며 간절한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대로 10분이 지난다면 레알은 도전자에게 챔피언의 왕관을 내줘야 하고, 웨스트 햄은 최초 우승을 할 수 있게 된다.
어느 쪽이나 간절할 수밖에 없다.
그건 요한이 원치 않는 일이었다.
요한은 가족들과 팬들이 편안하게 즐기길 바랐고, 그래서 간절하게 보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고자 했다.
<비에가, 뒤로··· 엇! 벼락같은 인터셉트! 요한이 순간적으로 볼을 끊어냅니다! 빠르게 치고 올라가는 요한!>
후반 38분, 다시 한번 귀한 장면이 나왔다.
비에가의 안일한 백 패스를 요한이 전광석화처럼 달려들어 가로챈 것.
공을 가로챈 요한은 그대로 속도를 살려 치고 달리기 시작했고, 레알 수비진은 혼비백산했다.
모든 전열을 가다듬고, 대비를 해도 요한을 막기란 어렵다.
그런데 지금 같은 상황에선 어떨까.
레알의 수비가 아마추어처럼 보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데라로사까지 제쳐내고! 요한 반! 카세레스 키퍼까지이이-!>
순식간에 모든 레알 수비를 제쳐낸 요한은, 마지막 순간 카세레스 골키퍼까지 제쳐내며 빈 골대를 맞이했다.
그리고 툭.
빈 골대에 가볍게 공을 밀어 넣으며 세 번째 골을 장식했다.
<해트트릭-! 요한 반이 결국 결승에서도 자신의 힘으로 해결합니다! 무너지는 레알! 그리고 웨스트 햄은 빅이어에 손을 뻗습니다!>
<정말 대단하네요!>
<역사상 이런 선수는 없었습니다! 은퇴 경기가 챔스 결승전이고, 은퇴 경기에서 가장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는 선수 말입니다! 단언컨대, 역사상 가장 화려한 은퇴전입니다!>
*
피 말리는 1분, 1분이 흘렀다.
아, 물론 레알 팬들에게만.
웨스트 햄 팬들에겐 흘러가는 그 1분, 1분이 달콤하기만 했다.
<추가 시간은 3분!>
정규 시간이 종료 되었을 때까지 레알은 만회골을 터뜨리지 못했고, 웨스트 햄의 집중력은 살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3분의 추가 시간도 모두 흘렀을 때.
“삐익, 삐이익, 삐이이이이익-!”
한 시즌의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고,
경기장 절반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
“···”
레알 팬들은 침묵하거나 믿을 수 없다는 듯 눈물을 흘렸고, 레알 선수들은 그대로 엎어져 좌절했다.
반면,
“으아아아아악!”
“우, 우, 우스으으으응-!”
웨스트 햄 팬들은 경기장이 떠나가라 함성을 질렀고, 웨스트 햄 선수들은 땅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며 두 팔을 벌렸다.
지이이이잉-!
챔피언스 리그 트로피, 빅이어에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의 이름이 새겨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