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9)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9화(19/202)
< 018화 – 뛰기 싫어서 뛰는 사람 >
슈우우우우웅-
철썩-!
요한의 첫 슈팅이 호쾌한 소리를 내며 골망을 흔들었을 때.
“으아아앗!”
“허어어얼!”
반석호와 로한은 제 자리에서 거의 2미터는 뛰어올랐다.
그러나,
그런 둘의 리액션은 관중들 사이에서 그렇게 튀는 리액션이 아니었다.
주변 관중들도 이미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뭐고! 저 슈팅!”
“쟤 열여섯살 짜리 유스라며! 방금 뭐냐고!”
“미쳐버린거냐!?”
보통 골이 들어가면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지금은 환호라기보단 충격에 가까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으니 그럴 수밖에.
심지어 잠깐 한 눈을 팔다 골 장면을 놓친 관중들도 많았다.
“와아, 저기서 돌아서는 동시에 수비 제치고, 제치자 마자 슈팅. 대단한데?”
“슈팅 폼 죽이네. 예쁜 폼이야.”
“슈팅 속도 봐. 발목 힘이 얼마나 좋은거야?”
전광판에 리플레이되는 요한의 골 장면에 관중들이 그제야 감탄을 내뱉는다.
턴 동작 하나로 수비를 따돌리고,
따돌리자마자 그대로 파포스트를 향해 슈팅.
그 슈팅이 벼락같은 속도로 페널티 박스를 가로지른 뒤 골망 상단에 꽂힌다.
군더더기가 없어도 너무 없는 완벽한 골이었다.
저게 이 경기가 데뷔전인 열여섯살 짜리 선수의 움직임이라니.
그 골 하나만으로도,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은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저 꼬맹이, 보통의 녀석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 유망한 녀석이라고 소문은 들었다만···”
“그러게. 반니 아들이 입단했다고 커뮤니티가 떠들썩하긴 했었지. 근데, 저 정도였어?”
사실 요한에 관한 소식은,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접한 상태였다.
웬 꼬맹이 하나가 입단 테스트 정문을 부수고 들어와, 일주일만에 유스도 부수고 1군으로 초고속 콜업되었다는 소식.
그리고, 1군 훈련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며 슈미트 감독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는 소식.
게다가 그 유망주가, 팀의 걸출한 스트라이커였던 반니, 반석호의 아들이라는 소식까지.
웨스트 햄의 골수 팬들이라면 내부 커뮤니티를 통해 이미 접한 사실이었다.
때문에,
오늘 그 핫한 유망주가 선발 출장한다는 소식에, 비교적 중요성이 떨어지는 경기임에도 팬들 사이에선 많은 관심이 쏠렸던 것도 사실이었고.
그런데,
아무리 그렇게 기대를 받고 있는 유망주라고 해도 그렇지.
전반 8분만에 이런 식으로 데뷔골을 터뜨릴 줄을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로, 로한아.”
“네?”
“아빠, 앞으로 심장약이라도 챙겨서 다녀야 할 것 같다. 심장이 이렇게 빨리 뛰는 건 처음이야···”
“저두요. 방금 진짜 심장마비 걸리는 줄 알았어요.”
반석호와 로한이야 당연히 요한의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방금은 정말 심장이 멎는 줄.
물론 데뷔전 데뷔골을 기대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상대도 비교적 약팀이고, 요한이라면 충분히 데뷔전에서도 데뷔골을 넣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아니, 근데 8분만에, 첫 슈팅만에 넣을 거라곤 생각 못했지.
아마,
방금 요한의 골에 이 경기장에서 유일하게 놀라지 않은 건 어머니 김라희 뿐일지도 몰랐다.
김라희는 이게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인지도 몰랐으니까.
“8분에 1골. 축구가 90분 동안 하는 거였나? 그럼 11골도 넣을 수 있는 시간이네? 야, 둘째야! 10골만 더 넣자아!”
*
“꼬맹이, 사고를 치는구나!”
“이 자식, 건방진 이유가 다 있다니까!”
“미친 슈팅이었다, 꼬맹아!”
골이 터지자 마자 웨스트 햄 선수들은 머리를 감싸쥐고 요한에게 달려 들었다.
땀내나는 덩치들에게 둘러싸여 켁켁 대는 요한.
“이 자식, 최연소 골 기록 깨겠다더니 진짜 깨버렸네! 그것도 8분만에!”
고든은 아예 헤드락을 걸고 요한의 머리를 마구 헝클이고 있었다.
“숨 막혀요···”
평소같으면 기분이 썩 좋지 못할 일이지만,
지금만큼은 요한도 기분이 좋았다.
거의 처음일지도 몰랐다.
골을 넣고, 이렇게 기분이 좋았던 순간은.
‘1개 확보.’
물론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넣었다는 것에서 오는 기쁨은 아니었다.
골 자체를 멋있게 넣었기 때문에 기쁜 것도 아니었다.
그저,
훈련 면제 쿠폰 1개를 확보했다는 게 기분이 좋을 뿐.
‘남은 시간 82분···’
동료들 때문에 헝클어진 머리로 전광판을 확인하는 요한.
82분이 남았다.
평소 같았으면, 82분이나 남았다는 사실에 가슴이 콱 막혔을 것이었다.
허나, 지금은 넉넉히 남은 시간이 오히려 반갑다.
“자, 다시 가보자!”
“득점 생각 하지마! 하던대로, 그대로 뛰어!”
아직 쿠폰 1개로는 턱없이 부족한 요한이었으니까.
*
“감독님. 아무래도 큰일 난 것 같은데요.”
“···”
“이러다 다음 주 내내 녀석 얼굴도 못보게 생겼어요. 경기장에서만 보게 생겼다구요.”
“끄응···”
경기는 어느덧 후반 10분.
제이미 코치와 슈미트 감독은 심각한 표정으로 필드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둘의 표정만 보면, 마치 팀이 0대3으로 끌려가고 있기라도 한 듯 했다.
그러나,
55:18
WHU 3 : 0 NOR
스코어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3대0.
웨스트 햄은 점수차를 3점이나 벌려 놓은 채 여유롭게 경기를 운영하고 있었다.
아니, 일찌감치 승기를 잡았으니 싱글벙글해도 모자랄 판에 왜 이리 심각들 하실까.
그 이유야 당연했다.
웨스트 햄이 득점한 3골, 그 3골 모두에 요한이 관여를 했기 때문이었다.
전반 8분, 호쾌한 슈팅으로 뽑아낸 선제골.
전반 29분, 센스 있는 패스로 1어시스트.
후반 7분, 2대1 패스를 주고 받으며 수비진을 붕괴시킨 뒤 간결한 슈팅으로 두 번째 득점까지.
55분 동안 총 2골 1어시스트.
3개의 공격 포인트를 올린 요한이었다.
슈미트 감독으로서도 상상 못한 일이었다.
물론 기대는 했었다.
녀석에게 충분한 동기 부여를 해주었기에,
저번 연습 경기 때처럼 나름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줄거란 기대는 했단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파괴적일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무리 상대가 강등권 팀이라고 해도 그렇지.
현재 웨스트 햄의 전력은 강등권 팀을 상대로 한다 해도 가둬 놓고 팰 수 있을만큼의 전력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위권 팀들을 확실히 제압 못하고 비겨버려 따내야 할 승점을 제대로 따내지 못했던 게 이번 시즌의 웨스트 햄 아니었나.
사실 경기 양상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코어가 3대0이라곤 하지만, 필드를 완전히 장악하고 상대를 압도하는 경기는 아니었으니까.
양상만 보면 오히려 팽팽한 흐름이었다.
그럼에도 스코어가 이렇게 된 건, 순전히 요한이 찾아온 기회를 모두 득점으로 연결 시켰기 때문일 뿐.
이런 선수가 절실히 필요했던 웨스트 햄이었다.
거금을 들여서라도 영입해 오려 했던 게,
저렇게 승점을 벌어다줄 수 있는 스트라이커였다.
그런데, 유스에서 데려온 요한이 자기가 그런 선수가 되어줄 수 있다고 플레이로 보여주고 있으니.
‘무지 기쁜 건 맞다만···’
당연히 기쁜 일이었다.
기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걱정도 된다.
이러다, 다음 주 내내 훈련장에서 요한의 얼굴을 못 볼 수도 있겠다는 걱정 말이었다.
“그래도··· 설마 2골을 더 넣진 못하겠지.”
“2어시라도 하면 어쩌시려구요.”
웨스트 햄의 훈련 일정은 주 5일제.
즉 2개의 공격 포인트를 더 올리면, 녀석은 얼마든지 통째로 한 주를 쉴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정말 웃긴 이야기지만,
녀석이라면 진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때문에,
슈미트 감독은 어처구니 없는 고민을 해야만 하고 있는 것이었고.
‘우리 팀 선수가 골을 더 넣을까봐 걱정이라니, 이게 무슨···’
나참.
나름 감독직에 수십 년 동안 있었지만,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걱정이었다.
공격수가 골을 더 넣을까 봐 걱정이라니.
슈미트 감독은 이런 고민에 빠져 있다는 것 자체가 어이없는 나머지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감독님. 이렇게 하시죠.”
“뭘?”
“공격 포인트 한 개 더 올리면 빼줍시다. 못해도 경기 전에 한 번은 훈련 해야죠.”
“으음···”
제이미 코치의 말에 슈미트 감독이 오랜만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미 코치가 오랜만에 옳은 소리를 한다.
“참나. 오늘 데뷔전인 꼬맹이를 보면서 이런 얘길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웃기네요. 녀석을 안빼주면, 두 골 이상도 넣을 것 같으니까 이러고 있는 것 아녜요.”
정말, 웃긴 일이긴 했다.
*
“고생했다, 꼬맹아!”
“가서 푹 쉬고 있어라! 마무리는 형들이 할께!”
“오늘 MOM은 누가 뭐래도 꼬맹이, 너다!”
“라커룸 가서 잔뜩 귀여워 해줄테니 기대하라구!”
후반 21분.
요한이 형들의 격려를 받으며 운동장을 걸어 나왔다.
선수 교체였다.
총 플레이 시간 65분.
그 65분 동안 요한의 스탯은 2골 2어시스트였다.
“···고생했다.”
묘한 표정으로 요한을 맞이하는 슈미트 감독.
그런 슈미트 감독과 악수를 나누고,
요한은 스탭이 건네준 트레이닝 자켓을 입은 뒤 벤치에 앉았다.
‘좀 지치네.’
편히 의자에 기대 길게 한숨을 내쉬는 요한.
방금까지만 해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교체 되어 나오니 몰랐던 피로가 한 번에 몰려든다.
지난번 연습 경기 때나, 첼시와의 경기 때도 그닥 힘든 느낌은 없었으니 오늘도 안 힘들 줄 알았는데, 그래도 다르긴 다른 느낌이다.
힘들긴 힘들었다.
확실히, 요한이 체력이 좋은 편인 건 아니었다.
애초에 훈련량 자체도 턱없이 부족하고, 그 중에서도 체력 훈련은 극혐하는 요한이니 당연한 일.
심지어, 남들 눈엔 전혀 아니겠지만 오늘 요한은 나름 평소보다 더 열심히 뛰었으니 체력을 거의 다 쓴 느낌이었다.
그랬기에,
교체 대상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뭔가 아쉽다.’
그런 반가움과 동시에,
아쉬움이 느껴졌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남은 시간 동안, 충분히 더 따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훈련 면제 쿠폰 말이었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그래도 뭐, 4개나 따냈으니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
무려 4일이나 마음대로 쉴 수 있게 되었는데.
게다가, 오늘 경기를 뛰어 보니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 경기에도 충분히 쿠폰을 잔뜩 따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흐음···’
요한은 남은 경기를 지켜보며,
따낸 4개의 쿠폰을 어떻게 쓸지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
“평생 축구만 했다는 사람이, 어떻게 나보다 몰라?”
“···”
“큰아들. 엄마가 아들이라고 봐줄 것 같지? 5파운드는 용돈에서 깐다. 오케이?”
“···”
반석호와 로한은 우쭐해진 김라희를 보며 어이가 없었다.
축구라곤 1도 모르는 사람한테 내기를 지다니.
하지만,
오늘은 축알못이 이길 수밖에 없는 내기였다.
그 누가, 데뷔전을 치르는 열여섯살 짜리 꼬맹이가 2골 2도움의 스탯을 쌓으리라 예상할 수 있었겠나.
축구를 잘 알면 잘 알수록 질 수밖에 없는 내기였던 것이다.
요한의 활약은, 그만큼 센세이션한 일이었다.
“피같은 용돈이 날아가긴 했지만, 제 기분도 날아갈 것 같아요.”
“나도 마찬가지다, 로한아.”
사실 내기 따위가 뭐가 중요하랴.
지는 게 더 기쁜 내기였다.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다.
요한이, 데뷔전에 그런 맹활약을 펼쳤다는 게.
아니, 그저 요한이 저 경기장에 있다는 것 자체가 둘은 그저 감격스러울 뿐이었다.
“역시 내 동생···”
“역시 내 아들···”
그렇게,
요한 덕분에 모두가 벅차오르는 감정에 한껏 취해 있을 때였다.
우우우우웅-
반석호의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이 여러번 진동했다.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보니,
누군가에게 문자가 몇 통 와 있었는데.
“···”
그 문자의 발신인을 확인한 반석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