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96)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96화(196/202)
< 195화 – 실력 주머니 >
<여러 빅매치들이 즐비한 이번 8강이지만, 아마도 이 경기가 가장 치열할 듯 보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전 세계 시청자 여러분. 이곳은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입니다. 8강 첫 번째 경기,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의 맞대결을 중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약 8만여 석 가량의 관중석이 모두 들어찬 가운데.
하얀색 유니폼의 잉글랜드 선수들과, 밝은 주황색 유니폼의 네덜란드 선수들이 경기장으로 들어선다.
“후. 16강까지는 편하게 봤는데, 이제부턴 슬슬 쫄리네요.”
“네덜란드, 잘하더라.”
“예. 밸런스가 너무 좋아요. 애들 폼도 좋고.”
“어떻게 보면, 결승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아.”
“맞아요. 누가 떨어지든, 좀 억울할 거예요. 하필 8강에서 서로를 만났으니.”
로한과 반석호의 표정이 사뭇 긴장되어 보인다.
확실히, 조별예선부터 16강까지는 편했다.
나름 대진이 괜찮았기 때문이다.
일본과 멕시코 모두 객관적인 전력에서 잉글랜드에겐 열세에 있는 팀들이었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다르다.
특히, 이번 대회의 네덜란드는.
“하필 황금세대라···”
황금세대.
네덜란드 황금세대의 역사는 꽤 찬란하다.
레이카르트, 굴리트, 반 바스텐, 이 오렌지 삼총사로 대표되던 1대 황금세대.
스탐, 셰도르프, 데니스 베르캄프, 클루이베르트, 에드가 다비즈, 오베르마스 등이 구축했던 2대 황금세대.
그리고 지금, 이번 대표팀은 선배들의 뒤를 이을 3대 황금세대로 불리고 있다.
<네덜란드의 선발 라인업을 살펴드리겠습니다. 오늘도 역시 16강전에 출전했던 선수들이 그대로 나왔죠?>
<토너먼트의 변수는 선수들의 카드 관리, 그리고 부상인데요. 네덜란드는 깔끔합니다.>
<수비진부터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골키퍼 피터 뤼스커, 백 포에 테오 에데르벤, 데릭 데 클라잉, 피에르 헤즈만, 카이 헤이팅어···>
주축은 아약스의 젊은 선수들이다.
데 클라잉와 헤이팅어를 제외하면, 골키퍼부터 수비진 전원이 아약스 멤버들.
심지어 데 클라잉 역시 아약스 출신이고, 이들과 함께 뛴 기간이 겹치니.
사실상 전원이 아약스 선수라고 봐도 무방하다.
<중원은 루드 헨스마르, 한스 바노, 프란스 판더펠더, 게더 크라머···>
중원 역시 마찬가지.
맨유 소속의 판더펠더를 제외하곤 모두 아약스.
<투 톱엔 페테르 얀센과 루크 데 브라이가 트윈 타워를 이루겠습니다.>
딱 공격진만 아약스 선수가 없다.
뮌헨의 얀센과 아스날의 데 브라이.
하지만, 이 역시 밸런스가 절묘하다.
아약스의 약점으로 꼽혔던 게 공격 쪽이었으니.
이 둘은 그 약점을 충분히 메워줄 수 있는 선수들이었다.
<선발 11명 중 6명, 절반이 넘는 선수가 아약스 소속 선수들입니다. 조직력은 말할 필요가 없겠죠?>
<실제로 대단하죠. 하나의 팀으로서, 가장 완성도 높은 팀이 네덜란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말씀드렸듯, 빅매치가 즐비한 이번 8강이지만,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경기가 미리보는 결승전입니다. 결승전이 열릴 예정인 이곳 베르나베우에서 이 경기가 펼쳐지는 게 우연만은 아닌 것 같지 않나요? 경기, 시작됐습니다!>
*
굳이 따지자면, 네덜란드는 멕시코와 비슷한 느낌의 팀이었다.
공수 균형이 골고루 잡힌 육각형의 팀.
그러나,
그 육각형의 크기는 꽤 많이 차이가 난다.
네덜란드는 꽉 찬 육각형이다.
심지어, 조직력도 좋다.
<헨스마르, 바노에게. 유기적으로 공을 돌리는 네덜란드. 패스가 물 흐르듯 연결됩니다. 계속해서 점유율을 가져가는 네덜란드.>
클럽 팀과 국가대표 팀의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조직력일 것이다.
대표팀은 어쨌든 1년 내내 함께 훈련하며 호흡을 맞추는 게 아니니까.
조직력에 있어선 클럽 팀을 따라갈 수가 없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다르다.
현 소속 팀이 같은 선수들이 무려 여섯 명.
서로의 눈빛만 봐도 생각을 다 알 수 있는 선수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
어차피 잉글랜드나 네덜란드나, 선수들의 면면은 모두 화려하다.
그렇담, 더더욱 조직력이 내는 힘은 강력해진다.
파아앙-
파아앙-!
유기적인 움직임을 통해 서로 삼각 대형을 만들며 패스를 이어나가고,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잉글랜드가 쉽게 볼 소유권을 빼앗아오지 못하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쉽게 쉽게 잉글랜드의 압박을 피해냈다.
<판더펠더, 전방으로 길게! 오른쪽을 봤습니다!>
그리고 공격 전개.
네덜란드가 주로 사용하는 패턴은 단순하다.
투 톱인 데 브라이와 얀센 모두 키가 큰 공격수들인데, 사이드로 빠지는 움직임을 선호하기도 하는 선수들이다.
그 둘 중 한 명이 사이드로 빠지면, 후방에서 여지없이 롱 패스가 날아간다.
<공을 따내는 데 브라이. 오른쪽으로 나와 공을 받아줍니다.>
풀백과의 공중볼 경합은 이들에겐 식은 죽 먹기.
특히, 잉글랜드의 레프트백인 대니 화이트는 키가 큰 편이 아니다.
당연히 네덜란드에겐 좋은 먹잇감이었고, 덕분에 오늘 네덜란드의 공격 전개는 아주 쉬울 듯했다.
<공을 탈취해냅니다, 대니 화이트. 좋은 수비로 만회!>
그러나, 그 이상은 잉글랜드도 호락호락하게 허용하지 않는다.
공중볼 싸움은 힘들지만, 대인 방어는 좋은 대니 화이트가 데 브라이에게서 공을 빼냈다.
그리고,
곧바로 역습으로 연결.
<화이트, 잭 프라이스에게. 프라이스, 전방을 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네덜란드가 하는 거, 잉글랜드도 할 수 있다.
뻐어어어어엉-!
슈우우우우웅-
파아앙-!
프라이스의 정확한 패스가 요한에게 연결되었다.
데 브라이와 똑같이 오른쪽으로 빠져나와 있던 요한.
다만, 네덜란드의 레프트백 테오 에데르벤은 대니 화이트와 다르게 큰 선수였다.
187센티미터의 키로, 풀백치곤 사이즈가 상당히 큰 선수.
그러나,
요한 앞에선 대니 화이트나 에데르벤이나 그게 그거일 뿐.
아니, 어쩌면 화이트가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곧바로 돌파합니다! 눈 깜짝할 새에 에데르벤을 벗겨내는 요한!>
화이트는 빠르기라도 하니까.
요한의 급가속에 에데르벤이 휘청이며 반응이 늦었다.
멕시코와 달리, 네덜란드는 전체적으로 신장이 크다.
때문에 공중볼 싸움에선 멕시코보다 나을 수 있겠지만, 발밑 싸움은 도리어 불리할 수도 있다.
상대가 요한이니까.
타타탓-!
박스 오른쪽을 치고 들어가는 요한.
동시에 잉글랜드 선수들이 박스를 향해 쇄도한다.
잉글랜드를 상대하는 모든 팀들이 이런 상황에서 골머리를 앓는다.
요한은 최소 두 명 이상이 붙어야 하는 대상.
하지만 패스도 잘 한다.
요한이 공을 잡고 있을 때면, 잉글랜드는 항상 많은 수가 적극적으로 침투했다.
요한이 공을 잡고 있는 이상, 빼앗길 리가 없으니 역습에 대비하지 않는 거다.
그래도, 네덜란드는 나름 침착했다.
“뒤!”
“여기!”
그 짧은 순간에, 일사분란하게 자리를 잡는 수비진.
역시 하루 이틀 호흡을 맞춰본 게 아니라는 느낌이 느껴진다.
그리고,
요한에게 붙는 건 데 클라잉이다.
‘미안하지만···’
이 순간을 기다려 온 데 클라잉.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은퇴 후 갑작스러운 복귀에, 몸 상태가 100퍼센트가 아닌 건 안다.
그래서 미안하긴 한데, 어쩌겠는가.
적의 사정까지 봐줄 정도로 한가한 무대가 아닌데.
아무리 요한이라지만, 지금의 요한은 절대 막을 수 없는 존재가 아닐 것이었다.
유니폼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무슨 쫄티처럼 몸에 딱 붙는 유니폼.
은퇴 후 얼마나 편안한 삶을 살았을지가 예상될 정도다.
저 몸집으로 이 정도 스피드를 내는 것조차 이해가 안 갈 지경.
타타탓-!
데 클라잉이 강하게 붙자, 요한이 왼다리로 막아서며 공을 지켜냈다.
그리고 대치 상황.
공을 세워놓고 등을 지는 요한과, 그런 요한을 밀어내는 데 클라잉.
‘몸싸움은 더 좋아졌다, 이거냐?’
밀리지 않는다.
무게가 있으니.
뭐, 원래도 밀리지 않는 녀석이었지만.
‘하지만 다른 건···’
체중이 늘어나 몸싸움만큼은 현역 때보다 좋아졌을지 몰라도, 다른 부분에선 다 떨어졌을 터.
옛날 생각을 하면 안될 것이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PL 리그 베스트 수비수 데릭 데 클라잉이라면 절대 돌아서지 못하게 할 수···
“뒤!”
응?
뻐어어어어엉-!
<으아앗! 머레이의 슈팅이 골 포스트를 벗어납니다! 머리를 감싸쥐는 머레이! 요한의 감각적인 힐 패스를 날려버립니다! 아쉽네요!>
요한을 밀고 있는데, 뒤에서 들려온 슈팅 소리에 데 클라잉은 어안이 벙벙했다.
뭐지? 왜 공이 저기에···
어느 틈에 공을 빼낸거지?
“···”
미간을 찌푸리고 전광판을 바라보는 데 클라잉.
방금의 장면이 리플레이로 나오고 있다.
요한은 공을 지켜내는 척 하면서, 자신의 다리 사이로 공을 빼내고 있었다.
젠장.
저걸 눈치조차 못 채다니···
‘센스는 어디 안 간다는 건가.’
은퇴한 선수들이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나이가 먹어도 실력 자체는 전성기때 못지 않은데, 아니 오히려 매년 절정을 찍는데, 체력과 신체 능력이 떨어져서 은퇴를 하는 거라고.
이 녀석도 마찬가지일 거다.
공백이 있긴 했지만, 그 공백으로 인해 떨어진 건 신체 능력일 뿐이지 감각은 아닐 것이다.
‘방심할 순 없다, 이건가.’
데 클라잉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나름 만족스러운 부분은 있다.
어쨌든 돌아서진 못 했잖아.
1년 전이라면 어떻게든 돌아서서 슈팅까지 가져갔을 녀석인데, 그걸 못하게 했다.
자신이.
‘왠지 슬퍼질 정도인데. 현역땐 정말 막기 힘든 녀석이었는데.’
데 클라잉은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박빙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긴장감이 감도는 이 팽팽함은 언제, 어떻게 끊어질까요. 어느 쪽에서 선제골을 넣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상황이 됐습니다.>
전반 25분까지 양 팀의 득점은 나오지 않았다.
팽팽한 흐름.
그 사이 찬스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양 팀 모두 골키퍼의 슈퍼 세이브라든가, 투지 넘치는 수비 혹은 상대의 실수로 위기를 모면했다.
선제 골이 어느 쪽에서 나오느냐가 굉장히 중요해진 상황.
‘나쁠 거 없어.’
요한의 은퇴로 맨유 감독직에 흥미를 잃고, 결국 계약 해지 후 네덜란드 대표팀에 부임한 예룬 하우어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것, 나쁠 게 없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요한의 체력은 예전과 같지 않다.
즉,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는거다.
오늘 경기를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썼던 건 초반 30분간 실점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 이후부터는 분명 요한의 움직임이 줄어들 것이고, 그렇담 충분히 해볼만 했다.
전반 25분까지 0대0인 것.
득점이 나오지 않은 건 아쉽지만, 경기는 분명 바라던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 잉글랜드의 라니스터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슬슬 방심할 때가 됐는데.’
예우어 감독이 초반 30분에 집중했다면, 라니스터 감독은 오히려 초반 30분은 힘을 빼라고 지시해둔 상태였다.
요한에게 말이다.
분명, 네덜란드의 수비 조직력은 지금까지의 상대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요한이라고 해도, 그들을 상대로 골을 몰아치려면 상당한 에너지 소모가 필요할 정도로.
지금까지 경기들에서, 라니스터 감독은 한 번도 요한이 풀타임을 뛰도록 한 적이 없었다.
조별예선땐 두 경기 모두 60여 분을 뛰게 했고, 32강과 16강땐 70분 정도를 뛰게 했다.
요한의 몸상태를 체크해 봤을 때, 그 정도가 딱 적당한 수준이었기에.
다행인 건 한 번씩 경기를 뛸 때마다 체력이 올라오고 있다는 점이었고, 때문에 8강부터는 웬만하면 풀타임을 뛰게 할 생각이었다.
이제부터는 10분, 아니 5분도 방심할 수 없는 스테이지니까.
그래서, 요한에게 최대한 체력 관리를 하면서 뛰게끔 한 거다.
체력 관리를 하는데 있어, 경기 초반에 힘을 몰아쓰고 후반에 관리하는 게 나을까, 아님 초반에 아끼다 후반에 몰아 쓰는 게 나을까.
당연히 후자다.
<이제 곧 전반 30분이 지납니다. 아직까지 스코어는 0대0. 득점은 나오지 않고 있지만,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이···>
전광판의 시계가 30분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양 팀의 감독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28:39···
29:24···
29:45···
30:00
‘됐다.’
‘됐다.’
30분이 지나는 순간, 하우어 감독과 라니스터 감독은 모두 ‘됐다’고 생각했다.
하우어 감독은 30분간 실점을 내주지 않았기에 됐다고 생각했고, 라니스터 감독은 이제 더 기다리지 않아도 되기에 됐다고 생각했다.
참느라 힘들었다.
<셰인 머레이, 요한에게. 어, 요한이 아래쪽까지 내려와서 공을 받는군요.>
30분이 지나자, 하프라인 부근까지 내려와 공을 잡는 요한을 보며 라니스터 감독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저 친구, 진짜.
시간 관념 하나는 철저한 친구라니까.
그래, 자.
가라!
이제 힘을 쓸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