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197)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197화(197/202)
< 196화 – 실력 주머니 >
요한이 슬금슬금 내려가기 시작했을 때부터, 네덜란드 수비진은 일동 당황했다.
하지 않던 짓을 하니까.
사실 시작부터 좀 이상하긴 했다.
요한이 최대한 활동량을 아끼는 타입이란 건 아는데, 아껴도 너무 아끼는 느낌이어서.
물론, 그게 체력 문제 때문일 거라는 건 눈치채고 있었다.
당연히 현역의 몸 상태일 리가 없잖은가.
겉모습만 봐도 그건 알 수 있다.
게다가, 8강쯤 됐으면 피로 누적이 어느 정도 됐을 시기.
이런 것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네덜란드 선수들은 판단을 내린 시점이었다.
오늘 요한의 컨디션은 그닥 좋지 못하다고.
충분히 해볼만 할 것 같다고.
근데, 그렇게 결론을 내렸으면 안 됐다.
네덜란드 선수들이 도출했어야 하는 결론은, 요한의 컨디션이 별로인 것 같으니 해볼만 하다가 아니라.
요한이 체력을 아끼고 있는 듯 하니 더욱 조심해야겠다, 였다.
요한이 꽉 끼는 유니폼을 입고 뛰어다닌다고 해서, 동네 아저씨 정도로 생각하면 곤란하지.
당장 재작년과 작년에 발롱도르를 연속으로 수상했던 선수인데.
<공을 잡고 돌아서는 요한. 곧바로 붙어주는 판더펠더와 크라머. 그러나 빼앗기지 않습니다! 좋은 탈압박!>
어쨌든 요한이 어디서 공을 잡든 위협적이라는 건 네덜란드 선수들도 알고 있다.
때문에, 하프라인 근처지만 미드필더 둘이 강하게 달라붙었다.
그러나,
그런 둘의 압박을 요한은 쉽게 쉽게 벗겨냈다.
마치 조기축구에 나타난 선출 아재처럼, 어떻게 저렇게 쉽게 공을 차는지 관중석에서 탄성이 일 정도.
하지만,
더 큰 탄성은 잠시 후에 일었다.
뻐어어어어엉-!
<왼쪽을 봅니다! 좋은 시야! 그리고 정확한 패스! 요한의 롱 패스가 시원하게 뻗어 나갑니다!>
요한이 뿌린 롱 패스가 자로 잰 듯 쏘아져 나갔다.
그 볼 줄기의 속도나 정확성은, 패스로 유명한 여타 미드필더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
아니, 오히려 더 시원하고 정교한 느낌까지 든다.
요한에게 따라붙었던 판더펠더와 크라머마저 날아가는 공을 보느라 정신이 팔렸을 정도.
‘아.’
아차, 하고 정신을 차린 판더펠더와 크라머가 뒤를 돌아봤다.
그러나, 그곳엔 아무도 없다.
서둘러 고개를 돌려 요한을 찾으니,
‘미친?’
이게 말이 되나.
요한은 어느새 페널티 박스 근처까지 뛰어가고 있었다.
무슨 순간이동을 쓰나?
“간다!”
왼쪽에서 공을 받은 잉글랜드의 레프트 윙어, 미켈 마이어스가 동료들의 위치를 파악하곤 공을 툭 밀며 크로스를 준비했다.
요한의 전환 패스가 워낙 빠르고 정확했기에, 마치 코너킥처럼 여유롭게 킥을 준비할 수 있다.
뻐어어어어엉-!
그러니, 당연히 마이어스의 크로스는 정확하게 박스 안으로 파고 들었다.
그리고,
그 크로스를 향해 날아드는 건 육중한 요한이었다.
파아아아아앙-!
헤더 같지 않은 헤더의 임팩트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냥 공이 아니라 물공 같은 헤비한 타격음.
요한이 가진 묵직한 질량과 총알 같은 속도가 더해지니, 헤더에 실린 힘이 어마어마한 건 아주 간단한 과학 법칙이었다.
철썩-!
<고오오오오올-! 들어갔습니다! 요한 반의 헤더! 헤더로 네덜란드의 골문을 열었습니다! 선취골을 뽑아내는 잉글랜드!>
환호하는 잉글랜드 선수들과 팬들.
그리고, 어안이 벙벙한 네덜란드 선수들.
뭘 해보지도 못하고 순식간에 실점을 얻어 맞았다.
그도 그럴 게, 단 두 번의 패스로 만들어낸 골 아니었나.
요한이 왼쪽으로 열어준 패스 한 번.
그리고 레이놀즈가 다시 요한에게 올린 패스 한 번.
<이게 잉글랜드의 파괴력입니다!>
<축구는 이렇게 쉽게 쉽게 하는 거죠!>
과거 뻥글랜드라 불리던 시절이 떠오르는 골.
물론 그건 멸칭이었지만, 지금은 뻥 축구의 좋은 예였다.
뻥 축구라고 꼭 나쁜 건 아니다.
이렇게 잘만 쓰면, 오히려 효율로는 최고지.
<전반 31분, 잉글랜드가 1대0으로 먼저 앞서갑니다!>
*
하우어 감독은 아차 싶었다.
요한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요한.
전반 30분 동안 생각보다 잠잠했다고 해서, 경계를 늦춰선 안 됐는데.
하지만, 요한이었기에 마음을 좀 놨던 부분도 있었다.
무려 요한을 상대로 30분 동안 실점을 내주지 않지 않았는가.
그래서 자신감이 붙었던 것도 있다.
오늘 경기, 잡을 수 있겠다라는.
‘역시···’
하우어 감독은 골을 넣고 제 자리로 돌아가는 요한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은퇴했다 복귀했다 해도 요한은 요한이란건가.
선제 실점을 내준 시점 이 상황은 매우 뼈 아팠지만, 소문난 요한 덕후인 하우어 감독은 요한에 대한 팬심이 더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어쨌든 하우어 감독의 네덜란드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선제골이 들어간지 10분 뒤.
전반 40분, 네덜란드의 동점골이 터졌다.
<피에르 헤즈만! 코너킥을 머리로 집어넣습니다! 헤더로 똑같이 되갚아주는 네덜란드!>
코너킥 상황에서, 센터백인 피에르 헤즈만의 헤더가 터지면서 동점.
이후 경기는 치열하게 흘러가다 종료 휘슬이 울렸다.
“미치겠네. 경기는 진짜 재밌긴한데, 쫄려.”
“그래도 후반엔 요한이가 더 활약할 거다. 페이스 조절하는 게 눈에 보였어.”
“그렇죠? 확실히 포인트를 후반에 둔 느낌이긴 했어요.”
“보여줄 거야. 이 정도로 끝낼 녀석이냐, 어디 요한이가.”
반석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요한.
요한이야, 당연히 믿는다.
요한이만 그라운드 위에 있으면, 무서울 게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나.
지난 1년간 그걸 무지 느끼기도 했고.
다만, 전반전을 보며 든 생각은 확실히 월드컵이라는 무대가 쉬운 무대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선수들의 눈빛부터가 달랐다.
보는 것만으로 뜨거워질 정도로 타오르는 눈빛.
괜히 관중석에 앉은 팬들이 평소보다 훨씬 열정적인 응원을 하고 있는 게 아닐거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아 하는 선수들의 투지가 전해져서.
아무튼, 월드컵은 요한에게도 쉬운 무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역대급이라 불렸던 모든 선수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펠레나 마라도나는 모르겠지만··· 리오넬 메시나 호날두를 보라.
유럽에서 전설적인 역사를 써 내려간 선수들도 월드컵에선 고배를 마셨다.
물론 믿는다.
요한이가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서리란 것을.
축구에 대한 마음과 지식으론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 로한에게, 마음 속 역대 넘버 원은 요한이니까.
이것은 요한의 형이라서 하는 생각이 아니었다.
요한의 전성기를 두 눈으로 직접 본 한 명의 축구 팬으로서 하는 이야기였다.
“자··· 가자!”
경기는 후반전으로 이어졌다.
*
1대1로 마무리 된 전반전.
후반전에 나서는 요한은, 조금 마음이 급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상대는 생각보다 단단한 팀이었다.
특히, 공격 쪽이 꽤나 위협적이다.
키퍼의 슈퍼 세이브나 상대의 실수가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실점했을 장면이 여러 번 있었다.
<아직 45분이라는 긴 시간이 남아 있긴 하지만, 양 팀 모두 연장전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을 순 없을 겁니다.>
<월드컵 토너먼트는 유독 연장전이 많이 나오는 대회이기도 하죠.>
연장전에 가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빨리 골을 넣어야 한다.
그뿐이다.
<잭 프라이스, 옆으로 내줍니다. 요한이 전반처럼 내려와서 공을 받아주는군요.>
후반 시작과 동시에 요한이 다시 하프라인 근처로 내려왔다.
그러자, 네덜란드의 모든 선수들이 후방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선수들도 학습 능력이라는 게 있으니, 선제 실점 때의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덕분에 압박 없이 여유 있게 공을 잡고 돌아서는 요한.
<줄 곳은 마땅치 않아 보입니다.>
요한을 제외한 모든 선수들은 마킹을 달고 있어 딱히 패스할 구석이 보이지 않는다.
흐음.
근데 이게 맞나?
요한을 빼고 나머지 선수들을 막는다고?
타타탓-!
줄 곳이 없으면, 혼자서 치고 나가면 된다.
속도를 붙이기 시작하는 요한.
그러자 아차 싶은 듯, 네덜란드 수비가 중앙으로 간격을 좁히기 시작했다.
요한이 누구인가.
AT 마드리드, 레알 마드리드도 단독으로 찢어버릴 수 있는 돌파력을 가진 공격수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요한은 돌진을 멈추지 않는 과감함을 가진 선수기에, 네덜란드 선수들은 요한에게 집중을 해야만 했다.
근데,
이러면 또 좌우가 빈다.
뻐어어어어엉-!
<잘봤습니다! 오른쪽 공간이 비었어요!>
지옥의 이지선다다.
아빠가 좋으냐, 엄마가 좋으냐 보다도 더 괴로운 이지선다.
요한은 마음만 먹으면 공을 가지고 돌진하는 과감함도 가지고 있지만, 쉬운 길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똑똑함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똑똑함은 귀찮은 걸 싫어하는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고.
원래 게으른 사람들이 잔머리가 좋은 법이다.
<아론 레이놀즈, 크로스를 준비합니다!>
이번에도 여유로운 크로스 각이 열렸다.
박스를 향해 달리는 요한과, 잔뜩 긴장하는 수비수들.
다들 두려운 표정들이다.
그래도,
“마이!”
용기를 낸 것은 데 클라잉.
‘이번엔 막는다.’
첫 골을 허용했던 건 대비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데 클라잉은 길목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절대 공중볼을 내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저 육중한 몸보다 높게 뛰지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심지어, 이제 진짜 체력이 떨어질 시점이다.
안 그래도 무거운 몸이 더 무겁게 느껴질 시점이란 말이다.
뻐어어어어엉-!
레이놀즈의 크로스가 문전으로 향한다.
낮고 빠르기보단, 높게 올라오는 크로스.
그 크로스를 보며 데 클라잉의 자존심이 상했다.
크로스의 낙구 지점이, 본인이 서 있던 위치였기에.
뻔히 자기가 서 있는데, 그곳으로 크로스를?
‘웃기지···’
슈우우우우우웅-
‘마···!?’
데 클라잉의 얼굴에 드리워지는 검은 그림자.
데 클라잉이 목격한 것은, 한 마리의 거대한 독수리였다.
먹이를 눈 앞에서 낚아채가는 독수리.
파아아아아앙-!
철썩-!
<걸렸습니다! 또 걸렸습니다! 요한의 두 번째 골! 이번에도 머리로! 장신 군단 네덜란드를 상대로 두 번째 헤더를 작렬시키는 요한 반!>
<여기가 달인가요? 어떻게 저런 점프력과 체공 시간이 나올 수 있는 거죠?>
데 클라잉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최고 높이에 도달하기도 전에, 요한이 공을 잘라먹었으니.
대체 이 미친 녀석은···!
“···!?”
허탈하게 경악하고 있던 데 클라잉은, 다음 순간 더욱 경악하고 말았다.
타타탓-!
요한이 골대 안에 처박힌 공을 들고, 하프라인으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
“···”
할만하다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나?
후반을 위해 그저 힘을 아끼고 있었을 뿐이었나?
녀석의 벽을 넘을 순 없는 것인가?
순간 데 클라잉에게 무력감이 찾아왔고, 이제 바랄 수 있는 건 그저 공격수들이 많은 득점을 해주는 것뿐이었다.
*
<네덜란드가 라인을 상당히 올리고 있습니다. 동점골이 필요한 네덜란드.>
시간은 대략 40분 정도가 남아 있었지만, 하우어 감독은 어딘가 굉장히 급해 보였다.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서서, 선수들에게 올라가라는 손짓을 하며 공격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했다.
시간이 자신들의 편이 아니라는 걸 이제야 눈치챘기 때문이다.
요한은 계속해서 골을 노릴 거고, 그럴 힘이 충분히 남아 있다.
그렇담 남은 40분 동안 1골만 만회하면 된다고 생각할 게 아니다.
적어도 3골은 필요할 거다.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장전이라도 가기 위해선.
그러나, 이렇게 되니.
이제는 또 잉글랜드에게 하나의 무기가 생긴다.
요한을 이용한 역습.
요한이 있기에 모든 상황에서 대처가 되는 잉글랜드다.
<몸을 던져 슈팅을 막아냅니다! 집중력 좋은 수비!>
무조건 막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몸을 던지는 잉글랜드 수비수들.
네덜란드도 단순한 패턴으로 공격을 시도해보지만, 잉글랜드의 집중력이 살아 있다.
그리고,
새로 쥔 무기를 쓸 기회가 왔다.
뻐어어어어엉-!
<걷어내는 벨라미. 어··· 그런데! 요한이 뜁니다! 이 공을 잡을 수 있나요!>
일단 걷어낸 공이 하프라인을 넘어 떠갔고, 그 공을 향해 요한이 달렸다.
네덜란드는 수비 라인까지 올려서 공격을 펼치고 있던 상태.
모든 수비가 허겁지겁 전력 질주로 백코트를 해보지만,
파아앙-!
공을 먼저 잡는 건 요한이다.
퍼스트 터치를 일부러 길게 차 놓고, 계속해서 속도를 붙이며 달리는 요한.
그 속도가 무섭다.
<데 클라잉이 따라붙습니다!>
하지만, 데 클라잉도 이를 악물고 달렸다.
키가 큰 선수들이 민첩성은 조금 떨어져도, 넓은 공간에서 달리는 주력은 작은 선수들보다도 유리한 점이 있다.
데 클라잉의 주력은 소속 팀인 리버풀 내에서 1등을 다투는 수준이었고, 요한과 크게 차이가 벌어지지 않고 따라가는 것만으로 관중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요한이 현역 때의 몸이었다면 절대 따라붙을 수 없었겠지만.
지금은 가능했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타타탓-!
데 클라잉이 따라붙자, 요한이 살짝 속도를 죽였다.
그러자 데 클라잉도 허겁지겁 속도를 죽인다.
아주 당연하게도, 전력으로 달리다 급제동을 걸면 몸을 가누는 것조차 어렵다.
몸의 중심이 쉽게 흐트러질 수 있는 상태라는 뜻.
그렇기에, 거기서 들어간 요한의 스텝 오버는 너무나도 효과적이었다.
<벗겨냅니다! 데 클라잉이 미끄러져 넘어집니다!>
어쩌면, 데 클라잉이 따라붙도록 놔둔 게 이렇게 굴욕감을 주기 위해 일부러 그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요한은 완벽하게 데 클라잉을 제쳐냈다.
데 클라잉을 넘어뜨린 뒤, 중앙으로 방향을 잡은 요한에게 슈팅 각도가 열렸고,
뻐어어어어어엉-!
슈우우우우우웅-
체중을 실은 슈팅이 낮게 깔려 니어 포스트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 슈팅은,
철썩-!
골키퍼가 반응할 틈도 없이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번 대회 두 번째 해트트릭-! 8강에서! 네덜란드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꽂아 넣는 요한 반! 우리가 알던 그 요한 반입니다!>
이미 여러 번 놀랐지만, 사람들은 또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대체 저 몸으로 어떻게 저렇게 빠르고 유연할 수 있는 거지?”
“몰랐냐? 저거 살 아니야.”
“그럼 뭔데?”
“실력 주머니야.”
실력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워 온 요한을, 네덜란드도 막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