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21)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21화(21/202)
< 020화 – 기꺼이 >
“어쩜. 로한이는 어떻게 그렇게 매사에 열심이니? 다른 아이들도 로한이 반만 닮으면 좋으련만.”
“저같은 애들은 열심히 안하면 안되니까요.”
“응? 너 같은 애들이 뭔데?”
선생님의 질문에 그냥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로한.
굳이 우울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대답은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스스로는 전혀 우울하지 않지만, 듣는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으니까.
‘재능이 없으면, 열심히라도 해야죠.’
주변에선 어떻게 그리 열심히냐고, 대단하다고 하지만.
로한에겐 당연한 이치일 뿐이었다.
열심히 안해도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열심히 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는 사람도 있다.
본인은 후자에 속한다고 생각할 뿐인 로한이었다.
그렇기에, 뭐든지 열심히 임할 뿐.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정말 대단해. 전과목이 한 등급씩 올랐으니, 다음 시험 땐 올 A등급도 가능하겠는 걸.”
“열심히 해볼게요.”
입단 테스트를 준비해오면서도 공부는 놓지 않았던 로한이었다.
허나, 동생 덕분에 웨스트 햄 아카데미에 입단한 뒤.
로한은 수업에 좀 더 집중했었다.
아카데미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훈련을 하면서, 로한은 더욱더 여실히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미 예전부터 너무나 잘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축구라는 건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말이었다.
특히,
누구보다 가까이서 동생을 보고 있는데 그걸 못 알아차리면 바보였다.
동생은 그 어린 나이에 자신이 번번이 떨어졌던 입단 테스트를 부수고, 것도 모자라 프리미어 리그에 데뷔해 맹활약을 펼쳤다.
그런 ‘진짜 재능’을 바로 옆에서 봤는데, 축구에 대한 의욕이 꺾일 수밖에 없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선수로서의 얘기였다.
축구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 큰 로한이었다.
어쩌면 아빠보다도 자기가 축구를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생각할 정도니까.
때문에, 앞으로도 축구와 함께 살아가겠단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선수로서는 스스로도 한계를 느끼고 있으니 고민이 깊던 로한이었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 오늘 아침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로한은 머리가 명쾌해지는 기분이었다.
‘요한이를 도와줄 수 있다면···’
사랑하는 동생이자, 둘도 없는 친구.
요한을 보고 있으면 많은 감정들이 드는 로한이었다.
그 중, 분명 부러움이라는 감정도 존재한다는 걸 부정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큰 감정은 고마움이었다.
자신이 할 수 없는 걸 요한이 대신 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웨스트 햄의 유니폼을 입고, 반씨 가문에 흐르는 피가 어떤 피인지 보여주는 것.
집안의 명예를 드높이는 것.
아들들을 위해 모든 걸 해주시는 아빠를 행복하게 해드리는 것.
자신은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모두 요한이 축구화를 다시 신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들이었다.
하지만,
녀석이 마음을 먹어 주었기에 지금 이 믿지 못할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로한은 동생을 잘 알았다.
동생이 축구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고, 얼마나 하기 싫어 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요한이 축구를 하고 있다는 건 녀석이 얼마나 큰 걸 포기한건지도 가늠할 수 있었고.
동생이 고마울 수밖에 없는 로한이었다.
로한은, 그런 동생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어쩌면 빚을 갚는 것일지도 몰랐다.
집안의 명맥을 이어줄 유일한 적자를 옆에서 돕는 것.
로한은 그게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아닌가 싶었다.
다행히도, 자신이 동생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많을 듯 했다.
자신이 제일 자신 있는, 열심히만 한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방법들.
‘인기 게시글 갔다. 헤헤···’
핸드폰으로 해머스 닷컴을 뒤적이던 로한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올린 칼럼이 많은 팬들의 추천을 받아 인기 게시글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정확한 분석이네요. 추천 누르고 갑니다.
-역시 믿고 보는 바니보이님의 칼럼입니다.
-선추천 후감상. 제 의견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바니보이님은 현직에 계신 분인가요? 분석이 정말 날카롭네요.
-클럽은 바니보이님을 전술 코치로 선임하라!
‘바니보이’는 로한이 사용 중인 필명.
바니보이는 이미 해머스 닷컴 내에선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만큼 네임드 유저였다.
로한이 올리는 칼럼의 퀄리티가 상당하기 때문이었다.
전술 분석, 경기 해설, 주요 포인트 분석.
뿐만 아니라 이적 시장의 흐름과 현재 구단과 관련된 전문적인 정보들까지.
팬들 사이에선, 바니보이의 칼럼이 실명으로 활동 중인 현직 전문가들보다도 낫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을 정도였다.
로한이 그런 퀄리티의 칼럼을 쓸 수 있는 이유야 간단했다.
태어날 때부터 해머스의 팬으로 태어났고, 누구보다 축구를 사랑하니까.
웨스트 햄과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어떤 전문가에게도 질 자신이 없는 로한이었다.
‘쓰던 거 마저 써볼까.’
로한은 남은 쉬는 시간 동안, 쓰고 있던 칼럼을 이어 쓰기 위해 노트북을 폈다.
아마 이 칼럼도 쓰자마자 인기 게시글에 오를 것이다.
바니보이란 필명이 가진 힘은 대단하니까.
제목 – 요한 반. 우리가 이 선수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타닥 타닥.
로한은 방대한 내용의 칼럼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어떤 방법이 되었든, 반드시 동생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형이 되고 말 것이라고.
ㆍㆍㆍ
“어째··· 컨디션이 더 좋아진 것 같은데요?”
“4일 내내 아무것도 안하고 쉬었다잖아.”
2027년 5월 22일, 번리 터프 무어 스타디움.
웨스트 햄과 번리의 리그 36라운드 경기가 한창 펼쳐지고 있다.
“그렇게 오래 쉬면 몸이 무거워질 것 같은데.”
“상식으로 이해하려 들지 마. 쟨 상식적인 녀석이 아니니까···”
오늘도 제이미 코치와 슈미트 감독은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당연히 요한 때문이었다.
노리치와의 경기가 있은 뒤, 월화수목.
4일을 코빼기도 안보인 요한은 금요일 훈련에 겨우 모습을 드러냈었다. 평소보다도 더 죽을 상을 하고서.
당연한 일이었다.
원래 쉬면 쉴수록 더 쉬고 싶은 게 사람 심리니까.
심지어 쉬는 동안 어디 놀러가거나 한 것도 아니고, 내내 집에 누워만 있었단다.
4일 만에 햇빛을 본다던 녀석은 기분 탓인지 얼굴이 하얘보이기까지 했었다.
때문에 좀 걱정 했었던 슈미트 감독이었다.
요한의 컨디션에 관해서.
아무래도 너무 오래 쉬다 보면 컨디션이 떨어지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었다.
감각도 떨어질테고, 체력적인 문제도 있을 것이고.
그래도 그제 훈련 때의 모습은 괜찮았다지만, 실전은 또 다르니 반신반의하며 요한을 선발 출장시켰던 슈미트 감독이었다.
그러나.
“좋아, 그렇지! 아우! 동생이 떠먹여줘도 뱉냐, 툴리오!”
경기에 나선 요한의 컨디션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아니,
오히려 더 좋아 보였다.
녀석에겐 휴식이 정말 보약인건지,
요한은 데뷔전 때보다도 더 날카로운 모습을 유감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징글징글하게 틀어막네. 지겨운 것들.”
오늘 상대인 번리 역시도 노리치와 마찬가지로 하위권에 처져 있는 팀인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승점 3점을 따내기 까다로운 팀이기도 했다.
번리는 경기 목표 자체가 무승부인 팀이었으니까.
소위 말하는 텐백, 전원 수비 태세가 기본 베이스인 번리였기에 웨스트 햄 같은 팀 입장에선 되려 까다로운 거다.
챔스권 안에 있는 전력을 가진 팀들이야 체급으로 그 텐백을 파훼해낸다지만, 마땅한 창이 없었던 웨스트 햄에겐 그 텐백에 질식 당해 스스로 자멸하는 경우도 많았다.
“좋아, 잘 열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웨스트 햄엔 요한이라는 새로운 창이 있었다.
한 번 찌를 때마다 방패가 찌그러지는 묵직한 창.
요한은 텐백 틈바구니에 갖혀 있는 상황에서도 숨길 수 없는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수비수들로 우글우글한 늪에서도 혼자 펄쩍 뛰어올라 공중볼을 따낸다든지,
수비수를 등지며 공을 받아내고 좌우로 벌려주며 활로를 열어 준다든지,
이따금씩 뜬금 없는 타이밍에 벼락같은 슈팅으로 골문을 위협한다든지.
요한 하나 때문에,
계속해서 번리의 텐백에 균열이 가고 있었다.
그러니,
이번 상대도 저번과 마찬가지의 하위권 팀이라 해도.
요한의 활약은 진짜였다.
“요즘 공격수 놈들, 저거 반만 할 줄 알아도 700억이니, 800억이니 이 난리인데. 우린 이게 웬 떡입니까? 그쵸, 감독님?”
제이미 코치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미 10년 전부터 나오던 얘기지만, 선수들 몸값에 거품이 너무 많이 낀 게 아니냐는 말이 요즘 특히 많이 나오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스트라이커.
스트라이커들의 몸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실정.
그저 딱히 모난 곳 없이 기본적인 조건만 갖춰도 최소 500억에서 시작하는 게 요즘 이적 시장에서 스트라이커들의 위치였다.
갈수록 심해지는 스트라이커 품귀 현상.
그런 상황에서 이적료 0원의 요한이 툭, 하고 튀어 나왔으니 이 무슨 행운이란 말인가.
저 반도 못하는 놈들이 스트라이커 매물이랍시고 막대한 돈을 요구하는 판국에.
“저흰 뭐 몇백억 아낀 거 아닙니까?”
제이미 코치의 물음에 슈미트 감독이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 본다.
녀석이 피치 위에서 보여주고 있는 모습과,
녀석의 나이까지 생각해 본다면,
아무리 못해도 1000억.
아무리 못해도 1000억이다.
농담이 아니었다.
이 업계에 수십 년간 종사해 온 전문가로서, 아주 객관적으로 예상해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오늘이 리그 2번째 출장인 상태에서의 이야기니.
녀석이 이 리그에 완전히 적응하고, 기량이 점점 더 무르익어간다면 어떠할까.
어쩌면,
저 녀석 하나 덕분에 완전히 새로운 팀을 만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새로운 팀···’
슈미트 감독은 요한이 첫 연습 게임을 소화하는 모습을 봤을 때부터 한 가지 고민거리가 생겼었다.
그리고, 지난번 경기를 보면서 그 고민은 슈미트 감독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 고민이란,
다음 시즌 전체가 걸렸을지도 모르는 중대한 고민이었다.
“슬슬 지친 것 같은데, 어떡할까요. 감독님.”
“가라이랑 바꿔줘. 그리고, 바튼 대신에 길모어. 콜먼 대신에 티망스.”
“예. 알겠습니다.”
후반 15분 경.
교체 사인을 내리는 슈미트 감독.
체력 문제로 기동력이 떨어진 미드필더 둘을 한번에 교체하고, 역시 체력이 떨어져 보이는 요한을 빼준다.
“고생했어, 고생했어.”
“고생했다, 꼬맹이!”
“···”
1골의 스탯 밖에 적립하지 못한 때문인지,
썩 좋지 못한 표정으로 걸어 나오는 요한.
더 뛸 수 있는데, 생각보다 일찍 교체가 된 것에 불만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오늘 녀석이 보여준 활약은, 스탯만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게 아니었지만.
녀석의 관심이야 오로지 스탯을 통한 훈련 면제일테니 그럴 수밖에.
그런 요한을 보며 피식 웃은 슈미트 감독은 생각했다.
‘리버풀전···’
다음 경기, 리그 37라운드.
그 상대는 현재 리그 2위의 리버풀이다.
9위를 마크 중인 웨스트 햄과는 꽤 체급 차이가 있는 강팀.
슈미트 감독은 그 경기에도 마찬가지로 요한을 선발 출장 시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요한의 입장에서 리버풀 전은 앞선 경기들과 다른 경기가 될 것이었다.
리버풀이 노리치, 번리와는 차원이 다른 강팀이란 것도 있지만,
것보다 더 큰 차이가 있다면 그건 바로 녀석의 첫 풀타임 경기가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좋은 시험이 될 거다···’
리그 경기가 두 경기밖에 남지 않은 시점.
순위가 확정된 시점에서 이미 다음 시즌 계획에 돌입했던 웨스트 햄과 슈미트 감독이었다.
하지만,
어디서 갑자기 튀어 나온 요한이라는 이레귤러의 등장은, 이미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혀 있던 슈미트 감독의 계획을 뒤흔들기 충분한 수준이었다.
때문에,
슈미트 감독은 마지막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었다.
리버풀이라는 강팀과의 경기.
그 경기에서도, 요한이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지를.
‘리스크가 아예 없는 게 아니니까···’
열여섯살 짜리가 데뷔전을 포함한 두 경기에서 3골 2어시스트를 터뜨렸는데, 뭘 더 확인해야 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 요한의 플레이 스타일은 팀에 리스크를 떠안겨 주는 스타일이었다.
요한을 활용하기 위해선, 다른 선수들의 체력을 더 많이 소모시켜야만 했으니까.
그런 리스크를 제일 싫어하는 슈미트 감독이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었다.
허나,
사실 그런 리스크들 보다도 슈미트 감독이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따로 있기도 했다.
그건,
보다 거대한 것을 녀석에게 걸어보고자 하기 때문이었다.
다음 시즌.
팀의 1년이라는 아주 거대한 것을 말이다.
아무리 리스크가 있다 해도 요한과 같은 재능을 가졌다면 내칠 이유가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잘 성장시켜 어떻게든 써먹어야 하는 재능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슈미트 감독이 생각하는 건 당장 다음 시즌이었다.
당장, 다음 시즌의 주전 자리.
리버풀 전에서 요한이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슈미트 감독은 결정을 내리고 가려는 것이었다.
다음 시즌의 계획을 말이었다.
그러니, 다음 주 일요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날이 될 것이었다.
요한에게 있어서도, 웨스트 햄에게 있어서도.
‘난 준비 됐다.’
슈미트 감독은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게으른 선수는 스쿼드에 두지도 않던 슈미트 감독이었다.
그러니 그런 선수를 주전으로 쓴다는 것도 말이 안되는 이야기였고.
하지만,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요한이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얼마든지 꺾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자신의 고집 따위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