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26)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26화(26/202)
< 025화 – 비시즌 돌입 >
할아버지의 등장은 요한에겐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를 사람이 아니라 호랑이라고 믿었던 요한이었다.
아빠에겐 투정이라도 부릴 수 있지만, 할아버지는 무서워서 투정조차 부릴 수도 없었다.
“못본 새 많이 컸구나. 여자애처럼 쬐끄맣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 할애비보다 커졌어.”
“하, 하하···”
할아버지는 항상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한다, 너처럼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면 나중에 하기 싫은 일들만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겁을 주셨었다.
세상은 무서운 곳이라며, 게을러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게 세상이라면서.
어렸던 요한은 할아버지가 무섭다는 그 세상보다, 그저 할아버지가 무서울 뿐이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음. 다왔구나.”
“여긴···?”
집에 도착한 할아버지는 옷도 안 갈아입고 요한을 끌고 나왔다.
설마 곧바로 훈련이라도 하는건가 했는데,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운동장이 아닌 웬 공장이었다.
“일을 시키시겠다구요? 요한이한테?”
“그래.”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구요?”
“그거 몇 시간 한다고 안 다친다.”
공항에서 오는 길.
반석호는 요한이를 공장에 데려갈 거라는 아버지의 말에 깜짝 놀랐다.
훈련을 시키는 게 아니라, 하루 동안 공장에서 일을 시키시겠다니 놀랄 수밖에.
행여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말렸지만,
반길융은 단호했다.
“공 한 번 더 차는 것보다도, 요한이는 축구를 한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부터 가르쳐줘야 한다.”
“그거야··· 제가 안해본 게 아닌데요.”
“기껏해야 축구 보여주고, 같이 공차면서 재밌지 않느냐고 강요한 게 전부였겠지.”
“···”
“그것보다 확실한 방법이 이거다. 녀석도 이제 열여섯살이 됐으니, 경험해볼 때가 된 거지.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는지. 이건 축구를 가르치기 이전의 문제다. 축구말고 다른 꿈이 있다면, 뭐가 문제겠냐? 근데, 녀석은 아니지 않느냐.”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때부터,
반길융은 요한이에게 축구를 가르칠 생각이 없었다.
요한이가 뛴 4경기.
반길융도 모두 보았다.
이미 자기가 가르칠 게 없는 녀석이었다.
축구적으로는.
다만 가르쳐줄 게 있다면,
그건 축구장 밖의 세상이 얼마나 살기 힘든 곳인가, 하는 것이었다.
세상에 만만한 일은 없다.
반길융은 그걸 가르쳐 주고자,
요한을 공장에 데려왔다.
“요한아. 할애비가 하나만 묻자.”
“네.”
“요한이는 꿈이 뭐냐.”
할아버지의 질문에 슈미트 감독을 떠올리는 요한.
두 분이 좀 느낌이 비슷하다는 생각은 했는데, 어쩜 질문도 같은 질문을 하실까.
“괜찮어. 할애비도 다 알고 있으니까 솔직하게 말해 봐.”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편하게 사는거요.”
“그래. 좋지. 좋은 목표지. 사실 세상 사람들 다 그걸 목표로 하고 살어. 근데 말이다, 요한아.”
“네.”
“세상 사람들 모두가 편하게 살고 싶어하는데, 왜 죽는 얼굴 해가며 일을 하고 사는지 생각은 안해 봤느냐.”
“···”
글쎄다.
이유를 생각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아니, 봐온 사람들 모두가 그랬다.
학교 친구들. 공부하기 싫다면서 공부했다.
팀 선수들? 훈련이 힘들다면서 훈련했다.
생각해보면, 다들 하기 싫다면서 한다.
그 이유가 뭘까.
“일을 해야 편하게 살 수 있으니까. 다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산다는거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세상을 살 순 없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반길융은 알쏭달쏭한 요한의 표정을 보더니,
등짝을 떠밀었다.
“들어 가자꾸나.”
“···!”
그렇게 난데 없는 체험 삶의 현장이 시작되었다.
*
“휴우···”
“힘드냐?”
“죽을 것 같아요···”
“사내 자식이 엄살은. 허리 딱 펴고 앉어! 이 노인네도 거뜬한데, 한창인 녀석이 죽는 시늉하면 써?”
공장 일은 고됐다.
쉴틈 없이 돌아가는 기계들과, 기계들보다 더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그 틈바구니에 끼어 들어간 요한은, 일을 시작한지 5분만에 이곳을 탈출할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옆에서 팔을 걷어 붙이고 같이 일을 하시는 바람에 마음을 접어야 했다.
요한은,
일을 하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차라리 축구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요한이.”
“···네.”
“아까 할애비가 말했지? 편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살아 간다고.”
“네···”
“그 이유는 생각해 봤느냐?”
“잘 모르겠어요···”
“돈. 돈이다.”
반길융의 말에 요한이 김 빠진 표정이 된다.
뭔가 거창한 인생의 진리라도 말씀하시려나 했는데, 고작 돈이라니.
그러나,
사실 그게 진리였다.
“요즘 세상은, 귀찮은 짓을 안해도 되는 권리를 파는 세상이다. 요리를 하기 귀찮으면, 식당에 가서 돈을 내고 사 먹지. 빨래하기 귀찮으면? 돈 주고 세탁소에 맡기면 된다.”
“···”
“돈이 없으면 귀찮은 일을 스스로 하면서 사는거고, 돈이 많으면 귀찮은 일을 안해도 되는거다.”
사회적 기업을 운영 중인 동시에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는 반길융은 누구보다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돈이 없으면 힘들게 산다.
“요한이.”
“네.”
“지금은 너희 부모님이 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고 하지만. 나중에 성인되면 그런 거 없어. 너희 아빠는 17살 때부터 용돈 한 푼 안받았다. 너도, 네가 살 길은 알아서 찾아야 하는거야.”
그건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성인이 되어서,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글쎄.
뭐가 됐든, 스스로 돈을 벌어 살아가야겠지.
“자. 받거라.”
“이게 뭐예요?”
“뭐긴. 일급이다. 오늘 일한만큼의 대가.”
할아버지가 건네는 봉투를 받아드는 요한.
봉투 안을 들여다 보니, 지폐 몇 장이 들어 있다. 세어보니 총 40파운드(대략 7만원).
4시간을 죽을만큼 힘들게 일해서 7만원을 벌었다.
반길융은 실망스러운 표정의 요한을 보며 피식 웃었다.
“1시간에 10파운드다. 보통 여기선 하루에 6시간을 일한다더군. 그럼, 6시간씩 주 5일 일하면 300파운드 벌겠구나. 그럼 달에 1200파운드고. 한국 돈으로 200만원 정도 되겠네.”
쌔빠지게 일해서 한 달에 200만원.
“요한이, 네가 지금 축구하면서 얼마를 받고 있지?”
“돈은 다 아빠가 관리하셔서 잘 모르겠어요.”
“에헤이. 어릴 때부터 경제관념을 길러줘야 하는건데, 요즘 부모란 녀석들은 너무 감싸고 돈단 말이야. 쯧쯧. 니 애비한테 듣기로, 네 주급이 1200파운드라더만.”
“···제가요?”
“그려. 이 공장에서 한 달 일하는 돈을, 네가 공 일주일 차면 벌 수 있다는 말이다.”
전혀 몰랐다.
돈에는 관심 없던 요한이었다.
구단과의 계약이라든가, 그런 것 역시 모두 귀찮은 일이었고. 마침 아빠가 알아서 다 해주겠다기에 모두 맡겼었으니까.
지금까지, 주에 1200파운드를 받고 있었구나.
이 공장에서, 매일 6시간 동안 한 달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주마다 받는다니.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지. 잘 버는 놈들은 주마다 몇 억씩을 벌어 들인다. 이 공장에서 아무리 일을 잘해봐야 평생 모으지 못할 돈을, 그까짓 공 잘찬다고 주에 벌 수 있단 말이다.”
반길융은 허심탄회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할애비가 너 어릴 때부터 축구해라 축구해라 했던 거, 듣기 싫었지?”
“···”
“할애비가 수십 년을 먼저 살아 보니께 알겠더라고. 능력만 있으면은, 공차고 돈 버는 것만큼 쉬운 게 읎어. 우리 요한이는 그럴 능력이 있으니까, 할애비가 그랬던 거야.”
요한의 머리를 쓰다듬는 반길융.
“찬찬히, 잘 생각혀봐. 적당히 공 차다가, 30살 즈음 은퇴해서 평생 놀고 먹으면서 살래. 아니면 노인이 될 때까지 평생 일하면서 살래.”
“···!”
“축구를 하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다. 축구를 좋아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네가 알아서 선택할 문제다.”
지옥같았던 공장에서의 하루.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그런데, 그렇게 일해도 평생 놀고 먹을 수 있을만큼의 돈은 벌 수 없다.
아니, 평생 일을 해야 근근히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축구를 한다면.
평생 놀고 먹어도 남는 돈을 벌 수 있다.
평생, 귀찮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요한은,
문득 축구를 하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ㆍㆍㆍ
2027년 6월 28일.
프리시즌 트레이닝을 2주 앞둔 시점.
“순조롭군.”
구단으로부터 받은 진척 사항을 살펴보던 슈미트 감독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적 협상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었다.
당초 슈미트 감독이 1순위로 물망에 올렸던 선수들은 넷.
그들 모두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내왔다.
구체적인 사항들만 합의되면, 다음 주 안에도 오피셜을 띄우고 프리 시즌 트레이닝에 합류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프리 시즌 동안 치르게 될 연습 경기 일정도 확정이 되었다.
7월 17일 카디프 시티와의 경기를 시작으로,
7월 26일 풀럼, 8월 4일 울버 햄튼.
그렇게 3경기의 연습 경기를 치른 뒤,
8월 15일.
2027/28시즌이 개막된다.
그에 맞춰 프리 시즌 훈련 일정도 모두 정리가 마무리 되었다.
또한 세부적인 훈련 세션들까지도.
다음 시즌을 위해, 어떤 전술을 중점적으로 훈련할 것인지.
그걸 위해 선수들에게 어떤 훈련을 집중적으로 시킬 것인지.
슈미트 감독은 코칭 스태프들과 머리를 맞대고, 스쿼드에 포함된 선수 개개인마다 일일이 세션을 짜두었다.
선수들이 그 훈련 세션만 성실히 따라온다면, 아마 다음 시즌엔 지난 시즌보다 훨씬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시즌 중보다 바빴던 비시즌 동안의 한 달이 거의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다.
모든 게 순조로웠고, 다음 시즌을 기대할만 했다.
하지만, 아직 중요한 일 하나가 남아 있었다.
새로운 선수들과의 협상만큼, 아니 보다 더 중요한 일.
기존 선수들과의 미팅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슈미트 감독이 가장 신경쓰고 있는 건 역시나 요한이었다.
‘그 전담 트레이너란 분을 먼저 영입해야 하나···’
요한의 소식은 계속해서 반석호를 통해 접하고 있었다.
우선 놀라운 점은, 녀석이 꾸준히 개인 훈련을 해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래봤자 주에 한두 번.
그것도 슈팅 연습 몇 번 하는 게 다라곤 하는데.
그게 어디인가.
내막은 알 수 없지만, 녀석이 어느 정도 축구에 대한 의지가 생긴 모양이라고 했다.
또한,
요한이 달라진 점이 또 있다고 했다.
무려, 요한이의 꿈이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앞에 몇 줄이 추가 됐다고.
‘원래 꿈이···’
요한이가 밝혔던 꿈은 아무것도 안하고 편하게 사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뀐 지금의 꿈은 돈을 많이 벌어서 평생 아무것도 안하고 편하게 사는 것이 되었다고 한다.
‘좋은 일이지.’
요한이에게 목표다운 목표가 생겼다니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게 돈이라면 오히려 반가운 일이었다.
구단 측에서 얼마든지 충족 시켜줄 수 있는 게 돈이었으니까.
“이렇게 보니 옵션이 많긴 많네요.”
“옵션이 많아야, 녀석이 기본급에 안주하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달려들 테니까요.”
웨스트 햄의 단장, 조던 맥카시와 구단주 라힘 맥마나만, 그리고 슈미트 감독이 계약서 하나를 놓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계약서는, 요한에게 제시될 계약서였다.
보통 계약을 할 때, 선수들에게 기본 수당 외에 옵션을 거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한 시즌에 10골 이상을 넣을 경우 추가 수당을 준다는 식으로.
요한이에게 내밀 새 계약서엔 그러한 옵션들이 많았다.
경기 출장 및 출장 시간에 따른 인센티브, 일정 기준 이상 골과 도움에 따른 인센티브 등등등.
얼마나 많은지, 옵션 수당만 다 따지면 기본급과 거의 비슷할 정도.
“근데, 이것 외에도 녀석이 추가적으로 옵션을 요구할 수도 있을 겁니다. 좀, 황당할 수도 있는···”
“황당한 옵션?”
“예를 들면, 지금도 구두로 합의한 옵션이 있습니다. 경기에서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면, 그 수만큼 훈련을 빼주겠다고 했거든요.”
“뭐요? 하하하!”
슈미트 감독의 말에 맥카시 단장과 맥마나만 구단주가 웃음을 터뜨린다.
훈련 면제라니.
확실히 프로가 된지 두 달도 안된 어린 애라는 게 느껴진다.
“아니, 그렇게 째째한 걸로 유혹할 게 아니라. 이런 건 어떻습니까.”
한참을 웃던 맥마나만 구단주가 말했다.
“가령, 녀석이 이 옵션들을 뭐 70퍼센트 이상 클리어하는 동시에.”
“동시에?”
“우리 팀을 우승 시킨다면 말입니다.”
“우승을 시킨다면이요?”
“그래요. 만약, 녀석이 웨스트 햄의 사상 첫 리그 우승을 이끈다면···”
맥마나만 구단주가 꽤 파격적인 조건을 쾌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