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28)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28화(28/202)
< 027화 – 요한과 어미 새들 >
“사실, 가장 중요한 건 너희들이다.”
첫 훈련이 끝나고.
슈미트 감독은 선수들을 모아놓고 훈련 총평과 함께, 다음 시즌의 비전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 시즌, 웨스트 햄이 어떤 걸 목표로 향해 달려갈 것인가.
슈미트 감독은 손가락 세 개를 폈다.
“다음 시즌 우리의 목표는 세 개다.”
세 개의 목표.
슈미트 감독이 세 손가락 중 하나를 접는다.
“첫째, FA컵 트로피를 따낸다.”
“···!”
시작부터 생각보다 높은 목표가 나오자 미간을 찌푸리는 선수들.
FA컵 우승이라.
현실적으로, 쉬운 목표는 아니다.
슈미트 감독은 이어서 두 번째 손가락을 접었다.
“둘째, 리그 6위권 안에 든다.”
첩첩산중이다.
리그 6위권.
역시 쉽지 않다.
빅6라 불리는 팀들 중 하나를 제껴야만 진입할 수 있는 게 6위권이니까.
“그리고, 셋째. 앞선 두 개가 사실 이 세 번째를 위한 것이기도 한데. 내년 유로파 리그 진출권을 따낸다. 즉, 유럽 대항전에 나가는 팀이 된다.”
슈미트 감독이 마지막 손가락을 접자,
선수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유럽 대항전.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에겐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무대다.
유럽 대항전을 뛰기 위해 팀을 옮기는 선수들도 있을 정도니까.
웨스트 햄이 마지막으로 유로파 리그에 나갔던 건 6년 전.
지금 남아 있는 선수들 중 그때에도 있었던 선수는 몇 안되지만, 그들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유럽 대항전을 뛴다는 게 어떤건지.
그 무대.
다시 맛보고 싶은 무대였다.
허나, 그게 쉬울 리는 없다.
그게 쉬웠다면, 꿈의 무대라 불리지도 않겠지.
때문에,
슈미트 감독이 내건 목표에 다들 표정이 사뭇 무거워진다.
아무리 목표라는 게 크게 잡을 수록 좋다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싶은 목표들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슈미트 감독은 누구보다 현실주의자다.
허황된 걸 목표로 삼을 사람이 아니었다.
“어려울거다. 이 목표들을 이루는 게. 근데,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우리에겐, 이 목표들을 가능케할 무기가 있다.”
슈미트 감독은 작전판, 맨 위에 붙어 있는 자석을 가리켰다.
“여기. 이 녀석.”
4-5-1 포메이션의 원톱.
요한이다.
“우리의 무기. 어마어마한 살상력을 가진 무기지. 이 녀석이 있다면, 앞선 목표들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근데, 한 가지 큰 문제가 있다.”
큰 문제?
슈미트 감독은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 녀석은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어마어마한 화력을 가졌지만, 혼자선 발사될 수 없는거다. 누군가는 방아쇠를 당겨 주어야 한다. 그게 누굴까. 바로 너희들이다.”
“···!”
고개를 끄덕이는 선수들.
무엇이든 벨 수 있는 검이 존재한다 해도, 누군가 그걸 쥐기 전까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 검이 휘둘러질 수 있도록, 검을 잡아야 하는 게 바로 동료들.
요한과 함께 뛰게 될 선수들이었다.
선수들의 얼굴이 고양되자, 슈미트 감독은 피식 웃었다.
“독일인 노인네가 살상력이니, 화력이니 이런 말들을 하고 있으니까, 듣기 좀 그런가?”
“···하하.”
“그럼 좀 더 귀엽게 말해볼까. 이 녀석은 아기 새다. 너희는 이 녀석의 어미 새들이고. 너희들이 한 발 더 뛰어주지 않으면, 한 발 더 뛰어서 녀석의 입에 먹이를 물어다 주지 않으면, 이 녀석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렇기에, 너희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고든이 말했던 왕자와 하인.
그리고 슈미트 감독이 말한 아기 새와 어미 새.
단어만 다를 뿐 의미는 통한다.
“하지만, 종자가 다른 건 어쩔 수 없다. 인정해야 한다. 이 녀석은 매의 새끼다. 이 녀석을 배불리 잘 먹여주다보면, 어느새 녀석은 너희에게 보답을 할거다. 트로피를 사냥해다 줌으로써. 그러니까.”
훈련으로 지친 기색이 역력하지만, 결연함이 보이는 선수들을 주욱 바라보며 말하는 슈미트 감독.
“힘들고, 지치고 간혹 의구심이 들더라도. 너희들이 한 번 더 힘을 내주면, 다음 시즌. 앞서 말한 목표들을 따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옙!””해보겠심더!”
목청껏 파이팅을 외치는 선수들.
요한이라는 16세 스트라이커를 위주로 한 팀의 재편성.
분명, 이중엔 이런 변화가 달갑지 않은 선수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선수들도 슈미트 감독에게만큼은 신뢰의 눈빛을 보내고 있다.
지난 1년간, 때론 그의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 생각했던 적도 있고, 그를 따라가는 게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최소한, 그가 가리키는 방향이 틀린 적은 없었다.
그걸 알기에, 이번에도 따를 뿐이다.
웨스트 햄 훈련장은, 내일도 이 선수들이 내뿜는 열기로 뜨거울 것이었다.
ㆍㆍㆍ
2027년 7월 17일.
카디프 시티와의 프리 시즌 첫 친선 경기가 있는 날.
“오늘부터 시즌 시작이라고 생각해라. 지금까지 해왔던 훈련, 의미가 있었던 거라는 걸 피치 위에서 보여주자.”
“예, 캡!”
주장 고든의 짧은 연설과 함께 선수들이 파이팅을 외치며 각자의 자리로 흩어진다.
모든 선수들의 얼굴이 검게 그을려 있다.
그간의 훈련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 얼굴색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이렇게 마음이 편한 건 처음인데.’
하지만,
선수들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오늘이 프리 시즌 친선 경기고, 상대가 챔피언십 소속의 카디프 시티라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훈련을 하며, 점점 확신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몸이 힘들어질수록 마음은 편해지고 있었다.
아.
한 명 빼곤.
그 한 명은 몸도 마음도 편안해 보였다.
“요한!”
“네?”
“3골만 넣어줘.”
“전반에 3골 말하는 거죠?”
요한의 대답에 고든이 피식 웃는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했던 저 자신감.
이젠, 믿음이 가는 자신감이다.
자.
저 녀석의 어미 새가 되어,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주자.
“가보자, 가보자!”
“삐이이익-!”
경기가 시작 되었다.
*
카디프 시티는 지난 시즌 챔피언십 리그에서 7위를 차지한 팀.
웨스트 햄에겐 특별히 까다로울 게 없는 팀이었기에, 경기는 시작부터 웨스트 햄의 흐름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웨스트 햄의 기본 포메이션은 4-2-3-1.
포백 라인 앞에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3선을 구축하고, 한 명의 중앙 미드필더와 좌우 윙들이 2선을 만든다.
그리고 그 맨 위 꼭지점에 원톱, 요한이 선다.
클래식한 배치였다.
허나, 특이한 점이 있다면 좌우 윙어들의 활동 반경이었다.
보통의 윙어들은 당연히 사이드 쪽에서의 움직임이 많다.
측면을 파고들어 크로스를 올리든, 중앙으로 접어 들어가 슈팅을 노리든.
어쨌든 윙어라면 사이드 라인과 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웨스트 햄의 양쪽 윙어들은 사이드 라인과 상당히 거리를 두고 있었다.
거의 중앙 미드필더가 3명인 느낌이었는데.
당연히,
요한에게 집중적으로 찬스를 몰아주기 위한 슈미트 감독의 전술이었다.
슈미트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요한은 캠퍼였다. 페널티 박스 안에서 모닥불 피워놓고 캠핑을 하는 캠퍼.
활동량이 매우 적고, 특히나 박스 안에 집중되어 있다.
그 말인 즉, 미드필더들과 간격이 넓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포지션 상 요한의 바로 아래 2선은 중앙 미드필더인 고든.
그러나, 바로 아래라곤 하지만 그 간격은 고든 혼자 커버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
때문에, 그 넓은 범위를 윙어들이 폭 넓은 활동량으로 채워주는 것이다.
“이쪽, 차단!”
“마! 공 내놔, 시키야!”
오늘 좌우 윙으로 선발 출장한 건, 신입생들인 조너선 네이슨과 제이콥 버클리.
묵묵한 군인같은 네이슨과, 괄괄한 목동 느낌의 버클리는 그 성격은 달라도, 플레이 스타일은 공통점이 많은 선수들이었다.
기본적으로 많이 뛰는 스타일에, 윙치고 수비력이 좋다는 게 그것.
“나이스!”
“내 옆은 못지나간데이!”
사실상 수비수 둘을 2선에 배치한 느낌이었다.
시종일관 상대를 압박하고, 볼을 탈취해내며 하프 스페이스를 휩쓰는 네이슨과 버클리.
그 둘의 왕성한 움직임에,
카디프 시티는 후방 빌드업조차 어려움을 겪으며 볼 소유권을 계속해서 내주고 있었다.
다만, 문제도 있다.
마치 수비수 두 명을 2선에 풀어 두었다는 느낌. 그 말은, 네이슨과 버클리가 그만큼 수비적 능력이 뛰어나다는 말뜻도 있지만,
사실 그만큼 공격적인 부분에선 애매하다는 뜻도 있었다.
윙어가 수비력을 갖춘다는 건 당연히 좋은 일이다. 하지만, 공격력보다 수비력이 우선될 수 없는 것 또한 당연한 일.
윙어치곤 뛰어난 수비력을 보여주지만, 정작 공격 쪽에선 애매하다.
그게 그 둘의 약점이었고, 때문에 둘은 전 소속팀에서 그리 중용 받지 못했었다.
그러나,
여기선 달랐다.
그 둘의 단점을 채워줄, 단점이 드러나지 않을 수 있게끔 해줄 선수가 있었으니까.
“간격 좁혀!”
“사이드로 나가지 마!”
카디프 시티는 중앙 밀집 형태로 수비진을 구축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상대가 사이드를 통한 공격을 하지 않으니, 사이드를 막을 필요가 없다.
게다가 중원에서의 주도권도 완전히 내준터라.
카디프 측의 박스는 선수들로 우글거렸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요한의 모습이 숨 막혀 보일 정도.
그러나,
네이슨과 버클리가 그런 요한에게 꾸준히 산소를 공급해주고 있었다.
파아아앙-!
유려한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를 허물거나, 창의적인 패스로 허를 찌르거나.
그런 공격적인 재능을 발휘하는 건 네이슨과 버클리에게 기대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 둘이라도 수비를 등지고 있는 공격수의 발밑으로 패스를 보내는 정돈 할 수 있었다.
그 다음부턴,
그저 요한의 플레이를 감상하면 그만이었다.
스르륵-
패스를 발바닥으로 멈춘 뒤, 상대 수비를 등으로 밀어내며 골대로 접근하는 요한.
마치 농구의 포스트 플레이를 보는 듯 하다.
물론,
그 주변의 수비들이 보고만 있지는 않는다.
몇 초도 안되는 순간에 빠르게 요한을 둘러싸는 카디프 시티의 수비수들.
그러나 그 순간부터 요한의 발은 더 빠르게 움직였다.
휘리릭-!
공을 빼앗으려는 상대 수비의 태클을, 발바닥으로 공을 굴리며 요리조리 피해내는 요한.
그러다,
등을 지고 있던 수비수까지 발을 뻗는 순간.
타앗-!
요한이 그 반대 방향으로 돌아선다.
빨랐다.
그렇게 빠를 수 있는 건, 잔동작이 없기 때문이었다.
잔동작이 없는 건, 요한의 귀차니즘에서 기인하는 것이고.
요한은 오로지 필요한 동작만을 구사했기에, 화려해보이진 않을지 몰라도 남들보다 훨씬 더 빠를 수 있었다.
물론 돌아선 이후의 슈팅도 마찬가지였다.
뻐어어어어엉-!
왼발을 축으로 왼쪽으로 돌아섰던 요한이었다.
그리고,
슈팅을 위한 디딤발도 왼발이었다.
심지어 땅에서 떨어지지도 않았다.
거의 터닝슛처럼 슈팅을 때린 것.
보통의 공격수라면 슈팅을 위해 두 스텝은 더 밟아야 하는 자세였다.
유럽에서 이름을 날리는 공격수라면, 아마 한 스텝에 끊었을 수도 있고.
그러나,
요한은 그 한 스텝마저 줄여 버렸다.
요한에겐 그 한 스텝마저도 불필요한 동작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스텝을 밟지 않아도 정확하고 강한 슈팅을 때릴 자신이 있었으니까.
덕분에,
골키퍼가 느끼기에 요한의 슈팅은 거의 세 박자가 빠른 느낌이었다.
촤아아아아아-
철썩-!
낮게 깔려, 골대 왼쪽 구석을 가볍게 찌르는 요한의 슈팅.
키퍼는 당연히 반응조차 하지 못했고,
“···”
“···”
카디프의 수비수들은 벙찔 수밖에 없었다.
왜 실점을 내준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들이었다.
뭘 실수한거지? 뭘 잘못했기에 실점을 내준거지?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은데.
그런데, 사실이다.
방금은 딱히 카디프 시티 수비진이 실수를 범해 내준 실점이 아니었다.
그저,
요한의 클래스가 그들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을 뿐이었다.
*
“감독님.”
“응?”
“그, 오늘 경기도 경기로 치는거죠?”
“무슨 소리인가?”
“그니까, 오늘 넣은 골들도 쿠폰 주시는 거냐구요.”
카디프 시티와의 경기가 끝난 뒤,
요한의 물음에 슈미트 감독이 기함했다.
“아, 아니지. 그건 정식 경기만 해당되는 거니까.”
“쩝. 아쉽네요. 알겠어요.”
입맛을 다시며 돌아가는 요한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슈미트 감독.
하마터면, 다음 주 내내 요한이를 못볼 뻔 했다.
5대1.
오늘 웨스트 햄은 카디프 시티를 5대1로 이겼고, 5점 모두 요한이 득점한 골이었다.
90분 풀타임이 아닌, 79분을 뛰고 말이었다.
‘기대 이상이었어.’
경기를 복기해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슈미트 감독.
분명 오늘 상대가 2부 리그의, 객관적인 전력이 약한 팀인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렇기에 중요한 경기기도 했다.
지난 시즌 동안 가장 많이 비판을 받아 왔던 게, 약팀을 상대로 화끈한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었으니까.
확실한 스트라이커가 없어 쩔쩔 맸던 웨스트 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대승을 거두었다.
스트라이커가 5점을 기록하면서.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의도했던 것들이 보여진 경기였다.
활동량을 기반으로 한 중원에서의 장악력.
영입의 이유를 보여준 신입생들의 경기력.
무엇보다,
투자한 리소스 대비 넘칠만큼의 리턴을 가져다 준 요한까지.
완벽하지 않은 게 오히려 더 만족스러운 정도였다.
여기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만큼 오늘 경기력은 만족스러웠다.
‘또 기대를 하게 만드는 군.’
슈미트 감독은 상당히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낙관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
그러나,
그런 슈미트 감독마저도 기대가 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다음 시즌 개막일이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