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30)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30화(30/202)
< 029화 – 다양하게요? >
요한은 킥 훈련을 좋아했다.
아, 물론 ‘비교적’ 좋아한다는거다.
킥 훈련은 다른 훈련과 달리, 웬만하면 움직이지 않고 제 자리에서 할 수 있으니까.
어릴 때부터 그랬다.
정 못 참고 축구를 그만두기 전.
요한이 워낙 하기 싫어하니 반석호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었다.
체력 훈련할래, 킥 훈련할래.
그렇게 물어보면야 당연히 요한의 대답은 킥 훈련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일까.
크리스탈 팰리스가 세운 높은 벽도 요한에겐 보이지 않았다.
그 너머, 골대 구석만이 보이고 있을 뿐.
수만 명의 관중들이 숨을 죽인 채, 핸드폰을 들고 요한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요한이 공을 향해 달려 들었다.
타타탓-
뻐어어어어어엉-!
오른발 인사이드로 강하게 때리는 슈팅.
디딤발인 왼발이 거의 꺾인 것처럼 보일 정도로 깊게 눕는다.
그러면서 임팩트 직후 발 앞 코가 하늘을 찌를 듯 세워져 있다.
공을 깎듯이, 들어 올려 찼기 때문이었다.
슈우우우우우웅-
수비 벽을 아득히 뛰어 넘을만큼 크게 치솟는 공.
때문에, 있는 힘껏 점프를 했던 크리스탈 팰리스 선수들은 직감했다.
나가겠네.
홈런이다.
심지어 한껏 기대를 하며 지켜보던 관중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요한의 킥엔 스핀이 걸려 있었다.
탑 스핀.
발리도 아니고, 땅에 붙어 있는 공에 탑 스핀을 걸어 때리는 건 고난이도의 슈팅이다.
일단 발목이 굉장히 유연해야 하고, 많은 훈련으로 감각이 익숙한 선수들이나 시도할 수 있는 슈팅이니까.
그러나,
요한은 아주 어릴 때부터 본능적으로 이런 슈팅을 때렸던 아이였다.
슈우우우우웅-
마치 야구의 커브볼처럼, 높이 치솟았던 공은 엄청난 낙차를 그리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철썩-!
골대 구석을 정확히 파고 들었다.
“······!”
누가 봐도 높게 떴던 슈팅이, 말도 안되게 떨어지며 골망을 흔들자.
함성이 터져 나오는덴 잠깐의 시간이 필요했다.
“와아아아아아-!!”
런던 스타디움이 크게 흔들렸다.
요한의 그 아름다운 프리킥 골이,
웨스트 햄의 27/28시즌 1호골이 되었다.
“야아아아! 꼬맹이!”
“미쳤다, 이 자식아!”
“마, 싸라 있네! 싸라 있어!”
만세를 부르며 요한에게 달려드는 동료들.
전반 11분만에 요한의 오른발 프리킥 선제골로, 웨스트 햄이 1대0으로 앞서가기 시작했다.
*
“으아아아아!”
“잡아! 아빠 잡아!”
“떠, 떨어져요! 아빠!”
반석호는 어김없이 이성을 잃고 폭주했다.
로한이 옆에서 붙잡지 않았다면, 관중석 1층까지 내려가 포효할 기세였다.
“와, 진짜 개쩐다!”
“뚝 떨어지는 거 봤어? 소름!”
“네가 첫골을 넣을 줄 알았다, 바니!”
물론 반석호만 그런 건 아니었다.
런던 스타디움을 채운 모든 관중들이 펄펄 끓듯 들썩였다.
심지어,
“스미스! 스미스! 은행가서 현금 뽑아 와!”
“예? 현금이요?”
“그래! 저 녀석 금일봉 좀 줘야겠으니까!”
같은 VIP좌석에 앉아 있던 맥마나만 구단주도 방방 뛰며 흥분하고 있었다.
방금 요한이 터뜨린 프리킥 골은, 확실히 그럴만한 골이었다.
“와, 이거 봐. 제대로 찍었지?”
“무슨 슈팅이 이렇게 뚝 떨어지냐?”
“발목이 어떻게 된 거야? 스프링 달렸나?”
핸드폰으로 찍은 요한의 골 장면을 다시 돌려보며 감탄을 마지 않는 관중들.
요한이 프리킥을 준비할 때,
거의 대부분의 관중들은 묘한 느낌을 받고 핸드폰 카메라를 들었다.
이 말의 뜻은 무엇일까.
기대감이었다.
요한이 프리킥을 준비하는 것만으로, 관중들이 기대감을 가진 것이다.
저 선수라면, 여기서 멋진 걸 하나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야아! 한 골 더 넣자!”
“한 골은 무슨! 개막전이니까 해트트릭 시원하게 박고 드가자!”
“우리도 득점왕 나올 때 됐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관중들의 외침을 들으며,
반석호와 로한, 김라희가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어느새,
요한이 이 많은 관중들의 기대를 받는 플레이어가 되어 있었다.
참으로 비현실적이면서도, 행복한 현실이었다.
*
“종착지가 하나라고, 꼭 한 길로만 가라는 법은 없다. 걸어가도 되고, 차 타고 가도 되고, 기차 타고 비행기 타고 돼. 다양하게, 다양하게 접근해라!”
“옙!”
경기가 시작 되기 전,
제이미 코치는 선수들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다양하게 가져가라.
득점 루트를 다양하게 가져가라는 뜻이었다.
어차피 최종 타겟이 요한인 건 맞지만,
요한에게까지 향하는 루트를 다양하게.
후방에서 한 번에 연결하는 패스가 될 수도 있고, 사이드에서 크로스를 올릴 수도 있고, 뭐 방법이야 많지 않은가.
결국 골을 넣는 선수는 하나라도,
패턴만 다양하다면 수비하는 입장에선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다양하게 넣어라!”
“예!”
제이미 코치가 주문한 건 그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골이 다양한 방법으로 들어가긴 했다.
근데,
제이미 코치가 말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였다.
그냥, 요한이 순전히 개인 능력으로 다양하게 골을 넣었다는 말이었다.
“와아아아앗-!”
전반 27분,
선제골이 터진지 16분만에 요한의 두 번째 골이 터졌다.
이번엔 왼발이었다.
박스 우측면 코너에서 공을 넘겨 받은 요한은, 빠르게 돌아서며 촘촘하게 늘어선 수비수들을 앞에 두고 상체를 흔들기 시작했다.
돌파를 하겠다는 듯한 몸짓.
그러한 요한의 동작에, 팰리스 수비수들이 잔뜩 몸을 긴장시키고 자세를 낮췄는데.
거기서 팰리스 수비수들의 실수가 나왔다.
그 실수가 뭐냐면, 요한의 주발을 헷갈렸단 것이었다.
첫 프리킥을 오른발로 처리했던 요한이었다.
프리킥은 당연하게도 주발로 찬다.
때문에, 팰리스의 수비수들은 요한의 주발이 당연히 오른발일거라 생각했고.
오른쪽 돌파, 그러니까 중앙 쪽으로 접어 들어가는 방향이 아닌, 골 라인 쪽으로 깊게 파고드는 것에 더 무게 중심을 뒀다.
하지만,
요한이 첫 프리킥을 오른발로 처리한 건,
그저 그 위치가 오른발로 차기 좋은 위치였기 때문일 뿐이었다.
그게 아마 왼발 각도였다면 왼발로 때렸을거다.
그걸,
팰리스 수비수들이 전혀 몰랐던 거다.
하긴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주발이 없는 선수도 있을 거라고.
상대 수비의 중심이 오른쪽으로 쏠린 걸 확인한 요한은 고민도 하지 않고 왼쪽으로 공을 툭 밀었다.
그리고 파 포스트를 향해 가볍게 감아차기.
그 슈팅은 큰 곡선을 그렸고,
골문 구석에 그대로 빨려 들어가며 다시 한 번 런던 스타디움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자.
그렇게 오른발로 한 골, 왼발로 한 골을 기록한 요한.
세 번째는 머리였다.
왼발, 오른발, 머리 모두를 사용해 해트트릭을 기록한 것이었다.
후반 13분, 코너킥 상황이었다.
키커인 페트로비치의 코너킥이 정확히 문전으로 향했고,
그걸 요한이 파워풀한 헤더로 밀어 넣었다.
세트피스 훈련은 웨스트 햄이 프리 시즌 동안 체력 훈련만큼이나 많이 했던 훈련이었다.
요한의 제공권은 버릴 수 없는 옵션이었으니까.
요한 입장에서도 세트피스는 썩 나쁘지 않았다.
정지된 상황에서 떠먹여 주는 걸 받아 먹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
아무튼,
그런데 재밌는 건 슈미트 감독이 훈련 때 세트피스 키커인 페트로비치에게 ‘보통보다 조금 더 높은 킥’을 지시했다는 것이었다.
보통의 코너킥은, 적당한 높이로 빠르게 붙이는 게 최고다.
너무 높으면 당연히 손을 뻗을 수 있는 키퍼가 처리하기 쉬우니까.
하지만 슈미트 감독은 높게, 높게 차라고 지시했고,
페트로비치는 그런 지시에 고개를 갸웃였으나.
요한의 점프를 보자마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왜 높게 차라는건지 알 것 같았으니까.
물론 팰리스 수비수들도 당연히 요한을 집중 견제했다.
몸으로 밀어도 보고, 유니폼을 잡아 당겨도 보고, 헤더를 방해하기 위해 점프도 뛰었지만.
요한은 밀리지도 않았고, 잡아 당겨지지도 않았으며, 제일 높게 뛰었다.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뛰는 느낌.
그렇게 고공 폭격으로 요한은 3골 째를 완성 시켰으며,
런던 스타디움은 세 번째 환호를 터뜨렸고 반석호와 맥마나만 구단주는 반실신 상태에 빠져 버렸다.
개막전을 완전히 축제 분위기로 만든 요한이었다.
*
“어, 꽤 충격적인 패배라고 감히 말하고 싶은데요.”
“···예상치 못한 결과이긴 합니다.”
“패배의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패배의 원인이요.”
3대1의 스코어로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장.
개막전 패배를 당한 크리스탈 팰리스의 감독 제레미 헤인즈가 기자의 질문에 한숨을 내쉰다.
이 기자 놈이 진짜 몰라서 묻는건가, 하는 표정이다.
오늘 웨스트 햄에게 패배 당한 건, 지나가는 개한테 물어봐도 답이 뻔할 것이었다.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맥이는 거 맞지, 이거?
“휴우. 상대 스트라이커의 컨디션이 좋았던 게 원인인 것 같네요.”
헤인즈 감독이 한숨을 쉬며 대답하자,
기자는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이어 나갔다.
“9번, 요한 반 선수 말이군요. 이 선수, 16세의 어린 유망주지만 지난 시즌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했던 선수입니다. 프리 시즌에도 그 활약을 이어갔고요. 따로 대비는 안하신 건가요?”
이어진 질문에 헤인즈가 기자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본다.
이 놈, 크로이던 매거진에서 나온 녀석인가?
지난 시즌 중반부터 헤인즈 경질을 부르짖던 그 지역 신문 말이다.
“하아, 그게···”
난감한 듯 이마를 긁적이는 헤인즈 감독.
뭐라고 답변해도 엉망일 수밖에 없는 함정같은 질문이다.
따로 대비는 안했다고 답한다면, 헤인즈 감독의 안일함에 대해 기사를 내겠지.
대비를 했다고 답하면?
대비했음에도 3골이나 먹히다니, 도대체 무슨 대비를 한 거나며 무능력하다는 기사를 낼 것이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헤인즈 감독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웃은 뒤 돌아섰다.
그리고,
인터뷰장을 빠져 나가던 헤인즈 감독은 마주 오던 건장한 소년과 스쳐 지나가곤,
쓴웃음을 지었다.
‘대비를 왜 안 했겠어.’
동네 축구 팀도 아니고, 상대 전력을 분석 안하는 팀도 있단 말인가?
특히나 개막전이다.
웨스트 햄에 대한 분석, 그리고 그 핵심, 저 9번에 대한 분석을 제일 꼼꼼히 했던 헤인즈 감독이었다.
방심을 한 게 아니었다.
리버풀처럼 모르고 당한 게 아니란 말이었다.
그저,
알고도 녀석을 못 막았을 뿐이었다.
‘우리 유스에서는 저런 놈 하나 안 나타나나.’
헤인즈 감독은 한숨을 내쉬며 버스로 향했다.
*
요한은 오늘도 경기 인터뷰 장에 피곤한 얼굴로 나타났다.
벌써 몇 번째지.
경기를 한 날엔 무조건 여기로 끌려왔다.
어차피 뭘 물어보든 대답은 네, 아니오가 전부인데.
뭐가 궁금하다고 자꾸 불러내는건지.
“우선 승리와 해트트릭, 축하 드립니다. 오늘로 프리미어 리그 5경기 째인데, 벌써 2번의 해트트릭을 기록하셨네요.”
“아, 네.”
“소감은 어떠신지? 원하는 플레이가 나왔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느 정도 만족하구 있어요.”
쓰읍.
짧막한 요한의 대답에 기자가 혀를 튕긴다.
인터뷰를 담당하는 기자들 사이에서도 요한은 꽤 유명해지고 있었다.
인터뷰하기 까다로운 선수로.
기자들이라면 당연히 뭔가 좀 자극적인 걸 원하기 마련인데,
요한은 지금처럼 항상 단답만 하니까.
뭔가 좀 핫한 신인답게 자신감 넘치는 대답을 해주면 좋으련만.
요한은 프랜차이즈 스타가 될만한 자질을 넘치게 가진 선수였다.
유스에 입단한 지 1개월만에 팀의 주전 스트라이커가 된 16세 선수.
재능은 물론이고, 그 배경만 보더라도 동화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뭔가 좀 더 이슈를 끌려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인터뷰 스킬이 필요한데.
흐음.
요한은 인터뷰 장에서도 피치 위에서와 스타일이 비슷했다.
때문에,
기자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마지막 질문을 던졌을 때였다.
“개막전 승리로, 이번 시즌 기분 좋은 출발을 하셨는데요. 이번 시즌, 목표로 하는 게 있다면요?”
“이번 시즌 목표요?”
이번 시즌 목표.
아주 확고하게 정해져 있다.
당연히 팀의 우승이다.
웨스트 햄을 우승시키는 날이,
곧 요한이 꿈꾸던 인생의 시작이 되는 날이니까.
“목표는···”
그런데, 웨스트 햄을 우승 시키면 이러저러한 베네핏을 받기로 했기에 그러한 목표가 생겼다라는 걸 주저리 주저리 설명하기 귀찮았던 요한이,
“은퇴하는 겁니다.”
너무 많은 걸 생략하고 대답해 버렸고.
“······예?”
기자의 표정이 벙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