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36)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36화(36/202)
< 035화 – 슈퍼 조커 >
낭중지추라는 말이 있다.
주머니 속의 송곳.
뾰족한 송곳은 주머니 속에 있어도 뚫고 비어져 나온다.
즉,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은 숨으려 해도 숨을 수 없고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다는 뜻인데.
요한이 그랬다.
요한의 가진, 요한이 보여준 재능은 축구 팬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재능이었다.
이번 시즌 리그 4경기만에 8골.
경기당 2골이라는 무시무시한 페이스로 달려 나가고 있는 요한이었다.
게다가 강팀에서 뛰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그 나이가 고작 열여섯.
이러니,
애초부터 요한이 피치 위에 서게 된 이유처럼.
요한은 세상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세상은 요한에게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 관심이 꼭 반갑지만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라니스터가···?”
“예. 연락을 보내왔네요.”
“이런 썩을.”
슈미트 감독의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 나왔다.
제이미 코치가 말하길,
크리스 라니스터 A대표팀 감독이 이달 말에 있을 A매치 주간에 요한을 소집해보고 싶어한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한다.
“토트넘 전 때 직접 와서 봤다네요.”
“젠장맞을.”
“직접 봤으면 뭐 빼박이죠. 무조건 데려가고 싶어하죠. 요한이는.”
“선수가 없는 것도 아니고, 무슨 벌써.”
“에이. 감독님이 독일 대표팀 감독이고, 요한이가 독일 선수였으면 감독님도 부르셨을 거잖아요.”
“시끄러워.”
“넹.”
쯧.
말이야 맞는 말이다만, 마음에 안든다.
잉글랜드가 열여섯짜리 유망주를 꼭 데려가야 할만큼 선수가 급한 상황도 아닌데 말이다.
뭐, 요한이가 나이 상관없이 있으면 뽑을 수밖에 없는 재능이라곤 하지만.
벌써 데려가야 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고.
“차출 거부는 할 수 없는 게 문제네요.”
“20세 이하 선수는 경기 수 제한하고 이런 제도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열여섯 짜리 꼬맹이를 뭘 그렇게 굴리려 들어.”
“그렇게 치면 우리가 제일 나쁜 놈들인데요?”
“시끄러워.”
“넹.”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요한이 활약하는 건 누구보다 기쁜 일이지만,
그렇기에 또 고민 거리가 생겼다.
이제 고작 열여섯살인 요한은 올 시즌이 첫 풀시즌이다.
게다가 팀내에서 맡은 역할이 워낙 중요하다보니, 가능한 많은 경기에 내보내야 하고.
가뜩이나 프리미어 리그는 험난한 일정으로 정평이 나 있는 리그.
때문에 체력 관리가 무척이나 중요하고, 부상 관리 역시도 중요하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부르기 시작하니.
이것 참.
“우리 아기 요한이, 아껴줘야 하는데. 달갑지 않긴 하네요.”
“축구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일이지. 학생을 데려다가 일 시킨다고 생각해봐.”
“재능이 너무 있어도 피곤한 일이네요. 휴우. 제가 그래서 커피를 못 끊어요.”
“뭔 소리야, 그건.”
“저도 좀 쉬고 싶은데, 감독님이 너무 절 믿으시니 쉴 수가 없잖아요. 이래서 일 잘하면 피곤하다니까요.”
“시끄러워.”
“넹.”
제이미 코치의 말대로 A대표팀 차출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이상 거부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다행인 게 있다면 이달 말에 있을 네이션스 리그 경기가 이곳, 런던에서 치러진다는 거고.
사실 요한의 체력은 크게 걱정할 게 없는 게, 경기를 해도 알아서 체력을 보존하는 녀석이라는 거긴 한데.
어쨌든 그래도 경기를 뛴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 큰일이니까.
“근데요, 감독님.”
“뭐.”
“그래도 잉글랜드 대표로 뛰는 게, 한국 대표로 뛰는 것보단 낫잖아요?”
“한국?”
“기사 못 보셨어요? 한국에서도 요한이를 차출하고 싶어 한다던데요?”
“···아. 녀석, 한국 대표로도 뛸 수 있는 신분이지.”
한국이라.
사실상 거의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다.
그렇게 생각하니, 차라리 잉글랜드 대표로 불려가는 게 선녀로 보인다.
한국 대표로 뛰려면··· 비행기만 몇 시간을 타야 된다.
것뿐인가. 가서 시차 적응도 해야 되지, 날씨, 잔디 적응도 해야 되지.
어휴.
그런 걸 생각해보면 유럽 선수들은 국적이 유럽인 것만으로 분명 이점이 있다.
“근데, 그럼 어디 대표로 뛸지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단 거야?”
“네. 그거야 본인이 선택할 문제니까요.”
“흠. 그놈 성격엔···”
아마 모르긴 몰라도, 선택권이 요한이에게 있다면. 녀석은 당연히 한국 대표를 고르진 않을거다. 그 귀찮다 못해 힘든 일들을 스스로 선택할 녀석은 아니니까.
“물론 한국 선수들은 애국심이 강하기로 유명하니까, 또 모르지요. 요한이 아버지도 한국 국가대표였잖아요.”
“그것도 그렇긴 하네.”
흐음.
에잇. 뭐가 됐든 반갑지 않다.
슈미트 감독은 혀를 차며, 훈련 면제 쿠폰으로 지금쯤 푹 자고 있을 요한이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만약 녀석이 국가대표에 차출이 된다면.
차라리 한국보다는 잉글랜드가 훨씬 낫겠다는 생각 또한.
ㆍㆍㆍ
소파에 앉아 상념에 잠겨 있는 반석호.
아직 이쪽으로 연락이 온 건 없었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곧 연락이 오겠다 싶었다.
잉글랜드든, 한국에서든.
“흐음···.”
현재 규정상 요한이는 잉글랜드 대표로도, 한국 대표로도 뛸 수 있는 상황이다.
본인의 선택에 따라서.
중요한 건 그것이었다.
본인이 선택할 문제라는 것.
반석호가 원하는 건, 요한이 잉글랜드 대표로 뛰는 것이었다.
뭐로 보나 그쪽이 훨씬 더 이점이 많다.
애초에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에 온 것 아닌가.
한국 대표로 뛰는 건 사실상 얻는 게 없다.
끽해봐야 조국을 대표한다는 명예.
그뿐.
오히려 잃는 게 훨씬 많다.
반석호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요한이에게 그런 부담을 지어주고 싶진 않았다.
‘슬슬 녀석에게도 알려줄 때가 됐구나.’
때가 오고 있는 듯 했다.
요한이를 필요로 하는 곳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제, 녀석에게 선택권을 줄 차례인 듯 했다.
“부르셨어요?”
“어, 그래. 잠깐 앉아보렴.”
반석호의 부름에 요한이 거실로 나와 앉았다.
꿀잠을 잤는지 얼굴이 팅팅 부어 있다.
반석호의 눈엔 아직도 애기같은 요 녀석이 국가의 부름을 받는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저를요···?”
“응.”
반석호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요한에게 소상히 설명했다.
만약,
잉글랜드와 한국.
양쪽에서 너를 원한다면, 선택권은 너에게 있다고.
어느 쪽을 선택하든 오롯이 너의 결정이며, 어느 쪽을 선택하든 잘못된 건 없다고.
다만,
한국을 선택한다면 얼마나 힘든 일이 있을지에 대해선 더 자세히 설명해줬다.
설명을 들은 요한은 하품을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둘 다 안가면 안돼요?”
“···응?”
“둘 다 가기 귀찮은데요···”
머리를 긁적이는 반석호.
피파 규정상 국가대표 차출에 선수 본인이 불응하는 경우, 클럽 n경기 출장 금지 따위의 규정이 존재한다.
이것이 불합리한 규정이라고 말이 많긴 하나, 어쨌든 규정은 규정인지라.
차출에 응하는 게 사실상 의무에 가까운 셈.
“그런 게 있어요···?”
“그게, 그렇네.”
“그럼···”
선택은 존중한다.
하지만 원하는 대답이 나왔으면 좋겠다.
요한이 대답했다.
“잉글랜드로 할게요. 한국은 너무 머니까···”
“그럴래?”
“네.”
“알겠다.”
고개를 끄덕이며 요한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반석호.
그래.
좋은 선택이다.
요한은 삼사자 군단을 선택했다.
ㆍㆍㆍ
토트넘 전 승리로 4연승을 달린 웨스트 햄의 다음 일정은 AFC 본머스, 레스터 시티 전으로 이어졌다.
본머스는 지난 시즌 챔피언십 리그에 소속되어 있던 팀으로, 올 시즌 승격된 팀이었다.
사실 좀 희한한 게,
이제 막 승격을 해서 프리미어 리그에 올라온 팀들은 모 아니면 도의 경기력을 보이는 경향이 좀 많았다.
의외의 돌풍을 일으키며 승격의 기세를 이어나가거나, 아니면 하위권을 지키다 또 내려가거나.
본머스는 전자에 속하는 팀이었다.
지난 4경기에서 2승 1무 1패.
승격팀의 전적이라곤 믿기 힘들만큼 본머스는 끈끈한 축구를 선보이며 프리미어 리그 팀들을 당혹케 만들었는데.
그 돌풍이 웨스트 햄과의 경기에선 이어지지 못했다.
스코어부터 이야기하면 3대1.
웨스트 햄이 2점차로 본머스를 누르고 승점 3점을 챙겨갔다.
이 경기로 웨스트 햄은 개막 후 5연승이라는, 말도 안되는 기세를 이어나가게 됐는데.
그와 더불어 고무적인 성과가 있었다면,
이 경기에서 터진 3골 중 2골이 요한이 아닌 다른 선수의 발에서 나왔다는 것이었다.
뭐, 요한 본인에겐 고무적인 게 아니겠지만.
팀으로 볼 땐 좋은 일이었고, 크게 보면 요한에게도 좋게 작용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쨌든 다른 선수들도 득점을 해야, 상대로서도 요한만 집중 수비를 할 수 없게 되니까.
득점자는 팀 고든과 제이콥 버클리였다.
고든은 전반 7분 경, 상대 수비가 어설프게 걷어낸 공을 그대로 중거리 슈팅으로 연결해 골망을 갈랐다.
버클리는 전반 13분, 코너킥 상황 때 골문 앞에서 난전이 벌어진 틈에 공을 차넣어 두 번째 득점자가 됐다.
세 번째 골은 요한의 몫이었다.
전반 21분,
박스 정면에서 공을 이어 받은 요한은 상대 수비를 앞에 둔 채 그대로 슈팅을 때렸고, 그게 골문 구석으로 빨려 들어가며 팀의 세 번째 득점을 만들어 냈다.
그렇게 일찌감치 승기를 잡은 웨스트 햄은, 60분 경에 교체 카드 3장을 모두 쓰며 주전 선수들의 체력 관리에 들어갔다.
요한도 그 세 명 중 하나였고, 덕분에 남은 시간을 벤치에서 편하게 보낼 수 있었다.
아쉬운 건,
그 다음 경기인 레스터 시티 전이었다.
이 경기도 결과부터 이야기하면,
1대1, 무승부였다.
웨스트 햄의 연승이 무승부로 깨지는 순간이었다.
아쉬운 무승부였다.
사실 경기 자체는 웨스트 햄이 주도한 경기였으나, 레스터의 치열한 수비와 빠른 역습이 무승부를 만들어낸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요한은 레스터의 집중적인 수비를 당하며, 처음으로 득점을 기록하지 못한 경기를 치렀다.
대신 1개의 도움을 올려 연속 공격 포인트는 기록하게 되었으나, 아무리 요한같은 재능을 가진 선수라도.
매 경기 골을 넣을 순 없다는 축구의 진리를 확인한 경기였다.
그리고,
덕분에 레스터 시티는 요한의 블랙 리스트에 들어가고 말았다.
지난 시즌 번리에 이어, 다음에 만나면 무조건 쳐부숴야 할 블랙 리스트 말이었다.
그들 덕분에 훈련 면제 쿠폰을 1개밖에 얻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9월 3경기를 치른 웨스트 햄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A매치 주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ㆍㆍㆍ
결국 웨스트 햄에 공문이 전달 되었다.
잉글랜드 축구 협회가 요한을 이번 소집 명단에 차출하겠다는 공문이었다.
“스읍.”
“그래도 좋은 경험이 되지 않겠습니까.”
대표팀에 합류하기 전, 마지막 훈련에 참가한 요한을 보며 걱정 어린 표정을 짓는 슈미트 감독.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보는 부모의 표정이었다.
라니스터 감독, 능력있는 감독으로 알고 있긴한데.
요한이 워낙에 특이한 녀석이라 말이다.
저 녀석, 다루기 쉬운 녀석이 아닌데.
요한 사용 설명서라도 써서 보내줘야 하나.
“라니스터 감독이 그래도 세심하긴 한 감독이네요. 저도 다음 월드컵 땐 그 감독님 밑에서···”
“시끄러워.”
“넹.”
라니스터 감독도 상당히 이른 차출이라는 걸 의식한건지, 꽤 배려를 해주는 모습이었다.
그럴 의무는 없지만, 직접 슈미트 감독을 찾아와 이야기를 나눴던 라니스터 감독이었으니까.
상당히 어린 선수를, 그것도 팀의 핵심 자원인 선수를 차출해서 미안하다던 라니스터 감독은 몇 가지 약속까지 하고 갔다.
일단 이번 차출의 의도가 당장 경기에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훈련을 하며 직접 보고, 또 경험을 쌓게 해주려는 의도란 걸 밝힌 라니스터 감독은,
굳이 꼭 경기에 내보내지는 않겠다고 약속했다.
어차피 선수가 넘치는 잉글랜드 대표팀이었다.
게다가 이번에 치를 두 경기의 상대가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상당한 강팀들이라, 기존의 베스트 일레븐을 가동할 생각이기도 하니.
요한은 아마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기만 할 가능성이 높을 거라며 슈미트 감독을 안심시킨 라니스터 감독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어떻게 믿어.”
“무슨 말이요?”
“저 녀석을 경기에 안내보낸다는 말 말이야.”
슈미트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글쎄다.
라니스터 감독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경기에 안내보낼 가능성이 크다는 말 말이었다.
왜냐면,
라니스터 감독도 훈련하면서 보면 느끼게 될 테니까.
요한이, 저 녀석의 재능을 말이다.
저 녀석은 한 번 보면, 안쓸 수가 없는 재능이니.
“에이, 쯧. 모르겠다. 이왕 간 김에 A매치 데뷔골이나 넣고 오든지.”
“아무튼 클럽의 체면은 좀 사는데요? 우리 팀 스트라이커가 잉글랜드 국가대표라니까.”
“그게 뭐가 자랑스러워?”
“예? 그럼 안자랑스럽습니까?”
“독일 대표정도 되어야 자랑스럽다고 하는거지. 잉글랜드 대표가 뭔···”
“예, 예. 그러시겠죠.”
“너 이 놈, 비아냥 댄 거냐, 지금?”
“아이, 설마. 제가 감히요.”
“에힝, 쯧.”
아무튼,
부디 다치지 말고 무사히 다녀오길 바랄 뿐.
요한을 바라보는 슈미트 감독의 표정은 마치 군대에 가는 아들을 보는 듯 했다.
그만큼,
요한은 어느새 슈미트 감독에게 있어 없어선 안될 존재가 되어 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