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38)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38화(38/202)
< 037화 – 슈퍼 조커 >
뭐랄까.
조금 화가 났다.
왜 화가 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랬다.
화가 났다.
특이한 일이었다.
요한은 좀처럼 화를 내는 성격이 아니었다.
아니, 화를 내는 게 아니라 화가 나는 일 자체가 거의 없다.
그런데,
프라이스의 말을 들으니 갑자기 마음이 이상했다.
‘그런 애들 데리곤 우승 못한다.’
웨스트 햄에서 이번 소집에 이름을 올린 건 요한이 유일했다.
스코틀랜드 대표팀에 소집된 제이콥 버클리나 노르웨이 대표팀에 차출된 제프 휴리첼 같은 타 국가 선수들 말고,
잉글랜드 대표팀에 소집된 선수는 없었다.
대부분이 영국 선수들임에도 말이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요한도 알 수 있었다.
웨스트 햄 동료들이 대표팀에 뽑힐만큼의 선수들은 아니란거지.
그래서 프라이스가 말한 ‘그런 애들’의 의미가 어떤 건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요한은 불과 몇 달전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웨스트 햄 아카데미 입단 테스트가 있던 날.
그때 탈락한 형을 보며 뒤에서 떠들어대던 녀석들.
녀석들은 형을 보고 반씨 집안 전체를 비웃었었다.
그리고 지금.
프라이스가 했던 말이 그때 그 녀석들이 떠들어댔던 말과 오버랩 되는 느낌이었다.
그때의 자신이 반씨 집안을 대표한 거라면,
지금의 자신은 웨스트 햄을 대표하는 느낌.
여기서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이, 곧 웨스트 햄의 이미지가 될 것 같다는 느낌 말이다.
실제로, 봐라.
프라이스 하나 때문에 맨 시티라는 클럽에 대한 인상이 확 나빠지지 않았는가.
다른 선수들이 어떤 선수들인지 전혀 알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똑같은 일이었다.
그러고 싶진 않았다.
아무리 훈련이 귀찮아도, 그 형들이 무시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진 않았다.
그 형들은 적어도 그런 취급을 당할 사람들이 아니니까.
잭 프라이스.
저 녀석이 ‘그런 애들’이라 지칭했던 그 선수들은, 요한이 보기엔 이해가 안될 정도로 힘든 훈련들을 꾹 참고 해내는 이들이었다.
“코치님.”
“응?”
“이거, 몇 개 하라고 하셨죠?”
“왼발, 오른발, 머리 각각 15번씩 성공이야.”
“알겠습니다.”
첫날 요한에게 부여된 훈련은 슈팅.
코치가 주는 크로스를 받아 투 터치 이내에 슈팅으로 연결하는 훈련이었다.
할당량은 양발과 머리, 다 합해서 45번 성공.
소집 첫날이니 가벼운 몸 풀기에 가까운 훈련량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요한은,
이전과 달리 진지하게 훈련에 임하기 시작했고.
슈우우우웅-
철썩-!
“휴우.”
얼마 지나지 않아,
“···수고했어.”
“고생하셨습니다.”
단숨에 훈련을 마치고 훈련장을 떠났다.
*
요한의 훈련 모습을 지켜본 라니스터 감독은 감탄했다.
“타고 났구나.”
“다 이유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저렇게 해도 득점 1위에, 저 나이에 여기 온 것까지···”
“가늠이 안돼. 얼만큼을 타고난 건지, 가늠이.”
아직 지켜봐야 할 건 많았다.
녀석이 자신의 전술을 얼만큼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만큼 팀에 빠르게 녹아들 수 있는가, 녀석을 원톱 자리에 세웠을 때 얼만큼 팀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등등.
하지만,
그런 걸 떠나 짧게 슈팅 훈련을 하는 것만 봐도 하나만큼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타고난 것만큼은,
여기 모인 그 어떤 선수들보다도 크다는 걸.
보라.
오늘은 토트넘의 메이슨 매과이어도 요한과 똑같은 과업형 훈련을 부여 받았다.
한데,
뻐어어어엉-!
뻐어어어엉-!
똑같이 시작을 했음에도 아직 훈련장에 남아 있지 않은가.
요한은 이미 똑같은 할당량을 끝내고 돌아갔는데 말이다.
이거, 참.
미스터리하게까지 느껴지는 재능을 가진 녀석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슈미트 감독이 왜 그렇게 장문의 문자를 보낼 정도로 녀석을 애지중지하는지도 알 것만 같았다.
‘걱정 마십쇼. 감독님. 곱게 쓰고 돌려 보내겠습니다.’
순간, 라니스터 감독은 잉글랜드 대표팀을 맡게 된 것이 새삼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년 전, 에버튼을 이끌고 5위라는 성적으로 리그를 마쳤을 때.
라니스터 감독은 세 개의 선택지를 받았었다.
하나는 에버튼과의 재계약.
하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차기 감독직.
그리고 다른 하나가 잉글랜드 대표팀이었다.
지금 보면 알 듯 라니스터 감독은 마지막 선택지를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대표팀을 맡으면, 구단의 재정 상황이나 역사적 문제 같은 것들에 구애받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입맛대로 선수단을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에버튼을 계속 맡았다면, 지금 몸값이 천억이 넘어가는 선수들을 써볼 수 있었겠나.
그렇다고 돈이 넘치는 맨유를 맡았다고 해도, 맨체스터 시티 소속 선수를 데려다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오직 잉글랜드 대표팀만이, 국적이라는 단 한 가지의 제약만을 제외 한다면 원하는 대로 선수들을 데려다 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요한을 보니 새삼 대표팀을 맡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런 선수를 부르고 싶으면 불러서 지도해볼 수 있다니.
정말 대표팀을 맡길 잘했다.
‘앞으로도···’
아주 짧은 훈련이 끝난 첫날.
그 첫날 만에 라니스터 감독은 생각했다.
요한 반.
저 친구는 선수단에 피해가 갈만한 사고만 치지 않으면, 앞으로도 경기장 밖에선 건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이었다.
ㆍㆍㆍ
2027년 9월 29일.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
최대 수용 인원 9만 명을 자랑하는 영국 최대의 스타디움이자, 삼사자 군단의 홈구장으로 쓰이고 있는 이곳에 만석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관중들이 스타디움을 가득 메우고 있다.
오늘은 UEFA 네이션스 리그 디비전 A, 그 B조의 조별 3차전이 있는 날.
잉글랜드는 이탈리아를 웸블리로 불러들여 경기를 갖는다.
FIFA 주관 A매치 주간에 펼쳐지는 네이션스 리그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현재로썬 유로 2028 본선 진출 팀을 가리는 예선의 예선 격의 기능도 겸하고 있었다.
특히 이번의 경우, 가장 상위 리그인 ‘리그 A’에 속한 팀들은,
각 조에서 1위를 차지할 경우 시드를 받아 유로 본선에 직행할 수 있는 티켓을 거머쥐게 된다.
잉글랜드는 앞선 조별 1,2차전에서 1승 1패를 기록해 B조 2위를 마크 중인 상태였다.
스위스에게 원정에서 1승, 스페인에게 원정에서 1패.
때문에 조 1위를 위해선 오늘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그래야 유로 본선 직행 티켓의 가능성을 이어갈 수 있다.
쉴틈없이 이어지는 리그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유럽 최정상 선수들에게 ‘직행 티켓’이 가지는 의미는 거대한 것이 당연.
예선을 한 경기라도 덜 치르는 것이 본선에서의 경기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하니까.
오늘 경기는, 그래서 더 중요했다.
“흐음···”
관중석 한켠에 앉아 경기장을 내려다 보고 있는 반석호.
앞서 말했듯, 오늘 경기가 그렇게 중요한 경기다 보니.
확실히 대표팀에 처음 소집된 16살 짜리 선수가 데뷔전을 갖기엔 어려운 상황임을 반석호는 잘 알고 있었다.
친선 경기라면 모르겠는데, 이건 당장의 결과를 따내야 하는 경기니까.
때문에,
오늘 잉글랜드의 선발 명단에 요한이 포함되지 않은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봤으면 좋겠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오늘,
경기장에서 뛰는 아들의 모습을 말이다.
‘정확히는, 보여줬음 좋겠고.’
요한이가 잉글랜드 대표팀을 선택하고, 실제로 대표팀에 발탁이 된 뒤.
안 봐야지, 안 봐야지 하긴 했다만.
반석호도 사람인지라 한국의 반응을 살짝 살펴 봤었다.
그들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모두 이해가 되는 반응들이었다.
때문에,
그들이 비난을 하든, 공감을 하든 별 다른 느낌은 없었던 반석호였다.
그러나, 한 가지.
요한이 잉글랜드 대표로서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품는 의견은 참기 힘들었다.
한국 대표라면 즉시 주전감인 건 확실한데, 잉글랜드라면 어려울 거라는 의견 말이었다.
그 때문에, 잘못된 선택이라며 조롱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중에 가면, 분명히 그 선택을 분명히 후회할 거라며 저주를 퍼붓는 사람들도 많았고.
‘과연 그럴까.’
그 사람들이 틀렸다는 걸 보여줬음 좋겠다.
보란 듯이.
“삐이이익-!”
경기가 시작 되었다.
*
양 국가의 엔트리만 보면,
마치 프리미어 리그 올스타 팀과 세리에 A 올스타 팀의 대결을 보는 듯 했다.
아무래도 강한 자국 리그를 가진 두 나라다 보니까.
그 중에서도 뼈대를 이루는 팀들이 있다.
이탈리아의 주축은 역시나 지난 시즌 세리에 최소 실점 우승 팀, 유벤투스였다.
골키퍼와 수비 라인의 센터백 듀오가 유벤투스 소속의 선수들인 이탈리아였다.
리그 최소 실점의 핵심들을 그대로 수비 라인에 빼다 박은 것이었다.
덕분에 이탈리아의 수비는 가히 유럽 최정상급이라 할 만 했고,
실제로 앞선 두 경기에서 모두 무실점을 기록하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반면.
이탈리아의 주축이 유벤투스라면,
잉글랜드의 주축은 역시나 맨 시티였다.
오늘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 중 4명이 맨 시티 소속.
유벤투스를 위시로 한 이탈리아가 수비라면,
이쪽은 패싱 플레이로 경기를 장악하는 타입.
때문에,
유벤투스와 맨 시티.
양 팀의 주축을 이루는 두 팀 선수들의 활약이 경기의 승패를 가르는 요인이 될 공산이 큰 가운데.
시작이 좋은 쪽은 잉글랜드였다.
원정 팀인 이탈리아는 확실히 시작부터 수비에 치중하는 느낌이었고, 잉글랜드는 중원의 숫자를 많이 가져가 점유율을 높여가며 경기를 시작했다.
워낙 발 기술이 좋은 미드필더들이 많고, 뭣보다 원톱으로 나선 메이슨 매과이어의 활동 범위가 넓은지라.
중원 싸움은 잉글랜드가 질 수 없는 구도.
경기 전, 이른 선제 득점을 강조했던 라니스터 감독이었다.
수비가 좋고 역습이 날카로운 이탈리아는, 빠르게 리드를 빼앗지 못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무서워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잉글랜드는 초반부터 에너지 레벨을 끌어 올리며 거세게 밀어 붙이기 시작했고,
웸블리를 가득 채운 홈팬들은 함성으로 분위기를 고조 시켰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수비는 역시나 만만치 않았다.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구는 이탈리아였다.
유벤투스의 센터백 듀오, 바르첼리와 마르치오는 확실히 베테랑들이었다.
서로의 눈빛만 봐도 척하면 척인 둘은 시종일관 수비 라인을 컨트롤 하며, 마치 한 몸처럼 박스 안을 틀어 막았다.
뿐만 아니라,
어찌저찌 빈틈을 찾아 슈팅을 때려봐도,
벽이 하나 더 있었다.
뻐어어어엉-!
슈우우우웅-
파아아앙-!
“아우!”
유벤투스의 수문장이자 이탈리아의 수문장,
알레시오 페트루치.
페트루치의 동물적인 선방은 번번이 웸블리를 통탄케 했다.
이탈리아의 골문 앞은, 실로 첩첩산중이었다.
“Sì! Questo è tutto!”
“Facciamolo! Puoi farlo!”
재밌는 건,
그렇게 수비를 한 번씩 성공할 때마다, 이탈리아 선수들의 기세가 확 올라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태클에 성공하거나, 패스를 끊어 내거나, 슈팅을 막아 내거나.
이탈리아 선수들은 수비에 성공할 때마다 골을 넣은 것처럼 포효했다.
그리고 그렇게 타오른 기세로 더욱 단단해지는 빗장 수비.
잉글랜드 선수들은, 함성을 내지르고 짐승처럼 포효하는 이탈리아 선수들을 보며,
어딘가 파이팅이 죽어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분명 두들기고 있는 건 자신들인데, 상대가 이기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것이었다.
터프함에선, 확실히 이탈리아가 우위였다.
“삑, 삐이익-!”
결국 전반전은 0대0, 득점 없이 마무리가 되었다.
문제는 후반전이었다.
웸블리 원정이란 게 쉽진 않지만, 그래도 이탈리아의 목표는 무승부가 아니었다.
이탈리아가 수비를 하며 기세를 끌어올린 건,
어디까지나 적의 숨통을 끊어놓기 위함이지, 고작 버티기 위함이 아니었으니까.
“어어어···!”
“노우!”
후반 7분, 이탈리아의 선취골이 터졌다.
모두가 예상했던대로 역습 한 방이었다.
그러나,
로마의 검은 알고도 못 막을만큼 빠르고 묵직했다.
선제 득점을 뽑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되어 있던 잉글랜드의 뒷공간을, AS 로마의 간판 골잡이 엔조 페라레로가 맛있게 털어 먹으며 이탈리아가 리드를 가져가 버린 것이었다.
‘상황이 안좋은데··· 오히려 좋아···’
경기를 지켜보던 반석호는 이 상황이 아쉬우면서도, 한 편으론 반가웠다.
잉글랜드는 분명히 변화를 꾀해야 하는 상황.
특히나 골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요한이 들어갈 구석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뭐해?’
잉글랜드의 벤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반석호.
슬슬 움직일 때가 됐는데,
야속하게도 라니스터 감독은 심각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기만 할 뿐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때문에 조급함이 느껴지는 그때.
“···!”
드디어 움직임이 포착됐다.
코치의 부름에 몇몇 선수들이 벤치에서 일어나 몸을 풀기 시작한 것.
그리고,
그 중에 요한이도 있었다.
‘조, 좀 더 활발히 움직여···!’
몸을 푸는 요한의 모습을 보고 손톱을 깨무는 반석호.
활발하게 몸을 움직이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요한이만 어슬렁대고 있었다.
다른 애들은 기회를 받기 위해 일부러 팔을 휘저으며 감독 앞을 지나가기도 하는데.
저래 가지고 기회를 받을 수 있을까.
심지어,
‘왜 도로 들어가?’
대충 몸을 푸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다시 벤치로 돌아가는 요한.
왜일까.
그냥 형들따라 몸풀다 들어오라는 지시였나?
아니.
아니었다.
“···!”
벤치로 돌아간 요한은, 입고 있던 트레이닝 복을 벗었다.
그리고, 유니폼 차림으로 라니스터 감독 옆에 섰다.
라니스터 감독은 요한의 귀에 대고 짧게 말을 하는가 싶더니, 등을 두들겨 주었고.
“Substitution for England···”
장내 아나운서가 잉글랜드의 선수 교체를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