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4)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4화(4/202)
< 003화 – 입단 테스트 >
2027년 5월 1일.
오늘은 웨스트 햄 아카데미 18세 팀에 새로이 입단할 선수들을 뽑는 테스트가 있는 날.
“후우, 후우!”
“오케이, 오늘 컨디션 좋다.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아!”
테스트가 열리는 훈련장엔 많은 아이들이 활발히 몸을 풀고 있었다.
대충 봐도 50명은 족히 넘을 듯한 많은 인원.
그러나,
이 중에서 최종 합격을 통해 아카데미에 입단할 수 있는 건 5명.
그나마도 구단에서 정한 기준을 넘지 못한다면, 5명은커녕 단 한 명도 합격이 없을 수 있다.
최대 5명을 뽑는 것이지 최소 5명을 뽑는 게 아니니까.
그만큼 웨스트 햄 아카데미의 입단 테스트는 가벼이 생각할만큼 쉬운 관문이 아니기에.
훈련장엔 긴장감이 흐르고 있는 가운데.
훈련장 스탠드 한 켠.
요한과 반석호가 나란히 앉아 필드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요한은 오늘 꼭 훈련장에 와달라는 형의 부탁 때문에 이곳에 앉아 있었다.
동생이 있어야 큰 응원이 될 것 같다던 형.
그런 형의 부탁을 뿌리칠 순 없었기에 일단 오긴 했는데.
“···”
“···”
부자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감돈다.
보통의 부자들이 그렇듯, 둘은 대화가 많은 스타일이 아니었다.
대화보다는 일방적인 잔소리가 대부분이었지.
로한이야 축구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으니 대화가 많은 반석호였지만, 요한은 축구 얘기를 하는 것도 싫어하니 얘깃거리도 없었고.
하지만,
이렇게 어색하게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반석호는 내심 기분이 좋았다.
요한이와 함께 축구장에 와 있다니.
비록 형의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와 있을 뿐이란 건 알고 있지만.
어쨌든, 이렇게 앉아서 아이들이 뿜어내는 열정을 느끼다보면.
녀석의 생각도 달라질지 모르는 일.
은근히 흔한 이야기 아닌가.
친구의 오디션을 따라 왔다가, 정작 구경왔던 친구가 캐스팅이 되어 탑스타가 되는 일화 따위 말이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그런 생각을 하다 아차하는 반석호.
로한의 테스트를 앞두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그 동안 피땀을 흘려 노력한 로한이의 합격을 빌고 있어도 모자랄 판에.
“요한아.”
“···네?”
“형, 응원하자.”
“네.”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한 반석호의 시도.
요한은 짧게 대답했다.
둘의 생각은 달라도, 로한이 합격하길 바라는 마음만큼은 똑같았다.
부디, 그간의 노력이 오늘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모두 주목! 한 사람씩 조끼 받아가세요. 슬슬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윽고 테스트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고,
반석호와 요한은 떨리는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
테스트 과정은 심플했다.
기본적인 피지컬 테스트부터, 드리블과 패스, 킥 등 공을 다루는 부분을 평가 받고,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등을 보는 전술적 움직임을 보여준 뒤,
마지막으로 11대11 경기를 뛴다.
이 일련의 과정 동안 후보생들은 본인의 기량과 가능성을 어필해야 하며, 그들을 평가하는 코치들에게 충분한 어필을 하지 못한다면 그대로 집에 돌아가야 한다.
“후보생들, 다들 입고 있는 조끼에 적힌 알파벳과 번호 순서대로 줄 서세요. A1이면 이쪽 제일 앞줄에 서면 됩니다. 피지컬 테스트부터 가겠습니다.”
시작은 피지컬 테스트부터였다.
간단히 일직선 코스를 왕복하는 것부터 시작해, 전력으로 질주하다 방향을 바꾸는 코스, 정사각형으로 놓인 고깔 사이에서 전후좌우로 움직이는 코스 등.
스피드와 체력, 민첩함과 순발력, 그리고 신체 밸런스를 판별하는 작업이 펼쳐졌다.
“삑-! 13번, 나와 주세요.”
“하, 한 번만 더 해보겠습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나와 주세요.”
“아, 안돼요!”
테스트가 시작되자마자 탈락자들이 줄줄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탈락자들은 모두들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사정했지만, 코치들은 냉정하다.
입단 테스트는 어디까지나 추가 합격의 개념.
애초에 가능성을 보이는 아이들은 스카우트로 일찌감치 팀에 합류시키니,
입단 테스트를 보러 오는 아이들에겐 기대치가 높지 않다.
때문에 단 한 번이라도 삐끗하면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하는 입단 테스트는 살얼음판.
그렇다 보니 로한의 차례를 기다리며 테스트를 지켜보는 반석호와 요한도 초조할 수밖에 없는데.
‘그래도 피지컬은 항상 좋은 점수를 받았었으니까.’
그래도 그나마 피지컬 테스트 부분은 크게 걱정되진 않았다.
일단 집안 자체가 피지컬을 타고난 집안이었으니까.
형제를 포함해 집안 남자 중 180이 안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체격 조건 자체가 좋고.
체격이 크다고 해서 민첩성이나 밸런스가 나쁜 것도 아니었다.
체력은 말할 것도 없고.
매일을 훈련에 매진하는 로한이니, 체력이 좀 좋겠는가.
계속해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지난 테스트들에서도 피지컬 점수만큼은 높은 점수를 받았던 로한이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아직 완벽히 회복 됐을지가 걱정인 발목의 부상이었다.
“다음, 15번.”
“형이다.”
로한의 차례가 되자 동시에 침을 꿀꺽 삼키는 반석호와 요한.
그 둘이 초조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로한이 뜀박질을 시작했다.
타타탓-!
그런데,
“으으음···”
로한의 러닝을 바라보는 반석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첫 스타트인 10미터 왕복 달리기.
훈련 때 직접 측정해줬던 기록은 꽤 잘나오는 편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몸이 무거워 보인다.
뛰는 폼을 자세히 보니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게,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역시 완벽하지 않은건가···’
아무래도 오른쪽 발목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분명 최대한 회복은 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부상을 당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불편한 감이 없지 않을 것이었다.
이 중요한 순간에 또 다치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할 거고.
그러다 보니,
반석호가 보기에 로한은 전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우려했던 부분이 현실이 된 것이었다.
‘안 좋네.’
큰일이었다.
그래도 저 정도면 탈락 커트라인은 아닐 것이었다.
하지만 로한의 목표는 단순히 끝까지 가는 것뿐만이 아니라, 최종 합격이다.
테스트의 점수는 실시간으로 매겨지고, 기준 미달의 후보생은 실시간으로 탈락 처리가 되지만.
최종까지 남은 후보생들 중 합격자가 되는 건 총점수 순이다.
즉, 강점이 있는 부분에서 최대한 좋은 점수를 따놓는 게 중요했던 것인데.
“삑-! 오케이, 다음!”
첫 테스트를 마친 로한의 표정이 개운치만은 않은 것에서 알 수 있듯.
그다지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은 느낌이었다.
‘아, 얄궂도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로한은 간절했었다.
너무도 간절해, 더 훈련을 하려다 부상을 당했을 정도로.
그런데, 그 간절함이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
이 얼마나 얄궂은 일이란 말인가.
“이제부터가 진짜인데···”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어쨌든 피지컬 테스트는 통과하긴 했지만.
이제부터가, 로한의 약점이 드러나는 세션들이란 것이었다.
피지컬 테스트 다음은 드리블이었다.
일렬로 세워진 깃대 사이를 드리블하며 지그재그로 통과하는 코스.
빠른 속도와 세밀한 컨트롤이 모두 필요한 세션이었는데.
로한의 다섯 번 탈락 중, 세 번이 이 코스에서 탈락했다.
가장 취약한 부분이었다.
‘훈련만으로 완벽해질 수 없는 부분이니···’
아무래도, 볼 컨트롤 영역 중에서도 드리블이야말로 진짜 재능의 영역.
한두 명 정돈 원하는대로 제칠 수 있는 드리블러들이 왜 귀한 대접을 받겠나.
훈련만으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게 훈련으로 되는 것이었다면,
드리블러가 아닌 선수가 없었을 것이다.
로한도 이번 테스트를 준비하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이 이 드리블이었지만,
그래도 걱정스러운 게 사실.
게다가 피지컬 테스트를 완벽히 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조급해질수도 있다.
부디, 개의치 않고 200퍼센트의 기량을 발휘하길 바랄 뿐인데.
“삑-!”
로한의 드리블이 시작된다.
천천히 깃대 앞까지 공을 몰고 가다가,
타탓-!
시간 측정이 시작되는 첫 번째 깃대서부터 빠르게 스피드를 올린다.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속도가 중요하다지만 그렇다고 급해져서는 안되는 테스트다.
조급해질수록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니까.
그저 훈련한대로, 몸이 움직이는대로 흐름에 맡겨야만 한다.
그런데,
이번에도 우려했던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다.
속도가 훈련 때보다 빠르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실수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큿···”
입술을 깨무는 반석호.
별 것 아닌 실수였다.
그저 드리블이 살짝 길게 튀었을 뿐.
그러나, 실수가 한 번 나오면 리듬이 깨져 버리고 만다.
심지어 급하게 그걸 커버하려다 보면, 또 다른 실수로 이어져 버리고.
타탓-
타탓-!
점점 드리블이 길어진다.
깃대를 지그재그로 통과하는 리듬도 불규칙적으로 바뀌고, 자연히 속도도 느려지고.
멀리 스탠드에서도 불안함이 느껴질 정도로 위태위태한 모습.
‘젠장···’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절박함.
걸리적거리는 부상.
조급해지는 마음까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로한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는 반석호.
사실, 지금까지 매번 이런 식이었다.
훈련 땐 그래도 곧잘 하는 로한이었다.
아카데미 테스트도 통과하지 못할 수준은 절대로 아니었다.
한데 실전에 약하다.
항상 얘기했듯이, 유약한 멘탈 때문이었다.
지금도 마음이 급해져서 실수들이 연발되고 있는 것처럼.
로한은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다치지만 않았어도···’
요한도 안타까움과 동시에 분노가 일었다.
형의 평소 모습을 아는 요한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잘할 수 있는 형이었다.
컨디션이 좋을 땐, 함께 테스트를 보고 있는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형이었다.
그런데, 하필 얼마 전에 다치는 바람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테스트를 보는 코치들은 그런 속사정까지 봐줄 리가 없었다.
그러니 억울할 수밖에.
‘안 돼···!’
로한의 드리블을 지켜보고 있는 담당 코치는 이미 휘슬을 입에 물고 있었다.
아직 불지만 않았다 뿐이지, 한 번이라도 더 실수하면 휘슬을 불 기세.
요한과 반석호는 제발 더 이상의 실수가 나오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로한의 몸은 이미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툭-!
“삐익! 15번, 나오세요.”
“아···”
“···”
결국,
코치의 휘슬이 울렸다.
허무한 표정으로 드리블을 멈추는 로한.
그러나 로한에겐 절망할 시간도 주어지지 못했다.
다음 사람을 위해 자리를 비켜줘야 했으니까.
참으로, 잔인한 게임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머리를 감싸 쥐는 요한.
형이 얼마나 열심히 해왔는지는, 요한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노력으로 순위를 매긴다면 여기서 1등은 단연 형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불운이 겹쳐 그 노력만큼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으니.
보는 입장에서도 안타까움과 분노가 끓을 수밖에.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와, 쟤 또 떨어졌네?”
“누구?”
“쟤 있잖아. 15번. 너 쟤 몰라?”
“몰라. 누군데?”
“왜, 반니 아들이라고 유명했던 애. 근데 매번 떨어져서 더 유명해진 애. 쟤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인가 여섯 번째일 걸.”
“헐. 반니 아들이라고? 근데 여섯 번째인데 아직도 합격을 못했다고?”
“그래. 내가 테스트 볼 때도 있었다니까. 근데, 아직까지도 테스트 보고 있네. 난 이제 연습생 2년차인데.”
뒤에서 웬 녀석들이 제멋대로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니는 영국 팬들이 반석호를 부르던 애칭.
그 반니가 자기들 앞에 앉아 있다는 걸 꿈에도 모르는 듯, 녀석들은 로한의 뒷담화를 까고 있었다.
“와, 어떻게 그 피를 물려 받고도 저 정도밖에 못하냐. 웃기는 일이네.”
“진짜 웃기는 일이지. 아빠가 그렇게 유명한 축구 선수였는데.”
“집안의 수치네, 수치.”
“아니면, 애초에 그 집안 재능이 별 거 없었던 거 아냐?”
“그럴 수도 있겠네. 하하!”
빠드득-
요한의 어금니가 빠그라지는 소리를 내었다.
가만히 듣고만 있자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알지도 못하면서.
형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뭐? 집안의 수치?
누구보다도 형을 소중히 생각하는 요한에게, 녀석들의 모욕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요, 요한아. 앉아라.”
요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반석호가 다급히 요한의 손을 붙잡았다.
아무리 싸움조차 귀찮아서 하지 않는다지만, 요한이 같은 피지컬로 싸움을 붙었다간 큰 일이 날 거라는 건 자명한 사실.
“놓으세요.”
“요한아!”
그러나 요한은 이미 아빠의 제지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분노해 있었다.
하지만,
“요한아···?”
그렇다고 아빠가 보는 앞에서 싸움박질이나 할 생각도 없는 요한이었다.
대신,
요한은 필드 위로 성큼성큼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