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40)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40화(40/202)
< 039화 – 슈퍼 조커 >
“예에에에에-!”
요한의 동점 골이 작렬하자 웸블리 스타디움이 떠나갈 듯 요동쳤다.
분명 답답한 경기였고, 늦은 시간에 터진 동점이었지만 분위기만 보면 이미 역전이라도 된 듯하다.
그건,
아마도 충분히 기대가 들만 했기 때문일 것이었다.
요한의 투입이,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키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이 경기, 충분히 뒤집을 수 있다.
그런 느낌이 드니,
이제 막 동점이 되었음에도 관중들은 이미 경기를 뒤집기라도 한 것처럼 함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영국 놈들 설레발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 모습이 마음에 안드는 듯, 바르첼리가 침을 퉤 뱉었다.
‘건방진 자식이.’
요한의 등을 노려보는 바르첼리.
자존심이 굉장히 상하는 일이었다.
저딴 애송이한테 그런 돌파를 내주다니.
게다가 혼자 막아서다 뚫린 것도 아니고,
형제와도 같은 마르치오와 함께 막아 섰는데도 힘으로 뚫려 버렸다.
그런 점에선 여기가 이탈리아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자신의 조국이었으면, 관중석에서 온갖 것들이 날아 들었을 테니.
‘운 좋은 줄 알아.’
바르첼리는 속으로 말했다.
녀석은 알아야 했다.
방금 그 어처구니 없는 돌파를 허용한 건,
어디까지나 초심자의 행운이었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그런 돌파를 시도하는 공격수는 없었다.
자신과 마르치오 앞에서 말이다.
어디 감히 누가 그런 상상을 하겠나?
그러다 보니 자신들조차 예상하지 못한거다.
그래서 어영부영 뚫려 버린 거고.
자신들이 저 녀석과 초면이듯, 녀석도 자신들이 초면일테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다르다.
탑 클래스 수비수들은 공격수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어도, 몸 한 번 섞고 나면 바로 감이 온다.
바르첼리도 요한에 대한 파악을 방금 막 끝낸 참이었다.
큰 신장과 좋은 피지컬.
그걸 이용해 제공권을 장악하고, 수비수와의 경합을 즐기는 스타일.
전형적인 타겟형 포워드다.
모든 유형의 포워드 상대법을 꿰고 있는 바르첼리였다.
이런 포워드는, 오히려 젠틀하게 수비해야 한다. 그들이 원하는 게 비비적대며 우당탕탕 밀고 들어오는 거니까.
때문에 원하는 대로 비벼주지 말고, 되려 한 발짝 떨어져서 깔끔하게 수비를 하는 편이 좋았다.
바르첼리는 좋은 피지컬과 투지 넘치는 수비로 유명하지만, 사실 수비 지능과 기술적인 태클을 자신의 장점이라 생각하는 수비수였다.
그러니 오히려 반가운 일이다.
녀석에 대한 분석이 끝난 이상,
남은 시간 동안 녀석에게 실점할 일은 없다.
오늘 경기의 결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라도.
‘죽여줄게.’
반드시 저 녀석만큼은 책임지고 막겠다는 생각을 하는 바르첼리였다.
그런 바르첼리의 절치부심과 함께 이탈리아는 수비 진열을 재정비했다.
다시금 원래의 웅크린 자세로 돌아가는 이탈리아.
방금의 동점 골은,
승부를 확실하게 가져 오려다, 과하게 신을 낸 것이 실수로 이어진 것 뿐이었다.
상대가 잘한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실수라는 것이었다.
그 전까지 해왔듯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군다면, 남은 20여분 정도는 충분히 이 스코어를 지켜낼 수 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이탈리아였다.
“뒤로! 자리 지켜!”
“라인! 라인 맞춰, 이 멍청이들아!”
바르첼리와 마르치오의 외침에 모든 이탈리아 선수들이 박스 주변을 감싼다.
매과이어가 있을 땐, 이렇게 형성한 박스를 감히 직접 공략할 생각도 하지 못했던 잉글랜드였다.
때문에, 지금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고.
하지만,
그런 이탈리아의 생각은 착각이었다.
전반과 달리,
잉글랜드는 중앙을 통한 공격으로 이탈리아의 박스 안을 계속해서 두들겼다.
파아아앙-!
맨시티 미드필더들의 날카로운 패스와,
파아앙-
뻐어어어어엉-!
그 패스를 받아 날카로운 슈팅으로 계속해서 골문을 위협하는 요한.
그 둘의 시너지는 어마어마했다.
꼭 양질의 패스가 아니더라도, 일단 연결만 되면 위협적인 요한이었다.
그런데,
패스의 질까지 날카롭다?
이탈리아는 예상치 못한 상대의 정면 돌파에 당황한 듯, 정신을 못차리기 시작했다.
“뒷 생각은 하지 말고, 딱 남은 30분 동안만. 전력을 다해라.”
요한을 투입 시키면서 라니스터 감독이 했던 말은 그것이었다.
다른 전술적 지시 따위는 없었다.
그저,
3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전력을 다해라.
아마도,
이탈리아 입장에선 요한이 들어온 뒤의 30분이, 그 전까지의 60분보다 길게 느껴졌을지도 몰랐다.
실제로,
마지막 30분 동안의 유효 슈팅이 그 전보다 더 많았다.
이탈리아로서는, 그리고 바르첼리와 마르치오로, 또한 유벤투스 까지도.
자존심을 구기는 마지막 30분이었다.
그들은 맨시티의 패서들을 등에 업은 요한을 막아낼 수 없었다.
뻐어어어어어엉-!
슈우우우우우웅-
철썩-!
“우와아아아아아-!”
“바르첼리가 완전히 녹았어!”
“미쳤다!”
요한의 역전 골은 경기 종료 10분을 남겨두고 터졌다.
이번엔 거리를 두 걸음 정도 두고 요한을 막았던 바르첼리였다.
그렇게 거리를 두고, 고도의 테크닉으로 수비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요한은 바르첼리의 생각처럼 단순한 타겟형 스트라이커가 아니었다.
요한은,
단순히 골을 넣는데에 있어서만큼은 컴플리트 포워드였다.
자신에게 붙어오지 않는 바르첼리를 앞에 둔 요한은 상체를 흔들며 무게 중심을 흔들었고,
바르첼리의 중심이 아주 잠깐 오른쪽으로 쏠린 순간, 왼발로 슈팅을 때려내며 이탈리아의 골망을 갈랐다.
그 순간은 바르첼리의 자존심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었으며,
동시에 유벤투스 그리고 이탈리아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요한은 다시 손가락을 펴보였다.
이번엔 한 개가 아니라 두 개였다.
“와, 저 자식! 리그에선 세레머니 안하더니!”
“국대 유니폼 입으니까 골 맛이 다르다 이거냐!”
“애들 패스가 다르다, 이거지?”
“그래! 행복해 보인다, 짜샤!”
열광의 도가니.
그 가운데 고든을 비롯한 몇몇 웨스트 햄 선수들이 미칠 듯이 환호하고 있었다.
그들은 손가락을 치켜 세워 보이는 요한을 보며, 장난스럽게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긴 했지만.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저 녀석이 웨스트 햄의 스트라이커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고, 저 녀석의 동료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오늘 경기는 사실상 프리미어 리그와 세리에의 격돌이었다.
그리고,
그 격돌의 중심에 있는 건 유벤투스와 맨시티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프리미어 리그의 빅 클럽 소속 선수들이 우글 우글한 저 곳에서, 득점을 기록한 건 맨시티 선수도 아니고, 첼시, 맨유, 리버풀도 아니었다.
웨스트 햄이었다.
고든과 선수들은 마치 자기가 골을 넣기라도 한 듯 기뻐하고 있었다.
“~I’m forever blowing bubbles!~
~pretty bubbles in the air!~
~they fly so high!~
~nearly reach the sky!~”
놀라운 일이었다.
게임이 뒤집어지자, 9만여 명에 가까운 관중들로 가득 찬 웸블리 스타디움이 팬들이 목 놓아 부르는 응원가로 넘실 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잉글랜드 대표팀의 응원가가 아니었다.
지금 웸블리를 수놓고 있는 건,
잉글랜드 대표팀의 응원가 ‘Three Lions’가 아니라, 웨스트 햄의 응원가 ‘I’m Forever Blowing Bubbles’였다.
누군가 그 노래를 먼저 부르기 시작했고, 그게 점점 퍼지더니 웸블리를 장악해 버린 것이었다.
“···”
“···”
런던 스타디움에서나 듣던 노래가 웸블리에 울려 퍼지는 것을 말없이 바라보는 고든과 선수들.
그들의 얼굴에 드러나는 감정은, 이루 형용할 수 없어 보였다.
또한,
같은 시각 관중석 어딘가.
“···”
똑같은 노래를 듣고,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반석호.
요한이 골로 승리가 확정된 이 순간.
여긴 웸블리가 아니라 런던 스타디움이었다.
요한이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
“삑, 삐익, 삐이이익-!”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린 뒤,
“예에에쓰!”
“됐어!”
“해냈네요!”
라니스터 감독은 코치들과 얼싸 안으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한 뒤,
만사를 제쳐놓고 곧장 그라운드로 향했다.
유독 기분이 좋아 보이는 라니스터 감독.
홈에서 역전승을 일궈냈으니 당연하기도 한데,
특히나 자신이 교체로 넣은 선수가 동점 골과 역전 골을 모두 기록했으니 더욱 기쁠 수밖에 없다.
“바니!”
라니스터 감독이 곧장 달려간 건 요한에게였다.
“하하하, 잘했어!”
요한을 와락 끌어안아 주는 라니스터 감독.
참으로 대견했다.
솔직히,
요한을 투입 시키면서도 일말의 걱정을 지울 순 없었던 라니스터 감독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대표팀 데뷔전인데,
너무 중요한 순간에 중요한 역할을 맡기는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아냐. 내가 고맙다.”
하지만,
부담감 따위는 전혀 없다는 듯 제 역할을, 아니 200%를 해준 요한이었으니.
고맙고 대견할 수밖에.
“너희 감독님한테 혼나겠는데, 이거.”
“···저희 감독님이요?”
“그래. 감독님이랑 약속했었거든. 너 경기 안뛰게 하겠다고.”
경기에 내보내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해 슈미트 감독에겐 미안하다.
하지만,
이걸 어떻게 안써.
슈미트 감독님도 이해해 주실거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지켜지지 않을 약속이란 걸 알고 계셨을지도 모르지.
요한의 재능을 누구보다 먼저 알고 계셨던 게 슈미트 감독님이니까.
“야아, 꼬맹이. 오늘 죽였다!”
“이놈, 진짜 물건이네. 데뷔전인데 긴장도 안되더냐?”
라니스터 감독에 이어 잉글랜드 동료들도 요한에게 와 축하를 건넨다.
지금은 다들 유럽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지만,
그들도 데뷔 때를 생각해보면 지금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선수들이 많았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졌대도, 이 많은 관중들이 내뿜는 부담감을 이겨낸다는 건 축구적인 재능 외의 또 다른 것을 타고나야 하는 문제였으니.
그런데, 요한 이 녀석은 바로 그걸 타고난 녀석인 듯 했다.
때문에,
“첼시 올래? 잘해줄게.”
“첼시를 가겠냐? 너도 알지? 라이벌 팀으로 가면 어떻게 되는지. 그러지 말고 리버풀로 와. 지난 시즌 일은 잊어주마.”
“그, 에버튼은 어떻게 안될까? 헤헤.”
각팀 선수들의 구애가 이어진다.
물론 장난스럽게 하는 이야기지만, 사실 마냥 장난인 것만도 아니다.
대표팀에서만 함께 뛰기에는 아까운 인재였다.
반대로,
리그에서 상대로 만나기엔 무서운 녀석이고.
게다가 웨스트 햄 소속이니까.
다른 빅 클럽 소속이었으면 함부로 이런 말도 못하겠지만, 웨스트 햄은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그렇게 선수들의 구애에 요한이 귀찮은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야, 야. 떨거지들은 다 비켜.”
“올거면 우리 팀으로 와야지.”
“지난 시즌 우승 팀 나가신다. 모두 길을 비키도록!”
한 무리의 선수들이 어깨 동무를 하고 나타났다.
잭 프라이스를 비롯한 맨시티 선수들.
맨시티 선수들이 나타나자, 첼시나 리버풀을 비롯한 다른 팀 소속 선수들이 한숨을 내쉬며 자리를 비켰다.
협상 테이블에 맨시티가 끼면 다른 팀은 깨갱하고 비키는 게 수순이다.
잭 프라이스는 요한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어땠냐, 꼬맹이. 오늘 느껴보니까, 패스의 질이 다르지?”
“너, 잘 받아 먹더라. 우리랑 잘 맞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확실히 맨시티의 미드필더들과 요한이 보여준 궁합은 좋았다.
나쁠 수가 있나.
수준급의 패서들과 어떤 패스든 슈팅으로 연결하는 포워드의 궁합.
상상해보면 두렵기까지 했다.
요한이 맨시티에서 뛰는 모습 말이다.
걸출한 공격수 기근을 오랫동안 겪고 있는 맨시티임에도 리그에선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요한까지 합류한다면.
아마 리그에선 더더욱 적수가 없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니.
“···”
하지만,
요한은 어깨를 으쓱였다.
자연히 요한의 어깨에 올려 놓았던 프라이스의 팔이 툭 떨어졌다.
“우리 팀이랑 언제 해요?”
“응? 뭘 언제 해?”
“우리 팀이랑, 그쪽 팀이랑 경기 언제 하냐구요.”
“리그 경기 말이냐? 어··· 언제였지?”
“10월 말이잖아. 다다음 라운드인가?”
“아, 맞아. 다다음 라운드. 근데 지금 그걸 왜 물어?”
그건 왜 묻느냐는 프라이스의 말에,
요한은 대답 대신 그저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프라이스를 비롯한 맨시티 선수들은 고개를 갸웃이며 요한을 바라 보았다.
“뭐야, 저 녀석.”
이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오늘, 요한이 입고 있던 건 잉글랜드 대표팀의 유니폼이었지만.
사실 요한이 대표한 건 잉글랜드가 아니라 웨스트 햄이었다는 걸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