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42)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42화(42/202)
< 041화 – 어디 안 가요 >
“제 목표는 오로지 웨스트 햄의 우승 뿐입니다··· 제 목표는 오로지 웨스트 햄의 우승 뿐입니다··· 제 목표는 오로지 웨스트 햄의 우승 뿐입니다.”
“······?”
어디선가 들려오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목소리에, 아침 식사를 하던 요한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음? 아, 내 전화였구나.”
그 목소리의 근원지는, 반석호의 주머니 속이었다.
“여보세요? 아, 예.”
“······”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아빠를 바라보는 요한.
뭐지, 이게.
분명 저건 자신의 목소리고, 내용을 들어보니 어제 인터뷰 때 했던 말 같은데.
그걸 핸드폰 벨소리로 해놓으신 건가, 지금?
······어떻게 하셨대.
형이 해준건가.
“여어, 좋은 아침. 아니, 뭐야. 이게 누구야?”
“···?”
이번엔 부엌으로 나온 로한이 요한을 이리저리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인다.
뭐야.
형은 또 왜 이래?
“아빠. 얘 아빠 아들이에요?”
“응? 아니. 내 아들 아니다.”
“그럼요?”
“웨스트 햄의 아들이다.”
“아, 그렇구나!”
······머리가 어질어질하네.
이 사람들이 뭘 잘못 먹었나.
“야, 요한아. 너, 노리고 그랬지?”
“뭘 노려?”
“웨스트 햄 팬들 죽이려고 한 멘트잖아, 그거. 어제 네 말 한마디 때문에 동네가 시끄러웠다고.”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긴! 팬들이 네 충성심에 감동 한거지! 지금껏 이런 근본 충만한 선수는 없었으니까 말야.”
“근본?”
로한은 밥을 반 공기만 퍼와 식탁에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한이 때문에 이미 배가 불러서 반 공기만 먹어도 된다.
“근본이지. 근본. 아버지의 대를 이어 웨스트 햄의 스트라이커 자리를 맡고 있는 근본. 그런 선수가, 비겁하게 꼬드기는 기자한테 한 방 먹인 거잖아. 난 오로지 웨스트 햄 일편단심이다라고 말야.”
“······”
으음.
그게 그렇게 비춰 진건가.
의도가 좀 다르긴 한데, 뭐 어쨌든.
결과적으론 맞는 말이긴 하네.
“솔직히, 지금까진 다 그랬어. 우리 팀엔 좋은 유스 선수들이 많았지. 1군에 데뷔해 리그 탑급의 활약을 펼친 선수도 많았고.”
한숨을 내쉬며 말하는 로한.
웨스트 햄 아카데미는 괜히 유명한 게 아니었다.
00년대부터 10년대까지도, 어리고 유망한 선수들을 꾸준히 배출해왔던 웨스트 햄이었다.
“근데, 끝까지 웨스트 햄에 남은 선수는··· 없었지? 응. 없었어.”
하지만 그 많은 유망주들 중,
전성기를 웨스트 햄에서 보냈다고 할 수 있는 선수는 몇 없었다.
아니,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당장 웨스트 햄 아카데미 유스 출신하면 떠오르는 퍼디난드, 존 테리, 프랭크 램파드, 조 콜, 마이클 캐릭 등등.
이들 모두 웨스트 햄이 아닌 다른 빅 클럽들의 레전드로 기억되고 있지 않나.
뭐, 그야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웨스트 햄은 굳이 분류하자면 셀링 클럽에 속하는 클럽이기 때문이었다.
유망주들을 키워, 큰돈도 서슴지 않고 내놓는 빅 클럽에 선수를 파는 셀링 클럽 말이다.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지만 말야.”
이걸 꼭 나쁘다고 할 순 없었다.
어차피 뭔 지랄을 해도 빅 클럽들을 이길 수 없다면, 차라리 장사라도 잘하는 게 하나의 생존 방법이라고 볼 수도 있었으니까.
실제로 웨스트 햄이 리그에서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할 때에도, 좋은 유망주들 수급에 어려움이 없었던 건 그 때문이기도 했다.
웨스트 햄이 좋은 발판이라는 걸 어린 선수들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애초부터 빅 클럽으로 한 번에 가지 못할 거라면, 웨스트 햄을 거쳐 가는 것도 그들에겐 좋은 선택지인 것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웨스트 햄의 골수 팬들 입장에선 이게 좋을 리가 없었다.
구단의 잔고가 빵빵하게 늘어나는 것 따위에 팬들이 관심이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어차피 그 돈으로 빅 사이닝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저 좋은 선수들을 키워서 팔고, 적당한 순위를 방어하는데에 만족하는 클럽.
그런 클럽에 완벽히 만족할 수 있는 팬들이 과연 있을까.
당연히 없었다.
“그래서 다들 불안할 수밖에 없는 거거든. 네가 너무 잘하니까. 잘할수록 불안한거지. 얜 다른 애들보다도 더 빨리 떠나겠구나, 하고 말이야.”
웨스트 햄 팬들은 요한의 활약이 뿌듯하면서도, 한 편으론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쓸만한 유망주가 나오면 얜 몇 시즌쯤 뛰고 빅 클럽으로 갈까, 전전긍긍하는 게 웨스트 햄 팬들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요한은 데뷔하자마자 리그 탑급의 활약을 펼치고 있고, 심지어 스트라이커 포지션이라는, 빅 클럽들이 너무나도 원하고 있는 자원이었기에 그 불안감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웨스트 햄 팬들에게.
어제 요한이 공식적인 인터뷰 자리에서 했던 말은 큰 위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위안을 넘어 눈물이 날만큼의 감동이었다.
말뿐이라도 이렇게 클럽에 애정을 드러냈던 선수가 있었나.
게다가 목표가 우승이란다. 우승.
웨스트 햄을 빅 클럽으로 만들겠다는 야망이 느껴지는 멘트였다.
그러니,
팬들이 미친 듯한 환호를 보낼 수밖에.
‘메시지 폭탄도 그거 때문이었나···’
테러에 가까운 고든의 메시지를 떠올리는 요한.
왜 그렇게 집착을 하나 했더니.
아마 웨스트 햄 선수들도 팬들의 마음과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슈미트 감독은 이번 시즌을 준비하며, 큰 리스크를 감수하고 팀을 만들었었다.
요한을 중심으로 한 구성 말이었다.
요한을 어떻게든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선수단을 구성하고, 훈련 플랜과 경기 전술을 짜고.
게다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오로지 요한을 위한 팀을 만들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니까 동료들도, 어쩌면 슈미트 감독도 불안에 떨었을지 모른다.
이랬는데 요한이 훌쩍 나가 버리면,
남겨진 이들은 낙동강 오리갈 신세가 되어 버릴테니.
“다들 왜 이리 걱정이 많아···”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다시 식사에 집중하는 요한.
사람들은 참 귀찮게 산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거, 그것도 다 부지런해서 생기는 일이다.
하지만,
요한은 그들처럼 부지런히 걱정할 여력도 없었다.
그저, 단순하게 하나의 목표만 보고 달려갈 뿐.
은퇴하기 전까진 어디 안 간다.
그러니까,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집착 좀 그만해 줘···.
ㆍㆍㆍ
A매치 주간이 수요일로 마무리 되고.
그 주에 대표팀에 차출 되었던 선수들에겐 모두 휴식이 부여 되었다.
스코틀랜드에 다녀온 제이콥 버클리나, 노르웨이에 다녀온 제프 휴리첼.
물론 요한도 포함해 모두 휴식.
때문에 주말 리그 경기는 요한 없이 치른 웨스트 햄이었고, 그 경기에서 울버햄튼에게 0대1로 리그 첫 패를 당하고 말았다.
충격적이면서도 그러려니 한 일이었다.
리그 6경기 동안 무패를 달렸고, 토트넘까지 잡아냈던 웨스트 햄이 울버 햄튼에게 패배 했으니 놀랄 일이기도 했지만.
따지고 보면 요한이 없는 웨스트 햄은 지난 시즌의 웨스트 햄이었고, 그런 웨스트 햄이 울버 햄튼에게 진다는 건 또 특이할 일이 아니었으니까.
원래 있을 때보다 없을 때 그 사람의 중요성을 더 느낀다고.
웨스트 햄 팬들은 요한의 빈 자리를 그리워 하며, 빨리 요한이 팀 훈련에 복귀하길 소망했다.
물론,
그건 웨스트 햄 선수들도 마찬가지였고.
“아씨, 지난 주 경기를 이겼어야 되는건데. 요한이 볼 면목이 없네.”
“그러게 말이다. 쪽팔려서 복귀 환영도 못해주겠어.”
“녀석 없다고 바로 져버렸으니, 얼굴 볼 자신이 없다.”
“우리도 참. 꼬맹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한다니 웃기는 놈들이라니까.”
훈련을 준비하며, 자조적인 이야기를 나누다 낄낄대는 선수들.
오늘은 요한을 비롯한 대표팀 소집 멤버들이 복귀하는 날인데.
하필 이전 경기를 지는 바람에 녀석들, 특히 요한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다.
대표팀에서 탑클래스 선수들과 뛰다가, 울버햄튼한테도 지는 형들을 보고 녀석이 뭐라고 생각할지.
요한이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뛰는 걸 보며, 자랑스러움을 감출 길이 없었던 선수들이었다.
맨시티, 첼시, 맨유처럼 기라성 같은 빅 클럽 선수들 사이에서 당당히 빛난 요한.
녀석은 그 존재만으로 클럽의 위상을 살려줬다.
웨스트 햄도 잉글랜드 대표 선수 보유 클럽이라는 자부심 말이다.
그런데 심지어, 그 중에서도 제일 빛났던 게 요한이었다.
두 경기 다 교체로 출전 했음에도 모두 결승 골을 넣었고, 경기 MOM으로 선정 됐으니.
다만,
그래서 스스로가 초라해지는 느낌도 조금은 들었던 선수들이다.
“거기 있는 거 보니까, 잘 어울리더라.”
“공찰 맛 나는 것처럼 보이던데.”
“야. 요한이 눈 높아져서 와가지고 우리랑 공 못차겠다 그러면 어떡하냐?”
“어떡하긴 뭘 어떡해. 뒷짐지고 존나게 반성 해야지.”
솔직히,
대표팀에서 뛰는 요한은 딱 맞는 자리에서 뛴다는 느낌이었다.
동료들의 수준이 녀석과 걸맞았으니까.
맨시티의 탑 클래스 미드필더들이 주는 패스를 받다가, 여기 와서 정직하기 짝이 없는 패스를 받으면 무슨 기분이 들까.
있던 정도 떨어지지 않을까.
“야, 씨. 우리 무슨 직장인 여친 둔 백수 남친 같지 않냐?”
“나 같은 놈 만나지 말고 더 좋은 사람 만나, 뭐 이런거?”
“아오, X같은 기억 떠오른다. 나 PTSD 오려고 그래.”
비록 녀석이 본인의 목표는 오로지 웨스트 햄의 우승이라는 말을 했고, 그 말을 들으며 가슴이 뜨거워지긴 했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그 말조차 부담이기도 했다.
솔직히 리그 우승이라는 게 쉬운가, 어디.
그게 가능한 거라면 진작에 했겠지.
근데, 한 번도 못해봤다. 단 한 번도. 수십 년 동안.
그러니, 괜히 미안한 마음도 들 수 있었다.
요한이 녀석이라면 충분히 빅 클럽에 가 트로피를 들어올릴 재능이 있는 녀석이었으니까.
괜히 발목을 잡게 될까 무서운 거다.
“꼴깞들 떨고 있네.”
“응? 아, 주장.”
“야이 모지리들아. 나같으면 그런 생각할 시간에, 더 잘해서 막내한테 부끄럽지 않은 동료가 될 생각을 하겠다.”
쯧쯧 혀를 차며 나타난 주장, 고든의 말에 선수들이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고든은 의기소침해 있는 선수들을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야. 걔가 빅 클럽에 어울리는 애면, 우리가 빅 클럽이 되면 되는거지. 뭐? 나같은 놈 만나지 말고 더 좋은 놈 만나?”
“아니 그게 아니고··· 그냥 말이 그렇다는거지.”
“너희들이 아직 팀에 대한 애정이 부족한거야. 그러니 스스로를 좁밥으로 생각 하는거지. 꼬맹이 반만이라도 배워봐라. 걘 당당하게 우승이 목표라고 말하는데, 니들은 뭐냐?”
아니, 뭘 그렇게 또 화를 내고 그러나.
근데 그럴만한 게,
고든은 주장이니까.
주장 완장은 실력만으로 차는 게 아니었다.
이 클럽을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차는거지.
“그리고, 꼬맹이 인터뷰 다들 봤잖아. 걘 우리 팀에 애정이 있어. 근데 걱정할 게 뭐 있냐? 뭐, 한 시즌 뛰고 얘들이랑 못하겠다면서 떠날까 봐 무섭냐?”
“······그럴 수도 있긴 하잖아?”
“하! 그럼 보내주면 되지. 아쉬울 게 뭐 있어? 걔 없다고 우리가 축구를 못 하냐? 선배라는 놈들이 막내만 쳐다보고 앉아 있는 꼴이라니. 걔한테만 너무 의지하는 것도 안 좋다고.”
콧방귀를 뀌는 고든.
그런 고든을 보며 선수들은 잠깐이나마 좁밥같은 생각을 했던 걸 반성했다.
그러다가,
“어, 요한이다.”
누군가 훈련장으로 느릿 느릿 걸어오고 있는 요한을 발견하곤 말했다.
그러자,
“요한이?”
고든이 고개를 훽 돌렸다.
요한은 발견한 고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요한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야! 왜 내 문자 안 보냐! 너 어제 뭐 했어! 대표팀 애들이랑 회식이라도 했냐!”
“······”
그리고, 그런 주장의 뒷모습을 선수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
요한이 복귀한 훈련장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했다.
물론 요한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 특히 제이콥 버클리가 복귀한 탓도 있긴 한데.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다음 라운드 상대가 지난 시즌 우승팀, 맨시티이기 때문일 것이었다.
지난 시즌 맨시티는 38경기 32승 2무 4패, 승점 98점으로 우승을 차지했었다.
그때 2위였던 첼시와의 승점 차가 무려 17점이었으니, 말 그대로 압도적인 우승.
맨시티는 올 시즌도 앞선 7경기에서 7전 전승을 거두며 그 기세를 이어가고 있다.
웨스트 햄도 5승 1무 1패로 나쁘지 않은 기세다만, 확실히 버겁긴 버거운 상대.
이번 경기가 홈에서 열리는 경기긴 해도,
승점 1점이라도 획득할 수 있다면 대만족일 정도로 어려운 매치업이다.
“흐음···”
“으음···”
슈미트 감독은 제이미 코치와 머리를 맞댄 채 고심에 잠겨 있었다.
뭐, 아무리 이기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상대라도 일단 전술은 짜야 한다.
다만 가용한 카드가 많지는 않았다.
애초에 쓸 수 있는 전술이 고정적인 지금의 웨스트 햄이기도 했는데, 그래도 변주를 주려면 줄 수야 있다.
하지만,
맨시티를 상대로는 어떤 꾀를 부린다 해도 먹힐 것 같은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최후방부터 3선, 2선까지 어느 하나 비벼볼만한 구석이 없으니까.
“그나마 최전방이랑, 체력 정도? 걔들은 주전이 전부 다 대표팀 갔다 왔으니까.”
“으음···”
“뭐, 결국 요한이를 믿는 수밖에 없으려나요.”
결국 골똘히 생각해봐도, 요한 하나만 믿고 가는 수밖엔 떠오르지 않았고.
제이미 코치는 잠시 생각을 환기시킬 겸 핸드폰으로 해머스 닷컴에 접속했다.
그리곤 이런 저런 칼럼들을 살펴보다,
“···음?”
한 칼럼을 정독하기 시작했다.
그 칼럼엔, 꽤 그럴싸한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