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46)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46화(46/202)
< 045화 – 다양함이 필요해 >
“삐익, 삐이익, 삐이이익-!”
“우와아아아아아-!”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는 순간.
런던 스타디움은 축제의 장이 되었다.
보통 축제라고 하면, 소 한 마리를 잡는다든지 돼지 한 마리를 잡는다든지.
무언가 푸짐하게 씹고 뜯을만한 게 하나 있어야 좀 잔치 같지 않은가.
오늘 잔치의 제물은, 잭 프라이스였다.
얼굴이 일그러진 채 고개를 떨구고 있는 프라이스.
그런 프라이스를 향해 웨스트 햄 팬들의 대폭소가 날아 들었다.
“꼴 좋다, 이 자식아!”
“이 정도 각오는 하고 왔겠지, 썩을 놈아!”
“올해는 우승할 자격이 없어 보이는데 어쩌냐! 우하하하!”
형광색 옷을 입은 보안 요원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관중석의 팬들이 그라운드로 쏟아져 내려올 기세였으니.
수많은 보안 요원들이 그걸 제지하고 있는 게 프라이스에겐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이 자리에서 속옷까지 발가벗겨져서 개망신을 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그라운드를 빠져 나가는 맨시티 선수들과 프라이스.
그 모습을 보며, 런던 스타디움이 떠나갈 듯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
경기 후 인터뷰 장에 나타난 요한은 흠뻑 젖은 모습이었다.
라커룸에서 형들한테 호되게 혼났다.
음료수에 얼음물에, 형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느라 정신을 못차릴 지경이었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요한의 표정이 여느 때보다 좋아 보였다.
당연했다.
경기 내용도 극적이었고, 무엇보다도 증명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웨스트 햄의 형들은, ‘그런 애들’이라는 말로 얕잡아 볼 수 있는 형들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멋진 승리 축하 드립니다!”
이런 저런 인터뷰가 이어지고.
기자는 프라이스에 관한 질문을 꺼냈다.
“프라이스가 그런 말을 했을 때, 기분이 어떠시던가요?”
“음··· 경기 끝나고 보자는 생각이었어요. 결과를 보면 알테니까요.”
“결국 승리를 거두셨으니, 답은 나왔군요. 그래도, 다시 한 번 직접적으로 대답해 주실 수 있나요? 프라이스 선수에게.”
대답이라.
요한은 문득, 이 상황에서 형의 입단 테스트 날이 떠올랐다.
사랑하는 가족이 무시 당하는 걸 눈앞에서 목격했던 그 날.
그 날의 감정과 비슷한 감정을 프라이스에게서 느꼈었다. 웨스트 햄이 녀석에게 무시 당했으니까.
때문에 뭔가 해주고 싶었다.
동료 형들에게, 그리고 팬들에게.
흐음. 뭐가 있을까.
아. 그, 뭐였더라. 고든이 가르쳐줬던 게 있었는데.
맞아. 가슴팍이었지.
쪽!
요한은 가슴팍에 달린 웨스트 햄의 엠블럼에 입을 맞추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ㆍㆍㆍ
“요한아.”
“어?”
“그거 또 해줘.”
“···싫어.”
“아, 한 번만!”
“싫다니까.”
“아, 왜! 그땐 잘하더니!”
“내가 하고 싶을 때만 하는거야.”
어제 했던 엠블럼 키스를 또 해달라고 졸라대는 로한 때문에 요한이 고개를 젓는다.
뭐, 난리가 난 건 당연했다.
그 엠블럼 키스 때문에.
팬들이 햄뽕에 취할 수밖에 없는 세레머니 아니었나.
제멋대로 떠들어대던 잭 프라이스의 말이 열 받았던 건, 솔직히 그게 팩트였기 때문이었다.
원래 팩트가 제일 아픈 법이니까.
그런데 요한의 해트트릭으로 맨시티를 이겨 버리고, 그런 요한이 엠블럼 키스로 웨스트 햄의 자존심을 살려 주었으니.
웨스트 햄 팬들은 요한에게 미칠 수밖에 없었다.
“너 인터뷰 영상 조회수가 벌써 몇인지 알아?”
“인터뷰 영상?”
“응. 백만 회 넘었어. 하루 됐는데 백만이 넘었다고.”
웨스트 햄 공식 계정에 올라온 요한의 인터뷰 영상은, 업로드된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조회수가 100만을 넘겼다. 게다가 거기에 찍힌 좋아요 수가 5만을 넘었다.
이렇게 좋아요가 많이 찍히는 건 이례적인 일.
그만큼 웨스트 햄 팬들이 요한을 사랑한다는 증거였다.
“이 참에 네 개인 채널을 개설할까? 아니면 인스타그램이라도.”
“귀찮게 무슨.”
“관리는 내가 하면 되지. 아님 엄마가 해도 되고. 팬들이 네 채널 좀 만들어 달라고 난리야. 만들기만 하면 구독자 50만은 찍을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요한.
그런 건 관심없다.
대신, 다른 사람의 반응이 궁금하다.
“아빠도 보셨어?”
“아빠? 당연하지. 나랑 같이 봤는데.”
“뭐라셨는데?”
지금은 외출해서 없는 반석호의 반응을 슬쩍 묻는 요한.
“아빠? 야, 말도 마. 엄마 없었으면 거실 다 부서졌을지도 몰라.”
“왜?”
“온 집안을 방방 뛰면서 돌아 다니셨거든. 엄마한테 엄청 혼나셨어.”
로한의 말에, 요한은 그 모습이 상상이 가서 피식 웃었다.
솔직히, 아직도 완벽하게 이해가 되진 않았다.
형과 아빠가 왜 그 정도로 축구에 목을 메고, 웨스트 햄에 죽고 사는지.
다만, 마음으론 이해하지 못해도 머리론 알 것 같은 요한이었다.
축구라는 게, 자기는 아니지만 누군가는 그렇게 좋아할만은 한 거구나, 라는 걸 말이었다.
흐으음.
그렇게 생각해보면 자신이 조금은 변한 것도 같은 요한이다.
어제 경기를 떠올려 보니, 스스로도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나가는 공을 향해 뛰어서 몸을 날렸던 자신.
생각해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제는 그저 공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뛰었다.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뛰기 귀찮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던 것이다.
‘미쳤었구나.’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던데.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음.
죽으면 영원히 관 안에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 있을 수 있으니 오히려 좋을지도?
뭐, 그래도.
오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어제의 승리보다 이번 주는 2번만 출근해도 된다는 사실이 더 기뻤던 걸 보면.
아직 죽을 때는 아닌 모양이다.
자, 아침 겸 점심도 배불리 먹었겠다.
이제 다시 한 숨 때리러 가보실까.
“아들들, 과일 먹어라.”
“과일? 뭔데요?”
“복숭아.”
“딱딱한 거요, 물렁한 거요?”
“물렁한 거.”
물렁한 복숭아는 못 참지.
디저트는 때리고 자러 가야겠다.
“근데 막내 아들.”
“네?”
“어제 보니까 말야.”
“네.”
“그 옌킨슨인가, 걔는 안되겠더라.”
“···네?”
“걔는 크로스가 안돼. 걔보다 잘하는 애가 없는거니?”
엄마 김라희의 말에 로한과 요한이 서로를 바라 본다.
로한은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가 뭘 좀 아세요?”
“얘, 딱보면 알지. 걔가 공만 찼다 하면 공이 이상한 데로 가드만.”
“아니, 크로스가 뭔지부터 아시냐구요.”
“엄마 무시하니, 지금? 그, 왜 공중으로 빵! 띄워서 차는 게 크로스잖아.”
“그건 그냥 로빙 패스구요. 어제 아빠가 하는 말 듣고 아는 척 하신거죠?”
“참나. 아니거든? 너희 아빠는 나보다 축구 볼 줄 모르잖니.”
“사실 그건 맞아요.”
둘의 대화에 요한이 고개를 갸웃이자, 로한이 키득거렸다.
“어제 엄마랑 아빠랑 일주일 동안 집안일 내기했거든. 누가 이길지.”
“엄마는 당연히 우리 아들네 팀이 이긴다에 걸었지. 근데 그 사람은 상대팀에 걸더라? 너희 아빠 너무한 거 아니니?”
“···쪼금 너무하시긴 했네요.”
“평생 축구만 한 사람이 어떻게 나보다 몰라?”
“형은?”
“나? 난 당연히 우리 팀이 이길 거라고 생각했지. 아니, 확신했어.”
“확신?”
“응. 우리가 맨시티 상대로 상성이 좋으니까.”
상성? 그러고 보니 경기 전에 제이미 코치도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어, 아빠한테 전화 왔네? 여보세요?”
반석호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는 로한.
그런데, 그런 로한의 눈이 갑자기 동그랗게 커졌다.
“저를요? 아, 네. 일단 알겠어요.”
“왜? 아빠가 뭐래?”
“네? 아··· 그게 그러니까, 감독님이 저를 만나고 싶어 하신다는데요?”
“맥웰 감독님?”
“아니요···”
로한은 요한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 보았다.
“그, 슈미트 감독님이요.”
*
“와, 야. 너 진짜 대단하다.”
“아, 아닙니다. 하하···”
“난 당연히 업계에 오래 있었던 전문가일 줄 알았는데. 이게 웬일이야.”
“얘가 축구는 저보다 더 열심히 봅니다.”
반석호의 부름에 1군 훈련장으로 달려간 로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1군 감독인 슈미트 감독이 자기를 보고 싶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설마 1군 콜업?’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만 이내 고개를 저었던 로한이었다.
그건 자기가 생각해도 말이 안됐으니.
그렇담 1군 감독이 자길 부를 이유가 대체 뭐가 있을까를 생각해 봤지만.
딱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와보니 생각지도 못한 이유 때문이었다.
자신이 Vannyboy란 아이디로 해머스 닷컴에 올렸던 칼럼들.
그 칼럼들을 보고 수소문을 하다가, 그게 자신이라는 걸 알고 부른 것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대충 들어보니, 슈미트 감독님과 제이미 코치는 그게 아빠일 거라고 생각해서 아빠를 먼저 부른건데, 아빠는 자기가 아니라 큰 아들인 것 같다고 알려준 모양이었다.
그리고 방금, 해머스 닷컴에 로그인 해 인증을 마친 참이었고.
“그럼, 첫 칼럼을 쓴 게 열여섯살일 때란 말야?”
“아, 네.”
“지금 요한이 나이 때네. 진짜 반씨 집안엔 뭔가가 있긴 있나봐요. 어떻게 이렇게 천재들 뿐이야?”
천재···?
제이미 코치의 말에 머리를 긁적이는 로한.
천재란 말은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로한이었다.
그건 동생한테나 어울리는 말이지, 자기완 전혀 상관없는 단어였다.
하지만, 티비에서나 뵙던 슈미트 감독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로한 군이 쓴 칼럼들, 나도 잘 봤네. 솔직히 말해서, 감탄했어. 우리 전력분석관이 보내주는 자료보다 훨씬 더 디테일하고, 날카로웠으니까.”
“아···”
로한도 자신이 쓴 칼럼에 대한 자부심은 있었다. 적어도 웨스트 햄에 관련된 것이라면 누구보다 깊게 알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었으니.
하지만 슈미트 감독마저 자신의 칼럼을 읽었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었다.
근데 그 뿐만이 아니었다.
“맨시티 전의 힌트를 얻은 것도 로한 군의 칼럼에서였다네. 칼럼에서 코너킥을 언급하는 걸 보고, 한 방 먹은 느낌이었지.”
“···!”
슈미트 감독의 말에 로한의 전신에 소름이 쫙 돋았다.
맨시티 전 프리뷰를 쓰면서, 코너킥에 대해 강조했던 로한이었다.
그리고 실제 경기를 보면서, 웨스트 햄이 그에 대해 잘 준비했다는 느낌을 받곤, 슈미트 감독이 확실히 좋은 감독이라고 생각했던 로한이었고.
그런데, 그 슈미트 감독이 자신의 칼럼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말한거다.
그니까, 좀 다르게 이야기 하자면.
웨스트 햄 선수들이 자신의 의견대로 플레이 했다는 말이 아닌가.
정말 건방진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자신도 맨시티 전을 승리하는데에 일조를 한 것이다.
로한은 머리가 쭈뼛쭈뼛 설 정도로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슈미트 감독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에 대해서 쓴 칼럼도 있더라고. 좋게 봐줘서 고맙네.”
“아, 아하하··· 혹시라도 무례한 부분이 있었다면 사과 드릴게요.”
“전혀, 전혀. 좋은 말들 뿐이었는데 뭘. 다만 건강검진은 꾸준히 받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슈미트 감독이 말한 칼럼을 떠올리곤 얼굴을 붉히는 로한.
슈미트 감독이 팀에 부임했을 때, 슈미트 감독이 어떤 감독인지에 대해 썼던 칼럼이었다.
대충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나마 좋은 얘기를 더 많이 쓴 것 같아 다행이었다.
고령의 나이에 살집 있는 몸 때문에 건강이 우려된다는 것만 빼곤.
“근데, 이거 어쩌죠? 우리 팀 아카데미 유스일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 좀 부탁해볼까 했더니, 앞길이 창창한 우리 유스 선수일 줄이야.”
“무슨··· 부탁이요?”
제이미 코치는 머리를 긁적였다.
“전력분석관 말야. 뒤에서 욕하는 것 같아서 좀 그렇긴 한데,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지금 전력분석관은 사실상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저, 전력분석관이요···?”
“응. 칼럼보면 우리 전력분석관보다도 더 아는 게 많아서, 프론트에 추천을 할까 했거든.”
“아···”
제이미 코치의 말에, 순간 로한의 가슴이 펄떡 뛰었다.
전력분석관이라니···?
다른 팀도 아니고, 웨스트 햄 1군의 전력분석관?
“근데 선수 준비해야 되니, 그럴 시간은 없겠지. 아쉽게···”
“아뇨, 해보고 싶습니다!”
로한이 힘차게 대답했다.
이미 아카데미에서 또래보다도 어린 아이들과 훈련을 하며 느꼈었다.
플레이어로서는 한계가 있을 것 같다고.
하지만, 축구와 관련된 일은 계속해서 하고 싶었다. 특히나, 그게 웨스트 햄을 위한 일이라면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할 자신이 있었다.
어차피 열심히 하는 건 누구보다도 잘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정말인가? 선수와 병행하면서 할 정도로 한가한 일은 아닐텐데?”
“선수의 길은 포기하고라도··· 해보고 싶습니다.”
진지한 로한의 표정을 살핀 슈미트 감독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나?”
“어떤 거지요?”
“우리 팀이 지금과 같은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선, 지금보다 뭐가 더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슈미트 감독의 물음에 신중히 생각하는 로한.
이거, 사실상 면접인 것 같은데.
잘 대답해야 한다.
하지만, 깊이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지금까지 경기를 봐오면서, 이미 생각했던 게 있었으니까.
때문에 로한은 신중히 대답했지만, 그 대답은 몇 초도 되지 않아 튀어 나왔다.
“요한이의 어시스트가 늘어나야 합니다.”
“어시스트···”
슈미트 감독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