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47)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47화(47/202)
< 046화 – 다양함이 필요해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볼 수 있겠나?”
“음, 그러니까요.”
시즌 8라운드까지, 8경기 6승 1무 1패.
파죽지세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웨스트 햄.
지난 시즌과는 완벽하게 달라진 모습만 보면,
사실 여기서 더 할 게 있을까 싶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건, 리그라는 게 결국 장기 마라톤이라는 것이었다.
8월부터 5월까지.
1년 가까이되는 긴 시간 동안, 38경기 이상을 치러야 하는 장기 레이스.
시즌 초의 순위는 크게 의미가 없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100미터 달리기에서나 스타트가 중요하지, 마라톤에선 크게 중요하지 않으니까.
때문에 웨스트 햄도 착각을 해선 안됐다.
지금 성적이 좋다고, 그 좋은 성적이 끝까지 유지될 수 있을거란 착각 말이다.
이런 경우는 생각보다 흔했다.
감독이 바뀌었다거나, 새로운 선수들이 대거 영입 되었다거나, 혹은 챔피언십에서 올라왔다거나.
그렇게 시즌을 앞두고 색깔이 확 변한 팀이 시즌 초에 돌풍을 일으키는 경우 말이었다.
사실 드문 정도가 아니라, 거의 매 시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결국 매년 최종 순위표를 찾아보면.
그러한 돌풍이 시즌 끝까지 유지되었던 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딱 한 번, 한 편의 동화 같았다고 일컬어지는 15/16시즌 레스터 시티의 우승을 제외하곤 말이다.
그 시즌을 제외하면, 언제나 마지막 순위표의 상단은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면, 이유는 간단했다.
그렇게 시즌 초 돌풍을 일으키는 팀들이 가지는 공통점.
패턴이 명확하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하면 원 패턴.
한 가지 전술, 하나의 무기를 유일한 승리 패턴으로 구사하는 팀들이었다.
단 하나의 무기라도 잘 갈고 닦으면 상대적으로 강한 전력을 가진 팀도 잡아낼 수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파악 당한 이후다.
돌풍을 일으키는 건 좋지만, 그렇게 되면 당연히 다른 팀들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연구를 당하게 된다.
그 무기가 알고도 못 막을 정도가 아니라면, 이미 파악당한 패턴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원 패턴의 팀들은 자연히 경기를 거듭하며 제 자리를 찾아가고 마는 것이다.
리그 테이블에서, 자신들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말이다.
웨스트 햄의 경우엔 특히 더 그랬다.
지금의 웨스트 햄은, 사실 분석을 하고 자시고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원 패턴이다.
요한 원툴 팀.
물론 그걸 슈미트 감독이나 다른 코칭 스태프들도 모를 리가 없을테니, 여러 방법들을 준비하고 있다는 건 느껴졌었다.
다만, 아직 현저히 부족하다.
실제로, 이미 벌써 그 원툴이 통하지 않았던 사례가 있지 않나.
시즌 6라운드, 요한이 유일하게 득점을 기록하지 못한 레스터 시티 전이나.
7라운드, 요한이 결장하자 귀신같이 첫 패배를 당한 울버햄튼 전 말이다.
웨스트 햄이 지금과 같은 기세를 시즌 끝까지 이어 나가려면, 그러한 뒷심을 발휘하려면 몇 개의 무기는 좀 더 보유할 필요가 분명히 있었다.
그건 필요가 아니라 필수였다.
그런데 재밌는 건, 그걸 가능케 해 줄 선수가 또 다시 요한.
요한이라는 것이었다.
현재로써 웨스트 햄의 무기는 요한 하나뿐이었지만, 요한에게는 무기가 하나 뿐이 아니었다.
“요한이가 득점하는 것보다 더 잘하는 게 뭔 줄 아시나요?”
로한의 역질문에 슈미트 감독과 제이미 코치가 서로를 쳐다본다.
요한이 득점보다 잘하는 거?
글쎄.
7경기에서 12골을 넣은 선수가 골 넣는 것보다 더 잘하는 게 있을 수가 있나?
슈미트 감독과 제이미 코치가 마땅히 대답을 떠올리지 못하자, 로한이 말했다.
“요한이는 패스를 더 잘해요. 걔 성미에 제일 잘 맞는 게 패스니까요.”
패스.
요한은 득점보다도 패스를 잘했다.
그리고 더 좋아하기도 했다.
요한에게 패스라는 건 그라운드 내에서 할 수 있는 선택 중 가장 좋은 선택이었으니까.
가지고 있으면 귀찮은 일밖에 생기지 않는 공이란 놈을 남에게 떠넘길 수 있고.
굳이 뛸 필요 없이 공만 차면 되고.
아카데미의 입단 테스트 때, 요한이 애초에 코치들의 눈길을 사로 잡은 건 바로 그 패스였다.
“하지만 로한 군도 알겠지? 우리 스쿼드엔 요한이를 제외하곤, 득점력까지 갖춘 자원은 없어.”
“알고 있어요.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제이미 코치의 물음에 명랑하게 대답하는 로한.
그럴 수밖에 없다.
웨스트 햄이 빅 클럽도 아니고. 포지션마다 만능인 선수들을 박아 놓을 수는 없다.
뭔가 하나의 장점이 있으면, 두 개의 단점이 있는 선수들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슈미트 감독이 그 부분들을 잘 어우러지게 만들어, 단점을 최소화하고 있을 뿐.
하지만,
그건 생각보다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로한은 요한의 패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득점력이 없는 선수도, 득점을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요한이라면요. 아, 이건 제 동생이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으음···”
쉽게 말해서 강제로 떠먹여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요한이라면.
그렇게 확신에 차 이야기하는 로한을 보며, 슈미트 감독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구단에 문의 해보고 또 연락 드리겠습니다. 일단은 경험 삼아 따라다녀 보는 것 정도는 가능할 거예요. 그 자리가 철밥통 자리긴 한데, 반씨 집안이면 안될 것도 없죠.”
“이렇게 기회를 주시니 저로서도 감사하네요.”
“저희가 감사하죠. 이거, 저희 클럽이 반씨 집안한테 너무 의지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대대로 도움을 받을 줄이야.”
로한과 반석호는 슈미트 감독, 제이미 코치와 즐거운 대화 시간을 가졌다.
거의 1시간 정도를 토론했다.
재밌는 건 서로의 말이 굉장히 잘 통했다는 것이었다.
슈미트 감독과 제이미 코치는 전문가들이었다.
슈미트 감독이야 업계에서 수십 년을 있었던, 더 말할 것도 없는 전문가였고. 제이미 코치도 장난기가 많아서 그렇지 슈미트 감독이 제일 신뢰하는 전문가다.
그런데,
그런 그들과 따지고 보면 아마추어 축구팬인 로한이 막힘 없이 대화를 주고 받은 거다.
그것도 꽤나 심도 있는 대화를.
“너, 아빠도 알곤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네? 아, 하하···”
“뭐, 아직 뭐가 확정된 건 아니다만. 후회 안할 자신 있겠니?”
“후회요?”
슈미트 감독은 구단 프론트에 정식으로 로한을 추천해보겠다고 했다.
전력분석관 일을 배우면서, 직접 실무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볼 수 있도록.
그걸 하게 된다면 선수로서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 불투명해질 게 뻔했다.
둘 다, 한 가지에만 올인해도 힘든 일들이기에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둘 다 놓치는 수가 생길 수 있으니.
전력분석관 일을 하려면, 선수는 포기하는 게 맞았다.
그러나 후회는 없을 듯 했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어릴 때부터 꿈꿔 왔던 축구 선수의 길.
축구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훌륭한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던 것도 맞았다.
다만 훌륭한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던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행복하게 만들어 드리고 싶어서였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부끄럽지 않을 수 있도록, 반씨 집안의 명맥이 끊이지 않을 수 있도록.
떳떳한 장남이 되고 싶어서 훌륭한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동생 덕분에 그런 부담은 사라진 상태.
요한이가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축구 선수가 되면서부터, 로한은 항상 생각해왔었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가.
남들 때문에가 아니라,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그건 선수 쪽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쪽이다.
입단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죽을 듯이 훈련하던 때와 달리, 경기를 보고 팀을 분석하며 칼럼을 썼던 건 순전히 재미가 있어서였다.
그러니,
선수를 그만두고 이 쪽으로 나간다고 해도 후회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이 기회를 포기한다면 그게 두고 두고 후회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기회를 준 팀이 웨스트 햄이고.
웨스트 햄과 동생에게 보탬이 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제쳐둘 자신이 있는 로한이었다.
“아빠가 든든하구나. 우리 장남, 막내. 둘 다 아빠를 이어서 웨스트 햄을 위해 일한다니. 아빠가 아들 복은 있네. 자식 복이 있어.”
“헤헤···”
기분이 좋아 보이는 반석호를 보며, 로한도 마음이 뿌듯했다.
그래.
열심히 해보자.
선수의 길을 포기한거지,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겠다는 목표를 포기한 건 아니다.
요한이가 선수로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듯, 자신도 자신의 자리에서 최고의 활약을 해보는거다.
누구보다 열심히 할 자신은 있다.
로한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ㆍㆍㆍ
“넌 참 한결 같아서 좋아.”
“네?”
“사람이 휙휙 바뀌지 않아서 좋다고. 난 솔직히 네가 월요일 날 나올 줄 알았거든.”
3일을 쉬고 훈련장에 나온 요한을 보며 고든이 말했다.
맨시티 전을 치르고 나서, 요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선수들이었다.
쟤, 좀 바뀐 것 같다고.
요한이 경기장에서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걸 본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그 열심히라는 게 어디까지나 요한의 기준이긴 한데, 그래도 녀석이 몸을 날려서 공을 살려낼 정도면 사람이 달라졌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나름 기대를 하기도 했었다.
요한이 이제 게으름을 떨쳐내고, 열심히 하는 거 아니냐고.
아니, 게을러 터진 지금도 이 정도인데 훈련까지 제대로 하면 얼마나 더 포텐을 터뜨릴지 기대가 되는 게 사실아닌가.
뭐, 요한이 월, 화, 수를 내리 쉬면서 괜한 기우였다는 걸 알게 됐지만.
“넌 형들이 보고 싶지도 않더냐?”
“···새삼스럽게요?”
“와, 새삼스럽게라니. 배신감 느껴지네.”
맨시티 전이 끝난 뒤.
선수단은 한층 더 끈끈해졌다.
그날 라커룸에선 마치 우승을 확정 짓기라도 한 듯 파티가 벌어졌었다.
승리의 기쁨에 취해, 남자들끼린 쑥쓰러워서 평소엔 하지 못했던 말들도 많이 나눴던 선수들이었다. 술을 마시진 않았지만, 거의 취중진담의 느낌이었달까.
지금 생각해보면 창피하긴 한데, 고든은 거의 울먹이기까지 했었다.
요한이 대표팀에 갔을 때, 수준급 패서들의 패스를 받아 마음껏 슈팅을 때리는 모습을 보면서 미드필더로서 자책감이 많이 들었던 고든이었다.
다른 선수들도 다 비슷한 마음이었고.
때문에 승리의 기운을 빌어, 미안하다고, 더 좋은 찬스들을 많이 만들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털어 놓았을 때.
그날 요한은 그렇게 대답했었다.
“대표팀 애들 패스보다 형들 패스가 훨씬 좋아요. 걔들은 받기 귀찮게 주는데, 형들 패스는 받기 편하거든요. 저한텐 형들 패스가 제일 잘 맞아요.”
그 대답에 선수들은 주먹으로 입을 틀어 막았었다. 감동의 도가니였다.
그 대답이 어찌나 형들의 심금을 울렸는지.
그날 고든은 나중에 요한이 자식을 낳으면 대부가 되어 주겠다 했고, 안토니오는 여동생을 소개시켜주겠다 했으며-사진을 보여줬는데 요한이 정중히 거절했다-, 버클리는 스코틀랜드에 놀러오면 풀코스로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했다.
백미는 제프 휴리첼이었다.
그 사이보그 같은 녀석이, 선수들 앞에서 춤을 췄던 것이다. 요한을 위한 춤이라면서.
대체 요한을 위해서 왜 춤을 춘건진 지금까지도 이해한 사람이 없었지만.
아무튼 그만큼 그날 라커룸 분위기는 최고였고. 선수들끼리는 그걸 계기로 비로소 진짜 가족같은 사이가 된 느낌이었다.
“너도, 짜샤. 형들이 최고라며.”
“제가요?”
“와, 모르는 척 하는 거 봐라?”
“그랬었나. 기억이 잘 안나네.”
“그랬잖아! 어떤 선수들이랑도 안바꾼다며! 형들밖에 없다며!”
“제가 제정신이 아니었나 보네요.”
“와!”
어쨌든, 요한이 없는 동안 선수들은 요한이 보고 싶어 죽을 뻔 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우리 막내, 요한이.
그런데, 선수들이 요한의 복귀날을 학수고대한 건 다른 이유가 더 있기도 했다.
요한이 복귀하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훈련이 진행될 거라는 슈미트 감독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가 바뀌는데요?”
“글쎄. 해보면 알겠지. 감독님 오신다.”
이윽고 훈련이 시작되고.
본격적인 훈련 시작에 앞서, 슈미트 감독은 요한을 따로 불렀다.
“요한 군. 다음 경기 상대가 누군지 아나?”
“···어디였죠?”
“번리일세.”
“···!”
번리라는 말을 듣자 요한의 눈에서 쌍심지가 켜졌다.
지난 시즌, 번리 전에서 1골밖에 기록하지 못해 단단히 화가 났었던 요한이었다.
걔들이 죽자 살자 수비만 해대는 바람에.
때문에 다시 만나게 되면, 박살을 내주리라 벼렸던 기억이 있는데.
좋아. 이번엔 산산조각을 내주마.
요한의 눈에서 살기를 읽은 슈미트 감독은 허허 웃었다.
“근데, 앞으로 몇 경기 동안은 우리의 약속을 좀 바꿔야 할 것 같아.”
“약속이요?”
“쿠폰 말이야. 훈련 면제 쿠폰.”
“어떻게 바뀌는데요?”
“으음, 일종의 이벤트라고 할까.”
슈미트 감독은 손가락 두 개를 펴보였다.
“따블.”
“···따블?”
“어시스트 시 쿠폰 2개. 따블로 주겠다 이 말이지.”
···2배 이벤트라고?
슈미트 감독의 말에 요한의 눈이 희번덕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