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49)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49화(49/202)
< 048화 – 돈은 좋은 거구나 >
아이디어를 얻은 건, 형들이 나누던 시시콜콜한 잡담에서였다.
“쟤네가 넣어주길 바랄 바에, 그냥 네가 맞춰서 강제로 골 넣게 만드는 게 빠르겠다.”
“강제로요?”
“그래. 왜, 인자기처럼 말야.”
“인자기는 누군데요?”
“몰라? 하긴, 얜 모르겠다. 유명한 골 장면 있어. 프리킥 때린 게 몸 맞고 굴절되서 들어간건데, 그게 운이 아니라 의도한 거라나 뭐라나.”
“야, 근데 그게 진짜 의도한 걸까? 그냥 뻘쭘하니까 말만 그렇게 한 거 아니야?”
“모르지, 뭐. 근데 피를로랑 인자기라면 진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형들이 말하는 건, 축구 팬들 사이에선 꽤 유명한 골 장면이었다.
AC 밀란의 레전드들인 안드레아 피를로와 필리포 인자기가 리버풀 전에서 합작해 만들어 낸 골.
사실 그걸 합작이라고 봐야할지 애매한 골이긴 했다.
보통 ‘합작했다’고 말하려면, 어시스트를 한 선수나 골을 넣은 선수나 의도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 골은 그저 피를로가 골문 구석을 향해 찬 공이 달려가던 인자기의 가슴팍에 맞고 굴절되어 들어갔을 뿐이었으니까.
누가 봐도 그냥 굴절에 의한, 운이 좋은 골이었다.
근데 웃긴 건, 인자기 스스로 그 골은 노려서 넣은 것이라고 밝혔다는 것이었다.
피를로가 거기로 찰 걸 알고 있었고, 그에 맞춰 쇄도를 했다면서.
그 인터뷰를 두고 사람들은 논쟁을 벌였다.
이게 진짜로 가능한건가, 하고 말이다.
한쪽은 그게 말이 되냐, 그냥 얻어 걸린건데 말만 그렇게 한거다라고 하고.
한쪽은 피를로와 인자기 정도면 가능한 것 아니냐고 했다.
어쨌든 진위여부야 피를로와 인자기, 그 두 사람만 아는 것이니 결론이 날 수 없는 논쟁이었지만.
사실 그게 쉬웠다면 다른 선수들이 활발히 시도를 안했을 리 없다.
예측이 불가능한 굴절 앞에선 어떤 키퍼도 손쓸 방법이 없으니, 가능한 하다면 무적의 프리킥 아닌가.
아무튼 그게 어려운 거라는 건 모두가 인정하는 바였다.
근데, 집에 와서 영상을 확인해 본 요한은 이거다 싶었다.
피를로가 때린 프리킥이 슈팅이었든 패스였든, 어쨌든 동료의 몸에 맞고 들어갔으니 어시스트가 아닌가.
이게 지금으로썬 어시스트를 적립하기에 가장 가능성 높은 방법이었다.
절묘한 패스로 1대1 찬스를 만들어 주는 것보다도 더.
때문에 버클리를 불러 굴절 슛을 실제로 연습했던 요한이었다.
덩치가 큼지막한 버클리가 강제 득점을 하기엔 딱 좋았다.
그리고 직접 해보니, 확실히 할만해 보였다.
문제는 버클리였다.
“아니, 피하면 안되죠.”
“마, 사람 본능이라는 게 있는긴데. 내도 모르게 피해지는 걸 우짜노.”
“좀만 참아봐요. 골 넣어야죠.”
“니 조준 똑띠 잘해야 된데이. 엄한 데 맞히면 니가 내 평생 책임져야 할기라.”
“걱정 마세요.”
버클리가 겁을 잔뜩 먹고 자꾸만 몸을 피하는 게 문제였다.
아니, 골을 떠먹여 준다는데 가만히 있는 것도 못하나.
그래도, 나름 연습을 거듭하다보니 버클리도 단련이 된건지 적응을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방금의 프리킥이 나온 것이었다.
파아아아앙-!
“···!?”
골대를 향해 반쯤 몸을 틀고 있던 버클리의 복부에 맞은 슈팅이 비스듬하게 꺾여 골대로 향하기 시작했다.
굴절 앞엔 장사 없다.
가뜩이나 강한 슈팅을 대비하고 있던 번리의 골키퍼였던터라, 그 굴절 슛에 반응할 순 없었다.
철썩-!
“예에에에에!”
“우하핫! 뭐야 저거!”
공은 빈 골대로 들어갔고, 관중석에선 환호와 함께 폭소가 터져 나왔다.
“아니 이 미친놈들, 진짜 그걸 한 거야?”
“대단하다, 대단해!”
“어쨌든 들어갔으니까 됐다!”
선수들도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정작 득점자가 된 버클리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마! 약속이랑 다르다 아이가!”
“뭐가요?”
“가슴팍 맞히기로 안했나! 너무 낮았다꼬! 쪼매만 더 밑에 맞았으면 우짤 뻔 했는데!”
“얼굴 맞을까봐 그랬어요.”
“차라리 얼굴을 맞혀라, 얼굴을! 내도 장가는 가야할 거 아이가!”
골이 들어가긴 했다만, 사소한 미스가 있었다.
버클리 입장에선 사소한 게 아니긴 하지만.
아무튼 약속보다 공이 조금 낮았거든.
골을 넣었다는 기쁨보다 남자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버클리였다.
“뭐가 됐든, 골 축하한다. 야!”
“마, 스코틀랜드 촌놈! 리그 두 골째인가? 출세했네, 이거!”
“축하한다! 버클리!”
그 골로, 프리미어 리그 두 번째 골을 기록하게 된 제이콥 버클리였다.
*
“게으른 놈들이 이래서 문제야···”
“예?”
“잔머리 굴릴 생각만 하잖아.”
“허허.”
버클리의 골을 본 슈미트 감독은 어이가 없어서 혀를 끌끌 찼다.
언뜻 보면 평범한 굴절 골.
그러나 요한이를 잘 아는 슈미트 감독이다.
저거, 분명히 노리고 한 거다.
지가 어시스트를 챙기려고.
골보다 어시스트가 더 가성비 좋으니 버클리에게 강제로 골을 먹이고, 자기는 어시스트를 챙겨간거지.
하여간에 게으른 놈들이 또 잔머리는 좋다고.
녀석의 어시스트가 늘어나야 한다는 게, 이런 식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는데 말이다.
“뭐 어쨌든 결과가 좋으면 됐죠.”
“하, 참.”
뭐, 아무튼 간에.
어이가 없는 골이긴 했지만, 이른 시간에 터진 그 선제 골은 경기를 굉장히 편하게 풀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번리 같은 팀을 상대로 이른 시간의 선제 골이 가지는 의미는 굉장히 크다.
선제 골은 번리 같은 팀도 앞으로 나오게 만드는 힘이 있으니까.
물론 번리가 1골을 먹혔다고 해서 바로 태세를 바꾼 건 아니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수비적인 스탠스를 바꾸지 않았고, 웨스트 햄 역시 추가 골을 노리며 경기를 이끌어 나갔다.
하지만 시간이 웨스트 햄의 편이 된다는 게 중요했다.
그것만으로 마음이 훨씬 가벼워지는 것이다.
동점이나 뒤지고 있을 때야 마음이 급한거지, 앞서고 있는데 급할 게 뭐가 있어.
마음이 편하다 보면, 선수들의 플레이에도 영향을 분명히 미친다.
좀 더 다양한 시도들을 해보게 되고, 집중적으로 훈련했던 걸 가벼운 마음으로 펼쳐볼 수도 있다.
지금도 그랬다.
파아앙-!
요한이 박스 근처에서 공을 잡자 순식간에 두 명의 수비가 붙어 왔다.
근데, 말이 두 명이지 사실상 번리의 수비 전체가 요한을 쳐다보고 있다.
수비 모두가 요한만 막으면 된다는 식으로 바라보고 있는 셈.
절대 슈팅만큼은 주지 않겠다는 듯, 요한에게 직접적으로 붙어온 수비 둘은 거칠게 몸으로 밀어 붙이며 요한을 박스 근처에서 쫓아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사실은 그게 그들이 쫓아낸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요한이 수비들을 끌고 나왔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했다.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수비수들의 시선은 오로지 요한에게로만 쏠려 있었으며.
몸 역시도 시선을 따라갈 수밖에 없으므로 자연히 번리의 수비진들은 최소 두 걸음 정도는 원래의 위치보다 앞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뒷공간을 통해 네이슨과 버클리가 양쪽에서 침투했다.
원래라면 시도하지 않았을 침투였다.
그래서 번리 수비수들의 대처도 없었고,
요한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파아아아앙-!
훈련 때, 버클리보단 그나마 네이슨의 결정력이 괜찮았다.
때문에 요한의 선택은 왼쪽, 네이슨.
촤아아아아-
요한의 패스가 촘촘한 수비 사이로 절묘하게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 패스가 얼마나 날카로웠는지, 패스 한 번에 관중석에서 탄성이 일었을 정도.
파아앙-!
물론 이후의 과정이 매끄럽지만은 않았던 건 사실이었다.
네이슨의 터치가 불안정했으니.
하지만 괜찮았다.
요한의 패스가 워낙 절묘해, 일단 어떻게든 공을 잡아둔 것만으로도 키퍼와 1대1 찬스가 열렸고.
뻐어어어엉-!
슈우우우웅-
철썩-!
아무리 네이슨이라 할 지라도 못 넣을 수 없는 찬스였기에, 번리의 골문이 열렸다.
“나이스-!”
“이야, 네이슨도 골! 오늘 골 바겐세일이다! 다들 하나씩 챙겨 가라고!”
예상과 달리 득점이 아니라 어시스트를 노리는 요한 덕분에.
경기는 꽤나 쉽게 웨스트 햄 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
“삐익, 삐이이익-!”
휘슬이 울리고, 경기가 종료 되었다.
최종 스코어 4대0.
웨스트 햄이 번리를 상대로 시원한 대승을 거뒀다.
번리가 이렇게 큰 점수 차로 패배한 건 올 시즌 처음이었다.
앞서 첼시, 리버풀 같은 강팀들을 상대했을 때도 패배하긴 했지만 4점 차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패배하진 않았던 번리였다.
그러나, 오늘은 완벽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웨스트 햄이 번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게임 플랜을 가져 나오며, 그에 대처하지 못한 게 원인이었다.
오로지 요한의 득점을 봉쇄하라, 이것이 게임 플랜의 전부였던 번리였다.
사실 그것 자체는 성공하긴 했다.
요한은 오늘 무득점 경기를 펼쳤으니까.
하지만, 요한이 공격 포인트를 올리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는 게 중요했다.
무려 4어시스트.
요한은 오늘 경기에서만 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득점은 없었어도 모든 골에 관여했다.
사실 그 이상도 기록할 수 있었던 경기였다.
네이슨과 버클리가 빅찬스 미스만 좀 더 줄였다면 말이다.
요한이 모든 어그로를 끌어주고, 그런 와중에도 기가 막힌 패스를 찔러준 덕에.
노마크 찬스만 해도 수 차례를 맞았던 네이슨과 버클리였다.
그걸 다 득점으로 연결 시켰다면 8대0까지 됐을지도 몰랐던 경기.
경기 초반, 찬스들을 날려 먹는 둘의 모습에 슈미트 감독이 뒷목을 잡긴 했지만, 그래도 후반으로 갈수록 그 둘도 나름 감각이 올라오는 듯 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뭐, 그렇다 해도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였지만.
아무튼.
“휴우.”
경기를 마친 요한의 기분은 최상이었다.
요 근래 들어, 이렇게 기분이 좋았던 순간이 없었다.
맨시티 전을 승리했을 때보다도 더 기분이 좋았다.
물론 벼르고 있던 상대인 번리를 박살내버렸다는 사실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어시스트를 4개나 기록했다는 것 때문이다.
무려 4개다. 4개.
게다가 2배 이벤트 중이니, 면제 쿠폰은 8개.
8일의 휴가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감독님. 어떡하죠?”
“···”
“없었던 일로 하자고 하면···”
“그럼 방출 해달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건 안되겠네요.”
대승을 거두었음에도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이미 코치와 슈미트 감독.
이를 어찌한다.
8일이라니. 그럼 다음 주 내내 훈련장에서 요한을 보지 못한다는 것 아닌가.
게다가 그러고도 3일이 더 남는다.
뿐만 아니라 그 다음 경기에서 또 어시스트를 기록하면···
이거, 앞으로 훈련장에선 영영 못 보는 거 아니야?
“첫 골은 빼자고 할까요? 솔직히 그건 좀 억지잖아요.”
“어른이 돼서 치사하게 굴진 말자고. 대신···”
“대신?”
“이벤트는 조기에 끝내는 게 좋겠다.”
헛웃음을 터뜨리는 슈미트 감독.
나 참. 이제 요한이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었나?
따블을 부른 것부터가 실수였다. 녀석을 얕본거지.
“그래. 푹 쉬고, 경기 날에만 잘 나와라.”
리우 카니발에 가고 싶어 엘 클라시코에서 해트트릭을 터뜨렸던 호마리우처럼.
요한 역시 자신의 힘으로 때아닌 휴가를 얻어 버렸다.
ㆍㆍㆍ
“무척 중요한 시기다.”
“맞아요. 저희가 요즘 좀 방심하고 있었는데, 긴장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상대는 요한이다. 만만한 녀석이 아니지.”
“만만한 녀석이 아니죠. 녀석의 엠블럼 키스에 속으면 안됩니다.”
두 남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를 나누고 있다.
반석호와 로한이다.
“8일!?”
요한이 8일 동안 훈련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을 때, 반석호와 로한은 긴장했다.
사실 요즘 들어 좀 방심하고 있던 게 사실이었다.
워낙 요한이가 경기에 나갔다 하면 활약하고, 클럽에 대한 사랑도 나름 보여주고.
이제 걱정할 게 없겠구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쉬는 동안 뭐 할거니?”
“잘건데요. 축구 생각 안하고.”
뭘 하면서 쉴 거냐 물었을 때, 요한이 정말 행복한 표정으로 축구 생각 안하고 잘 거라고 대답 했을 때.
반석호와 로한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요한이가 축구와 친해졌다고 생각한 게 착각이었다는 걸 알았으니까.
“흐음···”
“이렇게 오래 쉬어 버리면, 경기장 가기 엄청 싫을텐데.”
“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돼.”
10월. 중요한 시기였다.
물론 날씨가 추워지기 앞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건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요한이는 요한이다.
가만 냅두면, 축구와 한없이 멀어질 수도 있는 녀석. 이대로 두기엔 불안했다.
때문에 반석호와 로한은 뭔가 좋을 방법이 없을까 하다가.
“할아버지한테 전화해볼까?”
“할아버지요? 그럴까요?”
반석호가 전화기를 들었다.
이번 여름, 잠깐 할아버지를 만난 것만으로 달라졌었던 요한이었다.
할아버지라면, 무언가 좋은 답을 주실 수 있지 않을까.
“예, 아버지.”
전화가 연결된 뒤, 아버지와 잠시 안부를 나눈 반석호는 본론을 꺼냈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아버지의 답은 아주 간단했다.
-뭘 고민해? 돈맛을 보여줘. 돈 쓸 때의 즐거움을 알아야, 더 벌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차곡차곡 쌓이고만 있는 요한의 주급.
그 돈으로 녀석을 혼내주라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