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5)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5화(5/202)
< 004화 – 입단 테스트 >
“조금 늦었는데, 조끼 좀 받을 수 있을까요?”
“늦어도 너무 늦었는데.”
“한 번만 부탁 드리겠습니다.”
“하아.”
예정에 없던 참가자의 등장에 코치가 눈을 흘겼다.
남들은 다 미리 와서 몸을 풀고 테스트에 임하는데, 이제야 와서 테스트를 보겠다니.
그 뻔뻔함에 짜증이 확 솟구치는 코치.
“거 바구니에서 조끼 아무거나 꺼내서 입고 줄 서요.”
“감사합니다.”
그러나 어딘가 완강해 보이는 참가자의 얼굴에, 입씨름을 하기 귀찮아진 코치가 마지못해 조끼가 담긴 바구니를 가리켰다.
‘어차피 해보나 마나일 것 같은데, 뭘 하겠다고···’
일단 허락을 하긴 했지만, 코치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이번 테스트도 역시나 별 소득이 없는 상태였다.
눈에 띄는 참가자가 있긴커녕, 죄다 기준 미달.
한두 명이나 뽑히면 다행인 수준이었다.
그런 와중에 참가자는 또 많아서, 시간이 아까울 지경이었고.
그러니,
지각까지한 마지막 참가자가 코치 입장에선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출발선에 서세요. 준비.”
그 마지막 참가자가 피지컬 테스트를 시작했을 때.
“삑-!”
짜증스럽기만 하던 코치의 표정이 순간 변했다.
변할 수밖에 없었다.
타타타탓-!
‘···오?’
휘슬 소리와 동시에 튀어나가는 번개같은 순발력.
스타트와 함께 바로 속도가 붙는 순간가속력.
그리고, 큰 체격과 어울리지 않게 깃대를 찍고 빠르게 돌아서는 민첩함까지.
‘···좋은데?’
날쌔게 코스를 왕복하는 참가자를 보며 코치가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고만고만했던 참가자들에 지쳐 있던 코치의 눈이 번쩍 뜨이게 할만한 스프린트였다.
그제서야 참가자의 전신을 자세히 훑어 보는 코치.
‘신체 조건은 타고 났네?’
대충 봤을 땐 그저 크다 정도였는데,
자세히 보니 타고난 허우대가 꽤나 좋았다.
180센티 중반은 되어 보이는 키에 쭉쭉 뻗은 팔다리.
운동을 열심히 한 건지 몸도 두툼해 보이고, 그러면서 발목은 얄쌍한 게 운동 신경이 있어 보인다.
실제로 뛰는 폼만 봐도 운동 신경은 타고 났다는 게 확인이 되고 있었고.
“삑-! 그만!”
참가자가 정해진 횟수만큼의 왕복을 끝내자 타이머를 확인하고 다시 한 번 놀라는 코치.
‘이 기록이면···’
놀라운 기록이었다.
이 10미터 왕복 달리기의 평균 기록은 8초 전후.
7초 대 후반만 나와도 상당히 빠른 기록이었고, 그 정도면 스피드와 민첩성은 타고 났다 봐도 될 정도였다.
그런데,
마지막 참가자의 기록은 7초 52.
여태까지 중 최고 기록이었다.
그것도 아주 월등한 최고 기록.
느슨해졌던 테스트 막판, 괴물이 등장한 것이었다.
“삑!”
이어지는 피지컬 테스트.
폭발적으로 치고 나가다 좌우로 방향 전환을 틀고, 사방에 놓인 깃발들을 유려하게 통과한다.
신체 밸런스와 순발력을 확인하는 세션.
어느새 주위엔 구경꾼들이 몰려 있었다.
테스트를 끝낸 후보생들과, 심지어 코치들도 하나둘씩 모여 테스트를 지켜본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입이 떡 벌어져 있는 것이었다.
“우리 애들보다 나은데.”
“그러게요?”
테스트를 위해 준비된 세션들은 대부분 아카데미 선수들이 훈련 때 하는 것들이다.
때문에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기존 아카데미 소속 선수들과, 참가자들이.
지금까진 아무도 기존 선수들보다 낫다 싶은 참가자는 없었다.
그게 당연한 거기도 했다.
입단 테스트를 봐야하는 처지인 무소속의 아마추어 연습생들이, 프로처럼 훈련 받는 아카데미 소속 선수들보다 뛰어난 게 이상한 일일 테니까.
한데,
마지막으로 나타난 이 참가자만큼은 다른 수준을 보여주고 있었다.
기존 선수들보다도 낫다는 느낌.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월등한 느낌까지 주고 있다.
타고난 피지컬만큼은 말이었다.
“오케이! 좋았습니다! 자, 이제 다음으로 넘어 가세요!”
“후우, 예.”
아까까지만 해도 짜증 한 가득이었던 코치의 태도는 어느새 180도 바뀌어 있었다.
왜 이제 오고 지랄이냐는 느낌에서,
왜 이제야 오셨냐는 느낌으로.
어쨌든 그렇게 순식간에 피지컬 테스트를 통과한 뒤.
다음 세션, 드리블 테스트를 위해 라인에 서며.
마지막 참가자, 요한은 땅에 침을 퉤 뱉었다.
‘씨발 새끼들이···’
아까.
뒤에서 제멋대로 지껄이던 녀석들을 생각하니 다시금 쌍욕이 튀어 나왔다.
형이 불운으로 탈락한 것만으로도 안타까웠는데, 거기다 기름까지 붓다니.
뭐? 형이 집안의 수치라고?
애초에 별 거 없는 집안 아니냐고?
지들이 뭘 안다고 지껄여.
‘좆같은 새끼들.’
아무리 요한이라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빠가 옆에 있는데 녀석들을 흠씬 두들겨 패줄 수도 없고.
결국, 자신이라도 증명하는 방법밖엔 없었다.
우리 집안.
그렇게 니까짓 것들이 무시할만한 집안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었다.
“좋아요. 출발선에 서시고. 준비되면 말해요.”
피지컬 테스트 다음, 드리블 테스트.
형이 탈락했던 코스의 출발선에 서서.
“···”
요한은 스탠드 쪽을 슬쩍 바라 보았다.
아까 형의 뒷담을 깠던 놈들이 여전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개자식들아.
똑똑히 잘 봐라.
“준비 됐습니다.”
“오케이. 레디, 삐익!”
분노에 찬 요한이 공을 몰고 무섭게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
여섯 번째 탈락의 고배를 마셨을 때까지만 해도, 로한의 표정은 절망적이었다.
아빠와 동생까지 응원해주러 왔는데 도저히 둘의 얼굴을 마주할 면목이 없어,
고개를 푹 숙인 채 스탠드로 돌아왔던 로한이었고.
그런데, 아빠에게 동생이 그라운드로 나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예? 그게 진짜예요?”
“그래, 저길 봐라.”
로한은 믿을 수가 없었다.
동생이 테스트를 보기 위해 나갔다니?
다시는 축구를 하지 않겠다던 그 동생이?
“최고다, 내 동생!”
그런 요한이 테스트를 하나 둘씩 박살내며 나아가기 시작했을 때.
로한은 전신이 짜릿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엄청나게 짜릿했고, 엄청나게 기뻤다.
만약 형이 떨어진 게 화가 나서 참가한 거라면, 차라리 떨어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요한이 다시 축구를 하길 아빠만큼이나 바라왔었고, 자신과 달리 요한이라면 모두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는 걸 아는 로한이었으니까.
때문에 불과 몇 분전 그토록 간절했던 테스트에 떨어졌다는 것도 잊은 듯, 로한은 큰 목소리로 동생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반석호야 말할 것도 없었다.
철없는 꼬맹이들이 뒤에서 떠드는 소리에 자극을 받은 것일까.
씩씩대며 그라운드로 나간 요한.
몇 년간을 바라왔던 모습이란 말인가.
그 동안 그렇게, 혼을 내기도 하고 설득을 하기도 하면서 요한이를 필드 위에 서도록 하기 위해 애를 써왔었지만 실패했었는데.
저렇게 제 발로 필드에 나가 있다니.
꿈만 같을 지경이었고, 모욕적인 말을 내뱉었던 꼬맹이들이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었다.
“나이스!”
“와아, 진짜 빠르다!”
피지컬 테스트를 박살낸 요한은 드리블과 패스, 킥 테스트도 순식간에 통과해내고 있었다.
테스트를 담당하는 코치들이 끝까지 보지도 않고 통과시키고 있을 정도.
그럴만 했다.
한 눈에 봐도 재능을 타고 났다는 게 보이고 있었으니까.
시종일관 무미건조한 표정이었던 코치들이, 요한 때문에 얼굴에 감탄이 서리는 것을 보며,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는 반석호.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공을 찼던 게 2년 전인데.”
로한이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정말 신기한 일이긴 했다.
요한이 축구를 그만둔 건 2년 전.
아무리 몸의 기억은 오래 간다고 하지만, 누구든 2년을 쉬면 감각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평생 축구만 해온 프로 선수들도 2년을 공백기를 가진다면? 원래의 감각을 찾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그런데,
요한은 2년의 공백을 찾아볼 수 없을만큼 뛰어난 감각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물며 저 나이 때가 얼마나 중요한 시기란 말인가. 한 경기라도 더 뛰면 기량이 팍팍 느는 게 저 나이 때였다.
그런데도 요한은 날아 다니고 있으니, 신기하지 않을 수 없는 일.
하지만 반석호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배워서 하는 게 아니라, 타고난 거니까···’
모든 게 배우고, 반복 훈련을 해서 깨우친 감각이 아니라, 타고났을 뿐.
그저,
녀석은 태어날 때부터 축구라는 것을 깨우친 채로 태어난 것이고, 그러니 잊어버릴래도 잊어버릴 수가 없는 것뿐이었다.
한 마디로, 요한은 축구 선수가 되어야만 하는 운명을 짊어지고 태어난 녀석.
“와··· 저 검은 머리, 쟨 누구야?”
“처음 보는 앤데. 저런 애가 있었어?”
“존나 잘하는데···?”
“다른 애들이랑 차원이 달라. 다른 팀 선수 아냐? 저런 애가 왜 입단 테스트를 보러 온 거지?”
테스트를 구경하고 있던 주변의 반응 역시 놀라움과 감탄 뿐이었다.
심지어, 로한이의 흉을 봤던 그 녀석들까지도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반석호는 유치하다는 걸 알면서도 속이 시원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꼬맹이들이니 생각 없이 말할 수 있다지만, 방금은 반석호도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나이를 먹고, 아들을 둘이나 낳았으니 망정이지.
아마 젊은 혈기였다면 꼬맹이들을 불러다 꿀밤 한 대씩을 놔줬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선수 시절, PL에서도 터프가이로 통했던 반석호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체면에 그럴 순 없는 노릇이었고.
못 들은 척 화를 참는 수밖에 없어 보였는데.
요한이 보여주고 있으니, 증명해주고 있으니 속이 시원할 수밖에.
사이다를 목에 콸콸 들이붓는 느낌이었다.
“오케이. 여기까지. 수고했고, 저쪽 보드판에서 자기 팀 확인하세요.”
어느 새 요한의 테스트는 끝이 나 있었다.
누구보다 순식간에 테스트를 마친 요한.
점수는 안봐도 뻔할 듯 했다.
테스트를 지켜본 코치들의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죄다 만점일테니.
아들이라서, 동생이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반석호와 로한 모두 축구를 정말 사랑하는 한 사람의 축구 팬으로서.
아무리 냉정하게 봐도, 요한이 보여준 재능은 백점 만점에 백점이었다.
저것이,
진짜 반씨 집안의 재능.
“자, 이제 마지막이로구나.”
“다들 놀랐겠지만, 놀라기엔 아직 이르죠.”
이제 남은 건,
테스트의 마지막 관문.
11대11 정식 연습 게임.
다들 이미 요한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지만, 아직 놀라기엔 이르다고 로한과 반석호는 생각했다.
진정한 재능의 차이는, 부분적인 테스트가 아니라 경기장 위에서 더욱 여실히 드러날 게 분명했으니까.
“다들 모이세요!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곧바로 시작되려는 연습 게임.
“자, 제대로 보여줘라. 요한아!”
“보여줘! 보여주는거야!”
로한과 반석호는, 부푼 기대를 안고 경기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