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58)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58화(58/202)
< 057화 – 군자의 복수 >
제임스 히들스톤.
재작년 겨울, 수렁에 빠진 팀을 구원하기 위해 소방수로 투입된 맨유의 레전드 출신 감독.
그는 예나 지금이나 잉글랜드 내에선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는 사람이었다.
국적도 잉글랜드고, 잉글랜드 대표팀의 핵심 미드필더기도 했고, 게다가 인물도 좋고 카리스마도 넘치는 스타일이라 인기가 없을 수 없는 타입.
더군다나, 맨유 유스에서 데뷔해 맨유의 주장을 오랫동안 역임했고, 은퇴할 때까지 맨유에서만 뛰었으니.
맨유 팬들 사이에선 거의 신적인 존재인 게 제임스 히들스톤인데.
그렇게 프리미어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가 될 수 있는 자질을 모두 갖추었고, 워낙에 인기가 하늘을 찌르다보니, 선수 시절의 히들스톤은 경기장 안팎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던 선수였다.
일단 히들스톤은 굉장히 거친 선수였다. 별명이 그라운드의 폭군일 정도로.
때문에 경기만 했다 하면 상대팀 선수들과 트러블을 일으키기 일쑤.
그의 과격한 플레이나, 과격한 언행에 당한 선수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그라운드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반 시즌 마다 여자친구가 바뀐다든지, 경기 전 날 파티를 벌이다 적발된다든지, 클럽에 갔다가 일반인과 주먹다짐을 벌인다든지, 심지어 감독이 마음에 안들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놓고 감독을 깐다든지 등등.
히들스톤은 ‘기행’이라고 할만한 행동을 일삼고 다니는 선수였다.
허나, 그럼에도 히들스톤의 인기는 떨어질 줄을 몰랐다.
오히려 그런 기행들이 ‘스타성’으로 포장되며 더욱 인기를 높였다.
그럴 수 있던 건 오로지 하나의 이유 때문.
히들스톤이 축구를 기가 막히게 잘했기 때문이었다.
축구장 밖에선 거의 셀럽처럼 사는 히들스톤이었지만, 사실 축구장 안에선 그와 어울리지 않게 누구보다 성실한 선수였다.
히들스톤은 자존심을 넘어 자부심이 엄청 강한 선수였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재능이 잉글랜드, 아니 세계에서 최고라 믿었고, 스스로에 대한 그 믿음이 깨지지 않도록 누구보다 노력하는 선수였다.
하지만, 히들스톤은 자신의 재능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난 나머지, 노력형 천재라는 말은 듣기 싫어했다. 때문에 일부러 기행을 하고 다니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방탕함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도, 그라운드 안에선 독보적인 실력을 보여주면 사람들은 타고난 천재라고 자신을 찬양 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히들스톤과 반석호의 악연이 시작된 건 FA컵 8강 전에서였다.
“그 날, 경기 초반 내 활약이 괜찮았지. 시작하자마자 드리블로 박스 안을 휘젓고, 슈팅 두 개 정도 때렸거든. 전반 15분엔 골도 넣었고 말이야.”
로한, 요한과 함께 소파에 앉아 그 때를 회상하는 반석호.
아직도 히들스톤과의 기억은 모두 생생하게 남아 있는 반석호다.
“근데, 그랬더니 내가 꼴보기 싫었던 모양이야. 내가 그 자식 알을 먹였거든. 그랬더니, 그 녀석이 슬슬 거칠게 플레이하기 시작하더라고. 공과 상관없이 툭툭 건드리기도 하고, 공중볼 경합을 할 땐 팔꿈치까지 쓰대.”
“그러니 열이 안받고 배겨. 그 자식 팔꿈치에 맞아서, 눈가가 찢어져 피를 철철 흘렸는데도 그 자식은 경고 하나 안 받더라. 근데 웃긴 건, 나도 열 받아서 녀석을 살짝 밀쳤는데 나한텐 바로 경고를 주더라고. 그 자식이 잉글랜드 최고 스타라 이거지. 난 그냥 아시아에서 온 용병일 뿐이고.”
“아무튼 그때부터 경기는 잘 안풀리기 시작했고, 전반이 끝나기 전에 우린 역전 당했어. 그 자식이 역전 골을 넣었지. 근데, 내가 눈엣가시였는지 그 자식이 골을 넣고나서 내게 달려와 패드립을 치더군.”
“재능도 없는 놈이 까불지 말라고 말야. 이게 패드립이 아니고 뭐겠니?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 말야.”
“물론 나도 듣고만 있진 않았지. 우린 경기 내내 붙어 다니며 그 재능이란 단어를 가지고 막 싸웠어. 니 재능은 X도 아니네, 내 재능이 진짜네 하고 말야.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하긴 한데, 그땐 얼굴이 시뻘개져서 싸웠지.”
“걔가 그러더라고. 난 놀 거 다 놀면서도 이 정도 한다. 난 진짜 천재다. 그래서 내가 그랬지. 나도 놀 거 다 논다. 난 훈련도 일주일에 5일밖에 안한다. 그랬더니 걘 자기는 4일밖에 안한다 그러더라.”
“나중에 알고 봤더니 둘 다 못해도 주6일은 훈련하던 시기였지.”
“아무튼, 그 외에도 차마 너희들 앞에선 말할 수 없는 말들까지 주고 받았고, 그 이후로도 그 자식이랑은 만날 때마다 서로 으르렁 거렸지. 하지만, 녀석에겐 한 번도 복수하지 못했어. 팀이 항상 졌거든. 언제나 웃는 건 그 자식이었지. 아무리 말싸움을 해봐야 내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어.”
“남자는 죽을 때까지 애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싶다. 아직도 열 받거든. 그 자식 얼굴만 보면 말이야. 맨유를 쳐부수고, 그 자식 앞에서 웃어주는 게 소원이었는데. 못다 이룬 소원이 됐지. 하아. 한 번은 이겼어야 하는건데.”
이야기를 마친 반석호는 아직도 속에 열불이 나는 듯,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킨 뒤 캔을 구겨버렸다.
로한은 몇 번이나 들은 얘기지만, 요한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어쩐지.
그래서 웨스트 햄이 이길 때만큼이나 맨유가 졌을 때 아빠가 그렇게 기뻐하셨던건가.
아빠가 그 자식이라 부른 그 사람이, 지금 맨유의 감독이라고 했으니까.
흐음.
저렇게까지 화가 나 계시는 걸 보니, 그럼 잘됐네.
다음 경기 상대는 맨유고, 그 맨유를 이긴다면 아빠는 두 배로 행복하실테니까.
근데, 잘 이해가 안되네.
어떻게 한 번을 못 이기셨다는거지?
맨유를 이기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전 이만 자러 갈게요.”
“그럴래? 그래. 잘 자라.”
하품을 하며 방으로 들어가는 요한.
그런 요한의 뒷모습을 보며, 반석호와 로한이 서로 눈을 마주친다.
“···통했나?”
“통한 것 같아요. 쟤, 빡치는 일 있으면 바로 자잖아요.”
“맞지.”
“기대하셔도 될 것 같아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둘.
반석호는 벌써부터 주말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아들이, 자신이 못다 이룬 복수를 해주는 그 순간을 말이었다.
때문에 이미 티켓도 구해놨다.
올드 트래포드, 그곳에 아주 좋은 자리를 구해놨다.
이번 주말은, 반드시 축제가 될 것이었다.
요한이라면 이 애비의 복수를 해줄 것이 분명하니까.
ㆍㆍㆍ
2027년 12월 3일, 올드 트래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웨스트 햄을 홈으로 불러 들였다.
현재 리그 5위를 달리고 있는 맨유는, 시즌 내내 분위기가 좋았던 건 아니지만 최근의 기세가 나쁘지 않다.
지난 5경기에서 3승 1무 1패, 그 중 3승이 최근 3경기에서 거둔 3연승이고, 그 3승 중 1승이 첼시에게 거둔 승리다.
사실 조직력에 문제가 있어 그렇지, 스타 플레이어들로 가득한 맨유다.
스쿼드의 이름값만 놓고 보면 당장 1위를 달리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아니 그게 당연한 정도.
게다가, 그 스타 플레이어들 마저도 아우를 수 있는 진짜 스타, 제임스 히들스톤 감독의 축구 색깔이 슬슬 팀에 정착되고 있는 듯 해서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맨유였다.
덕분에, 올드 트래포드를 가득 메운 홈팬들의 분위기는 뜨거웠다.
<붉은 색이 넘실 거립니다. 오늘 역시도 만원 관중이 올드 트래포드를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홈에서의 승률이 매우 좋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인데요. 과연 오늘도 그 힘을 받아 웨스트 햄을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가 되네요.>
해설자의 말대로, 최근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맨유는 홈에서의 승률이 굉장히 좋은 편이다.
분위기가 영 좋지 못할 때도, 홈에서만큼은 쉽게 지지 않던 맨유다.
아무래도 맨유가 프리미어 리그에서 가장 인기 팀이니 홈의 열기가 매우 뜨겁기도 하고, 특히 올드 트래포드라는 구장이 가지는 특징도 한몫하기 때문이다.
올드 트래포드는 총 7만 명이 넘는 수용력을 가지고 있다.
이는 잉글랜드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
게다가 매 경기마다 그 많은 관중석이 다 찬다.
심지어, 그라운드와 관중석 간의 거리까지 매우 짧다. 선수가 스로인을 위해 터치 라인에 서면, 그 바로 뒤로 관중들의 얼굴이 가까이 보일 정도니까.
때문에, 원정 팀 선수들은 맨유 팬들이 뿜어내는 기운이 피부에 바로 와닿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맨유의 응원가를 소리 높여 부르면, 마치 헤드폰을 끼고 듣는 것처럼 머리를 울리고, 그들이 욕을 하면 귀에 대고 하는 것처럼 때려 박힌다.
이런 상황이니, 원정 팀들에게 올드 트래포드는 매우 어려운 구장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아무리 웨스트 햄 일지라도 올드 트래포드 원정은 쉬운 일정이 아니었다.
짝짝짝짝짝-
홈팬들의 박수 소리와 함께, 선수 입장용 터널에서 빠져 나오며 주변을 둘러본 요한도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올드 트래포드는 처음인 요한이다.
지금껏 요한이 가본 원정 스타디움 중, 가장 큰 곳이 아스날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이었다.
허나 그마저도 올드 트래포드에 비할 바는 못된다.
물론 웸블리에서 뛰어보긴 했지만, 그땐 잉글랜드 팬들, 그러니까 홈팬들이 많았으니 느낌이 아예 다르다.
특히나 여긴 관중들이 엄청나게 가깝다. 1층에 앉은 관중들은 그 표정들이 다 보일 정도.
때문에, 올드 트래포드는 요한에게 굉장히 신선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경기 시작 전, 양 팀의 선수들이 일렬로 도열해 관중들 앞에 선다.
그리고 간단한 선수 소개가 이어지는 사이.
“···”
요한은 그 가까운 관중석에 있는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홈팀 벤치 쪽에 서 있는 남자.
맨유의 감독이다.
저 사람이, 어제 아빠가 말한 그 사람이구나.
“···”
아마 아빠에게 그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아저씨다.
다만, 이야기를 들은 이상 곱게 보일 순 없다.
요한은 뒷짐을 진채, 턱을 쳐들고 히들스톤을 계속해서 바라보며 경기의 각오를 다졌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지만, 집안의 감정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
때문에 미안하지만, 보여줘야겠다.
이 집안에 흐르는 재능이 어떤 것인지를.
*
‘뭘 노려봐, 짜식이.’
경기 준비가 끝나고, 양 팀 선수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사이.
히들스톤 감독은 벤치에 앉으며 피식 웃었다.
웨스트 햄의 스트라이커, 요한 반.
의식하지 않는 척하긴 했지만, 녀석이 계속해서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게 느껴졌던 히들스톤 감독이었다.
히들스톤 감독도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요한 반의 아버지, 석호 반.
그와 꽤 오랜 기간 동안 감정적으로 맞부딪혀 왔었다는 거.
그라운드에서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 댔으니 기억을 못할 리 없다.
사실 히들스톤이 선수이던 시절, 웨스트 햄은 맨유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 팀이었다.
웨스트 햄은 그냥 1승 제물, 쉬어가는 경기 정도의 느낌이었을 뿐.
그러나 그랬던 웨스트 햄이 갑자기 까다로워지기 시작한 순간이 있었다.
그게, 바로 반석호가 웨스트 햄에 입단한 때부터였다.
물론 그 이후로도 웨스트 햄에게 진 적은 없었다. 허나 이전과 달리 경기는 항상 박빙이었고, 위험했던 순간도 많았다.
그 중심엔 항상 반석호가 있었고.
히들스톤에겐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히들스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검은 머리 선수에게, 가랑이를 허용하며 돌파당했던 그 때의 순간을.
그 순간 빡이 돌았고, 녀석에게 유독 거칠게 플레이했었다.
심지어 골을 넣고 나선 녀석에게 달려가 한바탕 말싸움을 벌이기도 했었고.
게다가 한 두 번 그렇게 부딪힌 걸로 끝난 게 아니라, 서로 은퇴할 때까지도 으르렁댔던 기억이 있다.
반석호, 그 선수는 마지막까지도 잘했으니까.
‘설마, 아빠의 복수를 하겠다 뭐 이런거냐?’
피식 웃는 히들스톤.
다 옛날 일이다.
다들 혈기왕성하던 시절, 그 정도 트러블이야 누구에게나 있었다.
그땐 진짜 그랬다. 경기 중에 그 정도 신경전은 예사 일이었지.
물론, 그때 그 사람에게 했던 언행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좀 심했다 싶긴한데, 그래도 후회한다거나 뒤늦게라도 사과할 생각은 없었다.
다 선수 시절의 옛날 이야기니까.
그런데, 그의 아들이란 녀석이 마치 복수라도 하겠다는 듯 자길 노려봤으니 히들스톤은 웃긴 거였다.
에헤이. 왜 그러시나.
별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말야. 그것도 아주 오래전의, 옛날 일.
그런 일을 뭐 사과라도 받아 내겠다는 것처럼 저러고 있으니.
뭐, 이제 와서 그 옛날 일을 사과라도 할까? 아들한테?
푸하하. 그것도 웃기는 일이지.
“···”
그러나, 잠시 후.
경기가 시작되고.
어이 없다는 듯 피식 피식 웃던 히들스톤의 표정은 조금씩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 그래. 아무리 옛날 일이긴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때 좀 심했던 것 같다.
그러니,
‘하, 하프타임 때라도 해야 하나?’
사과하고 싶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요한이 보여준 플레이는, 히들스톤에게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위협적으로 보이는 요한의 모습이,
지금 생각해보면 별것도 아닌, 그것도 아주 옛날의 일 마저도 사과하고 싶도록 만들고 있었다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