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59)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59화(59/202)
< 058화 – 군자의 복수 >
맨유 팬들은 오늘 경기를 두고 이런 표현을 썼다.
‘Audition.’
오디션, 즉 입단 테스트.
요한의 맨유 입단 테스트 말이다.
요한이 올드 트래포드에서 뛸 자격이 있는지, 이번 경기를 통해 지켜보겠다는 뜻이었다.
웨스트 햄 팬들은 물론, 타 팀 팬들조차 그런 맨유 팬들의 태도를 비웃었지만, 맨유 팬들은 진심이었다.
만약 요한이 다른 팀으로 이적하게 된다면, 그 행선지는 맨유가 될 것이라고 그들은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아무런 근거도 없이 말이다.
유일한 근거라면, 그건 맨유라는 팀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맨부와.’
맨유가 부르면 와야지.
당장의 성적을 떠나, 프리미어 리그 최고 명문은 맨유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그들이었으니까.
때문에, 그런 걸 생각해 본다면 올드 트래포드를 찾은 맨유 팬들은 흡족해야 했다.
요한의 오디션은 매우 성공적이었으니.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정반대로 암울했다.
적당히 해야 성공적인 오디션이지.
오디션 참가자가 심사위원들까지 압살할 정도면 그게 오디션인가.
이건 오디션이 아니었다.
그냥 일방적으로 심사위원들이 혼나고 있었다.
<팀 고든, 왼쪽으로. 조너선 네이슨, 중앙의 바니에게 짧게 연결합니다. 바니, 돌아 섭니다! 바니!>
시작은 전반 4분이었다.
박스 끄트머리에서 공을 건네 받은 요한은, 과감히 박스 안을 향해 직선적으로 파고 들었다.
박스 안에서라면 수비는 몸과 몸을 부딪히는 거친 수비를 할 수 없다.
그걸 알고 있는 요한은 그저 공을 툭 차 놓고 달리기 시작했는데,
촤아아-
그 툭 차 놓은 공이 상대 수비의 알을 먹였다.
가랑이는 수비에게 있어 최고의 굴욕.
그렇다고 그 상대 수비가 어디 평범한 수비수인가?
아니다.
첼시의 벨라미와 함께 잉글랜드 대표팀의 센터백 라인을 이루는 주드 해리슨이다.
그러나, 해리슨은 가랑이 간수를 전혀 하지 못하고 터널을 열고 말았다.
요한의 동작이 워낙 빨랐다. 아무런 준비 동작 없이 급발진을 해버리니, 해리슨이라 해도 반응알 수 없는 스피드.
결국 해리슨이 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요한을 바라보며 두 손을 드는 것밖엔 없었다.
그나마 아무런 접촉이 없었다는 어필밖엔 할 수 없었다는 뜻.
물론 의미 없는 행동이다.
요한에게 박스 안에서 돌파를 허용한다는 건, 페널티 킥을 내주는 것보다 위험한 상황이었으니까.
뻐어어어엉-!
해리슨을 제쳐낸 요한은 왼발로 골문 구석을 노렸고,
촤아아아아-
철썩-!
그것이 낮게 깔린 채 파 포스트 구석에 꽂혀 맨유의 골망을 흔들었다.
너무나 쉬운, 너무나 손 쉬운 요한의 첫 득점이었다.
“와아아아앗-!”
그렇게 요한의 득점이 5분 만에 터졌을 때, 올드 트래포드의 원정 응원석에선 원정 팬들이 만세를 부르며 함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 가운데,
“그렇지이이이이!”
유독 방방 뛰며 좋아하는 이가 있었으니, 반석호다.
반석호는 오늘 일부러 원정석 한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홈팬들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자리에 있었으면 얻어 맞았겠다 싶을 정도로 맘 놓고 좋아하기 위함이었다.
스스로도 주체를 못할 거라는 걸 알았거든.
역시나 예상대로다.
반석호는 주변에 앉은 모르는 사람들과 포옹을 하고 어깨 동무를 하며 좋아했다.
그 덕분에 반석호 주변에 앉은 웨스트 햄 팬들만 계를 탔다.
“최고의 아들을 두셨소!”
“올해의 선수, 바니 주니어! 올해의 아버지, 바니 시니어!”
“히들스톤! 저 놈 표정 좀 보라고! 우하하!”
팬들도 당연히 알고 있다.
반석호와 히들스톤이 선수 시절 감정적으로 많이 맞부딪혔다는 사실을.
PL의 팬들이 대게 그렇듯, 웨스트 햄 팬들도 웨스트 햄을 1,2년 응원해 온 게 아니니까.
때문에 반석호 주변에 앉은 팬들은 맨유의 벤치를 가리키며 소리쳤고, 반석호는 함성을 내질렀다.
“아직이다, 이 자식아! 난 한 골로 만족했을지 몰라도, 우리 아들은 만족하지 않을 테니까!”
“우와아아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최고의 아들을 두셨소!”
“웨스트 햄의 유전자!”
“바니! 당신의 손자는 더욱 대단한 아이가 나올거야! 그러니까 내 딸을 받아줘!”
“닥쳐! 내 딸이 더 예뻐!”
“뭐야? 웃기시네! 사진 있어? 사진 있냐고?”
“자! 봐라!”
“에라이, 내 딸이 훨씬 예쁘구만! 자! 봐라!”
“너나 웃기지 마! 완전 호박이구만!”
“호박? 이 자식이? 네 딸은 너 닮아서 홀란드 닮았구만!”
“야이 개자식아! 말이 심하잖아!”
얼마나 흥분했는지 팬들끼리 사소한 다툼까지 벌어진다.
아무튼, 이걸론 부족하다.
그건 반석호의 생각이 아니라, 요한의 생각이었다.
*
요한이 공만 잡았다 하면 올드 트래포드의 공기가 일순 바뀐다.
그라운드와 가장 가까운 좌석에 앉은 관중들은 물론, 저 멀리 2층 맨 뒷 좌석에 앉은 관중들도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요한이 공을 잡으면, 맨유 선수들이 긴장하는 게 느껴졌고, 뭐랄까. 그것만으로 수비에 균열이 일어나는 게 보이는 느낌이다.
확실히 달랐다.
그냥, 혼자 달랐다.
그리고 이해가 되었다.
왜 웨스트 햄 따위의 팀이, 현재 리그 1위인지.
왜 저런 중하위권이 어울리는 팀이, 지금 말도 안되는 연승을 달리고 있는지 말이었다.
그건 그저, 수준이 다른 선수가 웨스트 햄의 유니폼을 입고 있기 때문이었다.
<버클리, 바니에게. 바니, 뺏기지 않고 공을 지켜 냅니다! 다시 버클리에게 찔러 줍니다! 날카로운 패스!>
<아, 하늘로 날려 버리는 버클리! 그러나 또 다시 맨유의 골문이 열릴 뻔 했습니다!>
<오늘 유독 요한 선수의 컨디션이 좋아 보입니다. 유독이요. 요한 선수가 이렇게 카메라에 자주 잡히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까?>
<아, 지금 카메라에 잡히고 있는 관중은 요한 선수의 아버지네요. 원조 바니죠. 그가 올드 트래포드에 왔군요. 현역 시절, 올드 트래포드와 상당한 악연이 있는 바니입니다. 혹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오늘 열심히 뛰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꽤 멋진 일이군요.>
3연승을 달리며 최근 기세를 올리고 있던 맨유는 온데 간데 없었다.
시즌 초, 아니 지난 시즌으로 돌아간 느낌.
한창 팀이 안좋아서 감독이 시즌 중에 경질 되었던 때 말이다.
수비는 전혀 안되고, 다들 우왕좌왕 보고만 있다. 누구 하나 적극적으로 허슬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이 없다.
이 또한 웨스트 햄 선수들과 비교가 된다.
양 팀 선수들의 몸값을 비교하면, 말도 안될만큼 맨유가 압도적인 차이로 높다.
근데, 오히려 그래서 그런가.
웨스트 햄 선수들은 이를 악물고 뛰는데, 맨유 선수들에게선 전혀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때문에 경기를 주도해가고 있는 건 웨스트 햄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요한에게 찾아드는 찬스 역시 많아지고 있었다.
“차단을 하라고!”
“주고 막을 생각을 하지 마! 아예 공이 못가게 하란 말야!”
“니들 쟤 못 막어! 자존심을 버리라고!”
팬들도 알고 있는 걸 아직 선수들은 모르는 모양.
첫 골을 그렇게 허무하게, 굴욕적으로 내줬으면서 아직 자존심을 놓치 못한 모양이었다.
요한이 공을 잡아도 막을 수 있다는 자존심 말이다.
왜? 자기들은 유럽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선수들이니까.
우리가 누구? 프리미어 리그 최고의 명문 구단, 맨유의 스타들이니까.
그러나, 그들은 평소 트랜스퍼마켓 같은 사이트를 자주 들여다 보는 습관 같은 걸 들였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런 오만방자한 태도를 진작에 버렸을테니.
왜냐면, 일부 몇몇을 제외하고.
요한의 몸값이 이미 맨유 선수들 대부분을 추월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어디 나와봐라.
16살에, PL에서 경기당 1.5골을 넣고 있는, 잉글랜드 국적의, 키 186센티미터짜리 스트라이커보다 높은 몸값을 자랑할 수 있는 선수가 있다면 나와 보라는 말이다.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요한은 그 몸값의 이유를 계속해서 보여주기 시작했다.
요한의 두 번째 골이 터진 건, 전반 17분이었다.
<으앗! 이번에도 다리 사이로 통과 합니다! 이번엔 붙잡고 늘어지는 해리슨! 휘슬이··· 아니요! 뿌리치고 계속 들어가는 요한!>
오늘 애꿎은 해리슨의 자존심을 완전히 무너뜨리기로 결심이라도 한건지, 첫 번째 골과 똑같이 요한은 이번에도 해리슨의 알을 먹이고 돌파를 성공했다.
다만 이번엔 박스 안이 아니었고, 해리슨은 경고를 각오하고 요한의 유니폼을 잡고 늘어졌다.
그러나, 요한은 힘으로 뿌리치고 계속해서 전진했다. 보통의 선수였다면 뒤로 넘어지거나 심판을 바라봤을 장면.
하지만 해리슨의 아귀 힘 따위가 요한의 의지를 막을 수 없었다.
요한은 페널티 박스로 진입하는 동시에, 이번엔 니어 포스트 쪽으로 오른발 슈팅을 때렸고, 그 슈팅 역시 완벽한 사각지대에 꽂히며 두 번째 골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맨유 선수들은 억울함을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왜 하필 오늘, 이 녀석의 컨디션이 하늘을 찌르는 것인지 말이다.
그 게으르다는 녀석이, 왜 하필 자신들과 맞붙는 오늘 이렇게 펄펄 날아다니는 것인지.
안 그래도 힘든 12월이다.
맨유 선수들도 고된 일정에 대부분이 체력 문제를 겪고 있는 시점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웨스트 햄과 달리 유로파 경기도 소화하고 있었으니까.
다만, 게으르기 때문에 힘이 넘쳐 나는거다.
요한은 항상 푹 쉬고 나오니까.
그러니까 남들 다 헉헉대는 12월에도, 8월과 다를 게 없는거지.
아무튼, 맨유에게 요한은 재앙이었다.
그리고,
“······”
경기를 지켜보는 제임스 히들스톤 감독의 표정은 점점 더 돌처럼 굳어져만 가고 있었다.
또한, 히들스톤은 표정 뿐만 아니라 마음도 굳히고 있었다.
그래.
사과하자.
후반전도 이 지랄 나기 전에 뭐라도 하는거다, 라고 말이었다.
*
전반이 끝나기 전에 두 골이 더 터졌다.
맨유 팬들에겐 그나마 다행히, 그 중 한 골은 맨유의 골이었다.
하지만, 사실 전혀 위안이 되진 않았다.
그 나머지 한 골의 주인공이 또다시, 또다시 요한이었기 때문이었다.
<해트트릭! 올 시즌 네 번째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바니!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아직 전반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맨유 수비진이 전혀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거 어떡하죠? 경기를 뒤집으려면 일단 더 이상의 실점을 막아야 합니다. 근데, 이 기세라면 뒤집긴커녕 따라가지도 못하겠네요. 속도의 차이가 너무 납니다.>
전반이 끝나기 전에 3골을 몰아쳤다.
그러니 1골을 만회한 것만으론 전혀 따라가는 느낌이 아니었다.
이 정도의 속도 차이라면, 시간이 흐를수록 차이가 더 벌어질 것 같았으니까.
때문에 전반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린 뒤, 올드 트래포드엔 싸한 기운이 감돌았다.
참사의 기운이었다.
먼 과거, 맨시티에게 1대6으로 털렸을 때나, 몇 년 전 리버풀에게 0대5로 깨졌을 때 느껴졌던 그 참사의 기운.
그 때의 무기력하고 싸한 공기가 올드 트래포드에 흐른 것이었다.
“···”
히들스톤은 휘슬이 울리기도 전에 그라운드를 빠져 나와 있었다.
그리고,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대신 그는 선수들이 퇴장할 터널에서 전반이 끝나길 기다렸다.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고, 참으로 웃긴 일이다.
전반이 끝난 뒤 상대 선수에게 갑자기 인사를 한다? 상대팀의 감독이?
이건 뭐 좀 봐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말도 안되는 일이다.
근데, 그 말도 안되는 일을 히들스톤은 하고 싶었다.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적어도 맨체스터 내에선 성역화가 된 자신이다. 흔히 말하는 까방권을 얻은 존재인거다.
하지만, 오늘 대참사를 당하게 되면 그 까방권조차 통하지 않을 수가 있다.
지금껏 소방수랍시고 맨유의 사령탑을 맡았던 레전드들이 몇 명이나 있었나.
그들 모두 현역 시절엔 신으로 추앙받던 존재들이었지만, 감독이 된 뒤엔 얄짤 없었다.
조금이라도 성적이 부진하면 그대로 목이 달아났었지. 선수 시절의 인기까지 싹 다 날려 버리고 말이야.
게다가, 요한 그 녀석이 경기 후 그런 인터뷰라도 하면 어쩌나.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열심히 뛰었다, 따위의 인터뷰 말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얼마 전 보니까, 녀석 입까지 풀렸더만.
녀석이 그런 인터뷰를 하면, 자신은 팬들에게 엄청난 지탄을 받을 게 분명했다.
히들스톤이 감독직에 있는 동안, 요한의 영입이 어려워질 거라고 말이다.
요한의 영입은 현재 팬들이 가장 염원하고 있는 일이다.
그 염원이 감독 때문에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얼마나 욕을 할까.
그건 싫었다.
때문에,
“어, 저기.”
전반이 끝난 뒤, 히들스톤은 터널을 통해 우르르 걸어오는 선수들 중 요한에게 가장 먼저 다가갔다.
그리고, 멋쩍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자네, 인상적이군. 상대팀 감독조차 반하게 만든 플레이였다고.”
“···”
물론 요한이 그 손을 받아주지 않아 더욱 멋쩍어졌다.
히들스톤은 괜히 요한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좀 살살해 줘. 응? 이러다 이 아저씨 큰 일 나는 수가 있으니까. 하하.”
살살해달라는 말에, 요한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 미소에, 확 밝아지는 히들스톤의 얼굴.
그러나, 곧바로 돌아온 요한의 대답에,
“살살 하고 있는데요. 저, 이번 주에 하루도 훈련 안했거든요.”
히들스톤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