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60)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60화(60/202)
< 059화 – 군자의 복수 >
후반엔 그나마 맨유의 경기력이 전반보다는 나아진 느낌이었다.
선수들이 다시 그라운드로 나올 때부터, 표정들이 다르긴 했었다.
하프타임 동안 약간은 정신을 차리고 나왔다는 게 느낌이랄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하프타임 때, 히들스톤 감독이 개지랄을 떨었기 때문이었다.
“이 X같은 자식들아!”
머리 끝까지 화가 난 히들스톤이었다.
물론 평소에도 전반을 조지고 나면, 하프타임 때 한바탕하던 히들스톤이었다.
허나, 오늘은 그 강도가 평소의 몇 배였다.
라커룸이 난장판이 될 정도였으니까.
히들스톤은 분에 못이겨, 선수들 앞에서 라커룸의 집기들을 던지고 때려 부쉈다.
“해리슨!”
“···”
“퍽킹 해리슨! 대답해!”
“···예.”
“너! 너 새끼 연봉이 대체 얼마냐? 엉?”
“···”
“대답을 하랬지! 대답을! 니가 평소에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니던 네 연봉이 얼마냐고!”
“1천만 파운드요···”
“하! 오늘 네가 한 게 1천만 파운드짜리 플레이란 말이냐? 어? 네가 그러고도 잉글랜드 대표냔 말이다!”
최대 피해자는 해리슨이었다.
전반전, 요한에게 두 번이나 알을 먹으면서 실점의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한 해리슨은 히들스톤 감독의 먹잇감이 되었고, 다른 선수들은 행여나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들 역시도 히들스톤 감독의 분노를 피해갈 순 없었다.
“나머지도 다 마찬가지야! 내가! 이 클럽의 선수일 땐! 저딴 것들한테 진다는 건 상상도 못 했어!”
사실 히들스톤이 ‘라떼는’을 시전하면, 선수들은 가만히 듣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긴 했다.
그 말이 다 사실이긴 하니까.
히들스톤 감독이 맨유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을 땐, 실제로 웨스트 햄 같은 팀한테 지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의 맨유는 지금과 달리 최강이었고, 그 중심에 있었던 게 히들스톤이라.
감히 그런 히들스톤 감독에게 한 마디라도 대꾸를 할 수 있는 선수는 없었다.
다만, 오늘은 그런 선수들도 히들스톤 감독에게 대꾸하고 싶었다.
물론 진짜로 할 용기가 있는 선수는 없었지만, 다들 속으론 생각했다.
‘감독님이 전성기 때로 돌아와도 못 막는다고요, 저건.’
히들스톤 감독이 전성기 때 대단했다는 건 선수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정말 대단한 선수였지. 제임스 히들스톤.
그 정도 되니까 지금의 맨유 선수들 정도 되는 이들도 컨트롤할 수 있는거고.
하지만, 전반전 동안 요한과 직접 한 그라운드 위에 있어봤던 선수들은 장담할 수 있었다.
그 대단한 히들스톤이 돌아온다고 해도, 저건 못 막는다고.
때문에, 후반 초반.
히들스톤 감독에게 작살나도록 깨진 맨유 선수들은 잠시 파이팅 있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게임을 완벽히 뒤집진 못했다.
그들이 히들스톤보다 더 두려운 건, 요한이었으니까.
‘씨발···’
그런 경기를 지켜보며, 히들스톤 감독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열 받는다. 미치도록 열 받는다.
뭐? 살살하고 있다고? 이번 주에 훈련 한 번 하지 않았다고?
‘그 애비에 그 아들이구만.’
전반이 끝난 뒤, 터널에서 녀석이 했던 말.
그 말을 듣고, 먼 과거의 일이 생생히 떠올랐던 히들스톤이었다.
반석호와의 일을 어렴풋이 기억은 하고 있었어도, 그와 나눴던 대화 모두가 기억나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근데 요한의 말을 들으니 떠올랐다.
그때, 재능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서로 죽일 듯이 싸웠었지.
서로 누가 진짜 재능인지를 가지고 말이다.
녀석이 그런 말을 한 건 그 때문일 것이었다.
그리고, 보여주려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보다 지 애비의 재능이 더 뛰어났다고.
‘아니, 잠깐.’
생각해보니, 그렇게 따지면 그 애비에 그 아들이라는 게 칭찬이잖아.
저 녀석, 지금 22명의 아들들 중 제일 눈에 띄고 있으니까.
진짜 뭣 같군.
아무튼, 히들스톤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감독이라는 사람이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되는 법이다.
누구보다 머리를 차갑게 하고, 냉철하게 경기를 바라보며 문제점을 해결해야 하는 게 감독의 역할.
그러나 히들스톤의 상황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미 참을 수 없는 감정에 지배되어버린 히들스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부들대는 것 뿐이었다.
그러니, 후반도 웨스트 햄이 경기를 주도해 나가기 시작한 것 역시 요한 덕분인 것이었다.
요한의 한 마디가 맨유의 컨트롤 타워를 붕괴시킨 것이었으니까.
<아, 테일러의 패스가 끊깁니다. 좀 더 집중력을 가질 필요가 있는데요. 저건 의도를 알 수 없는 패스네요.>
<웨스트 햄의 조직적인 압박에 맨유가 풀어 나오질 못하고 있습니다. 개인 능력으론 한계가 있어요.>
<개인 능력으로만 다 할 수 있으면 팀 훈련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그냥 공 주고 알아서 하라고 하지요.>
<어어, 요한. 요한! 순식간에 수비를 제쳐내고 들어 갑니다! 어디까지 가나요! 오른발, 슈우웃-! 고오오오올-!>
<공 주고 알아서 하라고 하니까 잘 하는데요?>
<저 정도 하면 가능하군요. 아무튼, 포트트릭입니다! 포트트릭!>
<데뷔 이후 최초 아닌가요? 한 경기에 네 골을 몰아 넣는 요한 반! 올드 트래포드가 침묵에 빠집니다!>
새삼 쐐기골이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어쨌든 쐐기를 박는 요한의 네 번째 골이 후반 14분에 터졌다.
팀 전술보단 개인 전술에 의존하는 맨유에게 한 방 먹이는 골이었다.
개인 전술에 의존하려면, 이 정도 하는 선수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 했다.
맨유가 맨날 비판 받는 부분이 너무 개인 기량에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한을 본다면, 개인 기량에 의존하는 것도 꼭 비판 받아야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 전술도, 그 개인 전술을 행하는 플레이어의 기량이 월등하면, 고도의 팀 전술보다도 훨씬 파괴적이었으니까.
맨유가 비판 받아야 한다면, 그 많은 돈을 쓰고도 요한만큼 할 수 있는 플레이어를 데려오지 못했다는 것뿐.
아무튼, 그 골로 요한은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한 경기에 네 골을 넣는데 성공했다.
그것도 상대가 어디 강등권 팀도 아니고, 맨유인데다 그들의 홈인 올드 트래포드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가장 쉽지 않은 원정 중 하나인 올드 트래포드 원정.
그러나, 요한에겐 아무 의미가 없어 보였다.
“FOUR! FOUR!”
“이게 말이나 돼!? 맨유한테 네 골이야!”
“말 되지! 맨유, 저까짓게 뭐라고! 다섯 골까지 가자!”
올드 트래포드가 조용하니, 유독 원정팬들이 내지르는 함성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마치 남의 집에 전세 낸 느낌.
웨스트 햄 팬들은 4대1이라는 스코어를 만들어 낸 요한에게 아낌없이 환호를 보냈다.
그리고,
반석호는 이제 더 흥분하지도 않고 있었다.
“더 기뻐하기도 불쌍하네.”
맨유 벤치에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히들스톤을 보니, 되려 자기가 가해자라도 된 느낌이어서 더 기뻐하기도 미안하다.
어릴 때 친구한테 맞아서 형한테 일렀더니, 형이 그놈을 아주 반죽일 기세로 패는 걸 보는 기분이었다.
난 그냥 한 대 맞았을 뿐인데.
이제 그만해도 되는데.
이제 충분한데···
“어엇!”
“우와아아아아-!”
“또 들어갔다! FIVE!”
아무래도 덜 솔직했던 모양이다.
이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게 거짓말인 듯, 요한의 다섯 번째 골이 터지자 반석호는 다시 한 번 펄쩍펄쩍 뛰었다.
*
맨유는 속절없이 무너졌고, 결국 경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올드 트래포드를 찾았던 홈팬들은 경기장을 우루루 떠났다.
아무리 대패를 해도, 경기 도중에 팬들이 경기장을 빠져 나가는 건 드문 일.
그러나, 차마 더 볼 수가 없는 경기였다.
먼 옛날, 맨체스터 시티에게 당했던 식스 앤 더 시티의 재방영.
웨스트 햄이 맨유를 6대1로 이겼다.
요한이 다섯 골을 몰아쳤고, 후반 추가 시간엔 팀 고든까지 한 골을 추가했다.
맨유에겐 홈에서 이보다 더 완벽한 참사는 없었다.
때문에,
“그 따위로 할 거면 그냥 그만 둬!”
“나도 당신 욕하기 싫어! 근데 욕을 할 수밖에 없잖아!”
“아름다웠던 시절은 끝났다! 맨유를 위해서 사라져 줘!”
히들스톤 감독에게 얼마 남지 않은 홈팬들의 원성이 쏟아진다.
그 원성에 히들스톤은 고개를 숙인 채 빠른 걸음으로 그라운드를 떠났고,
~I’m forever blowing bubbles!~
~Pretty bubbles in the air!~
~They fly so high!~
~nearly reach the sky!~
텅 빈 올드 트래포드엔 웨스트 햄의 응원가만이 울려 퍼졌다.
올드 트래포드가, 이 날만큼은 올드 트래포드가 아니라 어나더 런던 스타디움이었다.
*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 장.
“오늘은 특별히 두 명을 인터뷰 합니다. 한 분은, 오늘 경기의 MOM, 무려 5골을 몰아친 요한 반 선수.”
수훈 인터뷰를 위해 요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사람과 함께다.
“다른 한 분은, 오늘 경기의 또 다른 MOM이죠. 요한 선수의 아버지, 석호 반입니다.”
반석호가 싱글벙글 웃으며 서 있었다.
오늘 줄곧 중계 카메라에 모습이 잡혔던 반석호였다.
때문에 방송사들도 이를 놓칠 수 없어, 반석호를 인터뷰 장으로 모셔온 것.
매스컴이 가장 환장하는 게 무엇인가.
스토리다.
맨유, 그리고 히들스톤과 반석호의 악연은 유명한 이야기니, 이 때를 놓칠 수 없었다.
“요한 선수, 오늘 시즌 최고의 경기를 펼쳤습니다. 아무래도, 아버지의 존재가 영향이 있었을까요?”
기자의 질문에, 반석호를 슬쩍 바라보는 요한.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게 영향이 있었을까요?”
“음···”
요한이 턱을 긁적인다.
아빠 앞에서 말하려니, 좀 쑥스럽네.
모든 인터뷰에 솔직하게 답하기로 했지만, 지금은 좀 낯 간지러워.
그라운드 안에선 폭군이지만, 그라운드에서 나오자마자 영락없는 사춘기 소년이다.
“절 낳아주신 게 아빠니까, 오늘 경기 결과도 아빠가 만들어 내신거죠.”
“아, 하하하! 맞는 말이네요. 그거 멋진 답변입니다.”
조금은 우물거리며 한 대답에 기자들이 빵 터졌고, 반석호도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엔, 반석호에게 질문이 갔다.
“어떻게 보면 통쾌한 복수인데요. 아들이 정말 자랑스러우실 것 같습니다. 오늘이, 아들 덕분에 가장 기쁜 날일 것 같으신데, 어떠세요?”
아들 덕분에 가장 기쁜 날이라.
그 질문에 반석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죠.”
그러자 기자들이 고개를 갸웃인다.
오늘이 아니라고?
반석호는 대답을 이었다.
“오늘은 두 번째로 기쁜 날이네요. 이 녀석 덕분에 제일 기뻤던 날은, 벌써 엄청 오래 전인데요. 2011년 4월 26일이요.”
“2011년 4월 26일?”
여전히 알 수 없는 대답이다.
다만, 요한만은 알아 들은건지 피식 웃었고,
반석호가 워낙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에 기자들은 구태여 더 묻지 않았다.
이후 몇 가지 질문들이 더 이어진 뒤, 부자 간의 시간을 위해 인터뷰는 일찍 끝이 났다.
그렇게 반석호와 요한이 어깨동무를 한 채 인터뷰 장을 빠져 나가고.
기자들은 2011년 4월 26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뭐 없어?”
“딱히 뭐 없는데?”
근데 딱히 뭐가 없다.
그냥 평범한 날인데···
그러다,
“아! 찾았다!”
“뭔데?”
“뭐예요?”
한 기자가 뭔가를 찾은 듯 하더니, 갑자기 울듯한 표정을 지었다.
“2011년 4월 26일. 요한 선수 생일. 요한 선수가 태어난 날이라고.”
“아···!”
그 순간, 인터뷰 장엔 갑자기 콧물 감기를 호소하는 기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들 콧물을 훌쩍이기 시작한 것.
그리곤, 다들 핸드폰을 꺼내더니.
“어. 엄마. 나야.”
“예, 아버지.”
다들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